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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이는 1215년 영국의 존 왕이 귀족들의 강압에 따라 승인한 칙허장으로, 일반적으로는 '대헌장'으로 불리고 있다. 교회의 자유, 봉건적 부담의 제한, 재판 및 법률, 도시특권의 확인, 지방관리의 직권남용 방지, 사냥, 당면한 애로사항의 처리 등 이제까지는 관습으로서만 인정 받아오던 바를 문서로 기록한 것인데, 17세기부터는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근거로 적극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역사를 언급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800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그나카르타는 나름의 변형을 거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자유주의 수호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미국의 역사는 마그나카르타 신봉(?)의 역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법률적인 해석이 필요할 때마다 그들(미국인들)은 마그나카르타의 각 조항을 언급해가며 자신의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내고는 하였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는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마르코스가 발표한 선언문에서도 마그나카르타는 등장한다. 투쟁하는 집단에게 있어 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도 마그나카르타는 유용한 셈이다. 그렇지만 자유가 누구의 자유인가를 따지면 복잡해지듯 마그나카르타 역시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따짐에 있어서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이는 귀족들을 위한 것이었다. 왕의 권한이 점차 강해지려던 조짐이 보였을 때 귀족들이 마치 말에 재갈을 물리는 심정으로 꺼내든 칼이 바로 마그나카르타였다. 따라서 마그나카르타에는 어느 정도 기득권 존중이라는 측면이 깃들어 있다.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 미국의 사례들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오로지 백인 남성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마그나카르타를 언급하며 자연스레 그들은 자신과 남을 구분 지었다. 차별과 차별이 아닌 것의 경계가 그리하여 명확한 듯하면서도 모호하게 갈렸다.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심화됨에 따라 마그나카르타가 옹호하는 가치는 자본 축에 좀더 가깝게 변질되었다. 타인의 탐욕이 내 재산을 넘보기 시작할 때 침범을 방지하는 묘약으로 마그나카르타는 활용되었다. 특히 미국에서의 ‘절대적인’ 재산권이 확립되는 데에 마그나카르타는 큰 힘을 발휘했다. 이는 미국의 독립선언문과 마그나카르타를 비교해 본다면 좀더 명확해진다. 책에서는 둘을 이리 비교하였는데, 참고를 위해 몇 구절 옮겨본다.
마그나카르타와 독립선언문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선언문의 목적은 전쟁.평화.동맹.상업과 관련하여 국가의 힘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마그나카르타의 목적은 왕권의 힘을 삭감하는 것이다. 마그나카르타는 전쟁을 종식시킨다. 독립선언문은 동맥국을 얻고 병사들의 싸움의 의지를 굳게 하려고 한다. 양자의 재산관도 상이하다. 마그나카르타는 삼림을 돌려주는 배상의 문서인 반면에, 선언문은 취득의 문서이다. 그것은 페인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연령.성.지위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살생하는 전쟁규칙을 가지고 있는 잔인한 인디언 미개인들"이라고 부른 집단에 맞서 "우리의 국경"을 방어하는 것을 허용하는 대륙적 토지수탈이다. -p161
특정 권리의 옹호라는 측면에서 이는 애초의 취지에 부합하는 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배제를 고려한다면 인류는 마그나카르타의 가치를 오묘하게 뒤틀어가며 사용해온 셈이 된다. 처음 귀족들이 이를 옹호했을 때 그들은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거한 이들의 존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문자를 아는 이가 극소수였던 그 시절이니 그와 같은 자비(?)는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한 편으로 절대권력에의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귀족은 분명 열세에 놓인 집단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이중적인 속성이 많이 퇴색했다. 자본가는 자본주의에서 먹이사슬 최고 높은 지위를 누린다. 그들의 피를 빨아먹는 것은 설령 국가라 하여도 불가능하니, 국가마저도 자본가들의 손에 놓인 지가 오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대형마트의 횡포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가졌기 때문에 가지지 못한 자의 극소 재산에 대해서도 욕심을 감추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않은 공공의 것조차도 사유화하는 데, 그들의 이런 행위를 기댄 법률의 각 조항과 해석이 뒷받침해 준다. 함께하고자 하는 열망, 즉 커먼즈의 열망은 그렇게 체계적으로 깨어졌다. 뒤늦게 제재를 가해보겠다며 움직여 보지만 역부족이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이 세상을 약간 바꾸는 건 가능하겠지만 전폭적인 지각변동까진 일으키지 못하리란 걸 세상 사람들은 이미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주문한다. 공동의 것을 지키기 위한 요구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야말로 마그나카르타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길이다. 물질에 인간성을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는 어리석은 돈키호테가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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