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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다. 어떻게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좋을까. 세상에 널린 난해한 책들 중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하는 듯했다. 머리는 수시로 굳지만 마음까지 멎어버린 경우는 드물었는데, 이번이 그랬다.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한 가지 비슷하다면 비슷한 이야기도 떠올랐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다른 나라에서는 의료진들에게 과실이 아님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우리 사회에선 피해자들이 나서서 왜 자신이 겪은 일이 의료사고인지를 증명해야만 한다 했다. 지난한 싸움이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의료사고를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하여도 그것에 대비하고자 평소에 안간힘을 쓰는 이는 찾기 힘들다. 피해자, 아니 ‘생존자’로 바꾸어 부르고픈 이름. 그들이 옳고 그름을 가늠해야만 한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어쩌면 난 알고 싶지 않았던 것도 같다. 수시로 총기사고가 일어나는 몇몇 나라와 비교를 한다면 대한민국은 분명 안전하다.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불안이 의외다 싶을 정도로 이 세상엔 널려 있으며, 참혹한 상처를 꽁꽁 마음 안에 숨겨둔 채 침묵으로 일관 중인 사람들도 많다. 당장에 필요한 건 치유일 테지만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 비난의 손가락질이 따른다. 아주 특별한 용기를 발휘하느니 차라리 자신을 속이는 편이 낫다고, 주변에서 아우성이며 스스로도 그리 여긴다. 책의 논리를 모든 생존자(피해자)들에게 예외 없이 적용하는 건 폭력일 수도 있다. 저자는 폭력성 여부를 떠나서 자신의 논리에 전적으로 모든 사람이 부합하지는 않음을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라면 피해자다운 게 보편적이라는 것을 전제 삼았다. 상해를 입었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철인3종 경기에 참여했다? 그는 피해자답지 못하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이 피해자임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가짜피해자다운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무난한 거 같다. 아무래도 성범죄가 예민한 주제여서 그런지, 약간 내용을 변형하자 그때부턴 불편한 마음이 배가됐다. 어떤 행동을 보일 때 비로소 성범죄의 피해자답다고 우린 언급할 수 있을까. 만약에 학생이 성범죄를 경험했고, 가족 모두가 쉬쉬할 것을 요구해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공부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오로지 학업에만 매달려 성적이 크게 향상됐다면 그의 행동은 성범죄 피해자다운가, 가짜피해자에 가까운가? 한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위력’이 더해지면 문제는 더욱 혼란에 빠진다. 회식 자리에서 성적인 언행이 오갔지만 상대가 인사권자여서 거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와 같은 행동을 옹호하기까지 했다면? 나의 행동은 가짜피해자의 행동인가, 아니면 조직에서의 승진을 위해 스스로를 파괴한 것에 해당하는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학습된 무기력의 결과? 성범죄는 단지 남성과 여성의 성 대결 차원에서 보아선 안 된다. 하나의 인격이 파괴된다. 한 사람의 삶이 무참히 짓밟힌다. 숱한 사건들에 “꽃뱀”이란 단어를 붙여가며 2차 가해를 행하는 사람들도 그 사실만큼은 알 것이라고 믿는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건 물론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유력 대선 인사의 위력에 의한 간음죄 여부를 판단하는 순간은 왠지 외면하고픈 마음이 컸다. 이제껏 믿어온 진보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사건이었고, 진짜/가짜피해자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에 숨겨진 추악한 면모를 가감 없이 보고야 만 것 같기도 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설사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해도. 철학이 이런 문제까지, 그것도 심오하게 고민하는 줄은 몰랐다. 고민의 결론이 무엇일까도 살짝은 궁금하다. 아마 오래도록 앓아야만 할 것이다. 그런 후에도 ‘이것이 정답이다’ 외치지는 못할 것 같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게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이가 일종의 공식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내가 타고난 예외성이 날 나답게 만드는 요인일 수도 있으며, 다들 하나씩은 별난 구석을 지녔기에 사회가 무료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피해자다움을 논해가면서까지 죄를 따져 물을 일이 없는 사회를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