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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시대와 인생을 살았지만 묘하게도 닮아 있는 세 여인의 어느 특별한 하루
"서로 다른 시대와 인생을 살았지만 묘하게도 닮아 있는 세 여인의 어느 특별한 하루" 내용보기
영국의 여류 소설가인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1882~1941). 사실 난 그녀의 작품이나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나에게 그저 “박인환”의 시(詩) <목마와 숙녀>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이름 정도로만,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녀의 대표 소설인 <세
"서로 다른 시대와 인생을 살았지만 묘하게도 닮아 있는 세 여인의 어느 특별한 하루" 내용보기

영국의 여류 소설가인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1882~1941).

사실 난 그녀의 작품이나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나에게 그저 “박인환”의 시(詩) <목마와 숙녀>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이름 정도로만,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녀의 대표 소설인 <세월(The Years/1937년)>도 소설이 아닌 “시(詩)”로 알고 있을 정도로 그녀에 대해 “철저히” 무지(無知) 했었다. 그런 그녀를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원제 The Hours / 비채 / 2012년 8월)이라는 소설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묘하게도 그녀의 대표 소설과 같은 제목으로 말이다. 책을 읽기 전 그녀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문학적으로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 와 함께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 기법의 개척자로 평가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적 의붓오빠들의 성적 학대가 그녀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성(性)과 남성, 심지어 자신의 몸에 대해서까지 병적인 수치심과 혐오감을 지니게 만들었고, 결국 1941년 강물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작품보다 그 생애 때문에, 특히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로 인해 더욱 유명해져서, 그로 인해 생겨난 일종의 전설, 또는 편견은 아직까지도 그녀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한다(네이버 캐스트, “버지니아 울프” 발췌. 2009.3.28.). 과연 이렇게 간단치 않은 삶을 산 그녀를 이 소설에서는 어떻게 그려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프롤로그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던 1941년 그녀는 남편 “레너드”와 언니 “바네사”에게 짤막한 편지 한 통 씩을 남기고 집 인근의 강으로 가 입고 있던 밍크 코트 주머니에 돌을 집어 넣고 강 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그녀가 흘러 내려간 강 다리 위에는 출정하는 군인들의 행렬과 그들을 지켜보는 소년과 엄마가 있었다.

 

본문으로 들어서면 1923년의 “울프 부인(버지니아 울프)”와 1949년 “브라운 부인(로라 브라운)”, 1999년 “댈러웨이 부인(클래리사 보건)”, 이렇게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세 여인의 어느 특별한 “하루”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펼쳐진다. 이 세 여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로라 브라운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애독하며, 클래리사는 연인인 “리처드”에게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을 쓰다가 자신의 언니인 “바네사”와 조카들의 방문을 받고 밤에는 불현듯 런던행 기차를 타기 위해 역(驛)으로 나오지만 남편에 의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손에는 쓰지 못한 기차표를 쥐고 말이다. 로라 브라운은 남편의 생일을 위해 어린 아들과 케잌을 만들지만 자신의 일상에 돌연 짜증이 나서 아이를 이웃집에 맡겨두고는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도로변 모텔에 들어가 <댈러웨이 부인>을 읽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온다. 클래리사는 옛 연인이자 지금은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리처드”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파티를 준비한다. 그런데 막상 파티의 주인공인 리처드는 영 불안정하고 위태위태하기만 하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세 여인은 묘하게도 서로 오버랩이 되고 그녀들의 심리는 마치 흔들리는 거울에 맺힌 상(像)이 두 개, 세 개 겹쳐 보이는 것처럼 불안하게 흘러가기만 한다.

 

