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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현재 지구상의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이 책의 추천사에 전 문화부장관인 이어령 교수는 “남북한이 통일되어 남한의 정당들이 연합공천으로 북한 목사 출신 민주화 운동가를 후보로 세워 대통령에 당선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중략) 억압과 통제의 나라에서 인간의 기본권 확보를 위해 싸운 운동가가 통일 한국의 대통령이 되어 자유에 대해 연설한다면 그 주제가 지닌 깊이와 울림은 상당할 것입니다.”라고 애기한다.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통일이 된다는 것도, 그 통일 조국의 대통령이 북한출신 민주화 인사가 된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런 꿈같은 일이 과연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까? 그저 정치적인 통일은 차지하고라도 서로간의 왕래의 자유라도 허락이 되어, 서로가 자유롭게 왕래하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한민족임을 느끼며 사는 그런 미래는 우리에겐 과연 요원한 헛된 희망일까 우리에겐 꿈같은 일이 지구의 어느 곳에서는 현실로 이루어졌다. 서독과 동독으로 나누어진 독일이 1989년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했다. 통일의 초기에는 막대한 통일비용이 독일의 경제를 무너뜨릴 거라고 예상을 했지만, 독일은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유럽연합(EU)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지닌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독일의 통일은 단순한 영토와 경제의 통합이었다. 2012년 좌파정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의 합의 추대로 민주화 운동을 이끈 투사출신이며 성직자였던 요하임 가우크 대통령이 연방독일의 제 11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독일은 이념적으로도 완벽한 통일을 이루었다. 그는 취임연설에서 “자유는 정의를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고, 정의를 향한 노력 역시 자유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불가결하다”고 밝혔다. 『자유』는 완전한 통일국가의 수장인 된 요하임 가우크 대통령의 연설문이다. 2011년 1월에 독일의 투칭 개신교 아카데미의 신년 연회에서 행한 연설문이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주장한 자유와 정의에 대한 그의 철학을 엿 볼 수 있는 연설문이다. 그는 독일사회를 이루고 있는 본질은 자유, 책임, 그리고 관용이라고 애기한다. “부당한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명령에 순응하지 않게 되기를, 더 나아가 우리의 규범을 스스로 만들고 그것을 실행하기를 간절히 열망하는 것“이 자유라 애기한다. 그 자유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부당한 지배에 거부하고, 우리를 결박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억압이 주는 두려움을 털쳐내라고 강건한다. 그리고 자유는 민주 시민이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이며 또한 그 권리를 행사하는 자만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진단다. 하지만 자유란 성숙하지 않으면 봉기, 반란, 폭동으로 진화 될 수 있음도 주지한다. 자유란 무정부주의적 모습이 아닌 정의로운 형식안에서 이루어지는 게 진정한 자유임을 주장한다. 그러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그가 말한 두 번째 덕목인 책임이다. 성인의 자유는 곧 “책임”이다. 무엇인가를 이룰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함께 동참할 것인지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는 것이 책임이라고 그는 말한다. 책임을 지닌 자유란 예로 들자면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생각,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갖게 되는 생각, 보살피고, 지켜주며 아름답게 꾸며주고 싶은 생각 그런 생각들이 책임이다. 자유란 책임이 반드시 동반되어 스스로 지켜나갈 때 그 자유는 자유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이어가는 것이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책임을 질 줄 아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애기하고 있다.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도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대해 그 모든 책임을 진다. 그러면 당연히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애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자유가 억압받고, 자유가 구속되고 있는데 그저 방관하고, 그저 침묵하는 자들은 자유를 누릴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러한 억압과 독재에 대해 우리가 지킨 침묵은 다시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기 위해 우리에게 침묵의 댓가를 반드시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폭력을 포기하는 것은 압제자와 침략자의 폭력에 길을 열어주는 것이며 그들의 테러를 용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고. 자유를 침해하는 독재자의 폭력에 저항하는 것 또한 자유에 대한 책임이란다. 세 번째는 관용입니다. 그는 “무관심은 결코 관용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무책임을 달리 부르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즉 무관심은 무책임의 또 다른 이름이란다. 자신의 믿음과 가치관이 확실한 사람들이 타인의 가치도 존중할 자세가 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관용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버리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다시 확인해야 한단다. 즉 관용이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만큼 타인의 존재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관용이란 과거에 대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존재가치만큼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며 동반하는 관계를 말한다. 우리자신의 내면에 숨은 잠재력을 믿고 우리의 선조들이 어떤 잘못과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함께,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함께 나가는 것 그것이 관용이라고 한다. 과거에 대한 진실한 반성을 우선하고 주위의 다른 국가들도 인정하면 더불어 같이 나가는 것을 관용이라고 그는 애기한다. 