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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
역사는 곧 타인의 경험이다. 자신의 경험뿐만 아니라 타인의 경험에서도 배우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칼 마르크스(1818~1883)는 145년 전에 독자적으로 당시의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자본론>이란 책을 집필했다. <자본론>은 모두 3권까지 출간되었으나 마르크스가 직접 완성한 책은 1867년에 발간한 1권뿐이다. 2권(1885년)과 3권(1894년)은 마르크스 사후에 남겨진 미완성 원고를 토대로 변증법적 유물론의 창시자인 그의 절친 엥겔스(1820~1895)가 내용을 보완해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자본론> 1권만을 다루고 있다. <자본론>은 마르크스가 생존할 당시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경제 실태를 분석하고 자본주의의 특성과 본질에 관해 저술한 책이다. 무려 145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의 의미는 마르크시즘의 탄생과 공산주의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영향으로 구舊 소련과 중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자본론>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유물 정도로 치부되어 왔다. 동서간의 냉전이 한 몫을 거든 셈이었다.
금융위기가 지구촌을 급습하자 경제위기가 전 세계로 파급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빈번하게 경제 공황이 발생하자 당시의 경제를 지배하던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했다. 또 다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당대의 지구촌을 휩쓸고 있기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노동자들이 협동과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훈련되고 단련되면서 발전과 성장을 이루게되므로 이 축적된 힘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했다. 노동자가 지성을 갖추고 상호 협조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사회주의 혁명을 거론했다.
그의 이론대로 실제 혁명이 일어난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 등이었다. 아이로니하게도 당시의 이 나라들에는 노동자가 별로 없었고, 사실상 농민이 대부분이었다. 지식계층과 학생들이 마르크시즘에 동조해서 가만히 있던 농민들을 부추겨 혁명을 일으킨 것이었다.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움직임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소위 혁명가란 사람들이 설쳐대면서 나라가 제대로 발전하지도 못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자유도 엄청 핍박받았다.
당시 자본주의 국가도 사회주의 국가가 차례로 생겨나자 위기감과 함께 고민이 늘어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가난해지면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10년에 한번 꼴로 발생하는 경제 공황 때문에 실업자가 늘어난다, 실업자가 늘면 불만이 높아져 혁명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등의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었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해결책으로 케인즈를 선택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인즈(1883~1946)는 불황에 대해 새로운 대책을 제시했다. 경제가 나빠지는 이유는 과잉생산으로 재고가 쌓이자 돈을 못벌어 회사는 망하고 실업자가 양산되기 때문이므로 정부가 개입하여 일부러 공공사업 같은 수요를 만들어 경제를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국가는 돈이 부족해도 빌려서 도로를 건설하고,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는 등 여러 사업을 펼치게 된다. 이리되면 노동자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연관 산업은 새로운 수요에 맞는 상품을 공급할 수 있기에 국가 경제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경기가 좋아지면 세금이 늘어나므로 이 세금으로 국가 빚을 갚으면 된다는 것이 케인즈의 주장이었다.
자본주의 국가들 대부분은 케인즈의 이론을 실천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도 만들고, 노후의 불안을 해소코자 연금제도를 만들고, 실업자에겐 실업급여를 지급함과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지원해주었다. 이렇게 노동자가 더 이상 비참해지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면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점이 발생했다. 사회복지가 늘어나는 만큼 국가 채무가 늘어나면서 공공사업의 추진으로 인해 공무원의 수도 많아졌다.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으로 비효율적인 국가사업은 더 많아지고 또한 늘어난 사회 복지만 믿고 놀고 먹는 베짱이들이 늘어만 갔다. 최근에 불거진 그리스 재정위기가 좋은 예다.