유려한 문체, 세 여인의 심리에 대한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 등 “모던&클래식” 이라는 시리즈 명칭에 걸맞게 현대판 고전 소설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문학적 수준이 높은 작품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활자(텍스트)는 눈에 들어와 페이지는 계속 넘어가는데 이야기(서사)의 맥락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여인의 하루를 그렸다는 것은 알겠는데, 각자에게 일어나는 사건들과 주변 인물들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고, 특히 세 여인의 심리 변화들에 공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활자와 이야기가 서로 겉도는 느낌이 들어 몰입이 되지 않았고, 결국 기계적인 페이지 넘김만 이어지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야 말았다. 다시금 이해해보려고 앞 장의 “작품 소개”와 맨 뒷장의 “작품 해설”을 몇 번 씩 읽어봐도 머릿 속에 이미지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로라 브라운의 어린 아들 리처드가 클래리사의 연인 리처드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도 “작품해설”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으니 책을 참 건성으로 읽은 것이다. 그래서 책을 다시한번 찬찬히 읽어볼까 하다가 차라리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이 작품을 만나보면 더 이해하기가 쉽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작품 소개”에도 나와 있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스티븐 달드리”가 감독하고 “니콜 키드먼”, “메릴 스트립”, “줄리안 무어”가 주연한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 2003)>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 작품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책과 영화를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영화는 책의 내용을 비교적 충실하게 담아냈다. 영화도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으로 시작하고, 서로 다른 시간대의 세 여인의 하루를 번갈아 가면서 보여주는 것이나 각자에게 일어나는 일들까지 책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런데 책에서는 세 여인의 이야기를 페이지를 별도로 분할해서 교차로 보여준다면, 영화에서는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으로 보여준다. 즉 아침에 세 여인이 침대에 일어나는 장면을 연속 장면으로 보여주고, 버지니아 울프가 델러웨이 부인이 꽃을 사러간다고 첫 문장을 읊는 장면에서 바로 현실의 클래리사가 꽃을 사러가겠다고 독백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영화에서는 이처럼 세 여인의 이야기가 마치 동시대에 일어나듯이 서로 얽히고 설켜 진행 - 도입부에 시대와 장소를 자막으로 안내하지만 이후로는 등장인물의 옷차림으로나 알 수 있을 뿐 시대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 - 된다. 이런 영화의 구성을 보면서 그제서야 세 여인의 이야기가 시간대만 다를 뿐 어쩌면 서로 같을 수 도 있다는, 즉 각자의 하루 일상에 서로가 오버랩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영화에서는 책보다 등장인물들의 갈등관계가 좀 더 부각된다. 책에서는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 했지만 남편 때문에 가지 못한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과 집으로 돌아와 식탁에서 런던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하지만 영화에서는 기차 역사 내에서 남편과 거친 언쟁을 벌이고, 책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리처드와 클라래사의 불안정한 관계도 영화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책보다 이야기와 갈등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영화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이 책과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감이 잡혔다.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세 여인이 느끼는 삶에 대한 무게와 고통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표면적으로는 행복해보이지만 그 행복이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져 버리는 유리잔처럼 불안하고 위태위태하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도 그저 나름의 피상적인 감상일 뿐 이 책은 성별(性別)에 따라, 자신이 처한 환경과 겪어온 삶에 따라 달리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읽고 나서도 다른 독자들의 감상이 어떤지 계속 관심을 갖게 되는 책과 영화가 될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이게 책 감상인지 영화감상인지 종잡을 수 가 없는 글이 되고 말았다. 아뭏튼 푹 빠져 들 정도로 재미있지도 않고, 공감도 쉽게 되지 않았지만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아 자꾸만 책을 들춰 보게 되고 영화까지 보게 만든 묘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그래서 이 책과 영화를 한번씩 더 볼 참이다. 그런 후에야 좀 더 명확하게 이미지가 그려지고 책에 대해서 올곧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보게 될 분들은 꼭 영화도 함께 보시기를 당부드린다. 책으로 영화를, 영화로 책을 서로 이해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사족 하나, 영화에서 분명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니콜 키드먼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등장해서 못 본 것인가 싶었는데,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로 제 75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2003)을 수상했다고 하니 주연인 셈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배역으로 나오는 것일까? 인터넷 검색하면 바로 나오겠지만 여기서는 밝히지 않겠다. 직접 영화에서 찾아보시기를^^

 



a*****7 2012.09.13.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고독과 비극이 묻어 있는 세 여인의 하루 -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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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비극이 묻어 있는 세 여인의 하루 - 세월 _ 스토리매니악   20세기 최고의 여성작가로 불리는 '버지니아 울프'. 그녀의 문학적 재능과 성취 못지 않게 비극적 생의 마감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댈러웨이 부인'은 의식의 흐름을 독특한 문제와 구성으로 묘사한 걸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이클 커닝햄'은 울프의 소설 '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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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비극이 묻어 있는 세 여인의 하루 - 세월 _ 스토리매니악

 