더불어 행복이란 우리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그곳에 있다고 한다. 그는 독일 사회가 관용을 가지고, 가치를 의식하면서 무엇보다 자유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하기를, 그리고 성숙한 자유란 책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단다. 자유와 정의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는 가우크 대통령의 일생을 통해 늘 함께 해왔던 소중한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들은 이제 그가 독일연방공화국의 대통령이 됨으로써 어느 누구도 쉽사리 부인할 수 없는 독일과 독일 국민 전체의 가치가 되었다. 남북한의 분단 상황 속에서 통일조차 요원한 우리에게 이런 대통령을 가진 독일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올해 우리는 중요한 대선을 앞두고 있다. 차기 대통령을 뽑는 중차대한 선거이며, 어쩌면 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다. 이러한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연방독일대통령인 가우크의 자유에 대한 철학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자유와 책임과 관용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린 그동안 자유에 대해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하여 왔다. 그 결과 우리의 자유는 침해받았고. 그들의 억압이 주는 공포에 우리는 두려워했으며, 그들의 구속에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우린 우리의 자유를 지키지 못했고, 수많은 민주투사들의 피로 지킨 자유를 우리는 외면했다. 우리가 자유에 대해 침묵하고 무관심하면 할수록 그들의 억압은 갈수록 심해지고, 우리의 무책임은 자유를 구속했다. 그러한 전철을 되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린 우리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한 책임을 위한 가장 큰 행보가 바로 올해의 대선이다. 무관심하고 무책임하지 않을 때 자유는 우리의 곁은 지킨다. 마치 연인에 대한 책임을 다할 때 그 연인이 우리 곁에 머무는 것처럼 말이다. 강풀의 《26년》이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겪고서 드디어 영화화 되어 11월에 우리 곁에 온다는 반가운 뉴스를 들었다. 관용이란 그냥 덮고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한 것이고 무엇이 잘못한 것인지. 그리고 그에 따른 진정한 사과가 함께 이루어지고 난 뒤 서로가 서로를 감싸 안으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관용이다. 요하임 대통령은 그의 자유에 대한 연설을 통해 우리에게 이걸 강권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자유.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자유, 이제 그 자유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선거라는 우리 최대의 무기를 통해서. 민주시민으로써 우리의 책임과 관용과 관계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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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총리 메르켈은 알고 있었지만 독일의 대통령은 알지 못했다. 우리의 정치구도와는 다른 구조이기 때문에 실상 총리가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수반에 불과한 것이 독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저자인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불과 반 년 전인 올 3월 요아힘 가우크는 특정 정당 소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독일의 11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구동독의 목사 출신 자유주의자가 극우 정당과 극좌 정당이 공존하는 치열한 독일의 정치구도 속에서 정당들의 고른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 「자유」는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 연회에서 행한 연설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가우크 대통령은 구동독 시절 목사로 재임하면서도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동독의 정보기관이던 슈타지의 오랜 감시를 받았고 통일 후에는 슈타지를 해체하는 작업을 맡게 되기도 한다. 추천의 글에서 이어령 선생이 아이처럼 기대하며 쓴 것처럼 한반도의 암울한 정세지만 북한 출신 성직자가 남·북 정당 모두의 천거를 받고 국민적 지지를 얻어 한반도가 탄생시키는 새로운 통일국가의 대통령이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마음 나 또한 간절하지만 그것에 언제가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소련과 동유럽 또한 공고하던 철벽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졌던 것을 감안하면 먼 미래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은 아닐 거라 희망해 본다. 만약 통일이 되어 북한 측 인사가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고 가정한다면 남쪽의 유권자들이 색안경을 끼지 않고 그를 판단할 수 있을까? 남쪽 내에서도 지역주의가 팽배하고 그것으로 먹고 사는 정치인이 수백 명인 판국에 말이다. 독일은 우리만큼은 아니겠지만 구서독에 속해 있던 유권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인물이라면,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가우크 대통령의 과거를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책의 머리말에 있는 소개처럼 ‘자유’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고양하고 지향하며 살아 온 인물임에는 틀림없을 듯싶다. 한국의 실정처럼 대통령이 엄청난 권력과 힘을 독점하는 구조가 아닌 것도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닌 재야인사(우리 정치 실정에 맞는 표현으로 각색한다면)가 여·야의 고른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우크 대통령이 살아온 인생의 흔적이 독일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음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흡사 이번 대선에 출마 한 모 인사를 생각게 하는 대목이다. 최초로 국민에 의해서 떠오르고 추대되어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후보가 되었으니 말이다. 자유 “시민이란 시민의 권리를 가지고, 또한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p.34) 시민이란 권리를 가지고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의 뜻을 잘 알지 못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다다다다 외우기만 했지 정치경제 시간이나 사회문화 시간에 시민, 시민권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저 주워듣고 책을 보고 알게 된 것이 전부다. 