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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는 이상이 1936년 9월 조광에 발표한 그의 대표작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아내에게 기생하여 살아가는 '나'를 통해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나는 자기 모독과 자아 부정의 상태를 아주 분명하게 드러낸다. 아내가 외출을 하고 나면 나는 볕이 드는 아내의 화려한 방으로 가서 장난을 하고 논다. 아내에게 손님이 오면 자기 방에서 아무 소리없이 지낸다. 밥을 주지 않으면 그냥 굶고 견딘다. 아내가 주는 돈을 꼬박꼬박 받기도 하고 아내가 주는 모이를 강아지나 닭처럼 넙적넙적 받아 먹는다. 나는 차츰 자신을 길들인 동물로 느끼기에 이른다.
이를 통해 나는 자기 모독과 자아 부정의 상태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런데 작품 후반에 가면 나의 태도는 돌변한다. 아내에게 기생하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아내에게 돈을 주기도 하고 외출을 하기도 한다. 아내가 주는 약에 대해서 의심을 하기도 하고 아내를 찾는 손님들에게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나는 자기 유폐에서 벗어나 차츰 현실 세계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최재서는 리얼리즘의 심화를 통해 이상이 우리 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환영해 마지 않는다. 그는 현실의 분열과 모순을 이만큼 고민한 사람도 없고 그것을 이만큼 실제화한 예도 없다고 하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나와 아내의 분열된 내면 세계를 의식의 흐름 수법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가 아내가 제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렸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 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리 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내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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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 상은 식민지 하에서 병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섬뜩하리만치 냉소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1930년대면 일제의 탄압이 점차 극에 달해 갈 무렵이다.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은 지하화되고 전망을 상실한 지식인들은 속속 일제에 투항하거나 침묵에 빠져든다. 시대와 대항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영합하지도 못하는 지식인으로서 이 상은 그저 자괴감과 냉소를 역설적으로 쏟아낼 뿐이다.
기생 연심의 방은 무력한 식민지의 현실이다. 그 방 속에서 뒹굴거리며 소일하던 주인공이 어느 날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갈 곳이 없다. 다시 돌아가 연심이 주는 아달린이라는 수면제를 아스피린인 줄 알고 먹으면서 한 달 동안 비몽사몽의 시간을 보낸다.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이번에는 연심에게서 받은 돈을 모두 놓고 다시 나오지만 여전히 막막할 따름이다. 그 막막한 식민지 조국의 한 켠에서 다음과 같은 마지막 대목은 차라리 처절하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처절한 비상(飛上)에의 열망. 눈물이라도 날 듯한 절실함. 그러나 그것은 불행하게도 식민지 현실에서 결국은 좌절하고 말 일시적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출구 없는 욕망 앞에서 절망하는 지식인의 나약함. 이 상의 <날개>는 결국 그 지식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인상깊은구절]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至言)인 듯 싶소. 그러나 인생 혹은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화(禍)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하는 것이니…….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상채기도 머지 않아 완치될 줄 믿소. 굿 바이." 감정은 어떤 '포즈', 그 '포즈'의 원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즈가 부동자세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