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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남이 우는 것만 봐도 따라서 울 정도이니 ······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인물들이 기뻐서 울어도, 슬퍼서 울어도 나는 울고 있다. 솔직히 창피한 기분이 들지만,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다행히 누군가와 싸워 본 적은 없는데, 싸우면 분명히 눈물 먼저 쏟아내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닐까 싶다. 절대로 누군가와 다투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 내 문제로 울었던 것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딸 때문이었다. 달래도 안되고, 협박을 해도 안되고 답답한 마음에 눈물을 쏟았었다. 울고 나니 조금은 답답함이 풀렸었는데, 가급적 슬퍼서, 속상해서 눈물 흘릴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닐터이다.
어릴 때부터 눈물이 많았던 저자는 <나일론>, <보그 걸>, <코스모폴리탄> 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고, 퇴사 후에는 팟캐스트와 라디오에서 연애 상담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눈물도 눈물이지만 연애 상담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 이야기를 들었을까? 자신의 경험 또는 지인들의 경험 등, 눈물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 이 책을 썼다. 35가지 눈물 이야기. 사람들은 어떨 때 눈물을 보이게 되는 걸까? 그 눈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안겨줄까?
저자의 오빠는 가족 분만실에 들어가 둘째 아이의 출산을 지켜보면서 쉬지 않고 울었다고 한다. 그 울음은 아내의 고통에 대한 미안함, 생명의 탄생에 대한 경이로움, 복합적인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 눈물의 값어치를 계산할 수 있을까? 평생 아내와 아이에게 감사한 맘, 항상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할머니와의 관계가 돈독했던 저자는 [집으로]라는 영화를 본 후에 엘리베이터에서 울음을 겨우 겨우 참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의 한 마디에 사이렌같은 울음이 터져버렸다고 했다.
누군가 남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슬픔은 보여도 안 보이는 척, 봤어도 못 본 척 해주었으면 하는 거다. 골방에 틀어박혀 울고 싶어 하는 사람을 광장으로 끌어내지 않았으면, 왜 우느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맞추지도 않았으면. -p 96
공감되는 말이었다. 누군가 울고 있다면 조용히 있게 두고 나중에 물어보자. 감정이 어느정도 수습되고 난 이후에.
저자가 결혼을 결심한 계기가 재밌었다. 사귀고 있던 중 미국으로 가야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그 말을 들은 남자친구가 눈물을 후드득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 눈물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 눈물에 속았다'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눈물이 가진 힘의 위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이 담긴 눈물 한 방울은 몇 천 마디의 말 보다도 강력한 것일 수도 있을듯하다.
몇 년 전 친구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가슴 아픈 일을 겪고 있던 그 친구가 안타까웠고, 나에게 털어놓아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껏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들때가 있어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섭섭함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타인에게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울어본 기억은 없는데, 그런 경우가 있다면 분명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 앞일 것이다.
눈물로 인해 당황스러웠던 순간, 모든 상황들이 힘에 부쳐 변기에 앉아서 소리내어 울었던 순간 등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보이지 않는 등을 토닥거려 주기도 하고, 웃픈 이야기에 웃기도 하면서, 공감되는 이야기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에 대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간만에 눈물이 있었던 내 삶의 부분들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내 감정을 표현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니 다행스러운 것 아닐까? 웃고 싶을때 마음껏 웃고, 울고 싶을 때 속시원하게 울기도 하면서 부딫혀 나가는 것이 인생이지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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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같이 연구하던 교수님이 쓴 눈물에 관한 책을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번역 원고를 출판사에 출판의뢰를 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번역 원고에 들어있던 내용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재연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원서의 내용이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번역한 뒤로 눈물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눈물에 관한 책은 물론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출간된 <예쁘게 울긴 글렀다>도 당연히 제 관심의 대상이 된 책입니다.
