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책장은 네트워크의 바다를 여기저기 표류하다 어디선가 만난 책들로 가득 차 있다. 한 권을 꺼내 읽으면 곧 또 다른 책 한 권을 넣어놓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읽지 못하고 고이 넣어 둔 책들이 여전히 많다. 그중 이번에는 델리아 오언스 작가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꺼내 들었다. 최근에 넷플릭스 구독을 다시 재개했는데, 보고 싶은 영상 목록을 짜 내려가다 우연히 책과 동일한 제목의 영화를 발견한 것이 두껍고 지루해 보여 한참을 책장 속에 처박아 두던 이 책을 꺼내게 된 이유였다.
영화는 시각과 청각으로 짠 정보를 직접 전달하기 때문에, 나는 원작 소설이 있는 경우 책을 먼저 읽는 편을 선호한다. 부드러운 물결처럼 이어지는 문장을 타고 흐르며 나만이 상상할 수 있는 시선으로 작가가 그려내는 다양한 풍경을 재현하는 것은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먼저 보게 되면 책을 읽을 때 좀 더 선명한 풍경을 그릴 수 있어 편하지만, 그렇게 되면 눈앞에 놓인 단 하나의 길에만 집중하게 되어 수풀 속에 숨겨진 다른 오솔길들을 찾아낼 수 없게 된다. 하루빨리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그전에 원작을 전부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책은 너무 두꺼웠고, 나는 습지에는 별로 큰 관심이 없었으므로.
하지만 책의 첫 장부터 나는 압도당했다. 작가의 문장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습지와 자연을 묘사하는 모든 문장이 내가 지금껏 본 문장보다도 훨씬 섬세하고 독창적이었다. 문장이 아무리 길게 늘어져도 그 끝까지 따라가는 길은 급류를 타는 것처럼 쉬웠으며, 문장의 온점에는 늘 마음에 깊이 와닿는 습지의 풍경이 머물러 있었다. '이 사람은 정말로 습지를 사랑하는구나,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왔기에 습지의 속속들이를 이렇게 부드러운 방식으로 그려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서사며 구성 또한 전부 훌륭했다. 중간에 남자와 사랑에 관한 내용이 한참 이어졌을 때엔 이러다 십 대 로맨스 소설 - 예를 들면 트와일라잇 같은 - 쪽으로 흘러가는 것 아닌가 싶어 살짝 흥미가 떨어질 뻔했으나, 다행히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사랑만을 좇느라 중요한 것을 전부 던져버리고 끝내 진부한 결말로 향하는 그런 가슴 아픈 전철을 밟지 않는다. 사랑은 카야의 삶을 구성하는 일부였으며 카야가 사랑에 압도당하지 않고 그 외의 것들, 특히 자연에 집중하는 모습은 그가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카야가 버림받은 습지의 소녀에서 자연과 가장 가까운 습지의 생태학자가 되어가는 과정은 내내 즐거웠다. 모두에게 버림받아 세상의 변두리로 내몰려야 했던 사람이 결국 스스로 빛을 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건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로맨스와 성장만이 주가 아닌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이야기는 바클리코브 마을의 쿼터백으로 - 혹은 바람둥이 난봉꾼으로 - 유명한 체이스가 소방망루 아래 늪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며 시작되는데,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다. 마지막에 해당 사건의 가해자로 기소된 카야를 두고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이 펼쳐지는데, 서로 주고받는 주장과 반박이 무척 탄탄해서 놀랐다. 로맨스와 스릴, 그리고 추리가 뒤섞여 나아가는데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서로 잘 어우러져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카야라는 인물도 마음에 든다. 어릴 적 가족이 그를 전부 떠나고 홀로 습지에 남겨져 자연의 삶을 따르고 배우느라 자연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 종잡을 수 없는 사람. 다른 사람들처럼 원초적인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야 했으며 어쩔 때는 더욱 깊은 고독 속에서 몸부림쳤지만, 무엇을 사랑하든 온 힘을 다해 사랑한 사람. 거짓된 사랑에 속아 평생을 고통받은 엄마의 전철을 밟지 않고, 엄마 대신 자연이 가르쳐 준 방식으로 약자의 삶의 굴레를 끊어버린 그 강단과 절실함. 결국 진심을 다해 사랑한 테이트와 함께 자신을 보듬어 준 습지에서 끝을 맞이했던 여자. 이 이야기야말로, 그리고 카야야말로 행복한 결말을 누릴 자격이 있으리라.
마지막 페이지를 끝내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많고 많은 평범한 소설 중 하나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울림을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할 일이 많아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지만, 책에 대한 감상이 식기 전에 빨리 문장을 써 내려가고 싶었다. 그만큼 이 책이 내게 준, 살아 움직이는 박동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지 않고 책에 대해서만 쓰고 싶지도 않았다. 책을 읽으며 무한한 상상을 누렸으니 이제 영화를 보며 누군가가 이를 읽고 그린 특정한 세계를 탐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할 일도 미뤄둔 채 2시간짜리 영화를 한자리에서 전부 봤다.
