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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앞둔 고3이 응급실에 실려갔다. 전국에서 알아주는 특목고에서 대입을 앞둔 아주 중요한 시기에 맥없이 쓰러진 아이. 아이의 병명은 공황장애.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하고, 정신이 아득해지고, 경계가 흐트러지는, 이상한 병.
공부도 잘 하고, 인물 좋았던 이 아이는 순간, 패배자가 된다.
아이의 청춘은 그렇게 시작됐다. 착란된 채, 어그러진 채, 사랑이 시작되고, 문학이 시작되고, 성장이 시작됐다.
독자는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고요한 수면에 폭우가 쏟아지는 기이한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투명한 연못이 흔들리고 물고기가 튀어 오르고 물길이 바뀌는 모습. 이런 혼돈 속에서도 한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기이한 광경.
이 책은 한 시인의 투쟁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투쟁이기도 하다. 책을 덮는 순간, 또 하나의 청춘이 옆구리에서 샘솟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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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텔레비젼에서 연예인들이 한때 공황장애 때문에 힘들어 했다는 말을 했었다. 또한 우울증 때문에 자살한 연예인도 꽤 많아서 우리를 아프게도 해서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죽음을 생각할 정도였다는 사실에 참 안타까웠다. 거의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라고 알고 있는데 본인이나 가족들이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 젊은 시인이 고통으로 써내려간 산문집을 읽게 되었다.
공황장애란 말이 생소하던 1996년 고등학교 3학년에 발병을 해 최근까지 공황장애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와중에도 문학에 대한, 시에 대한 열정으로 이겨내 왔던 젊은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글들이다. 더도 보태지 않고 힘들었던,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던 그의 날 것의 감정들이 그대로 적혀져 있다. 그 고통의 시간들을 시로 써내려가고 일기를 쓰듯 써내려간 글들. 그의 글에서, 나는 공황장애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조그만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그의 일기같은 그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글들에서 나는 그의 산문이 여러편의 연작시처럼 그렇게 느껴졌다. 산문이 이렇게 시처럼 느껴질 수도 있구나.
순간의 간절함은 그 간절의 대상에게는 모욕일 수 있으나 지속적이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던질 수 있는 간절은 그 자체로 사랑의 역사다. 단 한 명이라도 위로해줄 수 있다면 그 시 혹은 그 시집은 열렬히 존재해야 한다는 게 나의 입장이다. 하나의 운명에 다른 하나의 운명을 덧대는 일. 그런 게 시가 아닐까 하는 것이 요즈음의 생각이다. (105 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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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 박진성은 '내가 아픔'을 통해서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 본다고 했다. 자신의 병을 고백하며 '살아야겠다'라는 울부짖음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열렬하게 앓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병까지도 다 앓을 수 있다는 것. 당신 대신 내가 아파주겠다는 그런 글들이 그냥 마음속 가득히 채워졌다. 우리는 그의 그런 아픔을 지켜보며 우리는 위로의 감정을 느낄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문학, 즉 시는 간절함이었고 견딤이었고, 어떻게든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그가 읽었던 시들.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이라든가 송재학 시인의 『피아노』, 송경동 시인, 진이정 시인의 시 들을 읽고 또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고통을 다스린 것 같다. 그가 읽은 시집들과 책속에 있는 시집들을 열심히 메모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집도 있고, 내게 없는 시집도 있어서 그가 시 속에서 느꼈던 위로를 나 또한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책의 표지를 봐도 빨간 등대가 하나 있고 그 옆으로 퍼지는 여섯 개의 선으로 된 빛을 비추고 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마음을 잃은 사람에게 안내자 역할을 해주는 그러한 산문집이다. 이제, 영혼이 절규로 썼을 그의 시집 『목숨』과 『아라리』를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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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열아홉부터 겪은 공황장애의 아픔을 담고 있는 시인의 글이라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 앉기도 하지만 시인의 풍부하고 다양한 언어로
접한 아픔에 잘 몰랐던 공황장애의 고통에 공감이 생기고 누구나 겪게 되는 아픔에 대한
마음을 생각해보게 되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마음이 생겨났다.
다른 사람이 아파하는 걸 봐도 내 아픔만큼 잘 느낄 수는 없다. 그래서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런 마음이 아파하는 상대에게도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시인에겐 정말 고통스러운 기억들이겠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고통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게 되었다.
‘말하니까 생각나네’ 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을 말함으로써
생각나고, 기억하게 되는 안 좋은 것들이 때때로 나에게도 밀려와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데,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망각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지성과 이성이 지나치게 비만한 사회라고 지적한 부분에 크게
공감했다. 그래서 요즘엔 개인의 목소리가 더 강해지고 높아짐을 느끼며 일상의 작은 부분
에서도 논쟁거리가 생기고 적당히 타협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 같다.