책 표지를 보면, ‘눈물 수집가가 들려주는 달콤 쌉싸름한 35가지 눈물 이야기’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눈물이 많은 작가가 자신은 물론 주변에 있는 분들까지 포함하여 살아오면서 눈물을 흘렸던 수많은 사연 가운데 고르고 고른 35가지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작가님은 눈물을 흘린 사연을 수집하고 계시고, 저는 그런 자료들을 수집하는 셈입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옛날 로마와 이집트에서는 눈물을 모으는 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만, 저는 그 눈물단지를 요르단 암만에 있는 국립고고학 박물관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이 책의 작가는 눈물단지가 로마나 이집트에서 사용되었다고 적었습니다만, 눈물단지를 사용한 사람들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로 거슬러 올라가고 성서에도 기록이 나온다고 합니다. 고대 유대사람들은 재난을 당했거나 마음이 상했을 때 흐르는 눈물을 우리나 질그릇으로 만든 그릇에 모아두었다가 죽으면 무덤에 같이 묻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랬던 눈물단지가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유대사람들이 로마로 가져가면서 로마제국에서도 유행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눈물과 관련한 서른다섯 건의 상황을 1장 천 마디 말이 모여 한 방울 눈물이 된다, 2장 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 3장 예쁘게 웅ㄹ긴 글렀다, 4장 눈물에 눈물만 한 위로가 없다 등 4개의 제목 아래 나누어놓았습니다. 그런데 큰 제목에 들어간 글 내용이 크게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경우도 없지 않은 듯합니다. 특히 글 가운데는 눈물을 흘리거나 우는 것과는 무관한 사건도 없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 역시 젊어서까지는 감정이 풍부한(?) 편이었습니다. 영화를 볼 때나 소설을 읽을 때, 슬프거나 감동을 받았을 때 눈물이 북받쳐 어쩔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나이가 든 지금은 그동안 쏟아낸 눈물로 눈물샘이 말라버렸는지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드물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편입니다. 감정이 메말라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이 책을 쓴 작가님은 적어도 눈물에 관한한 대책이 없는 분 같습니다. 심지어는 결혼까지도 남자친구가 우는 것을 보면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하니, 타인의 눈물에 까지도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되시는 분은 절대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신다고 합니다. 그럼 작가분이 보신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을까요?
책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소위 영아에게 일어나는 특별한 울음으로 퍼플 크라잉(PURPLE crying)이라는 현상입니다. 제 큰아이가 어렸을 적에 한밤중에 깨어 두어 시간을 대차게 울어대는 바람에 곤혹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던 것이 아기가 뭔가 불행한 일을 미리 알리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퍼플 크라잉은 생애 만 2개월 전후는 신생아가 가장 많이 우는 시기(Peak of Crying)로, 그 울음이 예측하기 어렵고 이유를 알 수 없으며(Unexpected), 아무리 해도 달래지지 않는데(Resists Soothing), 이때 아기는 통증이 있는 듯 고통스러운 표정으로(Pain-like Face), 최대 5`6시간 계속해서 울고(Long Lasting), 특히 저녁시간에 더 자주 그런다(Evening)는 뜻이라고 합니다. 제 아이는 저녁이 아니라 새벽녘에 깨어 울어대는 바람에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야 답을 찾았으니 눈물을 찾아가는 책읽기에서 덤을 챙긴 기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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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눈물 많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한 울보 친구를 만났다. 82년생 김가혜 ㅎ <<예쁘게 울긴 글렀다>>의 작가다. 눈물점이 있다는 그녀는 울기도 잘 울고 주변 사람들의 '눈물받이' 역할도 잘 하고 있다고 책날개에 자랑스럽게(!) 적어뒀다. 4장의 제목처럼 눈물엔 눈물이 최고의 처방인 까닭이겠지.
얼마나 우는 일이 많았으면 예쁘게 울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나는 그저... 중2병 걸린 아이처럼 눈물 셀카는 여러 장 찍어봤다. 울면 글쎄... 코가 새빨개져서 예쁨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기에 작가처럼 원대한 꿈은 꾸지 않았지만 말이다.