20세기 최고의 여성작가로 불리는 '버지니아 울프'. 그녀의 문학적 재능과 성취 못지 않게 비극적 생의 마감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댈러웨이 부인'은 의식의 흐름을 독특한 문제와 구성으로 묘사한 걸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이클 커닝햄'은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매개로, 세 여인의 삶을 펼쳐놓는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이야기는 세 여인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들려주는 형식이다. 1923년 영국 리치먼드 교외에 사는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의 첫 문장을 쓰고 있다. 곧 언니 바네사와 그녀의 아이들의 방문을 받게 되고, 그 와중에 신경증을 앓는 버지니아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194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로라 브라운'은 남편의 생일날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다. 남편의 케이크를 준비하다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염증을 느끼며 로라는 자신만의 시간을 꿈꾸며 집을 나선다. 1999년 미국 뉴욕의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클래리사 보건'은 옛 연인이자 에이즈로 죽어가는 친구 '리처드'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파티를 준비한다. 그리고, 리처드를 찾아가는데, 유난히도 불안한 리처드를 보게 된다.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소설을 매개로 하여 세 여인의 평범하고도 특별한 하루가 펼쳐진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진한 고독감이 묻어나는 이야기다. 세 명의 여인들이 보내는 하루를 교차하며 보여주는 이야기는 일생에 있어서 단 하루를 담아내고 있지만, 그 깊이는 인생사 전체를 아우를 만큼이다.

 

의식을 흐름을 따라가며 교차되어 전개되는 세 여인의 이야기가 초반에는 조금 버거웠다. 여인들이 보여주는 예민한 심리적 상태와 그녀들이 보여주는 일상과 관계들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초반의 당황스런 부분들을 벗어나고 나면 묘하게 얽혀 드는 그녀들의 하루가 꽤나 흥미롭게 진행된다.

 

나의 삶이, 타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어느 순간 이 같은 테마가 확 드러나면서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버지니아가 소설을 쓰고, 그 소설에 빠져 케이크를 만들고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며 그 여인의 아들과 사랑으로 얽혀 버린 여인의 이야기, 그녀들의 사소한 일상들이 시간이 흘러 다른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구성이다.

 

이야기를 통해서 그 일상 하나하나에 세 여인 사이의 관계를 암시하는 여러 징조들을 볼 수 있었다. 하루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전개되는 그녀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큰 테마로 묶여 있음을 알게 되면서 우연과 관계의 묘한 상관관계를 체험하게 된다.

 

눈에 띄는 것은 그녀들의 연관 관계뿐만이 아니라, 그녀들의 섬세한 내면을 드러내는 묘사와 이야기의 서정성에도 있다. 이성의 입장에서 보이는 그녀들의 모습은 상당히 신경증적 면모들을 보이고는 있지만, 여자로서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 보고, 그 과정으로서의 하루에 느끼는 감정을 여과 없이 진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행복을 꿈꾸는 삶과 죽음을 꿈꾸는 삶은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고독의 바다에 휩쓸린 세 여인의 이야기는 농밀하다. 고독과 두려움으로 자신을 갉아 먹고 있는 세 여인의 하루는 각기 방식은 다르지만 일종의 파국으로 치닫는다. 점점 짙어지는 고독과 여인들의 어두운 내면들이 미묘하게 변해가는 심리적 움직임을 따라가는 그 과정이 흥미로웠다.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그 삶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어떤 상실을 가져오는지를 보게 될 때 나지막이 신음 한마디 흘리게 되는 것이다.

 

여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담긴 속 뜻까지 정확히 읽어내지는 못했다. 어쩌면 상당히 겉 부분만을 느끼고 만져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성이라서 느끼는 간극의 차이인지, 문장 속에 존재하는 은유와 상징을 읽지 못해서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들의 움직이는 내면의 심리를 따라 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이 책은 '디 아워스'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고 하는데, 언제 영화를 보며 내가 찾지 못한 느낌표를 발견해 보고 싶다.

 

 



리뷰 총점 종이책
세월 - 마이클 커닝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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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문학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누구신가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움베르트 에코? 파울로 코엘료? 아니면 장르소설의 제프리 디버? 할런 코벤? 머,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나 일본 미스터리계의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등 참으로 많습니다. 그렇다면 작품은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터이고, 미첼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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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문학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누구신가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움베르트 에코? 파울로 코엘료? 아니면 장르소설의 제프리 디버? 할런 코벤?

머,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나 일본 미스터리계의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등 참으로 많습니다.

그렇다면 작품은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터이고,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영화가 더 유명하죠.

하지만 저는 21세기를 맞이하기 바로 직전에 퓰리처상과 펜 포크너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문학적 영예를 안았던 작품인

바로 <<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이 인상깊습니다.

