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롭게 읽을 책을 고를 때는 작품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제일 먼저 고려한다. 한겨울에는 이순원의 은비령을, 스위스행 비행기에서는 뒤렌마트 희곡선을 고르듯이. 작가와 작중세계를 공유하고 싶은 그런 마음에서. 그래서 고른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헤세는 동양에 굉장한 관심과 선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붓다의 생애를 그린 '싯다르타'라는 작품도 있고, 여기선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을 두고 이태백과 두보라고 이른다. 근데 또 잘 알진 못했는지 '이태'가 이름이고 '백'이 성인줄 아는건 웃기네. 클링조어의 마지막을 불태우는 그 여름, 헤세 스스로처럼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가 빛난다. 열정적이고 재빨리 소진되는 생명을 가진 여름이 시작되었다. 긴 낮은 찌는 듯했지만 불타는 깃발처럼 금방 타올라 버렸고, 짧고 무더운 달밤 다음에는 짧고 무덥고 비 내리는 밤이 이어졌다. 화려한 몇 주가 꿈처럼 빠르게, 온갖 형상들로 충만하여, 열병처럼 달아오르다가 사그라졌다. “내 말은. 오늘은 결코 다시 오지 않으며 오늘을 먹고 마시고 맛보고 냄새 맡지 않는 사람에게 영원히 절대로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태양은 두 번 다시 오늘처럼 빛나지 않을 거야. 태양은 하늘에서 목성과 나와 아고스토와 에어질리아, 우리 모두와 성좌를 이루고 있어. 이러한 상황은 결코, 결코 다시 오지 않아. 수천 년이 지나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야.” 뜨거운 여름날 때문에 그곳의 노란 길섶은 마비된 것처럼 조용했고, 눈부시게 노란 집들은 반쯤 죽은 듯이 잠들어 앞쪽으로 기울어진 채 서 있었다. 물이 말라 버린 개울가에는 하얀 금속 빛깔의 수양버들이 황금빛 풀밭 위로 무거운 날개를 드리우고 있었다. 친구들의 행렬은 습한 초록 계곡을 뚫으며 장밋빛 길 위를 다채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남자들은 리넨과 비단으로 된 흰 옷과 노란 옷을, 여자들은 흰 옷과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다. 에어질리아의 멋진 베로나 그린 양산은 마술 반지의 보석처럼 빛났다. 그리고 갑자기 무엇인가가, 바람 같기도 하고 유령 같기도 한 무엇이 홀을 지나갔다. 음악은 시나브로 침묵했고, 갑자기, 불이 꺼지듯이 그렇게, 춤추던 사람들은 사라져 버렸다. 밤이 삼켜 버렸고, 등도 반쯤 꺼져 버렸다. 클링조어는 검은 문들을 바라보았다. 밖에 죽음이 서 있었다. 그는 죽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죽음에게는 국도 변의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과 같은 냄새가 났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민음사세계문학전집 #헤르만헤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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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백과 두보의 등장은 놀라웠고 동양적인 사고와 사상에 심취해 있는 1세계 백인남이 상당히 까불고 있다는 인상으로 책을 읽었다
* 당신은 위대한 예술가요. 당신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오. 당신은 자칭 이태백이라고 할 만한 자격이 있소. 하지만 당신, 이태 선생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성과 이름을 혼동하여, 앞의 두 자를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부른 말
* 폭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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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가 무슨 마음으로 썼는지 모르겠다. 헤르만씨 의도 너무 궁금하다. 동양예술에 심취하신 모양인데 안 어울린다구..