노동과 착취, 노동자 계급의 혁명,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과 전복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어서 100년 이상 동안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었던 <자본론>이 새로 태어나려 하고 있다. 위대한 사상가인 칼 마르크스는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의 성경 귀절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면 완독이 결코 쉽지 않은 도서이지만, 이 책의 저자 이케가미 아키라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저널리스트답게 마르크스를 현대적 관점으로 쉽게 풀어내고 있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머지않아 끝난다고 설명했지만 그냥 거기까지였습니다. 자본주의가 끝난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는 자신이 생존하던 19세기 영국의 자본주의를 분석하여 세상에 경종을 울렸다. 자본주의를 방치하면 노동자들이 얼마나 비참해지는 지를 설명했다. 우리는 역사가 제공하는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다시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자본론>이 가진 역사적 한계성도 분명 있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앞으로의 경제 정책이나 정치의 방향에 이를 고려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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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45년이 지난 지금?
정치적 상황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의 글을 읽는 것이 금기시 되던 때가 있었다. 책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유명한 사람들의 추천 도서에 자본론이 올라올 때 그것을 그의 사상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선입견으로 마르크스를 대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유독 최근 들어 ‘자본론' 관련 서적이 눈에 많이 띄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왜일까?
누군가가 과거에 쓴 책이 특정한 시기가 되어서 급격히 다시 읽히기 시작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얼까? 그것은 바로 그 책의 내용이 지금 사회적 상황과 유사하고 구성원의 공감을 사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던 19세기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에, 저자는 지금이 자본론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하며 자본론의 어떤 부분이 지금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가 이야기한다.
'자본'이라는 전지전능한 존재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쓸 당시 영국의 상황은 노동자에게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목조르면 조를수록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착취는 한계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은 그 자체로 유기적 생명을 가진 탐욕 덩어리이다. ‘자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본가'지만, ‘자본가'를 이끄는 것은 ‘자본’이다. 자본가는 비록 사람이지만 이미 ‘자본'이라는 전지전능한 신을 믿으며 그를 떠받드는 것만이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책을 읽다보면 자본의 의미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얻어야 하는 것은 그가 필요한 생산품을 만들어 내는 수준이지만, 자본가는 자기에게 노동자가 예속되어 있는 8~10시간을 놀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노동자는 필요이상의 노동을 강요 당하고 이로 인해서 잉여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사실 잉여가치가 생산되지 않는다면 경제활동이라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어짜피 등가교환만이 반복되는 것이라면, 아무런 메리트가 생기지 않으므로 당연히 경제는 침체된다. 어쩔 수 없는 수준에서 원래의 가치를 조금 상회하는 선에서 합일점을 찾는 다면 노동자와 자본가의 분쟁은 발생하지 않거나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자본’이라는 무한한 종교를 신봉하는 자본가는 한계를 넘어섰다. 그 규제는 사회나 국가가 해주기 전까지는 무한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가 준 선물
최근 나오는 경제관련 서적 뿐만아니라 정치, 사회 현상을 다루는 인문서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의자가 하나 있다. 이는 너무 교묘해서 선뜻 잡아 넣을 수는 없지만 사람들로부터 매번 의심 받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자 그럼 이쯤에서 다시 조각을 맞춰보자.
‘자본론'과 ‘신자유주의'가 가지는 교집합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본가의 횡포이다. 자본가의 횡포가 극에 달했을때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들고 일어 났고 거기에 기폭제가 된것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었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사회주의가 민주주의보다 비현실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이 판명됐다고 판단하는 순간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무조건 신봉하게 됐다. 이제 규제는 더 이상 필요없다고 생각하게 됐으며 오직 시장에 맡겨 놓으면 세상은 똑바로 흘러간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2012년. 모든 부는 ‘자본가'에게 몰리고 있으며, 사회 밑바닥을 형성하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1%의 자본가에게 노예처럼 엮인 삶을 살게 되어 가는 중이다. 그 혼란의 단서가 신자유주의인 이유는 신자유주의의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정부는 손 놓고 우리가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추진하는 동기, 그리고 그것을 규정하는 목적은 자본을 가능한 최대한도로 증식시키는 것, 다시말해, 가능한 한 최대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 따라서 가능한 한 최대로 노동력을 착취 하는 것이다. 협업하는 노동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자본의 지배에 대한 그들의 반항도 증가하며, 또한 이 반항을 억누르기 위한 자본의 압력도 필연적으로 증가한다. (p.183)
기계가 도입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노동자가 편해지는 것이 아니고 평균임금이 내려가는 것이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성인 남자가 할 일을 기계가 대신 해내고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만 노동자에게 시키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가족 모두가 자본가 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쉬운 노동이므로 수입은 줄어들고 가족의 시간은 없고 여가 시간은 사라졌다. 또한 기계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면서 노동자의 생활비용이 줄어들고 이는 곧 더 작은 수당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자를 만들어 내 급료를 내리게 만들었다.