그래서 ‘주체적인 시민이니 주체적으로 판단하시오.’ 얘기를 들어도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자유’라고 하면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시민이라면 자유롭게 나를 표현하고 사안을 표현하고 가치와 방향에 대한 찬반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다. 파렴치한 성범죄자가 늘어나는 것을 예방코자 경찰의 불신검문을 증가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인가? 단순한 예이지만 그런 예가 너무 많다. 자유의 범위와 시민의 범위, 나아가서 시민권의 정확한 의미와 가치를 말해주지 않는 국가는 자유주의 국가라 말할 수 없다. 책임 “우리는 ‘무엇에서 벗어난 자유’를 체험할 수는 있었지요. 하지만 아직 ‘무엇을 향한 자유’를 체험할 수는 없던 때.” (p.48) 가우크 대통령은 구동독의 공산주의 체제를 경험했다. 공산주의 체제로부터의 속박에서는 벗어났지만 ‘무엇을 향한 자유’에는 닿지 못했다. 책임이라는 것의 출발은 ‘무엇을 향한 자유’라고 말한다. 동의한다. 한국의 현실도 비슷하다. 유럽은 수백 년에 걸쳐 겪어 온 현대화가 한국은 불과 60여 년 만에 압축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세대 간 갈등과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쟁과 독재를 겪은 정치의식은 늘 수동적이고 피동적일 수밖에 없었고 전 국가가 하나의 공장이 되어버렸던 개발독재는 어떻게는 낙수효과를 신화처럼 믿고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단군신화보다 더 황당한 스토리를 양산했다. 압축된 60년의 한국 현대사는 이제 조금 ‘무엇에서 벗어난 자유’를 느껴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늘 피해를 입는 건 시민들이었다. 국가는 늘 주체였다. 그래서 한국전쟁과 박정희 독재를 경험한 어르신들 중 많은 분들은 아직도 국가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못한다. 능동적·주체적 세력이 되어 본 적이 없다. 월드컵 응원 같은 것 말고 정치적 행위 내지는 시민권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권리 행사에 말이다. 가장 중요한 권리는 투표권이라 생각한다. 투표하는 세대는 정치인들이 두려워하게 되어 있다. 반대로 투표하지 않는 세대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볍게 본다. 어차피 투표하지 않으니까 신경 쓰지 않는다. ‘무엇을 향한 자유’를 오롯이 경험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바꿔야 한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문제이다.
관용 “무관심은 결코 관용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무책임을 달리 부르는 것입니다.” (p.83) 무개념 ‘인’들이 쏟아지고 있다. 여러 가지 사회 구조적 문제가 빚은 파행적 결과라 진단들을 한다. 자유롭게 책임 있는 사회 혹은 국가가 된다면 관용은 그 사회·국가 전체에 흐르는 시대정신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똥이 더럽다고 피하지 무섭다고 피하나!!] 이런 말은 집어치워야 한다. 내 눈 앞에 더러운 똥이 있으면 치워버려야 한다. 똥을 보고도 나 혼자 독야청청 한답시고 눈 감고 피해버리면 다른 사람들은 그 똥은 또 봐야 한다. 정치가 더럽다고? 썩은 내 난다고?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것인가. 고개 돌리지 말고 이제는 직시해야 한다. 무관심은 관용이 아니다. 무책임을 자위하는 비겁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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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안 철수 라는 다크호스가 등장하면서 예측불허의 상황이 발생하였다. 개인적으로 정치는 잘 모르고 관련하여 쓰는 것도 싫어한다. 딱히 좋은 반응, 결과가 나올리가 없으니까.. 정치 성향이라는 것도 없고,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도 모르지만 하나는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자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을 해 본적은 없다. 그냥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인가..? 지금 대한민국은 자유로운 국가인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고는 하는데, 과거에도 그랬고 현 정권에 들어서까지도 그렇지 못한 행태들이 많이 보인다. 아마도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과거와의 결별, 혁신과 개혁이 아닐까... '안 철수 신드롬'이라는 것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자유롭지 못한 현 세태를 탈피하고자 하는 하나의 욕구 표출이라고 생각이 된다. 한편,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유와 방종은 다른 것이라고 배워왔다.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라고.. 스스로 자유로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신에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법치 국가에서는 당연한 일일텐데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자유로이 행동은 하되 책임을 지는 꼴은 별로 못 본 것 같다. 그들은 본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방종을 법치주의 국가 내의 자유에 근거하는 행동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법치주의 국가라고 해서 모든 것을 법대로만 집행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법이라는 것이 모든 상황에 원리원칙대로 적용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에... 또 법리에 의거하여서만 집행을 하다 보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이 비일비재하기에.. 재량이라는 것을 두고 '관용'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법이란 최소한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 가능하면 없어지는 것이 좋은 것인데, 그것은 불가능 하므로 자유를 위해 존재하고 그 자유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할 근거로서 적용되되 사회는 '관용'을 가져야 한다. <자유>라는 얇은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자유와 책임, 그리고 관용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사회를 바라볼 때 사회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지,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를 묻게 되는 사람들이 마주하게 되는 3가지의 관념들. 이 책에서는 그것들에 대해 2012년 3월에 독일의 11대 대통령으로 선출 된 요하힘 가우크의 연설문을 통하여 의미를 되새겨 보고 있다. 각 단원은 무척이나 짧다. 