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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책은 처음이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치고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많다. 물론, 다른 역자가 번역한 책은 읽어보지 않아서 비교할수는 없으나, 번역투의 문장이 너무나도 심해서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이해력이 딸리는건지, 이 책 자체가 난해한건지 햇갈렸는데 찬찬히 읽어보니 문장 구조 자체가 번역투가 심하다는 걸 알았다. 물론 문화와 가치관, 시대가 다른 책을 매끄럽게 번역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가를 어렴풋이 알고있다. 그럼 어려움은 차치하고서라도 여전히 번역투의 문장은 아쉬웠다. '고독의 방랑의 시인, 릴케' 그의 섬세하고도 여성적인 감성이 두드러지는 책이다. 말테라는 인물에 투영되어있는 릴케의 생각들도 엿볼 수 있었고, 혼란스럽고 공포에 질렸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파리 대도시에서 느꼈던 도시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단절과 무관심 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충분히 공감할만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특유의 비단같이 섬세한 감수성이 탁월한 예술적 감각으로 승화되어 있는 책이다.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한 번 읽어볼만하다. 읽고 나면 어쩐지 쓸쓸하고 슬퍼지는 기분이 들기도하는데, 고독한 가을에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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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없게 읽었지만 일단 릴케는 손을 잘 씻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법 훌륭하지 않은가 싶다
* 비록 나는 가난하여, 매일 입는 옷도 몇 군데 해어지기 시작했고, 구두도 여기저기 말썽을 피우기 시작하지만, 칼라는 깨끗하고, 속옷도 깨끗하다. 그래서 이대로 어느 다과점에 들어가도 되겠고 그것도 번화가 큰길가에 있는 다과점에 들어가서 안심하고 접시에서 케이크를 손으로 집어낼 수도 있을 거다. 아무도 그런 행동을 조금이라도 수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욕을 하거나 나를 쫓아내는 일도 없을 거다. 가난하긴 해도 내 손은 좋은 가문 출신의 손이며, 하루에도 네댓 번이나 씻기 때문이다. 그렇다, 손톱 속에는 때라곤 하나도 끼어 있지 않고, 글씨 쓰는 손가락에 잉크 하나 묻어 있지 않다.
* 어머니와 레이스에 관한 일화는 아름다웠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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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글이라 제대로 된 평가는 어려울 것 같다. 1부의 앞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단순히 활자를 읽는데만 급급했다. 개들을 등장시키는 부분은 대부분 다 좋았다. 뭘 좀 아는 양반이다. * 자기만의 죽음을 가지려는 소원은 갈수록 보기 드물어진다. 좀더 지나면 자기 자신의 죽음이 자신의 삶처럼 흔치 않을 것이다. 맙소사, 여기에는 없는 게 없다. 그저 와서 생을 발견하면 그만이다. 그저 그것을 기성복처럼 입기만 하면 된다. 자기 뜻으로 가거나 가도록 강요를 받는다. 자, 그러니 노력할 필요가 없다. 「선생님, 여기 당신의 죽음이 있습니다」사람은 닥치는 대로 죽는다. 자기가 앓는 병에 딸린 죽음을 죽는다(왜냐하면 사람이 모든 병을 알게 된 이래, 여러가지 죽음의 종말도 병에 속하는 것이지, 환자에 속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는 말하자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 나는 아무도 아는 사람 없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트렁크 하나와 책 상자 하나를 가진 채, 사실 어떤 것에도 호기심 없이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 집도 없고 상속받은 물건도 없고 개도 없이 살아가는 생활은 도대체 어떤 생활일까. 최소한 추억이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나 누가 그것을 갖고 있나? 만일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해도 그건 땅속에 묻혀버린 것과 같다. 어쩌면 사람은 그 모든 추억에 다다르기 위해서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나는 늙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 이런 부분은 제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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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우리나라 사람들은 릴케의 이름이 익숙하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에게도 릴케는 아늑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릴케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1875년에 태어나 1926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약 50년 짧은 생애 동안 대부분 시집을 발표했다. 그는 1902년 이후에 파리로 건너가 조각가 로댕의 비서가 된다. 말이 비서이지 그는 <로댕 연구>를 써 달라는 청탁을 받고 간 것이다. 그는 로댕에게서 사물을 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로댕과는 어떠한 일로 서로 각자의 길을 가게 되고, 그는 홀로 파리에 거주하게 된다. 그 기간 동안 파리에서 경험했던 불안과 고독을 바탕으로 일기체 소설을 쓴다. 그는 파리의 냉정하고 차가운 빈곤과 어두움 그리고 고독에 대해 사색하며 철저히 자신의 실존을 모색하며 집필에 임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프루스트가 1871년 생이다. 그는 약 4년 뒤에 태어났다. 앙드레 지드는 1869년 출생, 보들레르 1821년 출생, 니체는 1844년에 출생했다. 그들은 벨 에포크 시기에 활동했다. 그 시기엔 전통적인 것을 타파하고 실증과 사실에 초점을 맞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등장했던 소설들이 그렇듯 소설의 형식은 지금과는 다르다. 한마디로 이 작품도 읽기가 난해하다. 단편적 기억이나 사건을 인상주의 화가가 풍경을 담아내려는 형식처럼 그대로 묘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파편화된 기억들을 여기저기 묶어 놓았기 때문에 맥락이 없고 흐름이 끊긴다. 그래서 좀 더 수월하게 읽고자 한다면 나눠진 문단마다 제목을 달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문제의식이나 그들이 다루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읽게 된다면 읽기가 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로댕과 릴케의 눈으로 바라본 그 당시의 파리는 어떠했을까. 자본이 출렁거리고, 거리의 화려한 여성들과 예술이 꽃 핀 파리의 모습 화려함 속에서 어두운 모습을 꿰뚫어 보고 있다. 