영화는 특히 카야를 맡은 배우 데이지의 연기가 섬세해서 좋았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카야의 깊은 감정의 파도가 화면을 통해 온전히 전달되는 것 같았다. 상상만 하던 습지의 부분부분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아무래도 한국인들은 넓디넓은 미국의 습지를 제대로 상상해 내기 어려우니까. 이런 것들은 책보다 더 도움이 됐다. 하지만 역시 책은 수백의 섬세한 문장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엮어내기 때문에 담고 있는 내용이 더 많고 느낄 수 있는 감정도 더욱 풍부하다. 느릿하고 자세해서 좋았던 카야의 어린 시절과 감정선의 변화가 영화에서는 많이 생략되어 아쉬웠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습지의 풍경, 기러기들의 낙하, 그리고 카야의 깊은 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엔 아까울 것이다. 원작과 비교해서 아쉽다 말할 뿐이지, 내용을 전부 알고 있음에도 영화를 보며 단 한순간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은 걸 보면 나는 정말 재미있게 감상한 게 틀림없다. 2시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마법은 아무나 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이 작품은 원작 소설과 영화, 모두를 봐야만 한다. 이왕이면 원작 소설을 먼저. 습지의 물길을 따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말자. |
|
이 소설의 작가는 70대의 야생동물학자 델리아 오언스이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직업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에 대한 깊은 철학을 담아 흥미진진하게 쓴 첫 장편 소설이다. 2018년 여름에 영어 원제 ’Where the Crawdads Sing‘로 출간된 이 소설은 2019년 봄에 100만 부가 판매된 밀리언 셀러이다. 원작 소설은 영화로도 완성되어 2022년 가을에 개봉되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전개되는 내용이 마치 실제 있었던 장소와 사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저자가 70평생 야생 동물을 연구해온 생태학자로서 아프리카에서도 7년 동안 야생 동물을 관찰하며 연구한 학자라는 독특한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소설은 수많은 섬세한 문장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엮어내며 습지 생태계를 눈앞에 그리듯이 생생하게 묘사한다. 해안 습지에 있는 판잣집, 보트, 새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영화는 우리에게는 낯선 미국 해안의 습지 영상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원작 소설과 영화가 서로 잘 어울리는 상호 보완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미국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 뱅크스의 해안 습지에서 사는 카야가 주인공이다. 이 소설은 습지의 한 판잣집에서 어린 소녀로 시작해서 살아가는 카야의 성장 소설이다. 전쟁의 상흔을 안고 돌아와 지독한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이를 견디다 못한 엄마는 집을 떠났고 차례로 언니들과 오빠도 아버지를 피하여 집을 떠났다. 습지 판잣집에 아빠와 홀로 남은 막내 카야는 여섯 살이었다. 어린 카야는 절망하지 않고 집안일을 해내면서 거친 아빠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생존하는 법을 배운다. 어느 날 집을 나간 아버지마저 돌아오지 않게 되면서 카야는 습지 판잣집에 홀로 남게 된다. 가족들이 모두 떠나서 아무도 없는 판잣집에 혼자 남은 카야는 혼자서 생존해야 했고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다. 카야는 혼자서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으로부터 거의 모든 걸 배우며 살아간다. 카야는 자연과 대화했고, 자연은 카야를 품어주었다. 카야는 습지에서 잡은 홍합과 생선을 마을 한쪽 부두에서 작은 가게를 하고 있는 흑인 부부에게 팔면서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카야를 볼 때마다 마시 걸(Marsh Girl, 습지 소녀)이라고 부르며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카야는 사람들 사이에서보다 자연 속에 있을 때가 더 편안하고 익숙했다. 카야는 완벽한 습지 생물이었다. 어느덧 성숙해진 카야 곁에는 테이트와 체이스라는 두 남자가 있었다. 테이트는 카야의 바로 위 오빠인 조디와 친구 사이였고, 어릴 때부터 카야를 알았고,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주며 호감을 가진 모범생이다. 테이트가 카야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사라져버린 후 카야는 배신과 외로움에 절망한다. 이 틈을 비집고 체이스가 들어온다. 부잣집 바람둥이 체이스는 다른 여자와 약혼한 것을 술기고 카야에게 접근해서 마음을 구하려 한다. 그러나 카야 주변을 맴도는 체이스는 카야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위협이고 고통이었다. 이 소설 끝에서 테이트는 카야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가죽 끈으로 엮은 조개껍데기 목걸이를 발견한다. 카야가 자연에게 배운 방식으로 체이스의 문제를 해결했음을 암시하는 엄청난 반전이다. 자연에는 도덕이 없고 법도 없으며 끝없는 생존과 죽음과 번식만이 존재한다. 이 소설은 바클리코브 마을의 바람둥이 체이스가 해변가 습지 소방망루 아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이 소설의 초반은 과거와 현재 두 개의 시점이 서로 전환되면서 전개된다. 어린 주인공 카야가 여섯 살에 혼자 남게 되는 1952년의 과거 시점과 체이스의 시체가 발견되어 사건이 펼쳐지는 1969년의 현재 시점이 교차 된다. 두 개의 다른 시점은 이 소설의 뒷부분에서 맞물리며 하나의 시점으로 소설은 끝까지 이어진다. 카야는 습지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체이스 죽음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법정에 서게 된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과정은 한 편의 법정 드라마이다. 해당 사건의 가해자로 기소된 카야를 두고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주고받는 주장과 공방이 탄탄하다. 카야는 다시 만나서 마지막으로 사랑한 테이트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평생을 함께한다. 카야는 진심을 다해 테이트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치명적인 비밀을 테이트에게 조차 감추고 자신을 보듬어 준 습지에서 홀로 죽는다. 그래서 소설 속의 카야의 삶 전체가 가슴이 아리게 안쓰럽다. 죽음의 끝까지 자연 속에서 자신을 지킨 카야의 존재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혼자 남아 외로움을 안고 습지에서 홀로 성장하는 소녀! 두 남자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풋풋한 설렘 가득한 사랑 이야기, 그리고 미스터리 살인 사건, 소설의 결말 부분에 드러나는 충격적인 반전까지 완벽한 소설이다.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멋진 소설을 과학자인 야생동물학자가 썼다는 것이 놀랍다. 이 소설의 제목인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작가가 생전의 엄마로 부터 들은 표현이라고 한다. 소설 속에서 테이트는 이 말을 받아서 카야에게 말한다.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거기는 숲속 깊은 곳이다. 만약 자연에 영혼이 있다면 야생 동물들이 그들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영혼의 그곳이다. 저자는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인간은 무리와 떨어지어 홀로 자연 속에 남겨져도 외롭지만, 도시의 빌딩 숲속에서 살면서도 외로울 수 있다. 자연과 생명을 이토록 잘 이해하고 섬세하게 글로 써 내려간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고 이런 작품을 멋지게 번역한 옮긴이에게 경의를 표한다. |
|
너무 많은 타이틀을 보유하고,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은 책은 궁금하다. 책이 어떻길래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해져 유명한 책이 되었을까? 책 읽기 몇 년을 하다보니 베스트셀러에 있는 책을 덜컥 구매하지도 않는다. 내 마음이 닿는 어딘가에 숨겨진 책에 끌린다.
