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영구적인 지속이 가능한 방식,
즉 자연과 인간 사이에 물질적인 대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순환적’ 방식으로 갈 수 있는 길을 탐구하고,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 방향으로 전환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직선적인 성장, 진보를 끝없이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모순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순환적인 삶의 패턴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참다운 민주주의 성립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민중이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립과 자치의 조건, 그리고 동시에 사회구성원들 간의 평등한 관계이다.
경제성장은 자본주의적인 사회관계의 심화, 확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갈수록 민중의 자치, 자립의 역량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끝없이 확대 재생산한다.
오늘날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가난은 생활에 필요한 물자나 서비스의
절대적인 결핍 그 자체로 인한 궁핍이라기 보다는 생활의 질의 열악함에서 오는 고통일 가능성이 크다.
근대적인 산업의 최초의 그리고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공장이 석탄광산 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광산이 근대적인 산업혁명의 원형이라면, 근대화된 노동의 본질은 강재노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신기술의 발전으로 작업과정이 고도화, 기계화, 자동화, 단순화 됨에 따라서 근대적인 노동과정은
갈수록 노동자에게서 인간으로의 자유와 개성을 박탈하고 소외감을 깊게 한다.
산업사회가 강요하는 관료적 통제체계는 정부나 기업 경영자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확대재생산 논리에 의해 강제되고 심화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대기업의 총수라도 그가 인간적으로 행동 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좁을 수 밖에 없다.
우리사회에는 압축적 근대화가 만들어낸 많은 모순과 부작용들이 있다.
공빈 共貧과 안빈 安貧 은 전혀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가난이다.
계속하게 되면 환경도 파괴하고 인간성도 파괴할 수 밖에 없는 경제성장이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딜레마를 극복하려면 적당한 경제성장 같은 개념의 엄청난 지혜가 필요하다.
영국에서 가정 산업화된 형태로 전개되었던 농업이 토양열화 soil depleting 현상을 만들어서
약탈적인 시스템으로 발전을 하였다.
토양열화에 대비하기 위하여 일찍부터 서구 국가들은 식민지니 해외에서
비료를 들여오거나 합성비료를 개발해 왔다.
그러나 화학물질의 남용은 결국 토양아 황폐화를 초래한다.
광우병이 초식동물인 소에게 제 동포인 소의 사체를 원료로 동물성 사료가 주범이고,
영국에서는 동물성 사료를 금지한 결과, 광우병이 대폭 감소 추세를 나타냈다고 한다.
1인분의 쇠고기 생산을 위하여 20인분의 곡물이 투입이 되며,
1칼로리의 쇠고기를 생산하는데 보통 35칼로리의 석유가 소모가 된다.
그 결과로 전 세계적으로 10억의 비만인구 와 10억의 기아인구가 공존하는 비극적인 현실을 만들어 내었다.
세계 전역의 농지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육류 소비가 늘어가는 것과 병행해서 아까운 열대 우림이 끝없이 훼손되고,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토양오염 및 토지열화 현상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영이 아니다.
녹색혁명이란 농업의 합리화,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기계와 화학물질에 의한 농법을
세계의 농민사회에 강요하는 폭력적 메커니즘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농기계 산업과 화학산업은 번창하고, 농민들은 자립성을 잃고
자본과 국가 관료조직에 의존적으로 될 수 밖에 없었고,
근대적인 농업 때문에 남아도는 농촌인구는 불가피하게 도시로, 공장지대로 떠나게 되었다.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소위 선진화를 향한 사회적,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삶은 갈수록 수렁에 빠지고 있다.
출생, 양육, 교육, 취직, 주택, 의료, 노년, 사망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모든 단계,
모든 국면에서 우리의 삶은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위해 끊임없이 유린되거나 뒤틀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해왔던 방식, 즉 더 많은 성장 혹은 성장을 전제로 한 더 고른 배분에 의해서는
활로가 열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문명이 몰락 단계를 맞으면 파리, 런던, 뉴욕과 같은 거대도시로 사람들의 생활이 집중되고,
그 이 외의 지역에서는 황폐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까지 대지에 생사를 맡기고
생활해온 민중은 사라지고, 토지로부터 유리된 대도시에 기생하는 유랑만이 대량으로 발생을 한다.
이들 대도시의 주민이 된 사람들은 과거 농민생활을 마음으로부터 혐오를 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전통이라는 것은 없고,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경제적 동기뿐일 뿐이다.
그들은 무종교적, 실제적 인간으로 살아간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턱대고 여행을 좋아하고, 일찍이 문화가 번성했던 시대의 유품이나 예술품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구경을 하러 돌아 다닌다.
뿌리가 뽑혀진 사람들이 무턱대고 여행을 좋아한다는 이야기처럼,
한국의 중산층 대다수가 해외여행 중독증에 걸린 것 같다.
우리자신의 생활현실이 점점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황폐화되고, 우리의 인간관계가 삭막해지고,
우리 각자의 내면이 갈수록 공허해지고 있는 것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해외여행 나들이를 열망하는 심리가 저변에는
생활 현장으로부터 떠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욕망이 널리 있다는 것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다.
여행은 전통적으로 지금처럼 비행기나 자동차로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매우 느린 여행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내면적인 재탄생 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조건 많이 자주, 많이 다닌다고 해서 세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인간적인 각성 혹은 자기발견이
가능해 지는 것은 아니다.
자유협동사회란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 各得其所 (각득기소) 각자의 타고난 개성을
맘껏 발휘하는 사회이다.
