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의 어둠을 넘어서_2230자_김인국 저 [말씨를 무릅쓰고 하는 말]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자 업인 김인국 신부에게 성경은 말씀의 보고이자 신도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이끄는 목적과 수단 그 자체이다. 그런데 그가 성경대신 자신의 펜을 들었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말씀'에 대해 말했다. 말씀은 말을 받아서 쓰는 것이기에 무릇 성인이라 불리는 사람은 자기 말이 없는 사람과도 같다. 라고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 신부에게 2230자라는 칼럼은 어떤 의미일까 라는 궁금증이 피어났다. 말에는 씨가 있어 한 번 퍼져 나가면 반드시 싹을 틔우는 법인데, 무엇이 김인국 신부로 하여금 그 위험을 무릅쓰도록 만들었을까 싶었다. [시대의 어둠을 넘어] 김인국 신부의 말과 글은 자기 반성의 발로이다. 어찌보면 스스로가 속한 종교계 전체를 향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말과 글고 연명하는 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 나라는 지옥 조선이 되고 말았다 이제 어디에다가 '봐라,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구나'를 외쳐야 할지 모르겠다 설교자의 직무란 본시 사회의 안일과 교만을 일깨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은 망했다고 믿는 젊은이들이 절반에 육박하고 있으니 그럴 일도 별로 없겠다 " 그래서였을까. 저자는 시대의 어둠과 사람들의 아픔을 크게 느끼는 듯 같기도 하다. 칼럼을 게제한 시기는 2015년 9월 부터 2018년 2월까지로 '파란만장 대한민국'이라 할 만큼 어둠도 실망도 희망도 크게 우리를 휘감던 기간이다. 저자는 아픔에 공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의 어둠을 드러내고 아픔을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2019년 현재의 시점에서 그 아픔의 시기는 과거다. 아직도 아픔을 간직한 사람이 있음에도 그 일들과 무관한 사람들에게는 과거일 뿐이다. 2230자 칼럼에서 거듭 언급되는 단어들... 세월호 참사, 국정교과서, 최순실 등 국정농단, 구의역참사, 강남역 살인 등등... 사실 모두 한 때 온 나라를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들이며 나 역시 어느 하나 처음 듣는 게 없을 정도다. 그럼에보 이 단어들을 듣는 순간 왠지모를 까막득함과 살짝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 같은 사람에겐 한 낱 사건 그것도 지나간 사건이 된지 오래였다. 왠지모를 부끄러움이 이는 듯했다. 우리는 그 일들을 잊은 듯 살지만 그래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지만, 저자의 글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해결했기에 잊은 것이냐고! 아니면 잊음을 단순히 시간이 흐르면 다가오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편히 생각한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기억과 행동만이...] 저자는 선인들의 말이나 역사적 사건 등을 꽤 인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 '기억'하고 '행동'하는 사회만이 역사의 실수?를, 시대의 어둠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들이 그저 우연이거나 실수의 결과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는 것으로 충분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겹겹이 쌓여온 역사는 말한다. 시대와 세월의 어둠엔 언제나 그 원인이 있다고!. 그리고 그건 다름 아닌 사람이라고!. 마을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 조직을 구분짓는 층위가 있고 그 시스템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사실 사람들의 삶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어둠을 물리치는 주체는 우리 스스로의 기억과 행동이라고 더욱 강조하는지도 모른다. 그런의미에서 촛불은 가히 혁명이라 할 만큼 크고 단단한 의미가 있다. 저자 역시 촛불의 의미를 진즉부터 생각한 듯하다. "무력한 초 한자루가 불의에 맞서는 비무장 시민들의 유일한 압박수단이라서 그렇다. 촛불은 안으로는 재욕망을 태워 없애고 밖으로는 어둠을 비춘다 " 한낱 싹이 단단한 나무가 되듯 작디작아보이는 촛불의 시간이 불러 올 변화. 인고의 시간을 버틴 나무는나무가 되면 더이상 약하지 않다. 꺽으려면 힘쓸 작정에다 가시에 찔릴 각오까지 해야 한다. 한 때 나물이던 그것은 아무리 가늘어도 회초리가 되고 육모 방망이가 된다. [그래도 사람이 희망, 사람과 사람 사이] 2016년 3월 온 사람들이 목격한 세기의 대결 한 편엔 사람이 아닌 알파고가 있었다. 그 결과는 그 대결 자체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사람이 만든 기계 앞에 사람이 이렇게 무력할 수 있음을 처음이자 직접적으로 실감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사람의 힘을. 기계 따위는 흉내 낼 수도 없는 사람의 숭고함을. 저자는 명동성당에 모인 선배들을 보며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져주다 짊어져주다 마지막에는 스스로 죽으러 가는 사명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숭고함이 사람들의 조직된 힘이 잘 발휘 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어떻게 잘 유지하느냐에 있다고 강조한다.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것들이 누군가에겐 끝나지 않는 현재가 아닌지, 너무 깊은 아픔은 아닌지 또 그것이 시대의 어둠 때문이진 않은지... 모두가 모두이 눈이 되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을 때 시대의 어둠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종교적 신념이 드러난나는 머리말 부분을 되새기며..... "2230자 글은 시대의 신음 같은 것이어서 고운 말씨, 고운 말씀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언제나 이 땅을 사랑하시고 이 땅의 형편 때문에 자주 끙끙 앓으시는 하느님의 애끓는 심정이 어느 한구석 한 글자에라도 묻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