책에는 작가 말고도 많은 울보들이 나온다. 남자도 있고 어린이도 있고, 나이 많은 이도 제법 등장한다. 웃긴데 이상하게 눈물 나는 에피소드도 있고... 이야기 자체로 너무 마음 아파 덩달아 울게 되는 이야기도 있고...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일인데 그저 내 경우가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자꾸 울었다.
감사하다고 말해도 될까. 나 혼자 울지 않는 세상이라 다행이라고 적어도 되는 걸까. 울어도 괜찮다고... 많이 울어도 그런 사람 많다고 말해주는 책이라 좋았다. 잘못해놓고 운다고 욕을 먹었던 날도 있었는데... 결혼하고도 많이 울었는데... 요새는 어째 눈물이 말랐는지 울고 싶어도 잘 나오지 않았더랬다. 그냥 이래저래 무기력했는데 병원에도 가보라고 가볍게 말해줘서 조만간 마음 감기를 낫게 해준다는 병원에 갈 예정이다. 우선은 검색만 했다.
눈물 많은 이들에게, 울고 싶어도 한 방울 흘리기가 어려운 이들에게 모두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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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참 눈물이 많아도 너무 많다. 길 가다가도 어제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나서 주체 못 할 정도로 눈물을 쏟기도 하고 억울할 상황이 생겨도 억울함을 푸는 말보다는 눈물이 먼저 쏟아져서 결국은 그 상황이 그냥 흐지부지 되는 경우도 많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한 단어에 꽂혀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운 적도 많은데 왜 이렇게 눈물샘이 얕아서 시도 때도 없이 철철 흘러넘치는 걸까. 이런 울보인 내게 딱 맞는 책을 읽었는데 <예쁘게 울긴 글렀다>가 바로 그것. <예쁘게 울긴 글렀다>에는 참으로 많은 울보들이 모여있는데, 처음에는 눈물이 주제이다 보니 조금 우울하거나 처지는 내용이 대부분이 아닐까? 했는데 작가의 글빨이 좋아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의 눈물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꽤나 많은 울보들의 대잔치가 벌어지는데 한편 한 편 미니 드라마를 보듯 재미나기도 하고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여하튼 재미나다. 누가 이렇게나 글을 야무지게 썼나.. 싶어 읽는 도중에 작가 이력을 살펴봤는데 나일론, 보그걸, 코스모폴리탄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고 하는데.. 어쩐지.. 글빨이 장난 아니더라니. 글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없어서 엉덩이 힘으로 버티고 있다고 하는데... 장난치시나... 이렇게 글 잘 써놓고 엉덩이의 힘이라니. 그럼.. 그 엉덩이 나 좀 빌려주소서. 나도 한번 힘 좀 받게.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셀 수 없이 많은 만큼 책에 실린 다양한 에피소드에서도 다양한 색깔의 눈물을 이야기하고 있다. 읽다 보면 나랑 비슷한 성향의 주인공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책장을 적시다가 완전 반대의 성격이라 뭐 이런 걸로 우는 거야? 라면서 나도 모르게 또 책장을 적시게 한다. 뭐야.. 책에다 최루 가스라도 묻힌 거야? 왜 이렇게 줄줄 흘러??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묘~하게 후련한 느낌이다. 내가 잘 울어서 더 공감을 잘 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분명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이야기가 실려있고 가독성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램을 전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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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론>, <보그 걸>, <코스모폴리탄>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고, 현재는 팟캐스트와 라디오에서 연애 상담을 하고 있는 작가 김가혜의 산문집. 화려해 보이는 매체에서 선망받는 직함을 달고 일했던 분이라서 책도 잔뜩 멋부린 내용이 아닐까 싶었는데, 예상과 달리 저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크고 작은 상처들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책이어서 공감도 많이 되고 감동적이었다. 저자는 녹록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저자의 부모는 저자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했다. 저자의 할머니와 고모가 저자를 대신 키웠고, 부모를 대신해 키워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말을 늘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늘 밝고 씩씩하게 행동했지만, 이따금 울음이 터지면 아무도 못 말렸다. 눈물이 많은 저자에게 할머니는 눈 아래 점이 눈물점이라서 그런 거라고 핀잔을 주었다. 눈 아래 점이 있으면 눈물이 많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저자는 펑펑 울고 나면 거울 앞에 서서 눈물점이 커졌는지 확인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토록 눈물이 많은 저자인데,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었던 적이 있다. 