* 이번 여름 민음사는 모두 망했다. 바덴바덴 클링조어 두 권 모두 얇지만 도저히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만큼 재미가 없었다는 뜻이 되겠다. 이러면 곤란하다 정말
* 그래도 클링조어는 우리와 함께 소나기를 같이 함께 했으니까 특별히 3점 준다. 그렇지 않았으면 너도 가차없이 1점이었어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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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출판사에서 출간 된 헤르만 헤세 저/황승환 역 의 <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 세계문학전집 230 > 구매해서 직접 읽어보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ㅡ스포일러 주의ㅡ 헤르만헤세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묘사도 아름답고 내용도 좋아요. 헤르만 헤세의 다른 소설을 읽고 정말 좋았어서 구매한 작품인데 만족스럽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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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은 청년 예술가 클링조어가 짧은 여름 속에서 자신을 소진해가며 예술과 삶,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한 화가의 여름 기록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읽을수록 그가 감당해야 했던 내면의 갈등과 불안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아름다움을 좋지만 동시에 삶의 어두움을 끌어안고, 순간의 황홀 속에서 소멸을 예감하는 젊음의 초상이 인상적이었다. 클링조어는 삶을 강렬하게 느끼기 위해 더 자극적인 순간을 찾아 헤맨다. 술과 예술, 사랑에 자신을 던지고 고통조차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 열기 속에서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어쩌면 그는 삶을 사랑했기 때문에 더 빨리 소모되었고, 세상을 깊이 바라봤기에 더욱 외로웠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작품을 읽으며 나 또한 “진짜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니면 끝까지 불타오르며 살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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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은 청년 예술가 클링조어가 짧은 여름 속에서 자신을 소진해가며 예술과 삶,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한 화가의 여름 기록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읽을수록 그가 감당해야 했던 내면의 갈등과 불안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아름다움을 좋지만 동시에 삶의 어두움을 끌어안고, 순간의 황홀 속에서 소멸을 예감하는 젊음의 초상이 인상적이었다. 클링조어는 삶을 강렬하게 느끼기 위해 더 자극적인 순간을 찾아 헤맨다. 술과 예술, 사랑에 자신을 던지고 고통조차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 열기 속에서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어쩌면 그는 삶을 사랑했기 때문에 더 빨리 소모되었고, 세상을 깊이 바라봤기에 더욱 외로웠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작품을 읽으며 나 또한 “진짜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니면 끝까지 불타오르며 살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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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문학 찾아 보던 중에 헤르만 헤세 작품 이길래 궁금해서 봤어요. 자전적 소설이라서 더 궁금했는데... 읽다가 좀 이해 안가고 어려운 부분들이 좀 많았습니다. 다른 글들에 비해서 좀 끌리지는 않았지만 궁금해서 다 보기는 했어요. 잘 봤습니다 |
| 예민한 성격이지만 삶을 즐기며 때론 동양 사상에 심취해 있던 어떤 예술인의 한 시절을 그린 작품이다. 구애받지 않고 삶을 즐기던 화가 클링조어는 마흔두살의 나이에 죽음을 예감하게 되고, 생의 마지막 여름을 그가 사랑했던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불안과 광기, 두려움과 회피, 창조의 환희와 기쁨, 경건함 등의 감정이 뒤섞인 채로 도취된 감정에 빠져 예술에 대한 열정을 마지막까지 불태운다. “자신의 몰락을 앎으로써 열광적으로 생기를 얻고” “죽음에 대한 준비를 끝낸” 작중에 나오는 문구가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인물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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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링조어의마지막여름 #헤르만헤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30 #자전적소설 #2025고전읽기25 #도서추천 #책블로그 #북블로그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생사의 대립과 시공의 경계를 넘어선 화가 클링조어 헤르만 헤세는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 재정난과 아버지의 사망, 아내의 우울증과 막내아들의 발작 등으로 엄청난 정신적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여름 한 달 만에 써 내려간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소설 속의 죽음을 앞두고 가장 크고 밝은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는 화가 클링조어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헤세의 열정을 발견할 수 있다. 클링조어가 생사의 대립을 무화하고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남김없이 불태워 최후의 작품을 완성하는 생애 마지막 여름의 삶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유럽 사회에 몰락을 선언하고, 소멸을 통한 새로운 탄생을 희구하는 전환기의 초상을 대변한다. 감각적인 언어들로 그려 내는 클링조어의 그림 속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작가이자 화가인 헤세가 내뿜는 그림에 대한 열정도 엿볼 수 있다. 마흔두 살이 되던 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클링조어는 사랑하는 여인들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그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마치 내일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불꽃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과도 같은 열정의 클링조어. 그런 그의 열정을 보면서 그에게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가 더없이 원망스러웠다. 🏷️ "죽음에 맞서는 무기는 필요 없소.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오. 하지만 한 가지는 존재하지요.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 말이오. 우리는 이 공포를 치유할 수 있고. 이것에 대항하는 무기가 한 가지 있소. 공포를 극복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이지요. 하지만 이태백 선생은 원하지 않을 것이오. 이 선생은 죽음을 사랑하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 우수, 비참 등을 사랑하지요. 공포만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과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까닭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지요." p.69 자신이 예견하고 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점성술사에게 들은 그 순간에도 클링조어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듯 보인다. 그렇게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도망치려는 노력이 아닌 자신이 하고자 하던 일을 한다. 여관에서 머무르는 그 시간에도 여관 주인이 가져다준 빵과 과일만 먹고 그림을 그리는데 열정을 쏟아붓는다. 내가 클링조어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피할 수 없는 운명에 포기하듯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클링조어나 헤르만 헤세는 자신에게 닥쳐올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고자 했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을 해냈던 헤르만 헤세.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심오한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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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니까 - 라는 생각으로 살게 된 지 2년이 되었는데, 비슷한 나이의 화가 클링조어가 죽음을 예감하고 그의 마지막 예술혼을 불사르는 것을 보니 왠지모를 막연한 공감과 슬픔을 느낀다. 헤르만 헤세는 무엇에 그리도 고뇌하고 괴로워했던 걸까. 어릴 적 데미안을 읽을 때에는 사춘기의 감성으로 오로지 주인공 에밀의 마음을 따라갔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작중의 인물보다도 그를 써내려간 작가의 마음이 더 궁금해진다. 나의 마지막 여름은, 마지막 계절은 무엇으로 마무리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