결론은 사회 전복이 아닌 인간성 회복
사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사회주의의 선동역할을 해내는데 이용됐지만,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것은 사회의 전복이 아니라 노동자의 인간성 회복이었다고 하는 게 맞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자본론'의 영향으로 이뤄진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마르크스가 원하던 형식의 혁명은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의식성장을 통한 단결과 인성 회복으로 그들을 위한 세상을 세우고자 했지만, 러시아 혁명은 일부 지식인에 의해 끌려가는 형태로 진행되면서 그 본질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공산당은 오직 마르크스를 이용할 뿐이었고 노동자의 해방에는 사실 관심이 없었다.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고 좌우명을 말한 마르크스는 사실 경철수고나 브뤼메르 18일 같은 책에서 그의 인간관을 잘 보여줬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인간관은 사회주의 세력에 걸림돌이 됐다. 그 때문에 1843년에 쓰여진 경철수고는 그의 사상을 이용하려는 이들의 의도적 숨김으로 1932년이 되어서야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공산당은 자본론의 기본 사상인 인간의 본성을 되찾아 자본의 힘을 이겨내려 했던 마르크스의 사상을 외면하고 오직 선동하는 데에 자본론을 이용하면서 그들의 혁명은 다시 소수자를 위한 싸움이 되고 말았다.
자본론을 단순하게 노동자가 뭉쳐서 사회 체제를 전복시킨다는 수준에서 읽지 않고, 인간성 회복과 관계의 재생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면 ‘자본론'은 다시 보일 것이다. 이 책은 그 출발점에서 비록 단순한 자구 해석에 멈추고 있는 면은 아쉽지만, 선뜻 자본론을 읽어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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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문제점을 마르크스를 통해 재조명해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마이클 샌델교수의 열품이 한국을 뒤흔들고 있을때, 사랑도, 노동도 가치도 돈과 견주는 시대에서 145년전 마르크스의 예견은 놀라움의 연속이였다.
상품이라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말하다. 이부분에서는 다시 되 짚어보며 세번을 연달아 다시 읽었다. 노동력을 팔기위해 뛰어다니는 사람들과 이용하는 사람들의 관계들.. 학생시절 사회시간에 배운 마르크스와는 사뭇 너무나 달랐다.