고3 때 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 갈 길이 막막했던 저자는 대학에서 주최하는 문예대회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대회 전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바라는 건 내가 대학에 가는 거라고, 대회를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저자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떼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를 마친 후 저자의 두 손에는 '입상'이라고 적힌 상장이 쥐어져 있었다. 기뻐야 했지만 기쁘지 않았다. 슬픈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잡지사에 취직한 저자는 휴일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공황이 찾아왔다. 심장이 가슴에서도 뛰고, 머리에서도 뛰고, 귀에서도 뛰었다. 샤워를 하다가, 영화를 보다가, 친구화 대화를 하다가도 이유 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생각 끝에 취재를 핑계로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는 공황 발작이라고 했다. 회사에서 일 잘하고 가정 일도 잘하는 슈퍼우먼이라는 건 타고나서 체력이 좋은 사람이면 모를까, 일반인에게는 가닿을 수 없는 경지라고 했다. 무조건 쉬라고도 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기 전에는 겁도 나고 비용이 부담되기도 했는데, 치료를 받은 후인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하다. 과거의 나쁜 기억들과 현재로 이어지는 증상들을 말할 때마다 저자는 매번 울고, 저자의 내면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도 함께 운다. 다 울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은 물론 몸까지 한결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흘린 눈물은 애써 그러모아봤자 몇 그램도 안 되겠지만, '어린아이'를 가둬놓느라 눌러둔 마음의 돌덩이는 치워졌다. 이 밖에도 진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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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신세대 감각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글의 내용은 제법 중후한 중년의 감성이 묻어 있다. 누구에게든 일어남직한 에피소드들이 그러나 쉽사리 떠올리지 못할 꺼리를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눈물이란 매개를 통해 감수성을 최대한 건드리며 독자로 하여금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네 꼭지로 나뉘어 있는데 첫째 꼭지에서는 눈물에 일반적 사연,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접할 사연들이 소개되어 있다.좀 심하다 싶을 만큼의 눈물 이야기를 적고 있다. 그렇게까지 눈물이 날까 싶으면서도 사실 나도 용기가 있었다면 그렇게 울 수도 있었겠다 싶은 이야기들이 묶여 있다. 두번째 꼭지에서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상처들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가슴을 콕콕 찌르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무심코 뱉은 말에 상처가 되는 이야기를 할 땐 나도 그렇겠구나 싶다. 세번째 꼭지에서는 주로 가족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꼭지에서 작가는 눈물의 힘을 이야기 한다. 눈물은 눈물로 위로 받는다며 따뜻한 위로를 이야기 하고 있다. 토닥토닥 이라는 단어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픈 자신을 위로해주는 주변의 작은 말과 행동들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앞에서 이야기하던 눈물과 상처들이 깨끗이 씻겨나는 따뜻함이 있다. 눈물은 카타르시스라고 한다. 실컷 울면 마음이 정해지고 어둡던 감정이 씻겨 나가 깨끗해지는 정화작용이다. 이책은 감정에 솔직해지자는 주제를 갖고 있다. 굳이 울음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하자 그리고 위로받자는 것이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우는 것이 위로가 된다고 정리한다. 주변의 시선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정화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라는 공감이 일었다. 잊고 지냈던 주변 사람의 눈물도 기억이 나고 메마른 내 눈물샘도 다시 뚫린 기분이다. 연습을 해서라도 잊었던 감성을 찾아야겠다. 돌아가신 엄마, 아버지 그리고 나를 키워진 수많은 슬픈 사연들을 곱씹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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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자마자 떠오른 물음표 & 놀라움. 앞서 나의 내재된 방랑벽을 건들였다면, 이번에는 감수성 편이다. 나는 첫인상이 강한 편이라 살면서 '피도 눈물도 없게 생겼다' 라는 말을 원래 그래, 나한테도 그래, 나쁜 사람 아니야.
