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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니, 이진경 '노마디즘'에서 '도둑맞은 편지'를 분석한 글을 본 것 같다. 이는 작가의 작품이 단순한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뜻이다. 독자들이 부담 갖을 필요는 없다. 각자 알아서 읽다보면, 충분한 흥분과 광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추리소설의 맛과 광기다. 표제작 '도둑맞은 편지'가 탐정 뒤팽의 날카로운 추리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했다. 마지막 작품 '황금충'도 해적이 숨긴 보물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나는 오히려 작품에 나타나는 광기에 주목하게 된다.
'그의 마음은 현이 팽팽이 당겨진 기타와 같아서 누구라도 그것을 건드리면 소리를 내었네' '어셔가의 몰락'의 인용부분이다. 화자의 친구인 어셔가의 고택 주인은 신경증으로 인해 극도로 민감해 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여동생마저도 산채로 관에 넣게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특별한 사건의 반전없이 극도의 심리적 묘사로 진행한다. 마치, '아미타빌 호러'의 한 장면 안에 독자를 넣어 놓는 것 같다. '나는 마치 슬픔의 공기를 숨쉬고 있는 것 같았다. 근엄하고, 깊은, 완화시켜 볼 바 없는 우울함이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었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간질발작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오밀조밀한 인물의 불안한 심리묘사로, 독자들을 특별한 사건의 진행없이 작품 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고자질하는 심장'에서도 광기는 작품 전체의 절묘한 구성과 결합한다. 집 주인을 죽이고 방 바닥에 뭍은 주인공이 갑자기 경찰의 방문을 받는다. 주인공은 살인을 숨기기 위해 주인이 묻힌 지점 위에 의자를 놓고 태연하게 앉는다. 그리고, 경찰들과 농담을 한다. 이 때 갑자기 주인공의 귀에 죽은 사람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지 못할 수가 있는 것인가? ... -그들은 알고 있다-그들은 내 공포를 가지고 놀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알아서 자수한다. 이 작품도 결말까지의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형상화한다. 그 형상화의 완성된 모습은 광인이다. 작가는 당연히 이 광인의 모습에서 우리를 떠올리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 왜 친구 몇 명이서 얘기를 하다보면, 자기가 없으면 자기 얘기 할까봐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간다는.
많은 인물들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 불안한 마음과 불안한 외부 환경 변화를 절묘하게 병치시킨다. 독자가 한 순간도 마음을 놓게 만들 지 않는 소설이다. 특히, 집요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광기의 묘사가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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