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5%
  • 리뷰 총점8 25%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10.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 내용보기
목회자에게 있어 언변이 좋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미친다. 교회를 선택하는 기준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교회 혹은 목회자를 자랑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설교말씀이기 때문이다.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의 저자인 러더퍼드의 경우는 뛰어난 학식도 학식이지만 늘 주님안에서 머물던 사람이었기에 그가 설교하던 교회사람들은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하느님의 말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 내용보기

 

목회자에게 있어 언변이 좋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미친다. 교회를 선택하는 기준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교회 혹은 목회자를 자랑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설교말씀이기 때문이다.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의 저자인 러더퍼드의 경우는 뛰어난 학식도 학식이지만 늘 주님안에서 머물던 사람이었기에 그가 설교하던 교회사람들은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라고 할 정도 였다. 어린 시절 위험에서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흰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할 만큼 러더퍼드는 유년시절부터 줄곧 하늘에 속해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첫 아내가 투병중에 세상을 떠나고 두 아이를 잃었을 때 조차 그는 고통중에야 비로소 주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때라고 할 정도였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말뿐이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더퍼드는 스스로가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로서의 사명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럴 수 있는 자신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바로 애버딘에 갇혀 있는 동안 220통의 편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당신은 그리스도가 없어서는 안되며, 없을 수도 없으며, 없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날 이후로는 당신의 모든 애인들을 당신의 영혼 앞에 소집하여 그들에게 떠나라고 하십시오, 그리스도와 손을 잡으시고 그 이후로는 그리스도 밖에는 당신에게 다른 행복이 없게 하시고 그리스도 밖에는 아무것도 쫓아가지 마시고 그리스도 없이는 죽음이 올 때 잠자리에 들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그리스도 뿐이니, 그리스도 외에 누가 있습니까! 125쪽



각 수신인의 이름밑에는 러더퍼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표기되어 있었다. 또한 편지 말미에는 자신의 능력이나 언변이 수신인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그 은총과 은혜가 내려지기를 기도하거나 기도해달라고 적는 것으로보아 주님의 제자가 갖추어야 할 겸손함, 낮아짐의 자세를 볼 수 있었다. 주제가 다르다할지라도 사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어느 한 순간에라도 사람, 재산, 지위 등 이 세상의 것에 의자하려고 하거나 그로인한 자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로지 우리가 의지해야 하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그리고 그분의 뜻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용이 이렇다 보니 종교가 없거나 혹은 어느정도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비신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큰 위로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방법의 해결책이 다름아닌 그리스도를 향한 순종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다시금 맨 앞으로 넘어와 러더퍼드의 생애를 읽다보면 의외의 위로가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의 삶은 목회자로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만 한 개인의 삶으로 보자면 그다지 희망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심지어 러더퍼드 역시도 그리스도를 향해 반항하며 "내가 그의 집에서 충성하기를 바랐는데 도대체 그리스도께서 내게 왜 이러시는거야?"(211쪽)하고 그리스도를 고발하기도 한다. 러더퍼드 자신도 아파본적이 있고, 방황한 적이 있기에 더더욱 수신자들의 아픔과 괴로움을 공감할 수 있었고 진정으로 자신이 느낀 바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자신의 삶을 맡긴다는 것, 그리하여 참 평화를 누릴 수 있게된다면 그가 권하는 하느님을 향한 감사와 찬미야 말로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일부 목회자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와 행동, 오히려 신을 거부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보면서 그리스도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삶은 어느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다만 쉽지 않은 삶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사는 사람과 원망하고 분노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러더퍼드의 편지가 다른 이가 아닌 지금 내게 보낸 편지라고 생각하고 다시금 한 통 한 통 읽다보면 분명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혀나 어떤 붓이나 사람의 재주가

유명한 러더퍼드를 기릴 수 있으랴!

그의 학식은 정당히 그의 명성을 높였고

진정한 경건은 그의 이름을 장식했다네.