부를 쌓아 간다는 것이 행복의 척도는 아닐테지만, 행복으로 간주하게 되는 자본주의 사회를 예견 마르크스
이책의 저자 이케가미 아키라는 수 많은 마르크스에 관한 강의를 거쳐오면서, 이를 책으로 엮은 것처럼, 누구나 한번 읽으면 푹빠져버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사람은 역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냥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이론을 만들어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어리석었던 지난날을 반성해보며, 끝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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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마르크스의 ‘자본’을 쉽게 풀어쓴 책을 찾던 중이었는데,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무척 감사합니다. 4주전부터 집에서 구독중인 경향신문에, 토요일마다 강신준 교수의 집필로 지문 한면을 ‘자본론’ 강의가 이어지고 있는데, 읽을때마다 이해가 가는듯 하면서도 어렵게 느껴져 좀더 구체적으로 알고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물론 학자들조차도 읽기를 버거워하는 ‘자본’의 직역본을 읽는다는건 엄두도 못낼 일이라 저에겐 아주 이해하기 쉽게 쓴 책이 필요했는데 이책이 딱이네요. 5개월전 신문을 구독하면서부터 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사회적인불만을 지식인들의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지금의 사회가 정상적이진 못하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놓은 자본의독식, 승자독식의 천민자본주의, 빈익빈 부익부, 경쟁에서 탈락되면 영원한 낙오자가 되버리는 사회구조, 아니 출발선상부터 공정한 경쟁이란 애초부터 없었다는것 그 모든 것들이 저를 분노케 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자본주의는 초과이윤으로 굴러가는 시스템인데 초과이윤을 만들어내는 대다수의 노동자가 빈민으로 전락하게 된다면 결국엔 자본가조차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않을까? 경쟁에서 떨어진 절대 다수의 패자를 아우르지 못하고 죽게 내버려둔다는건 결국에는 싹 같이 죽어버리자는 의미가 아닐까? 란 생각을 했습니다. 유성기업사태,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등등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해 싸우며 죽어가는 현실을 보면서 개인의 문제보다 절대적으로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다는걸 확실히 알게 되었죠.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자본의 횡포’ 에 대해 140년전 마르크스가 정확하게 예측하고 지적했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때 독재정권을 유지하기위한 수단이었던 반공이데올로기가 워낙 강한 국가에서 자란탓에 나역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 ( 공산주의는 무조건 나쁜거다 라는 전제를 깔고) 이고, 우리나라를 북한처럼 만들자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알았습니다. 당연히 불온서적 이 될수밖에 없다는것도 인정했죠. 하지만 과연 북한이 제대로된 공산국가일까? 그 시스템은 사회주의를 표방했을지 모르나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체제의 봉건사회라고 하는게 더 맞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91년 소련이 붕괴했을때 현실사회주의는 끝났고, 마르크스는 틀렸고, 자본주의는 승리했다고 얘길했다. 하지만 소련 사회주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얘기했던것과는 다른 성질의것 - 노동자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소수의 집권자 (프로레탈리아) 혁명이었다. 지금 우리가 자본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사회가 140년전 마르크스가 예언했던 자본주의의 막장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일것이다. 노동자 혁명을 선동하는것이 아니라 절대다수의 빈민이 양산되는 현재 사회에서 이렇게 될수밖에 없었던 자본의 구조를 알고 자본주의를 좀더 수정하고 다듬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위한 고민이 필요하기때문이지 않을까. 이 책에는 자본론 총 3권중에 1권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저자가 핵심적인 내용을 위주로 쉽게 설명하고, 1권에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 직역된 부분을 다시 해석해주는 식으로 되어있다. 자본론은 그만큼 어려운 책이다. 이번에 이 한권으로 처음 자본론을 맛보면서, 좀더 많은 책을 읽어보고싶단 생각을 갖게되었다. 기왕이면 이 저자가 2권 3권에 해당하는 내용의 책도 출간해준다면 더욱 고마울것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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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돈이 인생의 다인냥 살아가고 있다. 돈 있으면 사랑도 물질도 살 수 있고 돈 있으면 사람의 목숨도 바꿀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하고 귀하는 것이 사람의 목숨인데 사람의 목숨을 돈 서너푼에 좌지우지 해야 하는 시대, 자본주의가 불러온 사회적 병폐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탄압하고 강요하는 자본론 그 속에는 인간의 본질 개선과 인류의 능력 발전이라는 장점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차갑게만 느껴진다. 대학교에 들어가는 문턱도 높지만 대학교를 졸업해도 딱히 취직자리는 부족한 현실, 청년실업률이 날로 증가하는 시대에 젊은이들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부자는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창출하려 고심하고 빈곤한 자는 더 빈곤속에 허덕이는 현실 속에 140년 전 마르크스가 예견한 자본론이 지금의 모습과 딱 들어맞는 지 알아보려 한다.