지금도 기억하는, 직장 동료의 나에 대한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 나같은 사람이 또 있는 모양이다.
웃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듯이 눈물 역시 다양한 색깔과 농도를 가진다. 정확한 사실은 연유야 어찌 되었든 울고나면 후련하다는 점이다. 잘 우는 사람을 보면 신기해 하는 사람이 있다. 우는 사람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눈물에 공감할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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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젠가 유행하던 '눈물 셀카'가 급작스럽게 생각나는 책 제목이었다. <예쁘게 울긴 글렀다>라니. 굳이 따라해 본 적은 없지만 울면서 예쁘다는 건 배우들이 드라마 속에서 흘리는 눈물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왜 이렇게 단호하게 단정짓냐면, '예쁘게 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직접 겪어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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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거리를 걸어보지않은 사람은 진짜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대한민국 대표 수도꼭지 저자님의 눈물 포인트는 남다르다. 물론, 그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포인트도 다르다. 눈물에는 세 종류의 눈물이 있다고 한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되는 '기본 눈물', 냄새나 매운 연기에 반응하는 '반사 눈물', 특정 감정을 느꼈을 때 흘리는 '감정 눈물' 이상하게도 이 세 종류의 눈물을 다 흘리고 살아왔는데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나니 세 번째 감정 눈물이 너무 많아졌다. 혹자를 이를 두고 갱년기 초기 증세라 하는데.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건 당연하며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도 툭하며 눈물을 흘리는 나. 아무래도 눈물의 여왕 저자님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잊고. 사랑으로 받은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한다는 말처럼 눈물엔 눈물만 한 위로가 없다는 말에 완전 완전, 백퍼 공감한다. 내 다리가, 내 팔이 아파 본 사람은 타인의 불편한 다리와 팔의 고통을 이해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있다. 저자에게는 여섯 살이 많은 사촌 오빠가 있다. 나에겐 여섯 살이 많은 친오빠가 있다. 나도 저자님처럼 어려서부터 오빠보다 부당한 대우를 많이 받았다. 첫 째 어드밴티지, 아들 어드밴티지, 약골 어드밴티지, 우등생 어드밴티지까지. 이런 막강한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는 오빠는 내게 경쟁자였다. 내가 이겨내어야 하고 무너뜨려야 할 산같은 존재였다. 근데, 그런 오빠가 나의 진학문제에서는 전적으로 나의 편이였다. 마침 저자님의 오빠처럼. 자식이 많건 적건, 하나의 자식은 다른 형제에게 느끼는 열등감, 열패감, 소외감 - 뭐 이런 감정과 함께 쌍둥이처럼 항상 붙어다니는 미안함, 안쓰러움, 죄책감.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쉰이 넘은 오빠에게 아직도 엄마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은 그를 꼬집고, 오빠는 그 죄책감과 안쓰러움으로 내게 늘 미안해 한다.) 우는것 마저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있다. 이는 물론, 연기니깐 가능한거다. 슬픔앞에서 혹은 다른 이유앞에서 우는 것 마저 아름다운 이는 없다. 우는 것 마저 아름다울 이유도 없다. 세상을 살아가며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당연한것이다. 그 당연함이 굳이 예쁠 필요 있겠는가? 편하게 울자. 울고 싶을 때 편하게 울어야 예쁘게 웃을 수도 있으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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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변이 어둡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눈물을 흘리는 건 나 말고도 여럿인 듯하다. 하지만 끝을 향해 가고 있는 영화가 야속하기만 하다. 다시 조명이 들어오기 전에 눈물을 그쳐야만 한다. 사람들 앞에서 우는 건 여러모로 창피한 일이다.