책 선물을 하면서 상대방이 고른 책이 궁금하기도 하다. 물론 구매에 따른 리뷰 포인트라는게 있어서 책을 대출해서 읽어본다. '아자아자'님이 픽한 책,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다.
아.... 이 책, 생각이 깊어진다. 상상 이상의 너무 많은 아픔이 들어가있다. 전쟁 후 빈곤과 상실감, 가정폭력, 떠남, 버림받음, 홀로, 외로움, 차별과 편견, 성장, 사람을 기다리는 일, 사랑,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일, 사람으로 인한 기대와 실망, 지켜지지 않는 약속, 좋아하는 일, 마음줘서는 안 되는 일들, 살인, 흉흉함, 그 날의 재구성, 표적수사, 재판, 공권력에 의한 두 달간의 감금, 무죄, 습지와 늪, 깃털, 그리고........ 다시 돌아옴, 잊혀져가고 희석되어간다, 인식의 변화, 평안함, 내 집 country road, 습지는 변하지 않았다, 사랑이 다시 시작, 행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슬픔 조각들, 즐기며 사랑하는 일, 작가, 다시 회복된 가족, 66살의 카야/마시걸 잠들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카야의 세계. 카야는 수집품을 벗삼아 홀로 자라나며 넝쿨 줄기처럼 모든 기적을 하나로 엮었다. 하지만 수집품이 커질수록 외로움은 깊어졌다. 심장 크기만 한 아픔이 카야의 가슴속에 살았다. 그 무엇도 아픔을 덜어주지 못했다. 갈매기도, 눈부신 석양도,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조개껍질도. 외로움은 점점 커져 카야가 품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카야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 존재, 손길을 바랐지만,............ 제 심장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었다."(184쪽)
미려 알려주기(스포 주의!)는 괜히 더 마음이 북받쳐 오를 듯... 윗 문장이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그래서, 감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간단하게 생각나는 단어들을 떠올렸디.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저렇게 많은 의미를 지닌 말들이 생각난 책은 없었다. 한 소녀의 절박한 삶과 굴곡진 인생에 마음이 아렸다. 바로 옆에 함께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삶 달라지지 않았을까!
모두가 소녀를 떠난 자리에 습지가 있었다. 야생의 습지, 그녀만의 공간에서 배우고 자라고 살아냈다. 아주 강하고 담대함으로.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 가서 꼭꼭 숨어야겠네.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그냥, 저 숲 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성큼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해 소녀는 벽(담)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불쑥 올라오는 외로움이란 감정이 너무 커서 소녀를 삼키고 있었다. ~답게 산다는 것이 뭘까? 그냥 아무런 편견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그 곳이 조금은 마음 한 켠 내어줄 수 있는 따뜻한 곳이 되지 않을까? 굳이 가재가 노래하는 곳으로 가지 않더라도.... 더이상 도망가지 않아도 되는 곳. 거절로 점철된 삶이 슬펐다.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걸까?
한 편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배경이 되는 곳은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눈을 감으면 그 탁월한 풍경이 자연스레 상상이 된다. 대자연이 아주 연약하고 부러지기 쉬운 인간을 살리고 품어줬다는 것에 뭉클했다. 반면, 대자연에 도전하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소녀 카야를 통해 보낸다.
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퍽 자연스런 일인데..... 한 소녀에게, 어떤 사람에겐 왜 그토록 가혹한 일이 되는걸까? 무관심과 수군거림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내지 못하게 하고 분리시킨다. 비자발적인 고립은 없는 죄도 있게 만든다. 그럼에도 소녀는 편견과 무관심, 외로움을 다 짊어졌다. 힘겹고 아팠지만 녹록치않은 현실에 무너지지 않았다. 안주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무너지려고 하는 자기의 내면과 더 치열하게 싸워 이겼다. 책「가재가 노래하는 곳」 읽는 내내, 슬프고 아렸지만, 벅찼다. 그리고,..... 울었다. 신드롬을 일으킬만하고, 화제를 만들 수 밖에 없는 책이었음을 확인했다.
|
|
눈길을 끄는 표지를 보고 책의 내용이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표지를 선택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은 이미지를 줄까 고민하는 것이리라. 또한 한 장의 포스터 때문에 영화를 보기도 한다. 수많은 이유와 핑계가 존재하지만, 그 때문에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 소설은 영화 포스터 때문에 읽게 되었다. 영화 소개를 보고는 원작 소설이 궁금했다. 궁금함에 도착하자마자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너무 빨리 읽어버렸다. 그 여운이 가시기 전에 원작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소설과 진행이 같아서 소설을 두 번째 읽는 듯 선명하게 다가왔다. 또한 궁금했던 습지의 장면이 아름답게 표현이 되어 감탄하며 보았다. 영화 매체가 가진 매력이 한껏 돋보였다.