모르시나요? 그래도 니콜 키드먼과 메릴 스트립의 주연으로 열연된 디 아워스라는 영화는 한번쯤 들어보셨을 껍니다.

바로 그 작품의 원작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이야기를 살짝 맛을 보자면

 울프부인은 자신이 집필중인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이야기에 머릿속이 가득합니다. 남편과도 아무일 없고, 그저 평온한 생활이지만, 잠시동안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죠. 그러다가 기차역까지 가게되고, 일탈(?)의 직전까지 가지만 허겁지겁 쫓아온 남편을 보고는 결국 함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가까운 미래, 버지니아 울프가 지은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읽던 브라운 부인은 가족과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중 생일파티 준비중에 자신의 일상에 갑자기 강렬한 염증을 느끼고 자살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역시 뱃속의 아기를 낳은 후 자신의 진정한 인생을 찾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바로 반세기 후 댈러웨이 부인으로 불리는 편집자인 그녀는..... 이상의 줄거리는 생략할께요. 이 댈러웨이 부인이라고 불리는 여자의 이야기가 핵심이라면 핵심이니까요.

 다른 세월의 이야기인데도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며, 이상하게 교차하면서 세 여자들의 이야기가 한 파트씩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것의 결말은 너무도 인상적인 여운을 안겨줍니다.

 

 그냥 명작이라는 말을 절로 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괜시리 영화 디아워스를 다시 틀어보게 만들고, 댈러웨이 부인의 세월을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는 부작용을 불러오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인 이 작품을 안 읽어보는 것은 본인의 손해가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s**********6 2012.09.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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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을 초월한 세여인의 특별한 하루 [세월] - 마이클 커닝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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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는 딱지가 붙은 책들은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곤 했었지만, 비채에서 출간되고 있는 모던 앤 클래식 시리즈는 어딘가 고전같지 않은 듯한 산뜻함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포함한 지금까지 나온 네 권의 책을 지루함 없이 재밌게 읽었던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려웠다는 평을 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문"이라는 책을 저는 너무 괜찮게 읽었거든요. 지인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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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는 딱지가 붙은 책들은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곤 했었지만, 비채에서 출간되고 있는 모던 앤 클래식 시리즈는 어딘가 고전같지 않은 듯한 산뜻함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포함한 지금까지 나온 네 권의 책을 지루함 없이 재밌게 읽었던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려웠다는 평을 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문"이라는 책을 저는 너무 괜찮게 읽었거든요. 지인분들께 추천도 하고 선물도 했을 만큼 저한테는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세월>이라는 이 책은 조금 난해한 면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출판사의 추천대로 중간에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답니다. 책과 영화를 번갈아 보면서 참 깊이가 있는 책이구나 하는걸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네요. 원작이 있는 영화는 잘 보지 않지만, 이 원작의 영화는 진짜 보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기도 합니다. 영화를 봄으로 인해 원작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다고나 할까요.

 

 

 

세 여인이 있습니다. <델러웨이 부인>이라는 책을 쓰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 <델러웨이 부인>을 읽고 있는 '로라 브라운', 그리고 <델러웨이 부인>처럼 살고 있는 '클래리사 보건'. 그녀들은 각각 다른 공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뉴욕, LA, 런던, 그리고 70여년의 시공간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이야기는 그녀들을 "델러웨이 부인"으로 옭아 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생각합니다. 이야기 전체를 묵직하게 억누르고 있는 죽음이라는 형체없는 짓누름으로 인해 때론 여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때론 엄마나 아내로 얽매여 살아가는 것에 대한 후회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자이기에, 엄마나 아내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음에 엄마와 아내이기 이전과는 또 다른 행복을 느껴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녀는 바람을 맞으며 쿼드런트의 불빛을 향해 걸으면서 해묵은 악마가 접근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악마는 바로 두통이고, 벽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이고, 시커먼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하나의 지느러미다. 그 악마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모조리 흡입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악마가 할 일을 다 끝내고 나면 이 세상에 즐거움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오직 숨을 막아 질식하게 만드는 살아 있는 죽음의 영역뿐이다. (231쪽)

 

 

그녀는 잽싸게 창가로가, 추락 중인 리처드와 그의 헐렁한 옷이 부풀어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래서 그 순간까지도 그 일은 가벼운 사고로, 되돌릴 수 있는 그 무엇으로 여겨진다. 그녀는 그가 다섯 개 층 아래 땅바닥에 닿는 것을,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박는 것을 지켜보고 곧이어 그가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를 듣는다. (276쪽)