봉건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면서 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해 왔다. 많은 노동자가 같은 시간에 대규모 공장에 모여 자본가의 감독 아래 상품을 만들고, 그 결과 경제가 발달하는 사회가 형성되었다. 인간의 욕망 채우기 위해 상품을 만들고 무엇인든 상품화 해서 더 많은 부를 창출하려는 자본가들, 이제는 모든 것이 상품으로서 가격이 매겨지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서 화폐가 탄생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상품인 노동력, 자본가는 이 노동력을 이용해 이윤을 만들어 낸다. 인간의 노동이 상품을 만들고 사용가치를 만들고 교환가치를 만들어 내기때문에 노동과 자본 사이에 착취가 발생하게 된다. 자본가들은 더 많은 잉여가치를 만들기위해 고심할 뿐 노동자들의 급료를 인상시켜 준다거나 성과금을 주는데는 인색하다. 물가는 나날이 고공행진을 하고 급료는 작년이나 올해나 제자리 걸음인데 서민들이 생활은 더 빈곤해 질 뿐 나아질 기미가 없는 세상, 게다가 자본주의가 발달함으로써 실업율은 날로 증가하고 있으니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지 않겠는가.
노동조합들이 탄생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자들의 환경 개선에 대한 소리가 높지만 문제해결도 쉽지 않는 현실속에 여전히 저임금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19세기에 마르크스는 이런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과 과정을 예견했고 지금의 현실과 너무나 부합하기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자본론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계속 되풀이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그의 책은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저자가 해석해 놓은 글은 사회생활을 해 본 나로서는 너무나 공감하고 이해하기 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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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신자유주의가 닥치면서 경제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명목 때문에 그런 울타리(노동자의권리를 지켜주는 여러 가지 법과 회사에 대한 규제)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깨닫게 되었지요. 마르크스가 19세기에 말한 것과 똑같은 일이 역사 속에서 반복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289).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며 알째배기 공기업들을 민영화하려는 정부가 정권을 잡고 있고, 또 잡으려고 혈안이 된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아니 '이제라도'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일 듯합니다. 그나마 이런 책을 들고 다니며 지하철 같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버젖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사회주의가 망했다고 축배를 드는 동안 세계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에 먹히며 말로만 듣던 '공항'의 공포를 다시 마주하고 있습니다. 마치 지금의 사회를 들여다보며 분석하고 비판한 것처럼, 마르크스가 145년 전에 분석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마르크스의 망령을 다시 불러내고 말았습니다. 복지와 지식인의 역할을 간과했다고 비웃으며 실패로 간주했던 마르크스의 사상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자본주의 스스로 증명한 셈입니다. <자본론>을 다시 꺼내든 이 책의 저자 이케가미 아카라는 "자본주의가 이긴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내세운 나라들이 스스로 쓰러진 것뿐"(26)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문제는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한 러시아는 당시 자본주의가 거의 발달하지 않은 가난한 봉건국가였고, 사회주의 혁명의 중심이 노동자가 아니라 마르크스의 사상을 추종하는 일부 지식인이었다는 것입니다(43).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은 한 학기 강의노트처럼 정리되어 있습니다. 총 16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본론>의 문장을 직접 인용하여 주석하는 방식으로 자본론에서 말하는 주요 쟁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화폐가 어떻게 자본으로 바뀌는지, 끊임없이 불어나고 싶어하는 자본의 욕망과 인간의 탈을 쓴 '돈'이 어떻게 인간을 돈의 노예로 만드는지, 왜 자본가는 자연스럽게 잔인한 경향을 갖게 되는지 등 마르크스가 밝힌 자본주의의 시스템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해줍니다.