전반적인 내용이 시인이 고통에서 느낀 아픔과 거기서 얻은 깨달음이나 생각, 넘어서 타인에
대한 이해까지 시인의 깊이 있는 언어로 이해하게 되고 공감하게 되면서 그 병을 무시무시한
것으로 만드는 사회의 통념에 불편한 마음까지 들었다. 시인이 말한 우리 시대에게 필요한
공통 감각 ‘우리-같이 아픔’이 요즘 시대에 자주 언급되는 소통과 공감으로 연결됨을 느꼈다.
현실의 압박이 심해질수록 책으로의 도피가 강화된다는 시인의 말에 요즘의 나를 표현하는
말 같아서 뜨끔한 마음이 일었다. 내 앞의 문제에 지치도록 달려들어야 하는데 도피하면서도
아닌 척 하다가 덜미를 잡힌 기분이랄까. 이 말이 필요해서 책을 읽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도 남의 깊이 있는 생각을 들여다보기 좋아해서 에세이를 자주 읽고 있는데
이번 책은 시인의 풍부하고 깊은 언어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조용한 시간에 열심히 생각하며
느끼고 공감하게 된 책 읽기라 다른 사람을 이해 할 수 있는 마음의 지평을 넓혀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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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 시인의 오랜 독자다. 고백하자면 나는 경미한 우울증 환자다. 그래서 박진성 시인의 시에 더 공감을 느꼈던 걸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동아일보에서 접하고 두근두근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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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착란>은 여백과 공백이 많은 책이다. 아포리즘과 산문 사이에 위치한 글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 책에서 나는 그런 글들이 좋았다. 가령 이런 문장들. “너와 나의 등고선은 그 축척 자체가 다를 지도 모르겠다. 삶의 경사는 체감의 문제니까. 네 삶의 등고선까지 내가 그려줄 수는 없으니까.”(172쪽.) 이 문장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살아가면서 겪는 경험의 차이를 시인은 등고선에 비유하고 있다. 기발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발상에서 시작해 시인은 인간관계의 어쩔 수 없는 괴리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다분히 철학적인 명제를 저렇게 깔끔한 문장으로 풀어내는 시인의 솜씨에 나는 감탄했다.
“마음의 격렬과 적막이 다투는 사이”(173쪽). 가끔 이유 없이 찾아오는 불안을 시인은 저런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다. 섬세하다. 그리고 투명하다. 나는 시인의 문장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을 이렇게 적을 수 있겠다.
책 속의 문장이다. 시인의 말이 맞다. 정말 어떤 날은 아무것도 없다. 공허에 대해서 시인은 말하고 있는 걸까.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시인의 생각 속으로, 문장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 책의 단연 압권은 ‘공황장애’로 상징되는 시인의 병 체험에 대한 시인 자신의 기술이다. 아팠고 안타까웠고 또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시인에겐 불안을 다스려주는 시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불안을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가. 책을 읽고 또 나에게 자문하고, 그런 방식으로 이 책은 읽힌다. 고통 속에서 시인이 토해내는 말들이 너무 고압적이지 않아서 좋았고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대화. 시인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다시 책을 열면 시인의 명민한 눈과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청춘착란> 책이 내 책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덜 불안해지는 이런 이상한 체험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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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의 산문집을 음식으로 비유하면 잘 차려진 한정식이라고 해야겠다. 반찬이 많다는 얘기다. 시인 자신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그가 시인 지망생 시절부터 시인으로 살고 있는 현재까지의 기록이다. 시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20대와 30대 초반을 온전히 시에 가져다 바친 한 영혼의 기록”이다. “갸륵하게 제 목숨 지켜낸 16년의 간절한 기도”이다. 실제로 박진성의 산문집은 16년간의 다양한 기록들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문학의 출발점인 병체험부터 시작해, 그의 일상에 대한 기록, 그가 시인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의 시인으로서의 고민,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시인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들이 산문집 전편에 녹아있다.
시인 지망생인 나로서는 그가, 그의 방식대로 읽어주는 시들이 참 좋게 느껴졌다. 이성복, 송재학, 송찬호, 장석남, 심보선, 함성호, 최승자, 송경동… 박진성의 산문집은 시의 성찬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그의 산문집을 ‘공황장애’라는 질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좀 과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박진성은 지금껏 읽어온 시인들의 산문집 중 가장 절실하고 절박하게 시인들의 이름을 호출하고 있다.
박진성의 시 읽기는 독특하다. 기존의 시 해설서들이 시 읽기를 무슨무슨 이론이나 수박 겉핥기식으로 시를 다루고 있다면 박진성은 시 자체로 뛰어 들어가 그 자신의 시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을 다루고 있다. 물론 장단점이 있겠지만 시인 자신이 들려주는 특정 시에 대한 자신의 특정 체험은 시 한편을 훨씬 풍부하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내게 주었다.