영화와 소설의 시작이 같다. 습지 속 늪의 한구석, 체이스 앤드루스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소방망루에서 떨어진 거로 보였다. 체이스와 가까웠던 습지 소녀 카야가 용의자로 떠오른다. 1969년의 체이스 앤드루스의 죽음과 1952년의 어린 카야네 가족의 상황이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행복했던 기억을 뒤로 하고 엄마가 떠나던 날 아침, 뒤돌아보길 기다렸으나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던 엄마처럼 언니들과 오빠들이 하나둘 집을 떠났다. 술에 취하면 집에 들어오지 않거나 때리는 아빠 곁에 어린 카야 만을 남겨두었다. 얼마 뒤 아빠마저 사라지고 카야는 황무지의 습지에 남겨졌다. 습지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했던 카야는 보트를 타고 나가 홍합이나 굴을 따 흑인 점핑의 가게에서 먹을 것과 바꾸었다.
소설과 영화의 같은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모두가 떠난 습지의 판잣집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카야가 안타까웠다. 카야는 방문자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존재를 숨겼으나 새의 깃털을 가져다주는 테이트로 인해 마음을 열었다. 글을 가르쳐주고 자연과학과 생물학에 관심을 두는 카야에게 책을 가져다주며 조개와 새의 표본과 그 과정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게 했다. 카야는 자연사박물관에 가까울 정도로 수집품이 많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습지 쓰레기라 불리며 무시와 멸시를 당했다. 어느 상황에서건 돕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갈린다. 카야에게도 그랬다. 카야를 위해 변호를 해주겠다는 톰 밀턴과 아무도 몰래 감방에 고양이를 넣어주기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습지에 홀로 사는 소녀의 성장과 사랑,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 형식을 취하면서 자연에 대한 찬사로 가득 찬 소설이었다.
보트로 습지를 가로지르는 장면은 꽤 아름답다. 한 손으로 보트를 조종하며 몸을 숨길 수도 있는 습지의 세계. 습지를 지키는 사람과 습지를 보호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 인해 오늘의 습지가 유지되는 것이리라. 습지는 우리가 보호해야 할 자연의 보고다. 습지에서도 삶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인간의 삶이든, 동물의 삶이든.
얇지 않은 책임에도 흡인력이 좋아 금세 읽는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 중간에서 멈출 수 없다. 영화 또한 러닝타임 2시간임에도 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언어의 세계, 자연의 아름다움, 누군가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외로움에 지친 한 소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마음이 이해되어서, 테이트를 잃고 체이스를 기다렸던 그 마음이 이해되어서 안타까웠다.
신분과 차별이 존재하는 시대였다. 습지 소녀라고 무시하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하여 멸시하는 시대였다. 가족이 없는 카야에게 아버지가 되어준 점핑의 친절, 그 작은 친절과 배려가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 된다. 마음이 외로울 때 이 작품을 읽었으면 좋겠다. 소설을 읽었다면 영화도 꼭 함께 보길 권한다. 아름답다.
#가재가노래하는곳 #델리아오언스 #살림 #살림출판사 #책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외국소설 #영미소설 #영미문학 #WHERETHECROWDADSSING #북리뷰 #도서리뷰 #책리뷰 #영화가재가노래하는곳 |
|
우아, 진정 최근년내에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본 적이 없는것 같다. 생태학자가 쓴 첫 책인데 문장에 등장인물의 심리가 자연과 자연스럽게 버물어져서 너무나도 아름답다. 글을 읽으면서 아름답다고 계속 찬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번역해서 이렇다면 원서로 읽어도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야기는 1950년대 노스 캐롤라이나의 바클리 코브라는 새우잡이 어선이 많은 작은 어촌 마을. 산쪽으로 갈수록 늪지와 숲이 있고 별별 새들이 있는 곳. 이곳에 카야가 있었다. 5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부모. 아버지는 2차대전 상이군인으로 자신의 비겁함을 잊지못해 술독와 도박에 빠져있고, 구두공장 딸이였던 아리따운 엄마는 아빠의 폭력과 생활고에 어느날 뒤를 돌아보지않고 떠나버렸다. 아버지의 폭력은 아이들에게 향하고 하나둘씩 떠나고 난뒤 카야 혼자만 남았다. 아버지 마저 떠나고 카야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조롱에 자신의 판자집, 엄마가 남긴 텃밭, 아빠가 남긴 낡은 보트, 그리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은 생일을 같이 보냈던 갈매기들과 자라게 된다.
그리고 1960년대의 바클리 코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마을의 자동자 정비소의 외아들이자 학교의 쿼터백 출신인 체이스가 습지가까이 망루에서 떨어져 사망하게 발견된다. 잘생기고 잘난맛에 살던 이 바람둥이 청년이 죽은 자리엔 그의 지문도 남지않은 상태. 살인으로 의심한 보안관은 사람들의 입에 귀를 기울이고, 드디어 카야가 강력한 용의자로 대두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주었던 오빠친구 테이트와의 대화에서 나온다. 가재가 노래한다.에서 뭐, 가재가 어떻게 노래를 해? 할 수 있지만, 그정도로 안전하고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가재가 노래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시선을, 아 말로할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하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자연속에서 버려진 비극적인 소녀의 드라마인가 하다가 그녀가 습지생태계 전문가가 되고 자아를 확립하다가, 법정스릴러로 바뀌는데. 정말 책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문장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줄긋고 싶은 곳에 죄다 포스트잇을 붙였더니 책옆이 포스트잇 덩어리가 되었다. 생태계와 동물들의 습성을 보여주는데 그게 인간과 맞아떨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카야가 외톨이로 사회에서 배척이 되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생명체의 습성을 잘이해할 것을 깨닫는다. 살인 용의자수사를 하던 도중에 카야의 사마귀 관찰 부분이 다소 생뚱스러웠다만, 암컷들을 쫓기위해 장식을 하다가 날지 못하게 된 공작새 수컷과 체이스가 겹치면서, 이 책 안의 모든 것들이 헛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지인과 더불어, 올해 읽은 최고의 책이 되었다.