"돈을 늘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잔인하면서도 서글픈 삶의 한 단면을 다시 보았습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도, 사회에 해가 되는 것들도 얼마나 만들 수 있고, 어떤 불법적인 행위도 서슴치 않으며, 당장 이득이 된다면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신경 쓰지 않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사고 방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또 그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통장 잔고를 보며 인생 계획을 세우는 저도 여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노동자의 입장이 아니라 자본가의 입장이었다면 반응이 달랐을까요.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모순, 미국의 월마트처럼 글로벌한 거대 자본 아래서 세계인이 빠르게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 앞에 무기력감을 느낍니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의해 세계가 움직였고 새로운 역사가 잉태된 것처럼, 세계는 또 한 번 마르크스의 사상에 영향을 받게 될까요. 아니면 자본가가 쥐어주는 사탕에 만족하며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계속 될까요. 마르크스는 우리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다고 하였지만, 금사슬에 길들여진 우리에게는 잃어버릴 것이 조금 더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착취 당하는 자들에게 꼭 필요한 '적극적 연대'에 회의가 생기기도 합니다.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은 혁명을 선동하는 책은 아닙니다. 세상을 휩쓸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들여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크스의 뜨거운(?) 성정에 비해 동화책(?)을 읽어주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 때문에 이 책이 조금 싱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본론을 읽다 포기한 독자라면, 자본론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면, 먼저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요점이 귀에 쏙쑥 들어오게 설명되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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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역작 자본론이 탄생된지 145년이 되고 있는데 시대와 이념,사회의 변화에 따라 자본론을 받아 수용법이 개인이나 사회,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흘러 왔다.자본론은 1867년 마르크스에 의해 쓰여지고 자본론2,3은 그의 친구 엥겔스에 의해 수정되고 레닌,스탈린,마오쩌뚱의 정치경영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특이한 점은 마르크스가 유대인 출신에 기독교인이라 자본론 내용에는 성경 구절을 군데 군데 인용했다는 점이고,어렵게만 느껴지는 자본론의 내용을 다이제스트하여 알기 쉽게 해설해 주고 있는 점이 이 글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영주에 의해 농노(農奴)를 마음대로 부리는 형태의 영주 대 농노의 관계였다면 근.현대에서는 자본으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자본가와 노동에 의해 생계를 꾸려가는 노동자로 나뉘어져 있다.자본론이 출간되고 몇 년이 흘러서도 천 부도 팔리지 않는 비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그 내용의 속성상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자를 우대해야 사회와 국가가 잘 굴러갈 수가 있다는 생각 아래 레닌,스탈린,마오쩌둥 등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를 적극 수용하고 사회에 반영하게 되었는데 자본론이 갖고 있는 노동자 중심이 아닌 전사회가 획일적인 생산시스템과 보상제도,독재제도가 결국은 인민들의 생활을 좌초시키면서 1980년대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자본주의 제도를 수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노동력에 의해 상품을 만들고,사용가치를 만들고,교환가치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초과근무를 시켜서라도 자본 이익을 취하고 경기가 좋지 않으면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싹뚝 자를 수가 있다는 점이며,신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같은 양,같은 일을 하면서도 저임금과 쉽게 해고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파견직 사원,아르바이트 사원 등이 속출하고 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주택 금융 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경제선진국 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경제 위기 특히 실물 경제가 위축되고 있으며 노동을 통해 생계 수단 확보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가고 있는데,자본을 움켜 쥐고 있는 자본가는(대부분) 경기의 좋고 나쁨에 따라 노동자를 파트 타임이나 비정규직으로 뽑고 생산성 및 수익률이 떨어지면 쉽게 그만 두게 하는 점이 힘없는 노동자를 우울하게 하고 있다.이는 어느 시대에서나 나타나는 경제 현상이지만 신자본주의시대 만큼 자본가에게 자율권과 특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생존과 생계를 짊어 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질적인 삶의 저하와 혼자 살기 등으로 사회적 문제도 심대하다는 점을 사회 지도층과 경영자들은 크고 멀리 내다 보아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 내용을 발췌하여 노동의 의미와 가치 및 자본가의 속성 등을 현대 사회에 맞게 잘 적용해 주고 있기에 노동자들에겐 반드시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또한 신자본주의 시대에서 국가 및 사회지도층이 노동자에게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복지정책 및 생존권 문제도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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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었을 정도로 이미 명서가 되어있다. 