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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전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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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EZLN]은 1994년 1월 1일 NAFTA 발족일날 무장봉기한 멕시코의 혁명군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조직의 부사령관인 마르코스라고 하는 사람이 세계 유수의 언론기관과 주고받은 편지와 성명서를 모아 만든 책이다. EZLN이 활동하는 멕시코 동남부의 치아파스州는 멕시코에서 가장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난한 곳이다. 뭐 이유는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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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EZLN]은 1994년 1월 1일 NAFTA 발족일날 무장봉기한 멕시코의 혁명군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조직의 부사령관인 마르코스라고 하는 사람이 세계 유수의 언론기관과 주고받은 편지와 성명서를 모아 만든 책이다. EZLN이 활동하는 멕시코 동남부의 치아파스州는 멕시코에서 가장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난한 곳이다. 뭐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와 외세 자본이 이 곳에서 모든 천연자원을 뽑아가면서도 정작 이 곳 원주민들의 삶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본래 과테말라에 속해있던 이 곳은 몇몇 엘리트주의자들에 의해 멕시코로 이탈하여 복속되었고 그 이후 줄곧 수탈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곳에 사파티스타 몇몇 혁명군이 1983년에 도착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애초에 사회주의 혁명사상을 가지고 이 곳에 도착해, 위로부터의 지도와 교육을 통한 혁명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정작 그들은 오랜 아즈텍-마야 문명지였던 이 곳의 사상과 정신에 감응하여 독특한 혁명사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인 마르코스는 실질적으로 이 반군의 지도자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는 이곳 마야 원주민이 아닌 까닭에 사령관이 아닌 부사령관직에 있다.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은 CCRI-CG라고 하는 군사조직이 있고 그 대리인으로서 마르코스가 활동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JBG라는 행정조직도 새롭게 꾸려 각 자치도시 운영에 있어서 군사적인 성격을 배제하는 진일보를 겪기도 했다. 복면을 쓴 그의 모습은 탈냉전 시대 자본주의의 세계적 지배에 도전하는 반란의 상징이 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략 덕분에 포스트모던 전사로서의 이미지도 얻고 있다. 그의 이름인 마르코스는 군사 검문소에서 죽임을 당한 한 친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그는 멕시코 사회가 가면을 벗으면 자신도 가면을 벗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멕시코 사회가 가면을 벗으면 사람들은 그 위선과 실체를 알게 되어 엄청나게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지만 본인이 가면을 벗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냉소적으로 멕시코 사회를 비웃기도 한다. 실제 그들이 쓰는 스키마스크는 우리 모두가 동일하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검은색인 이유는 불씨를 안고 살아가며 남을 위해 희생하는 숯검정색을 의미한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라는 모토 아래 활동하는 혁명군의 자서전 격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그는 멕시코 중산층 가정 출신의 백인으로, 프랑스에 유학해 파리대학교를 졸업한 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UNAM)에서 철학을 강의하던 중 원주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혁명을 일으킨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렇기에 그는 원주민 공동체를 지도하는 사령관직을 거부했다. 그의 학식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 책에 나와있는 그의 편지와 성명서들은 하나같이 세련되고 우아하다. 혁명군의 문체가 이렇게 멋있을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실제로 세계 유수의 언론은 그를 두고 최고의 문학가라고 칭할 정도로 그의 글솜씨와 학식은 대단하다. 혁명군 지도자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내용을 읽어보면 EZLN과 마르코스는 하나같이 멕시코 정부의 진실된 모습과 양측간의 평화로운 협상을 원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절대 악에 굴하지 않을 것이며 정의를 실현해나갈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실제 이들의 요구조건을 보면 국가를 전복시키거나 국가 최고 지도자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들은 없다. 단지, 민중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토지개혁이나 원주민, 여성, 소수민족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 뿐이다. 이런 모든 부분들 때문에 그들을 포스트모더니즘을 실현한 최초의 혁명군이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멕시코의 상황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정말로 대단한 사건들이 터지고 있다는 것 또한. 이것은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을 연구한 연구서적도 아니요, 그에 대한 개설서도 아니다. 다만 그 혁명군을 이끌고 있는 부사령관이라는 사람이 조직을 대표하여 전세계에 호소했던 내용을 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호소력짙은 글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게끔 만든다. 비록 그 책을 읽는 사람이 멕시코에 전혀 상관이 없는 한국의 대학생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조용한 분노의 그림자, 우리의 길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쌀 것입니다'' 마르코스가 ''원주민과 캄페시노의 주 평의회, 멕시코 민중, 전세계 민중과 정부, 국내 및 전세계 언론에게''라는 제목으로 1994년 발표한 성명서에 나온 말이다. 이만큼 사파티사트민족해방군을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싶어서 이 말을 끝으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s*****m 2006.04.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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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여, 그대의 펜으로 노래하라.