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건 어른답지 못한 태도라고 누차 배워왔다. 다른 이들로부터 지적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가 검열을 행한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물에 박하다. 울고 싶어도 울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최근 들어 우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우는 얼굴마저도 낯선 것은 아니다. 드라마, 영화 속 배우들은 울기도 참 예쁘게 울던데, 평범한 우리의 눈물은 때론 추하기까지 하다. 오만상을 찌푸린 채 눈물 콧물 다 쏟는 모습이 때로는 싫다. 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저자가 말하는 연습은 예쁘게 우는 방법을 의미하진 않았다. 일단 메마른 눈물을 되찾아야만 한다. 표출을 부끄럽게 여겨 제 안에 모든 걸 담고 사는 사람이 많은 탓일까. 현대인은 과거 같았으면 보기 드물었을 질병으로 시름시름 앓는 경우가 잦다. 암 같은 난치병은 물론이요, 주홍글씨마냥 찍히는 낙인이 두려워 쉬쉬하는 가운데서도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가족력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미세먼지 자욱한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죄일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울어 배출할 수 있는 것마저도 끌어안고 있는 탓인 거 같기도 하다. 모두가 경쟁상대라서, 나의 약점을 들키지 않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사람들은 울고 싶어도 울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울고 싶은지 웃고 싶은지도 헷갈리고야 만다. 참으로 서글픈 결과다. 책에서 만날 수 있었던 저자의 이야기는 반대로 너무 많은 눈물에 관한 게 대부분이었다.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형태의 가족을 우리는 ‘보편적’이라 칭한다. 저자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는 하나 평범함의 범주로부터 약간은 벗어난 삶을 살아왔다. 친척이라고는 하여도 부모와 함께하는 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정확히 눈물이 원인이 그거라 말할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만은 사실이지 싶었다. 길 한복판에서 쭈그리고 앉아 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울고 있음을 확인한 순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그럼서 동시에 울고 있는 장소에 대한 걱정도 하고는 한다. 의외의 장소에서 눈물을 흘린 저자의 경험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눈물을 선사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싶은 마음에 화장실 문 걸어 잠그고 울기 시작했는데, 그 울음소리가 공연을 방해할 줄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마음껏 울 수 있는 장소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왠지 내 편은 하나도 없는 곳에 외따로 떨어진 듯한 느낌과 흡사할 것 같았다. 눈물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만이 설명 가능한 법이다. 왜 우냐고 윽박지르는 사람, 이 또한 다 지나갈 거라며 근거 없는 위로를 건네는 사람 모두 당장 흐르는 눈물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질 못한다. 눈물 흘리는 모습이 왠지 보호해줘야만 할 거 같다며 다가온 사람도 시일이 흐르면 눈물에 지쳤다며 고개를 돌린다. 울어도 괜찮은 거 맞을까. 우는 사람은 부디 가만 놔두길. 혹 그게 불편하다면 짧고 굵게, “괜찮니?” 안부 묻듯 물어보는 수준이었으면 참 좋겠다. 이 대목에선 저자의 생각이 곧 나의 생각이었다. 나약? 아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것이다. 눈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본다. 아니, 굳이 의미를 묻거나 따지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 울고 있구나 여기는 태도, 차라리 무심한 시선이 나의 눈물을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내가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다면, 역으로 당신 또한 얼마든지 눈물과 친해질 수 있다. 좀 예쁘지 않으면 어떤가. 모두가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세상이라면 눈물 흘린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