또한,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은 중간중간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큼지막하게 알려 주고 있으니, 독자는 어려움 없이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 자유에 대한 연설에서.. 우리는 부당한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명령이 순응하지 않게 되기를, 더 나아가 우리의 규범을 스스로 만들고 그것을 실행하기를 간절히 열망합니다. - P.26 - 우리 역시.... '무엇을 위한 자유', '무엇을 향한 자유'로 나아가도록 하는 그런 자유에 대한 성향이 있습니다. - P/32 - 시민은 시민의 권리를 가지고, 또한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 P.36 - 책임에 대한 연설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이룰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함께 참여하여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예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P.50 - 책임질 줄 아는 우리의 능력은 인간다움의 핵심 요소에 속합니다. - P.64 - 놀랍게도 행복은 우리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그곳에 있습니다. - P.70 - 구체적인 상황에서 폭력을 포기하는 것은 압제자와 침략자의 폭력에 길을 열어주는 것이며 그들의 테러를 용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P.74 - 관용에 대한 연설에서.. 무관심은 무책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 P.84 -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범적인 성격의 학습 능력을 지닌 시스템입니다. - P.96 - 독일은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분단 국가였었고, 저자는 분단 시절 구 동독의 신학자로서의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임에, 그가 말하는 자유와 책임, 관용의 메세지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분리된 이념의 극단적인 양쪽 경험을 다 가지고, 통합을 추구하게 된 그의 사고는 특별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테니깐 말이다. 또한 독일은 세계 대전으로 인해 책임에 대해 많은 경험을 하고 사유를 한 국가이기에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세지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한명의 리더를 선출한다는 것은, 국가 전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문제이다. 이번 대선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이유는 때묻지 않은 신성의 등장이 가져올 변화 때문이다. 어느 한쪽에 쏠림 없이 상대적으로 객관적이고 신선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고,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음에... 내가 누구를 지지하던 간에 흥미로운 모습이 연출될 것 같다. 누구를 선택하든지 그것은 각자의 자유이다. 분명한 것은 그 자유로운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 정치하는 사람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치생활을 하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이지만, 책임도 확실히 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국민은 어떠한 결과가 나오던 간에..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관용을 가지고 적극 지지 해야하지 않을까...? 12월 대선... 한번은 진정한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는 때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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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tv 를 틀었는 데 '종북세력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전문가라고 하는 분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조금 듣다가 어이가 없어서 꺼버리고 말았는 데 전혀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매체에서도 종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많은 이야기 들이 나왔고 그리고 그것이 많은 사람이 근거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가진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불안을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데 내가 주목한 것은 정치적 이용이 아니라 이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불안에 대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다큐멘타리나 뉴스를 보면 심심찮게 접하게 되는 문구가 있는 데 '인민의 자유와 해방' 이란 문구다. 우리나라의 한 정치세력이 국민의 자유와 해방을 기치로 걸고 활동한다면 어떨까?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시위를 위한 단체라고 찍히기 십상일 것이다. 사회의 혼란은 북한이 원하는 것이므로 비슷한 슬로건을 걸고 북한의 지시를 받았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요즘 신문을 보면 절대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사실 국민의 자유와 해방은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많이 쓰인 것이고 이 슬로건을 걸고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해 왔다. 선진국이 했던 것이라면 굉장히 우호적인 우리나라에서 왜 이 슬로건 만큼은 인정되어지지 않을까? 분단이라는 역사적 희생물은 민주주의로의 발전에 꼭 필요한 이 문구를 가로막고 있다. 사회적 혼란은 곧 국가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우리나라는 혼란을 어느 나라보다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야 말로 자유와 해방을 원하고 있다. 문제점이 드러난지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선되지 않은 교육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 빈부격차에다가 한 번 떨어지면 올라오기 힘든 빚이라는 굴레까지 경직된 사회는 이미 사회의 여러 문제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답답한 현실은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힘든 현실에서 조금 더 잘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살고 있고 이 경제라는 것에 수 십년간 눈이 멀어서 다른 것들은 한 켠에 치워두고 있다. 이 책은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의 연설문이다. 