"마르코스여, 그대의 펜으로 노래하라." 내용보기
.. 그대는 진정 혁명가인가, 혁명을 가장한 문필가인가. 나는 그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자네만의 독특함을 맛보네.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엿볼 수 없는 것이었다네. 각박하게 돌아가는 전쟁의 현장, 포위당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그 현장. 그곳에서 자네가 써 내려간 글들을 마지막이기에 더해질 수 있었던 유머라 논하면 너무도 경박한가. 얼굴없는 자네의 등에는 늘 펜
"마르코스여, 그대의 펜으로 노래하라." 내용보기
.. 그대는 진정 혁명가인가, 혁명을 가장한 문필가인가. 나는 그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자네만의 독특함을 맛보네.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엿볼 수 없는 것이었다네. 각박하게 돌아가는 전쟁의 현장, 포위당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그 현장. 그곳에서 자네가 써 내려간 글들을 마지막이기에 더해질 수 있었던 유머라 논하면 너무도 경박한가. 얼굴없는 자네의 등에는 늘 펜 하나가 꽂혀있었다네. 결국 모든것은 소통의 문제라던 누군가의 말마냥 자네는 그 모든것을 당신의 명확한 목소리로 그려나갔네.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 안에서 이루어졌던 착취와 고달픔의 역사를 자네는 늘 반감아닌 친근함으로 내게 가져다 주었네. 멕시코 정부가 그대들에게 열어놓은 단 한가지의 길이 무장투쟁이기에 그대들은 전쟁을 택했노라고 했네. 지니고 있는 힘으로부터 비롯되는 수많은 왜곡과 단절의 가능성이 그대의 펜으로 인해 바로잡히고 있음을 나는 보았네. 우리에겐 인종의 분쟁이 없다네. 그렇다고 내 그대들의 투쟁을 이해치 못한다 비하하진 않길 바라네. 결국 역사는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네. 우리에게도 가진자가 존재하고 그렇지 못한 자가 존재하네. 우리에게도 자네들에게 드리워진 분노의 그림자가 존재하고, 소리없이 외치는 아우성이 존재한다네. 물은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흘러내려 하나의 시냇물을 흐른다고, 하지만 결코 다시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갈 순 없다고, 한벌 흘러내린 물은 땅 속으로 스며들거나 증발할 따름이라고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자네에게 말했다지. 어쩌면 우린 아래로 흘러내려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걸지도 모르네. 바위를 뚫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물, 보다 빠른 흐름이 지속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것일테니 말일세. 멕시코가 자신의 가면을 벗길 바라네. 우리 사회가 뒤집어쓰고 있는 그들만의 가면을 벗을 날이 오길 바라네. 그 땐 자네도 스키 마스크를 벗게. 그 땐 더 이상 얼굴없이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될걸세. 그 땐 더 이상,... '포기하다'의 실체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네... 살기 위해 죽고자 하는 그대여, 더 이상 군인이 없길 바라며 스스로 군인의 길을 택한 그대여,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기 위해 죽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죽음을 향해 걷네. 그것이 투쟁이네. 그것이 자네가 나에게 가르쳐준 투쟁이고, 우리 사회에 우리에게 가르쳐준 투쟁이네. 마르코스여, 그대의 펜으로 노래하라. 영원히 지치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라... 그 타당함으로 인해 승리하라...
q*****2 2001.1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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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무기로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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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반 정도 읽었다. 그들이 행하는 저항의 당위성과 절박함은 인식하겠으나, 바다 건너 독자로서 이 책을 읽는 느낌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 불유쾌함은 쟤들 연예인 아니야 라는 감정보다는, 책 내용의 단조로움 때문이다. 혁명군(?)의 선언문으로 이어지는 300쪽 안밖의 책은 독자인 나를 한없이 지루하게 만들었다. 마치 도덕책을 보는 것 같다.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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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반 정도 읽었다. 그들이 행하는 저항의 당위성과 절박함은 인식하겠으나, 바다 건너 독자로서 이 책을 읽는 느낌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 불유쾌함은 쟤들 연예인 아니야 라는 감정보다는, 책 내용의 단조로움 때문이다. 혁명군(?)의 선언문으로 이어지는 300쪽 안밖의 책은 독자인 나를 한없이 지루하게 만들었다. 마치 도덕책을 보는 것 같다.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주장을, 예를 들어 우리가 3.1절 독립선언서와 같은 내용의 동어반복을 300페이지 내내 읽는 다면 느낌이 어떻겠는가?