|
|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카야에게 이토록 몰입되었을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는 내내 카야에게 빙의되어 있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엄마와 언니 오빠들 그리고 아빠까지, 카야만 두고 하나씩 늪지를 떠난 가족들의 빈 자리 속에 느꼈던 사무치는 외로움과 학교와 또래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느낀 수치심, 테이트와 체이스를 거치며 베인 살에 소금을 맞듯 경련한 사랑의 기쁨과 슬픔까지, 카야의 감정들이 내 것 인양 선명했다.
(줄거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주인공 카야는 세 개의 존재로 읽힌다. 야생, 사람, 여성.
* 야생
* 사람
얼핏 카야가 습지에서 자라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존재로 비춰보일 수 있지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사람인 카야를 분명하게 그리고 있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습지에 고립된 채로 성장하고 살아가는 시간 동안 카야를 끈질기게 괴롭힌 건 외로움이었다. 아이들을 두고 떠난 엄마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왜 엄마 사슴은 돌아오는데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지’를 묻고, 아무도 없는 해안에서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자기와 함께 있어줄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는 일은 습지의 모든 야생과 카야를 구분 지어 사람인 카야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습지의 그 어떤 새도 외로움이 싫어서 반려를 구하지 않는다. 외로워서 가족을 만드는 조개도 없다. 오직 사람만이 고립되지 않기 위하여,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친구를 만들고 연인을 구하고 가족을 이룬다. 일곱 살 아이였을 때부터 뼛속깊이 물든 외로움은 카야가 내리는 모든 선택에 동기로 작용한다. 외로워서 테이트와 체이스와 가까워졌고, 그들이 떠난 후에 느낀 더 큰 외로움과 절망은 카야가 다시 사람들로부터 마음을 닫도록 만들었다. 카야는 외로울 때마다 엄마가 해주었던 이야기들, 여자들의 유대와 연대에 대하여 떠올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말해준 엄마조차 카야의 연대자가 되어주지 않은 건 물론 그런 연대와 유대를 어떻게 맺는지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참 기묘하다. 카야의 야생성에 대하여 시종일관 이야기하지만 그 야생성은 카야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 역시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야생의 카야를 만든 건 어린 날의 고립이었고 그 고립은 카야가 원한 것도 택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카야가 느끼는 외로움은 더욱 미어지는 아픔으로 와 닿고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고 사람이기에 아플 수밖에 없는 고독과 소외의 감정들이 독자에게 입체적으로 전달된다.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자기 발로 나를 떠났고, 그 어떤 집단도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냉혹한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다면, 언젠가 친구와 가족을 갖게 될 거라는 희망을 계속 품는 것이 고통일까 아니면 모든 희망을 버리고 켜켜이 쌓인 벽 뒤로 모습을 감추는 게 고통일까.
카야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저 사이에 함께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깊어지는 하늘 아래 소녀들의 즐거움이 오라처럼 눈에 보일 듯 환했다. 엄마는 여자들은 남자보다 서로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자랑스러운 우정을 가꿀 수 있는 방법은 말해주지 않았다. 자연스레 카야는 숲속 더 깊이 물러섰다. 그리고 아이들이 백사장을 따라 왔던 길로 다시 멀어져 모래사장의 작은 얼룩이 될 때까지 지켜보았다.
옮긴이의 글에는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고 단언했고 처음부터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고 써 있다. 작가는 홀로 유기된 어린 소녀의 인생사를 통하여 사람은 외로움을 친구 삼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갇힌 주인공이 바람 빠진 배구공으로 친구 왓슨을 만들었던 이유와 그 왓슨을 폭풍우 속에 잃고 통곡했던 그의 심정에 동감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랴. 생물들에게 고립은 생존의 위기이지만 사람에게 고립은 존재의 위기가 된다. 그래서 사람을 고립시키는 차별과 혐오, 외면과 무관심은 부당하고 불의하다. 이 부당함과 불의는 생태계의 약육강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약육강식은 종족의 존속을 위한 야생의 방식이나 차별과 혐오 나아가 (체이스가 카야에게 휘둘렀던) 폭력과 정복욕은 야만이다. 차별과 혐오는 생태적 차원에서 약하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 아니라 휘두르는 쪽이 야만적이므로 벌어지는 일이다. 카야를 ‘외로움’으로 학대하고 카야를 돕는 유일한 어른인 점핑 역시 흑인이라고 멸시하는 마을의 모습은 카야를 품어준 습지의 야생과 대비되어 더욱 수치스럽고 천박한 야만의 세계로 드러난다. 이 야만은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기어코 카야를 체이스 살인 용의자로 몰아세워 재판정에 세움으로써 그 비열함의 끝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 여성
이 ‘야만’의 표상으로 체이스를 대체할 인물은 없다. 체이스와 카야의 대립과 갈등은 카야를 여자의 얼굴로 읽게 한다. 저자 델리아 오언스는 외로움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린 동시에 외로움이 여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그린 셈이다.