특히 이성복 시인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달라 보였다. 이미 한국시의 성좌로 자리잡은 이성복 시인이고 나도 이성복 시인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박진성의 산문집을 통해 이성복의 문학을 좀 더 세밀하고 친근하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육체가 없었으면 없었을 구멍”이라는 구절은 이성복의 시를 읽다 그냥 지나친 구절이었는데 박진성의 산문집을 다 읽고 내가 산 시집을 열어보니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나의 경우처럼, 누군가 그어놓은 밑줄에 다시 친절하게 밑줄을 그어주는 시인 박진성. 박진성의 산문집은 좋은 시창작 교재로도 가능하겠다 싶어 같이 시를 쓰는 몇몇에게 권해주었다. 소울메이트라는 말이 생각났다. 박진성의 산문집은 내게 소울메이트 같은 책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까 그의 시를 다시 읽고 싶어졌고 시가 쓰고 싶어졌다. 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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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제법 설렜다.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하고 시인들의 산문집을 몇 권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박진성의 산문집은 기대이상이었다. ‘청춘착란’이라는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그의 산문집이 ‘병’에 치우쳐 있을까봐 다소 우려스러웠는데 기우였다. 그의 산문집은 시인 자신이 서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그 자신이 지나쳐 온 청춘의 기록들로 가득하다.
골목에는 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쇄골뼈 즈음부터 터져나오려는 울음 때문에 나는 잔뜩 힘주어 걸었다. 눈보라 같은 슬픔. 보송보송 솜털 같은 슬픔. 너와 나만 아는 슬픔. 마다가스카르보다 먼 슬픔. 백사장을 맨 발로 걷는 너의 발바닥을 간질이는 슬픔. 불꽃이었어 먼 바다의 파도였어. 소멸을 운명으로 가진 것들의 슬픔. 가여운 눈발들은 갈 곳이 없어서 또 이 골목에는 눈이 내린다. (p.196)
분명히 산문집인데 왜 나는 시인의 문장들이 시라고 느껴질까.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을 무척이나 기다리는 나에게 페이지 곳곳의 생동감 넘치는 시적 리듬들은 문장에 대한 나의 갈증을 충분히 해소해주고 있다. 촌철살인의 문장들은 단숨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랑, 나의 손가락들이 비집고 들어갔던
어떤 슬픔은 활자를 통과하면서 눈부시게 빛난다. 활자의 빛은 슬픔 자체의 원형질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그 슬픔이 거느리고 있는 그늘을 격렬하게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슬픔을 위로한다. 이러한 방법은 가령, 시(詩)가, 고통을 살아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p.267)
시인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박진성 시인만이 쓸 수 있는 문장들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에 대해서 그리고 슬픔에 대해서 오랫동안 천착해온 시인의 내력 탓일까. 산문집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묵직한 우울감이 오히려 내겐 차분함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한 편의 긴 시로 읽어도 되겠다. 그리고 또 이 책은 한 편의 장편소설로 읽어도 되겠다. 산문집이라는 틀 자체가 어쩌면 시인이 풀어놓는 문장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을 읽은 느낌이 들었다. 박진성의 다음 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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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본 건 가을학기가 막 시작되는 강의실에서였다. 동기가 읽고 있는 자그맣고 두툼한 책. 청춘착란. 제목이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보는 책을 잠시 빌려 페이지를 훑어보았다. 이런 문장이 눈에 처음 들어왔다. “당신이라는 햇빛. 나는 이 햇빛 속에서 당신을 만나던 봄밤. 그 새벽을 통째로 내 눈 속으로 끌고 들어와, 아, 실명할 것 같은 고단한 봄날의 기억들. 살아 있으라 살아 있으라, 부서지며 흩어지며 내 몸을 마구마구 두들기는 저 저, 햇빛 좀 봐, 당신아.”(140쪽).