 

 

 

'디 아워스'라는 영화에서 많은 대사가 없는 내면의 연기가 필요 했을것 같은 버지니아 울프역의 "니콜 키드먼"의 연기는 영화의 느낌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해 주었듯, 작가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버지니아 울프를 자신의 소설속에 잘 살려내었습니다. 각각 다른 시공간을 살고 있는 세 여인의 짧지만 강렬한 하루를 담아낸 이 소설은 죽음이라는 묵직한 암시도 깔려 있지만 동성애라는 색다른 사랑의 암시도 깔려 있습니다.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는 순수한 사랑처럼 느껴지는, 저에게는 또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반드시 영화를 보시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 책에 대해 한층 더 짙은 여운이 남음을 느낄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h******1 2012.09.1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주 조금만 행복하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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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분쇄되고, 프리스비처럼 동어반복만을 하다보면 과연 어떤 인간이 미치지 않을 수 있겠나. 『세월』이, 『댈러웨이 부인』의 답습에 머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버지니아, 로라, 클래리사 ㅡ 이 셋의 기묘한 합체의식(合體意識)이 조이스의 '길고도 긴 하루'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이건 농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소설은 처음부터 「제발 이 삶(들)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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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에 분쇄되고, 프리스비처럼 동어반복만을 하다보면 과연 어떤 인간이 미치지 않을 수 있겠나. 『세월』이, 『댈러웨이 부인』의 답습에 머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버지니아, 로라, 클래리사 ㅡ 이 셋의 기묘한 합체의식(合體意識)이 조이스의 '길고도 긴 하루'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이건 농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소설은 처음부터 「제발 이 삶(들)을 봐 달라」는 간곡한 권고로 시작한다. 게다가 화자들은 몹시 지쳐있다. 때로는 명랑함도 의미를 잃은 것처럼 꾸며져 '허무주의 vs. 인간의 임무'라는 다소 피상적 논리도 엿보인다.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논리와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모순에서 이 작품은 후자의 발언권을 얻어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당연히 페미니즘(만)을 다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건 하나의 수단이니까. 내가 왼쪽을 볼 때 당신은 오른쪽을 보고, 내가 오른쪽을 볼 때 당신은 왼쪽을 본다. 타협점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분명 이런 상태가 지속될 필요는 없는데도 인물들은 꾸역꾸역 침체된 일분일초를 걷는다. 이따금 빅벤이 울려도 그건 그저 지옥으로 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상기시켜줄 뿐이다. 사실, 애초 『댈러웨이 부인』을 읽지 않고 이 책을 들었다면 엄청난 중력의 참을 수 없는 부조화를 느꼈으리라(내겐 울프의 작품을 읽다가 내동댕이쳐버린 전적이 있다, 정말이다!) ㅡ 낡아빠진 램프를 주워 그들을 대신해 소원이라도 빌어주고 싶을 만큼. 예컨대 '시작한 곳에서 끝나버리는' 기이한 이야기처럼 말이다. 세 여자는 저항할 힘조차 없고 그러려는 노력 또한 단속적이어서 속내를 들어주는 친절한 안내자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충실한 조력이 있다한들 그녀들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ㅡ 그럴 수 없다, 『댈러웨이 부인』만 하더라도 거기서 셉티머스만 죽어나갔듯 여기서도…… ㅡ 그녀들의 세월이 욕망(죽음)한대로 결핍이라는 표지판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을까. 이들에게는 약간의 '시끄러움'만 있으면 되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왜? 끝의 위치가 시작으로 돌아가 버티고 때문이다. 하다못해 그녀들에게는 시뮬라르크 따위도 없지 않았나.

u******o 2012.08.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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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흐르면서도 풍성함을 더하는, 애정어린 오마주이자 재해석
"나란히 흐르면서도 풍성함을 더하는, 애정어린 오마주이자 재해석" 내용보기
일전에 그의 작품 [세상 끝의 사랑 (세상 끝의 집)]을 읽으면서 작가의 개인사, 작품 속에서의 표현방법이나, 기승전결의 구도를 사용하지않고 열려진채 내버려둔 이야기방식들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라 느꼈기에, 이 작품도 기쁘게 잡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기에 앞서 영화 [디 아워즈 (The Hours)]를 보지않은게 너무 안타까워 (그때는 몰랐다. 니콜 키드만에게 그리
"나란히 흐르면서도 풍성함을 더하는, 애정어린 오마주이자 재해석" 내용보기