그는 위에 있는 것과 사귀었으니

임마누엘의 사랑에 친숙했다네."


YES마니아 : 로얄 i********g 2019.07.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 내용보기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너무나 많은 다양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믿음이 있다가도, 금방 믿음이 사라져 버리는 것들도 경험하게 되고, 병든 상황을 만나기도 하며, 여러 가지 어려움들에 직면하기도 한다.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형통하고, 잘 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한 시간들을 믿음 안에서 이겨내야 되는데,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믿음의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 내용보기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너무나 많은 다양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믿음이 있다가도, 금방 믿음이 사라져 버리는 것들도 경험하게 되고, 병든 상황을 만나기도 하며, 여러 가지 어려움들에 직면하기도 한다.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형통하고, 잘 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한 시간들을 믿음 안에서 이겨내야 되는데,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믿음의 길을 걸어갔던 분들의 이야기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등불이지만, 믿음의 길을 먼저 걸어간 분들이 어떻게 위기들과 어려움들을 이겨냈는지를 보면 지금 내 삶에 어떤 삶의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유배지에서 보내는 믿음의 글들인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는 기독교 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경건의 편지들일 뿐만 아니라 후대에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믿음의 유산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은 나만이 겪는 것이 아니다. 새뮤얼 러더퍼드가 성도들에게 썼던 편지들은 다양한 신앙의 환경에 직면했던 분들에게 나누었던 믿음의 유산이며, 그들의 신앙을 북돋아 주며, 바른 길로 가게 만들었던 용기의 결정체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 삶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지금 어떻게 해 나가는 것이 바른 믿음의 길인지를 배울 수 있는 너무나 귀한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한 감동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믿음의 도전을 하고 싶은 뜨거운 마음들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서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위로하시는 은혜들을 누릴 수 있어서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에 대한 모든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믿음의 도전을 독려하며,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행하고 있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면서 다시 새롭게 할 수 있는 귀하고,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의 위력과 가치가 얼마나 대단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f*****a 2019.07.10. 신고 공감 0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목양의 마음이 실린 편지들
"목양의 마음이 실린 편지들" 내용보기
90년대까지만 해도 인터넷과 휴대폰이 상용화 되기 전 누군가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유선전화기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직접 편지나 엽서를 써서 우표를 붙여 동네마다 거리마다 흔히 발견할 수 있었던 빨간 우체통에 집어넣는 일이 흔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어느 순간 인터넷이 개발되고 휴대폰이 상용화되면서 우리네 일상 또한 획기적인 변화를
"목양의 마음이 실린 편지들" 내용보기

 