이 분은 동독 출신으로 성직자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이다. 서문에 나온 것 처럼 북한 성직자 출신 민주화 운동가가 통일된 한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을 A4 용지에 빽빽하게 쓴다면 몇 장 안나올 것이다. 100페이지 남짓되는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글이 띄엄띄엄 쓰여 있기 때문에 30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띄엄띄엄쓰인 글이라고 해서 내용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근대에서도 자유와 해방을 외친 역사는 많았다. 4.19에서 부터 부마 항쟁운동까지 자유에 대한 열망은 우리나라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컸다. 하지만 지금 사회의 자유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자유를 외쳐야하는 폭발의 커트라인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예전의 정치인의 연설에는 언제나 자유라는 말이 들어간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정치인의 연설에는 대부분 경제 이야기 뿐이다. 이 책에서는 자유, 책임, 관용이라는 소 제목을 통해서 자유의 소중함과 또 그것을 지키려는 다짐을 말하고 있다. 자유를 성취한 시민에게 그 자유의 소중함과 또 그에 따른 책임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을 말하고 있다. 소중한 것은 대부분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또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게 되면 그 소중히 한 만큼의 무게를 가진 책임이 따른다. 자유는 이 소중한 것에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덧붙는다.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이다. 우리는 사회를 떠나서는 살지 못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유행하는 이유는 소통이라는 전문가의 분석을 본 적이 있다. 직접적인 소통이 힘든 사회가 간접적인 소통이 되는 사회로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방법은 다르지만 끊임없이 소통을 원하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행위를 모른 척하는 무책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아서 스스로 고립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불만이 생기면 당당하게 요구해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폭력에 굴복하고 권력에 매달리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 중 누가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툭하면 공권력이 투입되고 용역깡패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현실에서 우리는 자유를 갈망만 할 뿐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외줄타는 세상에서 물에 젖은 심지를 꽂고 있는 폭탄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는 홀연히 일어날 수 있을까? 당장 눈 앞에 닥친 기회는 대통령 선거다. 권력이 아닌 국민의 자유를 실현시킬 수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무관심으로 인해 엉뚱한 사람이 뽑히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엔 정말 국민을 위한 억압된 자유를 찾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뽑혔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이제 홀연히 일어난 국민들이 어떤 행동을 할 지 모른다. 우리는 역시 자유를 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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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보았던 것이 고려 무신정권과 도방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삶과 관련되는 것이었다. 무신정권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으로 예측할 수 있지만,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던 사회였고 투쟁이 그들의 수단이었다. 수시로 다툼이 있게 되고 그것은 생명을 앗아가는 일들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좀 더 큰마음을 가진 자들이 포용력을 발휘해 정권을 잡아가는 것을 우리들은 볼 수가 있었다. 정중부가 그랬고, 경대승이 그랬다. 인의에 의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 그들의 권력을 쟁취하는데 커다란 힘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최충헌도 대의라는 큰 그림으로 이의민을 처단하고 무신 정권을 세울 수가 있었고, 최우도 인의로 적들을 끌어안아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면서 고려 정권의 최고의 실세로 등극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후 그런 대의와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차츰 상실되어 가면서 무신정권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몽고의 침입과 그들을 대항해 나가는 과정에서 무신들의 마음이 백성들보단 자신들의 삶에 더욱 마음을 싣게 되고 그러면서 차츰 그들의 입지가 좁아져 가게 된다. 하여 몽고의 부마국이 되어가는 길을 재촉하면서 그들은 자멸해 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무신 정권이 그리 떠올랐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아마 동독의 통제국가가 몰락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들의 제국이 민중들의 자유를 담지 못했기 때문에, 민중들의 삶을 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붕괴되어 간 것이다. 이 글은 온 몸으로 자유를 위해 싸웠고, 지금은 통일 독일의 대통령이 된 요아힘 가우크의 자유에 대한 글이다. 그들이 통일 독일을 만들 때 그들 가슴에 있었던 자유의 왕국을 실현하고자 했던 마음이 그렇게 무신정권이 떠오른 듯하다. “상념은 자유로운 것/ 누가 그것을 짐작할 수 있을까?/ 상념의 밤은 그림자처럼/ 달아난다네./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알 수 없다네./ 그 어떤 사냥꾼도/ 탄환으로 /쏘아 맞출 수 없다네./ 상념은 자유로운 것.” 이 민요가 독일인들의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다 한다. 독일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들, 북한의 인권은 바닥을 기고 있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들의 마음속에서도 저 자유가 살아 있겠지? 언젠가 그것이 발아하여 아름다운 힘으로 나타나겠지? 그러나 아직은 동토의 민중들은 그만큼 아픔이 많다. 이 책을 그 공간에 가득히 뿌려주고 싶은 마음이 인다. 