일전에 그의 작품 [세상 끝의 사랑 (세상 끝의 집)]을 읽으면서 작가의 개인사, 작품 속에서의 표현방법이나, 기승전결의 구도를 사용하지않고 열려진채 내버려둔 이야기방식들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라 느꼈기에, 이 작품도 기쁘게 잡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기에 앞서 영화 [디 아워즈 (The Hours)]를 보지않은게 너무 안타까워 (그때는 몰랐다. 니콜 키드만에게 그리 호의적이지않았는데, 작품에 따라 생김새를 바꾸고 목소리를 바꾸는 등의 노력이 무척이나 보는 관객을 배려해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의학드라마에 등장하지만, 매번 동일한 특유의 목소리와 연기를 하는 한 배우를 보고 넘 실망해서. 근데 인터뷰에선 그 드라마작가는 그가 절제있는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글쎄, 연기는 잘 모르겠고 화면을 캡쳐하거나 일부 연기를 보면 과연 이 드라마인지 저 드라마인지 모르겠는데??) 보려해도 DVD도 동영상도 구하기 어려워,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그 하루에 일생을 살다)]과 [세월 (The Years,죽음과 인생 무상 뒤의 생에 대한 포용 )]라도 꼭 보기로 했다.

 

 

(1998년 소설에서 이미 2002년 영화의 캐스팅을 위해 작가가 구애를 한게 아닌가 싶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함께 언급되던 메릴 스트립을 위해. 메릴 스트립이 클라리사 보건을 연기했네 ^^)

 

 

그리고 나서 잡은 이 작품은, 꽤나 [댈러웨이부인]과 [세월 (The Years)]에 기대어있다. 50년간에 걸친 이야기는 [세월]에, 1999년의 뉴욕의 클라리사 보건은 리처드의 생일파티를 준비하며 꽃을 사러나가고 누군가를 만나고 꽃집에서 소음에 놀라고 파트너 샐리만 올리버 세인트 아이브즈의 초대를 받고, 오랜만에 루이스의 방문을 받고 등등 (1923년 런던의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그날의 파티를 준비하려 꽃을 사러 나가고 거리의 차바퀴소리에 놀라고 레이디 부르턴의 초대를 받아 간 남편이야기에 소외감을 느끼고 피터월쉬를 만난다) 픽션속 댈러웨이 부인을 재현한다. 근데 그런 일차원적인 재현에 머무르지않는다.

 

1997년의 영화 (Mrs. Dalloway (1997))의 special features에선 댈러웨이부인을 연기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이 영화를 찍기전에도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영화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작가에게 정통하다고 생각된다) '7개의 흐름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표현을 했다. 여러 다른 삶을 살고 현실에서 서로 소외하던 인물들이 이 파티를 통해 서로를 오래간만에 만나고 또 만나지 못하면 자살소식을 듣기도 한다 (듣고 마는 가십이 아니라 댈러웨이부인은 한번 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러기에 이 파티는 현실의 버지니아 울프보다 더 처세를 잘하던, 실제 모델이었던, 어머니의 친구이자 부모를 잃은 버지니아 자매를 사교계에 내보내려던 캐서린 '키티' 맥스부인이 열던 파티 정도가 아니라 (그녀는 아마도 [세월 (The years)]에서 에드워드보다 귀족을 택했던 키티와 더 겹친다), 인생에 있어 좀 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띄게된다. 그 파티에서 여러 물흐름이 합쳐진다면, 이 작품 [세월 (The hours)]에선 세가지 물흐름이 서로를 의식하건 아니건 너무나 닮아있으면서 같이 사이좋게 서로를 더 풍성하게 해주며 흐른다.