|
《2230자》 김인국 칼럼집 | [철수와영희]
단 하루라도 아무런 사건없이 평온한 날이 있을까. 오죽하면 천주교 신부가 날 선 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판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230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일원인 김인국 신부가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국내 일간지에 기고한 서른세 편의 칼럼을 모은 책이다. 날카로운 비판보다 원색적인 비방과 공격이 난무하는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을 고려해볼 때, 김인국 신부의 칼럼에 주목하게 된다. ‘2230자’는 저자가 기고하는 칼럼에 대한 분량제한인 듯하다. 저자는 사회의 크나큰 이슈들에 대한 생각을 한정된 분량의 지면에 풀어 놓는다. 그의 목소리는 사회의 일반 구성원이자 시민의 입장에서 나오고 있다.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 준엄하게 권력을 꾸짖기도 하고, 때로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어두운 현실에서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나는 그리 길지 않았던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요지경 세상을 체험했다. 신문에서만 보던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아마 오랜 시간을 사회 속에서 지낸 사람들은 사회의 부조리한 면들이 이미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졌을지 모르겠다. 백남기 농민을 ‘전문 시위꾼’이라 욕하던 회사의 임원도 있었고, ‘우리 나라가 일제 강점기 때 해방이 안되었으면 지금 더 잘 살았을 것’이란 말을 하여 나를 놀라게 했던 거래처 임원을 만나기도 했다. 또 어느 중소기업 업체 사장은 요새 젊은이들 중에 ‘빨갱이들이 너무 많다’라며, 자신의 아파트 매매가격이 15억 이하로 떨어졌다며 정부를 욕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때론 큰 기업의 하청업체의 입장에서, 때로는 또 다른 외주업체에 일을 맡기는 작은 회사의 회사원으로서, 좋은 환경에서 전문직으로 살았다면 접하기 힘든 값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이런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과 합리적인 일처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일이 아닌 다른 문제에 관해서 이들은 어떻게 이런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회사생활을 하며 만났던 이들을 단순히 비난하기만 하는 일은 매우 쉽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쉬운 비난하기를 일단 접어두고, 이들이 어떻게 해서 이런 생각과 주장을 하게 되었고, 나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판단이 선다면, 보다 긍정적인 변화를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는 이미 익숙해진 사실인 ‘언론의 글은 무엇보다 그 결론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글이 쓰이거나 다듬어진다는 사실’을 염두해둔다면,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좀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검토해보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나는 앞서 예를 든 사람들의 ‘논리’에 대해 이를 비판하고 내 의견을 갖출만한 논리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이 발견으로 나는 나에 좀더 알게 된 부분도 있다. 나라는 사람의 감정과 지적인 한계에 대해 깨닫게 되면 여기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2230자》을 읽어나갈 때, 사회의 부조리에 비판하는 사람이 필요한 이유를 보다 분명히 깨닫게 된다. 일본사회의 상황을 예를 들어보아도 그 중요성을 바로 알 수 있다.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는 아베 정권과 여기에 동조하는 일부 세력이 기획하고 휘두르는 망동에 그동안 일본 사회내에서 비판기능이 상당히 약해져버렸음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특히 90년대 이후 진보세력으로 자처하는 리버럴 세력의 붕괴현상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입지를 찾기 힘들어 졌다. 오늘날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내는 일 자체가 힘든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아베를 비판하는 공무원은 상당수 퇴출되었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서경식 교수에 따르면 이 모든 결과의 근본원인으로 일본의 ‘식민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그리고 이들과의 화해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점점 더 큰 거짓말을 하다가 이제는 걷잡을 수 없게 된 형국이다.