하여 이 책이 마음에 더욱 이끌림으로 다가드는지 모르겠다. 그는 자유에는 책임이 따름을 말합니다. 이 책임이 세상을 올바르게 이끌어나가는 주춧돌이 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아이들에게 모든 헌신으로 책임을 지듯이 자유를 누리는데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합니다. 그 책임이 초창기 혼란했던 통일과정을 일방적으로 기울게 하지 않고 서로의 공의를 이루어나가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책임은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책임이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만들어갈 수가 있으니까요. 화자는 힘을 잃을 땐 성경을 통해 도움을 받았음을 알 수가 있다. 그가 힘들었을 때 “하나님이 책임을 질 줄 아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란 말을 통해 책임의 의미를 다시 일깨우고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책임의식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의식이 폭력과 대항하고 행복을 추구해나갈 수 있는, 자유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노라고 말한다. 또 그는 이 책에서 관용에 대해 말한다. 관용은 너그러움의 다른 이름이리라. 그는 독일 민족의 우월주의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타인의, 세상의 것들에 대해 인정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독일인들이 지녔던 만용에 대해 깊은 뉘우침을 보인다. 죄와 상실의 아픔을 가진 시간이었다고 회고하면서 관용이 없었음을 인정한다. 그것이 타인과의 대화를 막고, 이기주의로 빠지는 지름길이 됨을 생각한다. 하여 자유주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관대한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것이 융화와 화합의 길이 되고 그로 하여금 통일 독일의 대통령이 되게 한 생각인 지도 모르겠다. 그는 말한다.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모범적인 성격의 학습 능력을 지닌 시스템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또한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일단의 생각이라 여겨진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들은 앞으로 독일을 롤 모델로 삼아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북한과의 관계도 조정해야 하고, 그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의 생각, 그들의 삶 등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자유, 책임, 관용의 마음을 지녀나간다면 어려운 문제들이 일부분 해결되어 나가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투쟁과 이기와 폭력의 세상에서 공존하는 삶, 공의를 실천해 나가는 삶은 항상 일부 지배층의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삶에 그 바탕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뚜렷이 인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책이다. 또 지도자의 입장에서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혼란한 민족들을 이끌어나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꼭 읽어보면서 우리의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될 듯하다. 앞으로는 폭력과 강압이 중심이 되는 무신 정권과 같은 그런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확실한 미래가 앞에 놓여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자유, 책임, 관용 이런 말들이 우리 삶의 행복 지수를 열어갈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음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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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는 오래,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거리로 뛰쳐나와 그들 자신이 민중으로 존재함을 온전히 자각하고 주장하는 비판적인 군중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권력에 관여하느냐 아니면 복종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시민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 희망? 경제? 복지? 신뢰? 뭐 하도 많아서 늘어놓기도 힘들다. 하지만 내 생각에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목적’이 아닐까 싶다. 무엇을 위한, 무엇을 위해,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당최 애매하게 되어버린 세상이 아닌가. 오히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무엇을 피하고만 싶은 처지가 되어버린 것 같다. 책은 독일의 11대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의 연설을 담은 것이다. 그는 동독 출신의 목사이자 민권운동가이다. 하지만 모든 정파를 초월해 압도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다. 그는 민중이 일어나 어떻게 자유를 얻어냈는지, 삶으로 고스란히 체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제 12월 19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도 5년 동안 국정을 꾸려야 할 대통령을 뽑는다. 그런데 희한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MB정권 5년 실정에 대한 뚜렷한 비판도 없고, 앞으로 5년 동안 어떻게 해나가겠다는 구체적인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너도 나도 다만 표가 될 이야기들, 국민들이 듣고 싶어만 하는 이야기들을 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정작, 시민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없다. 무조건 자신이 당선되면 알아서 다 하겠다는 엄포만 늘어놓는다. 이러한 현상이 맞는 것일까? 국민들은 다만 5년 마다 혹은 4년 마다 투표를 통해 자신의 대리인들을 선출하기만 하면 끝이 날까? MB는 70년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임기 5년 동안 끊임없이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받았다. 왜? MB는 자신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것으로 시민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자신이 하려는 것에 사사건건 시민들이 반대하고 나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권력을 쥐어주고, 왜 다시 딴소리를 하는가? 