 

...그녀는 리처드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최대한 멋진 파티를 열어줄 것이다. 세속적이고 심지어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그녀 나름대로 완벽한 무엇인가를 창조해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도록 마음을 쓸 것이며....파티는 감사의 표시이자 선물이다. 그것말고 그에게 베풀어줄 수 있는 것이 뭐가 더 있겠는가?...p.171

 

..오십대....사람들이 흔히들 넉넉한 부인이라고 부르는, 몸과 마음이 다 크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능력과 결단성이 있으며 무던하고 아침 일찍 눈을 끄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바로 그순간...불행하고 이상하며 길거리에서 빈둥거리는 비양심적이고 신의가 없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말이다....p.215~216

 

 

그리고 또 버지니아 울프가 미쳐 다 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이야기해주는듯 하다. 클라리사 보건이란 이름 중 보건은 버지니아 울프의 사랑이던 동성의 매지 보건에서 온듯 하다. 영화 [댈러웨이 부인]을 보면, 소설 속에서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하지만 처세적으로 무난하게 샐리 시튼에 대한 클라리사의 애정을 처리해버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파티중 클라리사와 샐리가 키스를 하고 이를 본 피터 월쉬가 와서 말을 걸어 그 순간을 망치자 클라리사가 무척이나 분노한 표정을 보인 것이 매우 인상적으로 남았다.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로 시작하는데 ([댈러웨이부인]이나 [세월 (The years)]은 이런 작가의 개인사와 달리 매우 평화로운데, 다시 생각해보니 키티란 모델을 클라리사 댈러웨이와 셉티머스 스미스로 나눈거에서부터 자아분열을, 샐리에 대한 이야기가 미진한게 아닌가 느낀 부분에서 어쩜 동성에 대한 사랑을 필사적으로 감춰둔 갈등 (그래서 클라리사가 그 부분을 목격한 피터에게 분노한 것이 아닐까?)이 줄거리 밑에 깔려있는게 아니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부분까지 마이클 커닝햄은 잡아낸 것 같다.

 

 

...오로지 두가지 선택밖에 없다는 것을. 실력을 갖추던지 아니면 신경을 끊던지....p.145

 

 

[선셋대로]에 대한 오마주 작품인 [런던대로]라든지 등등 수많은 오마쥬작품이 있었지만, 그중 이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스스로의 경험과 생각을 내면화하여, 진심어린 애정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엔딩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버지니아 울프, 로라 브라운, 클라리사 보건, 이 세 여인 (+ 샐리, 키티 등)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대강 안주하지 않고, 치열하에 고민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p.s: 1) 저기, 블랙드레스의 커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동성을 사랑하든 아니든 클라리사이든 샐리이든 모든 여성을 표현하는데 있어 이만한 것이 있을까.

 

2) 예전에 [Anna Karenina]를 읽을때 여주가 참으로 Henry James의 [The portrait of a lady]와 극단적인 정반대이구나 싶었는데 (그러니까 극과 극이므로 이 두 여주가 같이 언급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않았다. 그리고 난 이사벨 아처 쪽이라서 ㅡ.ㅡ 안나 카레니나가 너무나 싫었다. 나중에 다시 읽게되면 어쩜 이사벨에게 답답해서 안나에게서 자기파괴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지도), p.23에서 클라리사 보건이 이사벨 아처와 안나 카레니나를 둘 다 좋아했다는 부분을 듣자 매우 묘한 느낌 (' 아, 그래? 둘 다를 좋아할 수 있어? 근데 어떻게?)이 들었다.  

 

3) ...그녀가 신뢰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그 표정...정확히 어느정도 기대할 수 있는지를 잘 알면서도...하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그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대신 그녀가 가장 힘들어하던 세월 내내 간호해왔고, 그녀가 베풀 수 없는 것은 절대로 요구하지않으며, 가끔 그녀에게 매일 오전 11시에 우유 한잔 마시라고 권하는, 인자하고 온화한 남편의 얼굴로 바뀐다....p.50

 