90년대까지만 해도 인터넷과 휴대폰이 상용화 되기 전 누군가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유선전화기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직접 편지나 엽서를 써서 우표를 붙여 동네마다 거리마다 흔히 발견할 수 있었던 빨간 우체통에 집어넣는 일이 흔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어느 순간 인터넷이 개발되고 휴대폰이 상용화되면서 우리네 일상 또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니 편지를 대신해서는 인터넷 이메일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고, 유선전화, 공중전화 등을 대신해서는 이제 손안에 들어오는 휴대폰, 그것도 스마트폰이 그 일을 대신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아니 요즘은 이메일도 잘 안쓴다. 그냥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메신저앱을 이용해 문자로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기에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로그인하고 글을 써서 보내는 이메일도 어느 순간 우리네 삶 속에서는 벌써 한세대 전의 유물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렇듯 과학기술과 현대문명의 총아로서 이메일과 휴대폰등이 우리의 삶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하게 만들어주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모를 허전함이 있다. 전자기계와 소프트웨어들은 결코 가져다 줄 수 없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아날로그적 감성은 뭐니해도 역시 사람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따라올 수 없다. 편지만이 가지는 그 고유한 날 것 그대로의 감성은 이메일이나 휴대폰의 한번 열어보면 날아가버리는 것 같은 휘발성과 일시적인 느낌들에서는 결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편지에 대한 단상을 가지고 기독교 고전 한권을 만나니 책의 제목은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이다. 17세기 스코틀랜드의 목회자이자 신학자였던 새뮤얼 러더퍼드가 유배지에서 자신이 담임했던 앤워스 교구의 성도들과 친구들에게 보낸 200여편의 편지를 책으로 엮은 본서는 그야말로 기독교 서신 문학에 있어서 고전으로 불리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탁월한 저작이다. 러더퍼드 목사는 앤워스 교회에서 목회하던 시절 주교정치와 알미니안주의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목회지를 박탈당하고, 에버딘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러더퍼드 목사는 자신의 교구 앤워스의 성도들에게 목회자로서 한편 한편 목양의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교회의 부패와 퇴조를 느끼고 염려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는 사람들, 영적성숙을 추구하는 사람들, 각종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 , 그리스도의 성품을 사랑하고 닮기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축복과 소망 가운데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목자의 마음을 담아 애절한 목회서신을 보내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 동역자들과 초대교회들에게 보낸 신약성경 중 13편의 서신들 가운데 특별히 감옥에서 써 보낸 4편의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같이 본서는 목자가 자신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목양의 그 뜨거운 마음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기에 본서를 읽는 현대의 독자들 또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혹 그냥 본서를 무덤덤하게 일반적인 편지로서 지나치듯 읽음으로서 그 깊은 감동을 놓칠 수도 있는 독자들은 새뮤얼 러더퍼드가 살면서 사역했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조금 이해하게 될 때 이 경건한 편지들이 가지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면서 본서의 숨은 감동을 맛볼 수 있으리라 본다. 러더퍼드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칼빈을 중심으로 한 칼빈주의와 칼빈의 5대교리에 반대하여 생성된 알미니안주의의 신학적 충돌이 항존했던 시절이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회자였던 러더퍼드는 당연히 알미니안주의를 반대했을 것이고, 더불어 주교정치를 반대함으로서 미움을 받아 유배를 떠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자신들과 신학적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는 목회지 박탈과 유배라는 아픔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 속에서 탄생한 저작이 바로 본서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본서를 그냥 단순히 한 목회자가 자신의 성도들에게 보낸 다양한 편지를 엮은 책 정도로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편지 한편마다 실려있는 러더퍼드 목사의 성도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 때로는 깊은 위로와 격려, 함께 아파하는 그 목자의 애타는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기에 읽는내내 깊은 감동을 떨칠 수 없다. 자신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환경인 유배지 가운데 있는 사람이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일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러더퍼드의 온 관심은 자신의 한탄스러운 처지가 아닌 오직 앤워스에 두고 온 자신의 옛 교구 성도들과 그들의 삶에 관한 것이었다.

 

책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해본다. 유배지로 떠난 자신의 옛 목회자에게 받는 한통의 편지는 그 편지를 받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그러한 편지를 받고 경박스럽고 가벼운 마음으로 편지의 겉봉을 뜯어보았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러더퍼드 목사의 편지를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편지를 가슴에 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을 것이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을 만끽했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여 어쩌면 편지지가 손떼묻어 해질 정도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행여 러더퍼드의 대적자들에게 발각될까 염려하여 편지를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곳에 숨겨놓고 조심스럽게 꺼내보며 남몰래 깊은 한숨과 함께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후 유배지에서의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풀려난 러더퍼드는 1643년 그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서를 만드는 영광스러운 작업에 참여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알미니안주의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유배를 떠났지만 결국 그는 웨민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서라는 역사적인 개신교 개혁주의의 신조를 탄생시키는 위대한 과업에 동참하는 소위 인생 역전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진리 안에서 진리를 사랑하고 그 진리를 위해 결코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던 한 목회자의 삶을 들어서 결국에는 그들의 대적자들을 향해 그의 탁월함과 의로움을 드러내신다. 책을 덮으며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려운 상황 속에 러더퍼드는 자신의 옛 교구 성도들의 삶을 끝까지 돌보며 격려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을 돌보라고 위탁받은 목회자들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유배라는 기약없는 형벌 속에서 세상에서 제일 가련할 것 같은 자신의 처지는 아랑곳 않고, 오직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앞뒤를 분별하지 못하는 가엾은 양들에 대한 그 한없는 목양의 마음은 지금 우리 시대의 모든 목회자들에게 요구되어지는 동일한 마음이다.