이게 MB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투표로 당선됐다고 해서, 그가 모든 것을 제 맘대로 시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해나갈 수는 없다. 그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MB는 절차적 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라고 믿었다. 그게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은 말한다. 시민으로써 우리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무책임하게 포기하는 것일 뿐, 결코 관용이 아님을.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가 아닌, 무엇을 위한 자유, 무엇을 향한 자유를 추구할 때 비로소 스스로 책임을 지는 성숙한 자유를 누리는 ‘시민’이라는 것을 말이다. 독일 국민들은 스스로 선출한 히틀러가 오히려 자신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역사의 아픔을 겪은 이들이다. 국민이 뽑은 권력이 국민을 억압하는 모순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주권을 행사하는 시민들이 깨어 있어야 하고, 시민의 자세로 목적성과 방향성을 가진 책임 있는 자유를 행사해야 한다.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은 다시 말한다. 민주주의는 결코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하지만 모범적인 성격의 학습 능력을 지닌 시스템이다. 때문에 성숙한 자유라는 책임을 가지고 모두가 함께 국가를 이끈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MB정권 5년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얼마나 우리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갈 수 있는지, 똑똑하게 목격했다. 그리고 그 후과가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4대강 사업의 여파는 다음다음 세대에도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이제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누구를 찍어야 한다. 누구는 절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이미 각자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그대로 행동에 옮기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 이제 2013년에는 다시 우리들의 ‘목적’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누구를 이겨야 한다, 누구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모순된 생각에서 벗어나, 누구나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공존의 마음을 찾아야 한다. ‘부자 되세요!’로 대통령이 된 MB는 결국 우리를 잘 살게 해주지 못했다. 극소수의 배만 불렸을 뿐이다. 이제 다시 우리가 사람임을 시민임을 자각해야 할 때이다.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은 우리가 권력에 관여하느냐, 아니면 복종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시민이 될 수도,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언젠가부터 자유·정의·인권·민주주의가 식상해진 세상이다. 하지만, 아직 그렇기엔 우린 갈 길이 멀다. 자유·정의·인권·민주주의 그 어느 것 하나도 여전히 우리 사회엔 부족하고 어설프다. 그걸 확고히 만들 수 있는 것은 한 명의 대통령이 아닌 우리 시민들이다.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을 함께 행사할 수 있는 시민. 이제 그러한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한반도를 제대로 이끌고 나갈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책임과 관용에서 빛이 날 수 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12월 19일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열망을 믿고 신뢰할 때, 우리로 하여금 부당한 지배에 순종하며 봉사하게 하는 두려움, 우리를 결박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그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두려움을 직시하여 ‘두려움’이라고 인정하고, 그 두려움과 순응이 모태가 같은 형제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도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하고 그것을 시험할 준비가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서 솟아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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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통령... 솔직히 말하면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통령이 있는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독일 대통령이란 말이 중국 대통령, 영국 대통령 등과 같이 조금 이질적으로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2012년 무소속으로 대통령으로 선출된 요하임 가우크의 연설은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구동독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로 활동을 하고, 전직 구동독 비밀경찰 소속의 연방담당관을 역임한 조금은 의아한 이력의 소유자인 그는 <자유>에서 자유, 책임, 관용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위에도 썼듯이 그의 연설문을 엮은 책입니다. 그래서 요즘 자주 나오는 광고 문구를 잠깐 빌리자면 시집보다 가볍고 얇습니다. 글자도 큼직막하고, 시처럼 쓰여 있어 읽기는 무척 쉽습니다. 비록 글은 짧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을 결코 짧진 않았습니다.
“우리는 속박당하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명령에 따라 행동하지 않기를, 더 나아가 우리의 규범을 스스로 만들고 그것에 따라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열망합니다. (p. 24)”라고 말하는 자유에 관한 이야기이나, “행복이란 신기하게도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책임지는 삶을 위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긍정해야 합니다. (p. 68)"는 책임에 관한 이야기, “무관심은 결코 관용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무책임을 달리 부르는 것입니다. (p. 83)"라는 관용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실제로 연설현장에서 들었으면 굉장한 파워가 느껴졌을 것 같은 글들이었습니다.