버지니아 울프의 유서는 정말 너무나 심금을 울렸다. 자살을 하는 미안함으로 쓰는게 아니라 진짜 남편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근데 [댈러웨이 부인]과 [세월]을 읽고 바로 이 작품을 보니, 문장과 표현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버지니아 울프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표현처럼 정말 '문학계의 피카소'라는 말이 이해가 갈 정도였다. 그런 천재적인 아내에게 질투하나 없이 그녀를 위해 출판사를 만들고, 사후에까지 그녀의 에세이를 골르는 등 정말 대단히 멋진 (이란 말이 부족한, 좋은 사람이자) 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k*****k 2012.11.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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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커닝햄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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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을 읽기 전 조금의 사전 지식은 있어야 될 듯하다. 작가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알고난 후 읽으면 더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아는 부분이 없었다. 작가 이름만 아는 아주 단편적인 것만 있었지, 그녀의 일생은 어땠는지, 어떤 작풍의 책을 적었는지, 심지어 작품 이름이 무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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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을 읽기 전 조금의 사전 지식은 있어야 될 듯하다. 작가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알고난 후 읽으면 더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아는 부분이 없었다. 작가 이름만 아는 아주 단편적인 것만 있었지, 그녀의 일생은 어땠는지, 어떤 작풍의 책을 적었는지, 심지어 작품 이름이 무언지 아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세월>이라는 책에 섣불리 다가가기 힘들었고, 책을 읽으면서도 몇 번을 펼쳤다가 덮기를 반복했다.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1월 25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지적이었지만, 어려서부터 정신질환 증세를 보일 정도로 매우 예민한 성격이었던 버지니아에게는 상당히 억압적이고 우울하게 여겨지기도했다. 아울러 의붓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녀가 평생 성(性)과 남성, 심지어 자신의 몸에 대해서까지 병적인 수치심과 혐오감을 지니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추정된다. 버지니아는 가뜩이나 예민한 신경은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큰 고통을 당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울프 부부는 런던을 떠나 서식스 주 로드멜의 우즈 강 근처 별장에서 지내기로 한다. 전원생활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의 불안 증세는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보다 못한 레너드가 억지로 병원에 데려가 의사와 상담을 하게 해주고 돌아온 다음날 점심께, 그녀는 산책을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유작이 된 소설 <막간>을 탈고한 지 겨우 한 달 뒤의 일이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썼던 '의식의 흐름' : 즉 특별한 줄거리가 없고, 등장인물의 의식, 즉 두서없이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이며 느낌을 고스란히 서술하는 기법이다. 지금은 오히려 버지니아의 소설을 “지루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말았지만, 이 기법을 처음 도입한 버지니아의 대표작들은 당시에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

 

참고 주소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contents_id=255

 

 

주로 장르 소설을 읽는 내게는, 솔직히 말해서는 버거운 책이었다. 문장이 아름답지 않다거나 내용이 난해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장은 아름다웠으나 현대 소설에 물들여져버려서인지 커닝햄 버전의 '의식의 흐름'에서 적응치 못했던 듯하다. 책 속의 글자는 읽히는데 그 내용이 머릿 속에 들어오지않았다. 머릿 속에 들어와 문장들이 조합이 되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본문을 다 읽은후, 소개글과 해설란을 두세번은 읽었다. 내가 이해치못했던 것이 무엇이 있는지, 마이클 커닝햄이 말하고자하는게 어떤 것이 있었던 건지.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되는 듯하다. 생과 사, 그것의 차이는 그렇게 큰 것이 아니라고. 손바닥을 뒤집듯이 그 차이가 보인다고 하는듯하다. 아직 이 소설이 원작인 영화 <디 아워스>를 보지않아서인지 그 이해의 폭이 좁은 듯하다. 주말쯔음에 <디아워스>를 봐야겠다. 보고난후 다시금 <세월>을 펼쳐봐야겠다. 내가 놓친게 무엇이있었던가, 다시금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기를 복돋우는 이 세상의 신비들을 인지하는 것이 내적 능력인데, 그녀가 매우 운이 좋을 때는 그런 능력을 빌려 곧장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녀는 그런 상태에서의 글쓰기를 가장 만족스럽게 여기지만, 그에 접근하는 행운은 아무 예고도 없이 왔다가 이내 사라져버린다. 그녀는 펜을 집어들고 종이 위를 움직이는 펜에 손을 내맡길 것이다. 그녀는 펜을 들었다가 자기는 그저 자기 자신일 뿐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실내복을 입은 채 펜을 잡고 있는, 약간의 능력만 갖추었을 뿐 두려움이 많고 확신이 없는, 그래서 어디서 시작하고 무엇을 쓸 것인지조차 전혀 알지 못하는 그런 여자라고.

  그녀는 펜을 집어든다.

-p. 54

 

  그렇다면 그녀는 어느 쪽을 더 바라는가? 차라리 자신의 선물이 거절당하고 자신의 케이크가 비웃음받기를 원하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녀는 사랑받기를 원한다. 아이에게 조용히 글을 읽어주는 유능한 엄마가 되기를 원하며, 완벽한 식탁을 준비하는 아내가 되고 싶다. 절대로 이상한 여자는 되고 싶지 않다. 변덕과 분노가 가득하고, 외로움을 타며 뾰로통하고, 참아줄 수는 있지만 사랑스럽지는 않은 그런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여자이고 싶지는 않다.

-p. 141

 

 

k**********4 2013.0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