 

어느 순간 자신이 목회하는 목회지가 밥벌어 먹고 살기 위한 직장으로 여겨지고, 자신이 목양하는 영혼들이 자신을 먹여 살리는 ATM 기계처럼 보이는 목회자가 있다면 당장 이 책을 집어읽으라고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긴급동의에 귀를 기울여보길 바란다. 소명을 회복하라! 식어져 버린 영혼에 대한 구령의 열정을 회복하라!

h*******l 2019.07.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 내용보기
우선 고백하는 바이지만,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것이 인간의 역사에 대한 깊은 탐구심과, 흥미를 가지고, 또 여러 경전을 접하는데 있어서, 큰 장점이 되어 준 것 또한 (일부)사실이다.   그도 그럴것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편견'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거 역사가 증명하듯이  어느 한가지의 정의가 스며든 인간이 다른 정의와 맞부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 내용보기

우선 고백하는 바이지만,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것이 인간의 역사에 대한 깊은 탐구심과, 흥미를 가지고, 또 여러 경전을 접하는데 있어서, 큰 장점이 되어 준 것 또한 (일부)사실이다.   그도 그럴것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편견'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거 역사가 증명하듯이  어느 한가지의 정의가 스며든 인간이 다른 정의와 맞부딪치며 보여준 '불꽃'의 무서움을... 적어도 나는 그에 대한 큰 교훈을 '역사를 배운 큰 가르침'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기에 결국 이 책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종교중 하나로서, 그 영향이 인간의 정서와 정신에 있어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에 하는 나름의 해답을 발견하려는 이유가 크다.   이에 아마도 그와 다른 '종교'에 더 큰 의의를 두는 독자라면 분명 나의 서평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으리라 생각이 되어진다. (바로 위의 이유와 같은 것으로 말이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이 굳은 종교의 열의를 마주하며, 일종의 위험한 '고지식함'의 가치를 발견하고 또 불편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물론! 서방세계에 있어서 '기독교'의 존재와 함께 사회 공동체를 유지한 '전도자'(종교인)이 가지는 그 의미는 매우 크고 중요하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들은 오늘날과는 다르게, 인문학과 윤리관 그리고 종교관이 합쳐진 '종교'의 큰 가치관 아래서 살아왔고, 또한 아직 미숙하기 짝이 없었던 의학과 과학같은 새로운 가치관 보다는 보다 옛 전통을 계승한 그것이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분명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 보여지듯이  저자 또한 한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 이자 '종교인' 으로서, 편지속에 보다 다양한 삶 속의 가치를 (올바로)세워주는데 힘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말하자면 '새뮤얼 러더퍼드' 가 강조한 최대의 가치는 그 대부분이 신앙에 기댄 것이 많다.   인간이 살면서, 병에 괴로워하고, 소중한 타인을 죽음으로서 떠나보내고, 알 수 없는 미래에 흔들리고... 무엇보다 보다 강대한 세력에 의하여 믿음의 변화를 강요받게 된다면?  과연 그 시대의 참된 인간으서,  어떠한 삶의 형태를 취하여야 할 것인가?    이에 적어도 저자는 스스로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가장 기독교적인 믿음의 증거를 드러냈다.  그리고 더욱이 그 증거를 통해,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의 질문에 있어서도 나름의 해답을 보여준 인물로도 인식되는 것 같다.   


어떠한 일에도 믿음에 흔들리지 말라...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이 기나긴 기록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그들의 가장 큰 의의이자, 교훈이 아닐런지.  이처럼 나는 스스로 그 짧은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q*******a 2019.07.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