김인국 사제의 비판은 우리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곧바로 겨냥하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머리글에서부터 “어차피 고운 말씨, 고운 말씀은 못 될 것입니다. 그래도 언제나 이 땅을 사랑하시고 이 땅의 형편때문에 자주 끙끙 앓으시는 하느님의 애끓는 심정이 어느 한구석 한 글자에라도 묻어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그의 글은 비판적이면서도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기도 하다. 사랑을 전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떠올리기도 하며,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비판과 포용을 하는 모습도 읽게 된다. 우리의 삶이 부조리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리고 ‘나름대로 만족’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만족도는 사회가 더 부조리하게 변해갈 때, 더 열악한 사회의 상황에 적응해갈 뿐이다. 당연해보이는 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가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2230자》의 저자는 사회에 당연해보이는 일에 곧바로 목소리를 높여 의문을 던지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칼럼 하나에 담긴 저자의 모든 주장에 공감이 가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보다 다양한 생각과 비판적 검토가 독자들 내부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칼럼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2230자》가 독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한 글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사회의 해당 문제와 시간·공간적으로 멀어지기 시작할 때, 우리의 기억을 되살리고, 생각하게 하는데 그 역할이 있을 것 같다. ‘세월호 사건’도 우리 사회에 크나큰 충격과 경종을 주게된 사건이다. 그러나 사건의 배후에는 보다 거대한 어른들의 부조리가 함께 도사리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저자는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타박하는 이들에게 이를 계속 기억할 계기를 준다. 보다 근본적인 사회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바꾸기에 그 변화는 아직 느리기에, 김인국 사제가 사회에 던지는 경종은 더 소중해보인다. |
|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83 《2230자》 김인국 철수와영희 2019.6.20. 억센 손이라도 가만히 만져 보면 따뜻하다. 밖에서는 몰라도 집에서는 틀림없이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살가운 손이다. (21쪽) 나라가 사위어가는 시절에도 쾌활한 색상과 고요하고 늠름한 자태를 잃지 않던 옛사람들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너무나 이상하고 초라해졌다. (65쪽) 대통령은 여소 야대를 만들어낸 민의를 받드는 대신 사드라는 미국산 미사일 방어시스템 카드를 들고 나왔다. 국면 전환에는 안보 이슈가 특효라고 믿었을까. (79쪽) 즉각 ‘해라’ ‘하게’ 등의 반말투를 버리라는 엄명에 양반들의 언사를 익혀 낮춤말만 쓰던 (서양) 신부들은 어리둥절하였다. 삼일 혁명은 이처럼 민주 공화제를 표방한 임시정부의 수립, 대대적인 소작 쟁의 말고도 삶의 전반에 걸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114쪽) 또박또박 쓰고 뚜벅뚜벅 걷습니다. 할 말은 또박, 걸음걸이는 뚜벅, 언제나 힘차면서 야무집니다. 나긋나긋 쓰고 나풀나풀 걷습니다. 들려주는 이야기는 포근, 어우러지는 손길은 따뜻, 늘 고우면서 반갑습니다. 똑같은 일을 놓고서 두 가지로 말합니다. 때로는 억세게, 때로는 보드랍게. 때로는 세게, 때로는 여리게. 때로는 깊이, 때로는 넓게. 시골에서 항공방제란 이름으로 농약을 뿌립니다. 일손이 적어서 무인 헬리콥터나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기도 하지만, 무인 헬리콥터나 드론을 만드는 데에 돈을 엄청나게 쏟아붓고서 농약을 뿌리기도 합니다. 굳이 농약을 뿌려야 한다면, 무인 헬리콥터나 드론에 들일 돈을 처음부터 ‘사람’한테 들일 노릇 아닐까요? 더 헤아려서, ‘사람 손길’로 논밭을 다스리면 아예 드론도 농약도 기계도 시골자락에 발붙일 일이 없이 젊은 일꾼이 넓게 발붙이지 않을까요? 《2230자》(김인국, 철수와영희, 2019)라는 이야기책은 천주교 신부님이 꾹꾹 눌러쓴 글을 엮습니다. 하나도 바르지 않은 길을 가는구나 싶은 정치를 나무라면서, 썩 곱지 않은 길로 뒤틀리는구나 싶은 경제를 꾸짖으면서, 참답거나 착한 삶하고는 등을 지는 학교를 지청구하면서 적바림한 글이라고 합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이란 빚을 지기도 합니다. 거꾸로, 말 한 마디로 천 냥이란 빚을 갚기도 합니다. 말 한 마디는 씨앗이 되어 온누리를 확 갈아엎곤 합니다. 말 한 마디는 대수롭지 않다며 싹둑 잘리거나 꽉꽉 밟히기도 합니다. 우리 곁에서는 어떤 말이 흐르는가요. 우리 삶에서는 어떤 말이 태어나는가요. 우리 눈은 어떤 글을 좇는가요. 우리 마음은 어떤 글을 새로 지어서 이웃하고 함께하려는 바람이 흐르는 데로 나아가나요. 칠월 아침에 후박나무 곁에 사다리를 대고 척척 디디고 서서 우듬지 언저리에 돋은 열매를 직박구리하고 함께 훑습니다.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쓰다듬으면서 열매를 훑으니, 가까이에서 멧새가 찌이째애 노래하면서 함께 있으니, 나무가 몹시 반기면서 시원하다고 솨락솨락 춤을 춥니다. ㅅㄴ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