그는 소설에서 몰락한 덴마크 귀족 출신 집안에서 태어난 28살 말테를 내세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말테 시대의 파리처럼 지금도 여전히 고도화된 산업화로 진화되고 있으며, 인간성을 상실한 개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파리, 유년 시절, 자기가 독서한 인물들의 역사적 사실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 속에서도 일관되게 제기되는 문제는 문화 비판과 말테 자신의 정체성의 위기와 극복 가능성에 대해 내재적으로 모색하는 점이다. 책이 어렵지만 끝까지 읽게 되면 우리는 책이 주는 다양한 의미를 확인해 볼 수 있게 된다. 어려운 문제를 겨우 풀어내면 잘 기억에 남듯이, 말테의 수기를 통해 죽음을 들여다보고, 그럼 삶은 어떠해야 할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읽으면 깊게 새겨질 삶에 대한 통찰을 확인하고 싶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말테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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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저, 말테의 수기 리뷰입니다. 작가도 유명하고 작품도 유명합니다. 방랑시인 릴케가 쓴 일기체 소설인데요, 28살의 청년이 문학적인 자아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고뇌하는 이야기, 작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내면의 묘사가 생생합니다. |
| [대여] 말테의 수기 - 세계문학전집 042 리뷰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작품으로 철학적인 사색과 삶과의 깊은 연결을 다루며, 단순하고 깨어있는 삶을 추구하는 저자의 철학적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소 어렵지만 천천히 읽을만한 것 같아요 |
| 공원에서 산책하는 임산부를.보며 죽음을 생각하고(돌잔치에서 청춘의 덧없음을 노래한 분도 아니고...) 선배들의 글을 읽으며 이루어 둔 것이 없음을 한탄하고 길을 걷는 행인들을 보며 외로움을 떠올리면서도 결국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길 것을 알게 되는 책이라 우울함과 고독에 지지 않는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근데 깨달음의 과정이 쉽지는 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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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렵다. 어렵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로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 여느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릴케의 삶도 참 다이나믹 했는데, 일기체 소설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우선 눈에 띈다. 문제는, 릴케의 삶이 그러했듯 주제나 분위기가 너무 무겁고 어둡고 어느순간 문체때문인지, 내용때문인지 내 문제인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삶이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그 와중에도 빛(?)을 찾으려 처절하게 몸부림 치는 한 개인의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책이랄까. 적어도 릴케는 이 책을 쓰는 순간에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을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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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라는 작품입니다 음..다들 극찬을 하시는 작품이라 기대를 하고 봤는데 아직 저에게는 조금 어려웠어요. 삶과 죽음 그속에 있는 희망과 기쁨 그당시 사회의 모습을 글로 읽으며 마음에 와닿기에는 저에겐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조금더 시간이 흘러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에요. 번역이 조금 어려워서 조금 더 힘들긴 했어요 다음에 한번 더 도전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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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끝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름만으로도 웬지모를 설레임을 주는 인물이다. 솔직히 책에 보여진 릴케의 사진은 이름과 매칭이 잘 안된다. 하지만 난 내가 그린 이미지에만 신경쓰기로… 책은 생각보다 더 난해했다. 이전에 읽은 사르트르의 구토 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못하지 않다. 차라리 구토처럼 일기임을 명확히 나타내는 날자표시가 있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난 책도 어디도 아닌 이해할 수 없는 공간에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고 그저 글자들을 따라 가고 있는 느낌과, 아무 이유도 목적도 이해도 없이 그냥 설명하는 그 곳으로 빠져들어가 있다. 내게 말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누구길래 나에게 이런 설명을 하는건가? 내가 뭘 해야하는거지? 하는 생각들. 정신차리고 다시 주변을 그리고 앞뒤를 보지만 가까스로 내몸과 정신만 나의 세계로 나와 있을뿐 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릴케를 아니 누군지 모를 화자를 따라 갔다. 지나고 나면 힘들었던 기억보다 좋은 기억들이 많이 남는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과 그리고나면 릴케가 하고자하는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는 건방진 생각이 든다. ‘전차가 흥분한 듯이 달려와 소녀의 소리를 짓누르고 지나간다. 모든 걸 짓누르고 지나간다.’p11 ‘어쩌면 사람은 그 모든 추억에 다다르기 위해서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p24 ‘여기에 앉아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이 존재가 생각하기 시작한다.’p29 ‘크리스티네 브라에’는 죽은 환영일까? 살아있는 병든 여인일까? 어릴적 그 기억은 무얼 말하려는 걸까? 죽음은 항상 가까이에 있다는 건가? P43 ‘아무런 변화가 없는 하루는 마치 시계 바늘 없는 시계판 같다’ ‘잃어버린 물건이 어느 날 아침 그 자리에 누군가가 잘 간수한 것처럼, 잃어버렸을 때보다 더 잘 손질되어 새것처럼 놓여 있듯이 유년 시절로부터 잃어버렸던 것들이 새것처럼 여기저기 지금 내 이불 위에 놓여 있다. 잃어버렸던 불안이 몽땅 되살아났다.’ p74 ‘바람은 흥분한 듯 신선하고 부드럽게 불어왔다. 모든 것이 위로 솟아올랐다. 냄새며 외치는 소리며 종소리며, 모두.’p76 표현이란게 이렇게 생생히 상상이 될 수 있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과 아 그랬었지 라고 마치 잊은 기억을 생각해 내듯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게 놀랍다. . 길을 가다 어느 순간 주위의 어느 한 상황에 몰입하게 되고 혼자만의 상상을 통해서 소위 ‘모험’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까? 왜 시작되었는지 이유도 없고 그리고 끝. 그의 집 또는 또 다른 길을 걸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