얼굴은 이제 녹색과 보라색으로 시커멓게 변색되고 눈은 삶은 달걀처럼 부풀어올랐다. 목은 뻣뻣하게 굳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윗입술은 한쪽이 엽기적으로 뒤틀렸다. 엄마처럼, 괴물 같은 몰골이 되어 무서워서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카야는 엄마가 왜 떠났는지 선명하고도 뚜렷한 깨달음을 얻었다. “엄마, 엄마.” 카야는 속삭였다. “이제 알겠어. 이제야 엄마가 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는지 알았어. 몰라서 미안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카야는 머리를 툭 떨어뜨리고 흐느껴 울었다. 그러다가 홱 고개를 젖혀 높이 치켜들었다. “난 그렇게는 살지 않을거야. 언제 어디서 주먹이 날아올까 걱정하면서 사는 삶 따위 싫어.”
누군가는 강간을 남자의 생식 본능이라고 이야기한다. 틀린 말이다. 강간은 생식하려는 본능이 아니라 정복하려는 야만에서 기인한다. 생식의 목적은 더 많은 자식을 생산해서 종족을 번성하게 하고 대를 이으려는 것이고 이런 목적을 가지고 무의식중에 움직이는 것이 생식 본능이다. 이런 차원에서 섹스는 생식 본능이다. 그러나 결혼한 체이스가 카야를 찾아가 흠씬 두들겨 패고 강간하려 한 것은 종족을 번성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순전히 카야가 여전히 자기 소유라는 걸 확인하려는 야만적인 정복욕이다. 체이스에게 얻어맞은 자기 얼굴에서 과거의 엄마를 발견한 카야는 엄마를 용서하면서 원망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는 동시에 드디어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걸 알고 그걸 얻어내는 온전한 여성으로 각성한다. 이전까지 카야는 체이스를 생식의 상대로 대했다. 그러나 이제 체이스가 먼저 야만을 발휘하여 힘의 논리로 카야를 대했다. 이제 체이스와 카야는 생식이 아니라 생존의 무대에 서서 겨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카야는 야생의 암컷들로부터 수컷을 해치우는 법을 배운 여성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가졌던 여러 인식들을 새롭게 고쳤다. 야생과 야만, 자연과 인간, 동물과 사람, 설렘과 공포, 두려움과 그리움. 안다고 생각했던 개념과 감정의 많은 부분이 카야의 이야기에 비추어 조금 더 정밀하고 견고한 형태로 조정되고 카야의 눈빛과 저자의 목소리로 엮은 많은 문장들로부터 생명으로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내가 찾고 있던 삶의 태도를 빌려왔다.
|
|
인기가 너무 많은 책이라 기대가 정말 컸던 가재가 노래하는 곳. 어린 카야가 겪어내는 홀로서기가 가슴을 무척 아프게 만드는데 그 여운 때문인지 제일 인상적이기도 하다. 습지와 새에 대한 작가의 표현력 역시 우수하여 습지에 무지한 사람도 습지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고 마치 내가 카야가 된 것 처럼 습지를 사랑하게 만든다. 미스테리 부분은 처음 예측한 스토리대로 흘러가서 큰 반전은 없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이 더 안정감있게 스토리를 잡아주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다들 반전에만 주목하여 스토리를 다 무너뜨리면서까지 이상한 반전을 꿰내어내는 사람들도 많아서 나는 예상대로 흘러간 미스테리 부분도 나름 만족스럽다. 습지에 가보고 싶다. 살아 숨쉬는 습지를 나도 카야처럼 느껴보고 싶다. |
|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넷플릭스에서 처음 봤다. 볼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책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그 주변을 배회하던 차에, 처음 간 미용실에 이 책과 파친코가 있었다. 둘 다 흥미있었으나, 기다리는 동안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일종의 덫과 같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단하기 힘들다. 특히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1952년부터 시작하는 7살 소녀 카야의 삶과, 1969년 일어난 체이스의 죽음, 별개처럼 보이는 두 이야기는 번갈아 진행된다. 1952년이 1954년이 되고 드디어 1969년이 되고, 결국 만나게 된다. 카야는 결국 유력한 용의자로 법정에 서게 된다. 저자는 마지막에서야 덫을 풀어줬다.