그들의 숭고한 목소리에 대한 기록을 이런 식으로 폄훼해서(?) 미안하지만, 정말 나는 재미가 없었다. ㅠ ㅠ  


자본만이 초국가적 형태를 띠는 것이 아니라 억압된 자들의 말조차 초국가적 형태를 띤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다. 어쩌면 인터넷을 통해 멕시코인들보다 더 빠르게 마르코스의 명문장을 접하기 때문이다.

g********m 2008.06.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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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검은색 스키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게릴라 복장의 남자 사진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맞다. 이들은 반란군이다. 1994년 1월 1일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던 날, 산속 밀림에서 내려와 멕시코 치아파스주의 여러 도시를 무력점령한 반정부군이 그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라고 부르며, 혼혈인 부사령관 마르코스를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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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검은색 스키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게릴라 복장의 남자 사진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맞다. 이들은 반란군이다. 1994년 1월 1일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던 날, 산속 밀림에서 내려와 멕시코 치아파스주의 여러 도시를 무력점령한 반정부군이 그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라고 부르며, 혼혈인 부사령관 마르코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원들은 마야 원주민들로, 제3세계인 멕시코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가장 문맹자가 많은(문자해독률 25%) 치아파스주의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94년 이후 끊임없는 정부군의 공세에 시달리며 현재도 치아파스의 산중에서 유격전을 펼치고 있는 소수 반란집단이다.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고 싶은 이 책은 반란군 부사령관인 마르코스가 쓴 성명서와 편지들로 엮여져 있다. 정신이 제대로 된(?) 독자라면 당연히 몇가지 불만이 생길 것이다. 요즘 세상에 무슨 민족해방군이며, 반란군집단에 어울리지도 않게 무슨 책이며, 더군다나 멕시코의 오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질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들은 마르코스의 글을 직접 읽으며 그 답을 구하는 편이 훨씬 나을테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문장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게 문제다. 더군다나 그의 글은 완벽한 정치이론이나 이념의 바탕 위에 씌여진 것도 아니고 19세기 유럽에서의 수많았던 혁명, 예컨데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그리고 우리나라 해방 전후나 최근 80년대를 되돌아보며 떠올릴 수 있는 긴장된 얼굴과 불끈 쥔 주먹, 붉은 머리띠와 같은 이미지의 문구들도 그다지 없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혁명군이고 해방군이란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마르코스는 복장은 반란군 복장인데 등에는 총대신 펜을 메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 녹색당의 한 간부는 마르코스를 '위대한 문학가'라고 평하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은 그를 '포스트 모더니즘 혁명가'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로 볼때 그는 이전의 혁명가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물론 그도 '폭력'을 사용한다. 반정부 게릴라가 그의 직업이지만(자신의 직업을 '싸우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예전의 혁명가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그는 그의 현재적 삶과 처지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고 그들의 처지와 정당함을 '해학적 언어'를 통해 장엄하고 비장한 정치구호보다 더 효과적으로 선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싸움을 즐긴다? '거봐, 혁명한다는 놈들치고 호전적이거나 반쯤은 정신이 탈출하지 않은 놈들은 없어.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놈의 혁명이야?' 마르코스는 대답한다. '이런식으로 스스로를 조직하는 것은 이것말고는 다른 어떤 길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뿐이라고... 그래서 그들은 '언젠가는 군인이 필요없는 날이 오도록 하기 위하여' 무기를 든 것이라고.. 역사적으로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착취자들에게, 그리고 지주들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에게 억압받고 기만당했으며 소외되었던 그들이 그들의 삶과 생존을 위해 무기를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들이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던날 봉기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표면적으로 그들은 신자유주의의 폭력성, 즉 [전체주의적 폭력]에 반대한다. 다시말해 자본의 무제한적 자유와 노동의 무자유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정치적 구호들로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대신에 이 책에서 발견되는 언어들은 인간의 존엄을 수호하려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열망과 자유와 정의를 희구하는 밝은 빛을 발휘하는 언어들이다. 밀림속에서 중무장을 하고 얼굴에 검은 위장을 한 야수의 모습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인간다우며 다정한 모습이 그려져 잇다. 밀림의 폭우속에서 쭈그리고 앉아 편지를 쓰고 잇는 마르코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아름답지 않은가? 그의 글은 '저항의 미학'을 연상시킨다. 한계적 삶 속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 그러하기에 그들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코스에게는 '머리위로 날아가는 비행기 소음이 거의 자장가처럼'들리는 것이다. 마르코스와 그의 동료들의 삶을 이 책속에서 만나보시라. 또다른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g***y 1999.08.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