특히, "우리는 인간으로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p. 90)"라는 말은 나라 안팎의 어수선함을 엄한데다 풀려고하는 다시 선출된 총재나 소수 특권자들에게 온갖 것을 다 퍼주려는 일부 지도자들이 새겨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록 대내외적으로 신문지상에 주로 나오는 이는 메르켈 총리이지만, 민권운동가로서 무너진 체제를 몸소 경험을 한 요하임 가우크 대통령의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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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얇은 부피다. 게다가 종이마저 가볍다. 그런데 보리수 아래 길 같은 문장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밑줄을 치고 있었다. 숨을 고르고 있었다. ‘관용’을, ‘자유’를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고민하게 된다. ‘시민’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권력에 관여하느냐 아니면 복종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시민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는 것입니다.”―99쪽. 9~13줄. 이 책을 읽으며 “우리를 왜소하게 위축시키고, 국가의 무용한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것들을 우리가 거부”(30쪽. 2문단 3줄.)해야 하고, 이것이야 말로 ‘책임’ 있는 ‘자유’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둘] 12월에 대선이 있다. 시끌벅적. 온통, 온통, 들끓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골통 보수고, 종진, 종북 친북 좌파세력라고 한다. 또는 자신들이야 말로 전통 보수라고 한다. 또는 진보라고 한다. 하여 이 책은 이 민감한 시점(?)에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며,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1949년 5월 23일 독일연방공화국기본법을 제정․공포하기 전의 독일 헌법 제1조 1항은 지금 우리나라 헌법 제1조와 같았다.”라고 한다. 그런데 독일은 독일 “국민의 권력에서 태어난 나치에 대한 경험”으로 헌법 제1조 1항이 “인간의 존엄성은 불가침이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모든 국가권력의 의미이다”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깨어있지 못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보게 됐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사회가 관용을 가지고, 가치를 의식하면서 무엇보다 자유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하기를, 그리고 성숙한 자유란 책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100쪽. 13~17줄)바라는 요아힘 가우크의 생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2012. 9. 5. (수) 황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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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쿠바나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독재나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와 같은 폭압적 독재가 아니더라도 지난 5년여동안 자유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게 할 많은 일들을 우린 겪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자유를 침해받은 것이다. 이 책은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유의 소중함과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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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요아힘 가우크/권세훈/부엔리브로 아주 얇고 가벼운 책이다. 112페이지에 불과한 얇고 작은 크기의 책을 처음 접하는 느낌은 부담이 없고 쉽게 읽힐 것 같지만 너무 얇은 책이 주는 선입견에서만은 벗어날 수 없다. 물론 크고 두꺼워야만 내용이 깊고 좋은 책이란 말은 아니다. 저자는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동독 출신의 목사로서 통일 후에는 동독 비밀경찰에 의해 불법 수집된 방대한 민간인 사찰문건을 처리하기 위한 업무를 맡기도 하였고 올해 초(2012년 3월) 독일 제11대 연방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개신교 아카데미에서 행한 연설을 토대로 엮은 글이다. 온전히 연설문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특이한 이력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펼친 독자들을 당혹스럽고 실망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신분보다는 개신교 목사로서의 종교적인 신념을 강조한 측면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며 향후 국정 운영 방향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임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자유야말로 사회문화의 본질과 핵심이라고. 책임과 관용과 함께 자유를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요양소나 감옥의 수용자처럼 ‘국가에 갇힌 수용자’ 생활을 해야 했던 동독인들의 암울하고도 비참한 삶을 체험하며 가슴 아파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절박한 상황을 우리가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자유와 책임, 관용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이고 건강한 사회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삼을 수도 있다. 또한, 연방 대통령과 총리가 모두 동독 출신 인사가 차지하며 상징적으로도 융합과 발전을 이루고 있는데 반해 여전히 남북한 대결 속에서 통일에 대한 기대마저 식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독일 연방 대통령이 쓴 연설문을 부러움으로 읽어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인간이 누려야 할 천부적인 가치를 굳이 되새기지 않아도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건강한 사회를 지속시키면서 사회 일각에서 또 다른 불의의 싹이 트는 것을 감시하기 위한 엄중한 노력만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저자의 연설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다. 나는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관용을 가지고 가치를 의식하면서 무엇보다 자유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하기를, 그리고 성숙한 자유란 책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10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