1952년 첫 장면에서 카야는 집을 떠나는 엄마를 바라본다. 그렇게, 엄마가 떠나고 5남매 중에 막내인 카야를 빼고 다 집을 떠났다. 그 원인은 바로 아빠의 폭력이다. 있음직한 일이다. 대서양에 인접한 미국 동부 노스캐롤라이나 습지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술마시고 아내와 아이를 패는 아빠. 결국, 아빠도 돌아오지 않고, 카야만 습지에서 혼자만의 삶을 일구어나간다. 물론, 점핑과 그의 아내가 (카야 모르게) 어려모로 도와준 덕분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어쩌다가 7살 소녀가 가족도 없이 습지라는 자연 속에 살게 되었고, 결국 자연이 그 소녀의 부모와 형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카야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으로부터 거의 모든 걸 배우며 살았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자연과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카야를 볼 때 마다 마시 걸(marsh girl)이라고 부르며 거리를 뒀다. 즉, 카야는 사람들 사이보다 자연 속에 있을 때 더 편안하고 익숙하다. 그런 카야를 눈여겨본 두 남자가 있었다. 테이트와 체이스다. 테이트는 카야의 바로 위 오빠인 조디와 친구 사이였고, 어릴 때부터 카야를 알았고,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주며 호감을 가진 착하고 잘생긴 모범생 스타일이다. 체이스는 부잣집 바람둥이고, 카야에게 접근해 카야의 호감을 샀고 결혼 얘기까지 하며 카야를 설레게 했으나, 결국 다른 여자와 약혼해 버린다. 외로움! 카야에게 익숙한 것이라고 여길 수 있으나, 그 만큼 외로움의 깊이는 컸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 또한 컸다. 그래서 가족 모두 자신을 떠났고, 테이트 역시 돌아오지 않았을 때, 카야에게 체이스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었다. 체이스가 아닌 그 누구라도 결에 두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쁜 남자 체이스와의 뻔한 결말을 예감하여 묵묵히 읽어내려갔다. 1952년과 1969년은 결국 만났고, 1970년까지 이어진다. 체이스의 목걸이가 사라진 점, 그리고 나쁜 남자 체이스가 카야를 버린 점을 볼 때 카야는 용의자로 충분하다. 하지만, 그 시점 알리바이 또한 확실하다. 이후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 사이에서 다양한 증인들(어부, 버스기사, 체이스의 어머니 등)의 증언이 이어진다. 아무리 습지 소녀 카야에 대한 편견이 심한 마을 사람들이라도 (백인이 다니는 학교에 흑인은 못 다니는 시대였다) 배심원들은 신중하게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살인을 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살인을 했다고 여겨질 만큼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였을 것이다. 유능한 변호사 덕분이다. 하지만, 역시나, 저자는 마지막에 비수를 숨겨놓았다. 마지막 부분을 읽고 책을 덮은 후, 나는 알 수 없는 찜찜함에 사로 잡혔다. 그리고 그 날 밤 눈을 감았는데, 법정에서 증인들이 얘기한 상황들이 머리 속에 재조합 되면서 하나의 살인 사건을 완성시켜갔다. 저자는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안 한 상태에서, 다른 이들의 입을 빌려 말해버린 것 같다. 법정에서 카야의 상태를 상상하면서 난 카야에게 이질감을 느낀다. 카야에게는 자연 특히 습지(거기에 사는 새, 물고기, 곤충 등 포함)가 가족의 역할 뿐 아니라 삶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확립시켜준 존재였을 것이다. 따라서 (책에서도 나오지만) 선과 악이라는 개념은 습지에 없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있을 뿐이다. 이제 생각해보니, 반딧불이 암컷과 사마귀 암컷이 수컷을 교미의 대상 뿐 아니라 먹이의 용도로도 여긴다는 대목이 결정적이었다. (이제부터 결정적인 스포일이 있을 예정입니다) 체이스는 암컷을 속인 나쁜 수컷이고, 따라서 카야는 암컷으로서 (빈딧불이 암컷, 사마귀 암컷처럼) 그런 수컷을 응징하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작별인사 없이 떠나버린 겁쟁이 테이트의 몫도 있을 것이다(테이트는 두고두고 후회한다). 그리고 그럴 만큼 체이스는 나쁜 수컷이기도 하다. 카야를 둘러 싼 갈매기들, 스페니쉬 모스, 참나무 등 아름다운 습지의 모습 속에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함이 깃들어 있다는 걸 짐작하게 한다. 카야의 그런 행동과 결정을 나는 지지하는 바이다. 어쩌면 그건 폭력을 행사했던 아빠(수컷)에 대한 엄마의 복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그린 저자의 방식은 참으로 놀랍다. 정말 중요한 부분은 자신이 말하지 않고 주위의 다른 이들의 말로 대신했다. 어떤 존재든지 그 존재를 둘러 싼 존재들이 정확하고 객관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 내가 아는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이 아는 나의 차이는 얼마나 클까? 책을 거의 다 읽고, 영화를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책과 영화는 약간씩 전개가 다르다. 영화는 법정 중심에 과거 회상이 나오면서 전개가 빠르다. 책에서 얘기한 습지의 모습을 실제로 생생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묘사는 역시 책이 좋았다. 저자는 마치 아름다운 습지를 직접 본 것처럼 묘사해놨다. 그리고 과학적인 문장들도 기억에 남는다. 꽤 특이한 책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덫을 벗어난 채로 홀가분하게.
카야와 체이스의 관계를 폭력 수컷에 암컷의 대응으로도 볼 수 있으나, 자연/습지를 파괴하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처벌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잣대(선과 악)로 자연을 판단하는 건 오만이 아닐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그냥 그대로 두는 게 인간에게도 좋을 것이다.