분명히 산문집인데 책의 대부분의 문장은 시적으로 느껴졌다. 그날 서점에 들러 책을 샀고 단숨에 책 한 권을 통째로 읽어버렸다. 이런 흡인력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책의 여운에서 아직 못 벗어나고 있는 나는 책을 다시 펼쳐본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봐도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문장은 어떠한가. “슬픔은 어떤 장르일까. 어쩌면 슬픔은 구름처럼, 바람처럼, 그리고 나무처럼 우리 호흡의 일부가 아닐까. 그래서 ‘자기도취적 슬픔’은 어떤 계절처럼 오래 머물다 간다. 오랜 울음이 있어야 그 슬픔은 겨우겨우 다른 계절과 함께 지나간다.”(202쪽). 폭염을 막 지난 가을바람처럼 다가오지 않는가. 또 이런 문장은 어떠한가. “마음이 너무 요란하거나 붕 떴다 싶을 때, 사티의 짐노페디를 듣는다. 그걸 반복해서 듣고 있으면 놀아달라고 놀아달라고 내 발목이며 무릎을 간질이는 반려견 사랑이도 저 침대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제 앞발에 얼굴을 얹고 있다. 개도 사티를 듣는 것이다. 개도, 가라앉히고 싶은 어떤 마음을 듣는 것이다. 순전히 몸으로 말이지.”(214쪽). 개와 시인이 나란히 방에서 음악을 듣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이 오갔다. 요즘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공황장애를 나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 그 병이 얼마나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시인의 처절한 육성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람의 고통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윽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탄생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차라리 시인의 병이 부러웠다. 책 전편에 고루 펼쳐져 있는 이 아름다운 문장을 얻을 수 있다면 나도 시인처럼 아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친 나의 감정의 과잉일지라도 이 책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줬다.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것 같다. 청춘착란. 책에서 놓여난 지금도 몸이 떨린다. 문장들이 공중에서 떠돈다. 착란인가? 이런 착란이라면 얼마든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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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알았어요. 시인의 체험이 정말 절절하게 와 닿았답니다. 공황장애, 요즘에 많이 나오는 말이지만, 이 책처럼 문학으로 접근한 사례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초반부에 나오는 공황 증상을 처음 겪었을 때의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륵주륵, 흐르더라고요. 중반 이후부터는 시인의 문장에 감탄했어요. 이래서 시인이구나, 싶을 만한 기발하고 섬세한 문장들. 문장 뜯어보는 재미도 있어요. 더불어 요즘 시단의 분위기라든가 일상이, 사물이, 어떻게 체화되어 시가 되고 문학이 되는지 깨알 같은 문장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요. 저는 아주 좋게 읽었거든요? 억지로 무언가에 끼워 맞추지 않은 편집도 좋았고요. 부디 널리 읽히는 책이 되었으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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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의 산문집을 주문하고 책을 기다리는 동안 혹시 책에 대한 기사가 있을까 검색해보았다. 몇몇 언론들이 이 책을 다루고 있었다. 대부분 공황장애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그는 첫 산문집에서 또 병 얘기를 하려하는가?
박진성 시인의 시집 두 권을 좋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의 시집은 그 자신의 병에 대한 기록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의 시가 병으로 집중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나는 그의 미려한 문장이 좋았다. 언어 미학이 어디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가, 그의 시를 읽는 내내 나는 그의 문장에 빠져들었다.
그의 산문집은 물론 병으로 시작한다. 충분히 공감이 갔고 시에서 읽을 수 없었던 병의 내력, 병의 주변부, 그리고 시인이 겪었을 고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여기까지는 시집 <목숨>, 그리고 <아라리>의 후일담쯤 되겠다. 책의 후반부는 시인의 예민하고 번뜩이는 발견들로 가득하다. 우리들 삶 저류에 흐르는 미세한 무늬들, 그리고 시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편들에 대한 시인의 섬세한 감상. 나는 이 산문집의 후반부, 그러니까 병에 대해 말하지 않는 부분이 좋았다. 출판사에서 내어놓은 서평처럼 그는 그 자신의 병과 결별하는 중이었다.
언론들이야 워낙 자극적인 걸 좋아해서 자극적으로 기사를 썼고 출판사들도 어쩔 수 없이 책을 팔기 위해 그의 병을 전면에 내세운 것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게임의 법칙’이 있는 것일까.
아무튼 박진성의 첫 산문집은 큰 선물이다. 한 시인의 변모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움이다. 공황장애에 매몰되어 있던 그가 간신히 간신히 병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을 나는 이 산문집에서 엿본다. 시인의 산문집 중에 가장 인상적인 산문집 중 하나다. 드문드문 박진성 시인의 산문을 간혹 잡지에서 볼 수 있었지만 그리고 그의 산문이 상당히 수준급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산문집을 읽는 내내 그의 산문의 수준이 이 정도였나, 내내 감탄했다. 시인지망생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문장에 더 눈길이 갔다.
시와 산문의 경계를 생각하게 해주는 산문집이다. 그의 어떤 산문들은 시 같다. 시인이 그것을 의도하고 쓴 것일까. 문장을 읽는 맛으로도 이 산문집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책의 구성은 정말 독특하다. 형식이 없다. 형식은 분명 없는데 그 무형식의 형식이 문장 읽기를 오히려 매끄럽게 해준다. 이 산문집은 한 편의 긴 시로 읽어도 되겠다. 오랜만에 좋은 책 한권을 설레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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