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들어있는 소설들 중에서 나는 [술 권하는 사회]를 가장 감명있게 읽었다. 이 작품은 현진건의 초기작이지만 그의 대표적인 소설로 꼽힌다. [희생화]나 [빈처]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봉건 사회로부터 근대사회로 변동하는 과도기의 지식인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와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와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불화를 그려내고 있다. 가정, 돈, 직장이라는 근대사회의 구체적인 생활상과 거기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사회물정에 어두운 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담담하게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보이는 지식인의 고통과 좌절은 그들 의식의 취약성을 드러낸다는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근대사회로 이행해 가는 과도기에서 그것도 식민지 상황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기 자아를 인식해 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이 작품의 장점이라 할 것이다. [술 권하는 사회]는 독자로 하여금 지식인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며 또한 그들의 사회적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케 하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예비 지식인이라 할 현대의 대학생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 사람에겐 '육감'이란 것이 있다. 물론 나도 육감을 많이 믿고 의지하는 편이다. 나 스스로도 믿지 말자, 의지하지 말자구 하면서 잘 되지 않는다. 김첨지는 사람의 "육감"이란 것을 믿지 않았다. 괜히 돈이 잘 벌리는 일과 집안의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상반되는 모습이다.그런데 김첨지는 집안의 일보다, 아니 아내에게 설렁탕을 나주고픈 마음에 열심히 돈을 벌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물론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겠지만- 그의 아내는 그가 사준 설렁탕을 먹지 못한 채 죽었다. 김첨지의 마지막 말인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에서 그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죽음"이라는 간접적이나마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죽음"이라는 공통점에 대해서 - 안 내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다가 갑자기 집으로 빨리 가보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집으로 갔는데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한다면, 그 아이의 기분이 김첨지의 기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첨지는 아내에게 끝끝내 설렁탕을 먹이지 못하고 죽게 됐고, 그 아이는 부모님께 뚜렷이 효도한 것이 없이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어찌보면 두 사람의 처지가 너무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