하지만 자본론은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책을 끝까지 탐독하고 이를 완벽히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자본론에 끌리는 사람들... 이들을 위해 나온 책이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이다. 책의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렵지 않은 간결한 필체로 자본론의 내용을 현재의 기업과 비교하며 써 내려간다. 책에서는 지금까지 출판된 3권의 자본론 중 마르크스가 유일하게 완성한 첫 번째 ‘자본론’만을 언급한다. 작가가 일본인인 만큼 현재 상황에 대한 예시를 주로 일본 기업들로 다루었지만 책의 흐름은 세계의 기업과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시작을 상품으로 말한다. 우리의 몸이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듯이 자본주의도 상품이라는 세포를 시작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하지만 이 모든 상품이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쓸모’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제 쓸모가 있는 상품이 있다. 하지만 진정한 쓸모라는 것은 ‘교환가치’이며 교환가치가 생긴 상품은 부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부를 이룰 수 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의 노동력이다. 인간의 노동력이 쓸모 있는 상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면 상품과 상품, 상품과 노동력을 교환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화폐라는 것은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다. 하지만 이 화폐의 본질은 끝없이 불어나고픈 더욱더 커지고 싶은 욕망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이 욕망에 의해 자본가가 생긴다. 이 자본가라는 것은 처음에는 좋은 상품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얻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점점 필요 없는 상품까지 생산하며 그 부를 늘리려하는 욕심을 갖는다.
자본가들은 인간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그에 대한 노동의 대가를 줄이고 화폐를 모으는 일에 더더욱 충실 한다. 더 나아가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동력을 끌어내기 위해 멀티 기능을 가진 노동자를 양산하며 이와 더불어 기계를 활용하기에 노동자들에게 멀티 능력 배양과 함께 기계와도 싸워야 하는 극한의 상황을 제공한다.
자본가들에게 월급은 노동력에 대한 보상이라 하지만 실제 그들은 노동자들이 월급이라는 작은 휴식을 통해 다시금 향상된 노동력을 자신의 부의 축적을 위해 제공해야한다는 속내를 가지고 있다. 급기야 성과급제라는 기형적인 월급제를 만들어내며 한 인간의 노동을 뿌리까지 착취하는 거대 기업들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거대 기업이 탄생할수록 실업자는 늘어난다. 살아남은 몇몇의 노동력을 제외하면 대 부분의 노동력은 그 가치를 상실한다.
마르크스는 이 부분에서 ‘자본주의의 최후를 고하는 종소리가 울리라’ 는 표현으로 자본주의의 종말을 알린다. 이 거대 기업과 자본가들은 결국은 멸할 수밖에 없으며 이들의 몰락과 동시에 자본주의는 그 기능을 상실한다 라는 것이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진정 놀랍다. 140년 전 의 마르크스가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완벽히 예측할 수 있었는지..단순한 예측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그 이름을 달리 했을 뿐 인간의 경제는 단순한 반복을 계속하며 특정 지배층을 양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처럼 혼란스러운 이들에 의해 ‘자본론’은 그 긴 시간동안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많이 힘든 오늘을 보내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자본주의에 지쳐 다른 해법을 찾는 이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그러기에 당시 영국의 자본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자본주의는 몰락을 확신하며 사회주의가 정답이라 말한 마르크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당시의 마르크스는 영국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변화될 것이며 결국은 어떻게 될 것이라 예언한 그의 생각이 지금의 자본주의와 놀랍도록 완벽히 들어맞고 있다고. 하지만 마르크스가 생각한 사회주의는 그의 생각과는 조금 어그러진 형태로 시작되었고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의 몰락을 보지 못한 채 죽었다는 사실을..
책은 시종일관 오픈마인드로 집필되었다. 정답이 없는 이 책의 결말을 독자에게 맡긴 것이다.
우리는 사회주의가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예측대로 자본주의는 그 한계를 가지고 있고 이미 그 병폐가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는 어렵겠지만 현 시대를 회사원으로 사업가로 주부로 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 모두가 이 시대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또한 현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더 나아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시간을 줄 책이라 생각된다.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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