*번역 별점: 4.5 (상당히 좋았음) ------------------- 스커퍼가 말을 이었다. "시가 계집애들만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야. 물론 오글거리는 사랑 시도 있지만 웃기는 것도 있고, 자연에 대한 시도 많고, 심지어 전쟁 시도 있거든. 시의 존재 의미는 말이야, 사람한테 뭔가 느끼게 하는 거지." 테이트의 아버지는 진짜 남자란 부끄러움 없이 울고 심장으로 시를 읽고 영혼으로 오페라를 느끼며,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65~66)
"그럼, 안 될 거 없지, 그런데 왜?" "점핑 아저씨가 그러는데 사회복지사들이 나를 찾고 있대. 송어처럼 끌려가서 어디 위탁되거나 그럴까봐 무서워" "그래, 저기 어디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 가서 꼭꼭 숨어야겠네. 누군지 몰라도 카야를 데이고 가서 키워야 되는 사람들 참 안됐다." 테이트가 만면에 웃을을 띠었다. "무슨 말이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엄마도 그런 말을 했었어." 엄마는 언제나 습지를 탐험해보라고 독려하며 말했다.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그냥 저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들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그런데 어디서 만날지 생각해봤어?" (139~140)
테이트는 대학에 간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원하는 세상에 곧장 들어서서 DNA 분자의 경이로운 대칭 구조를 분석하고 있었다. 배배 꼬인 원자의 빛나는 성전으로 들어가 나선형으로 휘도는 산 의 가로장을 밟고 올라서는 느낌이었다. 모든 생명이 의존하는 이 정교하고 복잡한 암호는 섬세하고 약한 유기체에 전사되는데, 살짝만 덥거나 추운 세상으로 가면 즉시 죽어버린다. (195~196)
낮이 스르르 물처럼 빠지고 밤이 묵직하게 가라앉자 아득한 해변에서 드문드문 마을의 불빛이 켜졌다. 바다와 하늘로 이루어진 두 사람의 세계 위로 별빛들이 깜박였다. 체이스가 말했다. "별들이 왜 깜박이는지 궁금해." "대기에 동요가 생겨서 그래. 상층대기권의 바람 같은 거 있잖아." "그런 거야?" "대부분 별은 너무 멀리 있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알지? 우리가 보는 건 별의 빛뿐인데, 빛은 대기에 의해 굴절되거든. 당연히 별들은 정지해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빨리 움직이고 있지만." 카야는 별뿐 아니라 시간도 고정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책에서 읽어 알고 있었다. 시간은 행성과 태양을 두고 속도를 내거나 휘어지고, 골짜기와 산에서 서로 다르며, 공간과 같은 결인데 이 시공간의 결은 바다처럼 휘어지고 부푼다. 행성이나 사과 같은 사물이 추락하거나 궤도를 도는 건 중력에너지 때문이 아니라 질량이 높은 사물이 창출하는 실크처럼 부드러운 시공의 주름으로 - 마치 연못에 잔물결을 일으키듯 - 직하하기 때문이다. (231~232)
그 후로 책을 아주 많이 읽었어. 대자연에,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 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아직도 우리는 그런 유전자와 본능을 갖고 있어서 특정한 상황이 닥치면 발현되지. 우리의 일부는 언제까지나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일 거야.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에도 말이야. (295~296)
"대부분의 수컷은 암컷들을 전전해. 무가치한 수컷들이 뻐기며 걸어다니고 거짓으로 암컷을 유혹하지. 그래서 아마 엄마가 아버지 같은 남자한테 빠졌을 거야. (300)
얼굴은 이제 녹색과 보라색으로 시커멓게 변색되고 눈은 삶은 달걀처럼 부풀어올랐다. 목은 뻣뻣하게 굳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윗입술은 한쪽이 엽기적으로 뒤틀렸다. 엄마처럼, 괴물같은 몰골이 되어 무서워서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카야는 엄마가 왜 참았고 엄마가 왜 떠났는지 선명하고도 뚜렷한 깨달음을 얻었다. "엄마, 엄마." 카야는 속삭였다. "이제 알겠어. 이제야 엄마가 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는지 알았어. 몰라서 미안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카야는 머리를 툭 떨어뜨리며 흐느껴 울었다. 그러다가 홱 고개를 젖혀 높이 치켜들었다. "난 그렇게는 살지 않을 거야. 언제 어디서 주먹이 날아올까 걱정하면서 사는 삶 따위 싫어." (339)
딱딱한 빵과 훈제한 생선으로 소박하게 끼니를 때우고 포치의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차양 너머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때 암컷 사마귀가 카야 얼굴 근처 나뭇가지를 따라 기어왔다. 사마귀는 분절된 앞다리로 나방들을 뽑아서 파닥거리는 날개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수컷 사마귀가 포니처럼 허세를 떨며 고개를 높이 치켜들고 왔다 갔다 하며 구애를 했다. 암컷은 흥미를 보이며, 촉수를 마술지팡이처럼 마구 흔들었다. 수컷의 포옹이 힘찼는지 부드러웠는지 카야는 알 수 없었지만 수컷이 생식기로 암컷의 알을 수정시키려 이리저리 찌르는 사이 암컷은 길고 우아한 목을 돌려 수컷의 머리를 물어뜯어버렸다. 쑤시고 박느라 바빠서 수컷은 눈치채지 못했다. 수컷이 제 볼일을 보는 사이 머리가 뜯겨지고 목만 남은 자리가 흔들렸고, 암컷은 수컷의 흉부를 갉아 먹더니 날개까지 씹어먹어버렸다. 마침내 수컷의 마지막 앞다리가 암컷의 입 안에서 툭 튀어나왔을 때도 머리 없고 심장 없는 하체는 완벽하게 리듬에 맞춰 교미했다. 암컷 반딧불은 허위 신호를 보내 낯선 수컷들을 유혹해 잡아먹는다. 암컷 사마귀는 짝짓기 상대가 잡아먹는다. 암컷 곤충들은 연인을 다루는 법을 잘 안하는 생각이 들었다. (339~340) |
|
2020. 12월의 첫 번째
자연이 키운 소녀 카야..
|
| 저는 우선 영화를 먼저 봤어요 영화를 보고나서 넘넘 좋아서 책을 사서 보게 되었어요 영화에서는 특히나 영상미가 좋아서 책만 읽으신 분들은 영화도 추천해요 아름다운 바닷가나 노을지는 저녁해변등 이쁜 장면이 많이 나와요 책하고 영화는 조금씩 다른부분도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같은 내용이에요 영화에서 느낄수 없는 것을 책에서 느끼고 책에서 느낄수 없는것을 영화에서 느끼네요 넘넘 재밌게 읽엇고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추천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