사회 연대성, 공존성이 발휘가 되어 각자의 경제활동의 균형이 보장이 되는
各得其所 (각득기소) 이런 사회야 말로 자유와 빵 이 동시에 감추어진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부흥이 이 2가지 운동, 즉 협동조합운동과 민중교육운동을 통하여 달성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강제에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으로 나라 만들기에
참여하는 시민의식입니다.
우리가 선거도 잘해야 하지만, 실은 가장 필요한 것은 생활의 현장에서 각자가 처한 조건에 따라
자발적으로 연대하고 협동하고 끊임없이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세대를 이어간다는 것은 어미가 새끼를 낳고 그 세끼가 자립하도록
생존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동일하다.
그러나 요사이에 우리들은 아이를 낳은 때도 마찬가지이고 기를 때도 우리는 어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인터넷이나 안내서 등을 따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책을 가지고 기르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제도화된 친절’과 ‘자유인의 친절’ 은 차이가 있습니다.
복지국가는 국가적으로 환대를 제도화 하고, 친절함을 제도화 하고,
보살핌을 제도화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환대, 친절, 보살핌 같은 사람이 사람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행하는 선의의 행위입니다.
우리의 삶에 자유와 이웃이 결여가 되면 근본적으로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삶의 기술은 고통의 기술 art of suffering 이자 죽음의 기술 art of dying 이라고 했습니다.
평생 동안 스스로 아파 보지 않거나 아픈 사람을 돌본 경험이 없는 사함은 인간다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가 없다.
요즘은 죽을 때도 대게는 임종을 병원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죽음의 기술을 익히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답게 위엄 있게 죽을 줄 모르게 된다.
마지막 호흡이 끊어질 때까지 온갖 의료장비에 매달려 볼품없이 시체로 변해가는
처량한 존재들이 되어 버렸다.
죽어가는 과정은 질병이 아닌데 이렇게 되어 버렸다.
요즘 사람들은 인간다움을 포기하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죽음이라는 병과
싸워야 하는 줄로 잘못 알고 있다.
희망 hope 과 기대 expectation 을 구분해야 한다.
희망이란 자연의 선량함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에서 우러나옵니다.
반면에 기대는 인위적이고 계획하고, 통제한 것에 따른 결과에 대한 의존을 이야기 합니다.
책을 통해서 지혜롭고 맑은 정신을 지닌 선현들과 만나는 즐거움 때문에 독서를 했고,
그럼 독서를 통한 깨달음이나 앎을 아무 격식 없이 생활 속에서 주변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좋다.
사실 실생활에서나 책을 읽을 때나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 입니다.
벗이 있어서 멀리서 스스로 내게 찾아오니 그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 대로
공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움과 벗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누군가 자기의 심정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저파비 ??肥 인파출명 人?出名 "사람은 이름 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겸손’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 특별히 잘난 사람이 있고, 특별히 못난 사람이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들은 거의 다 기본적으로 비슷한 인간들 입니다.
배고프면 밥 먹고 싶고, 피곤하면 쉬고 싶고, 좋은 사람 만나면 반갑고,
싫은 사람 만나면 피하고 싶은 게 인간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루하루가 초열지옥 焦熱地獄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 근대문명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원자화된 개인의 논리에 기초하여 있어서
개인주의를 갈수록 강조하게 되어 사회적, 자연적 공동체를 전제로 하는 모든 인간관계를
체계적으로 파괴함으로써 결국 우리사회를 지옥으로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지옥이라는 게 결국 경이로움을 잃어 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으며,
친구와의 우정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든지, 환한 햇살 속에 익어가는 옥수수 밭을 보면서도 경이로운 감정이 솟아오르지 않는 게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태도는 크게 3가지로 나눈다고 합니다.
첫째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 외부를 끊임없이 개척하고 공격해서 확대해 나가는 서구적인 방식,
둘째 자신의 욕망을 조절함으로써 세상과 조화를 꾀하는 중국적인 방식,
셋째 세상은 원래 헛된 것이니 아예 현실에서 이탈을 하여 물러나려는 인도적인 방식이라고 합니다.
구원의 길은 인간의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마치 활을 쏠 때 온 마음을 집중하여 활시위를 당기는 것처럼
오직 사람의 마음 달여 있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에너지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남들과 더불어서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정신적인 습관 속에는 제일먼저 없애야 할 것으로
‘오랜 기간 동안의 침략과 약탈을 당했던 영향으로 강자숭배주의’ 가 있습니다.
현재 한일 영국에서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는 이유는
첫째, 고도성정 시대를 통과하는 동안에 대다수 대중이 소비주의 문화에 함몰되어
정치적인 의식이 미성숙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미디어의 영향입니다.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광고를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보수적인 수 밖에 없지만 이렇게 기성의 사회질서를 수호하기 하려는
집권층과 재벌들을 위하여 반역사적, 반민중성 은 유별난 것 같습니다.
언론은 일차적으로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고,
무엇보다 권력을 감사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재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불로소득자나 부유층에 합당한 세금을 물리는 것만으로도
국가재정이나 국민경제가 지금보다 상당히 호전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그 동안 많은 사회적인 모순, 계층 간 갈등과 대립 이런 것들을
경제성장을 통해 해소하거나 완화를 하였습니다.
파이를 크게 만들어 저소득층에게도 어느 정도 물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게 해서
불만들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450년 동안 유럽인들에 의해 주도되어온 근대 자본주의 문명은 놀랄만한 성장과 확장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해왔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1492년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납북 아메리카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등 실제로 서구인 마음대로 재배할 수 있었던
‘거대한 변경’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