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리뷰] 김남조의 시집 - 가슴들아 쉬자
"[리뷰] 김남조의 시집 - 가슴들아 쉬자" 내용보기
김남조 시인은 시력 70년이 훌쩍 넘은 원로시인이다. 1953년에 첫 시집을 낸 이래로 20권 가까운 시집을 펴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시인에 대해 잘 몰랐다. 국어 교과서를 통해 몇 편의 시를 접한 게 다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그러니까 내가 처음으로 읽는 김남조의 시집이다.  2012년에 초판 1쇄를 찍은 이 시집은 발간 당시를 기준으로, 시인의 오랜 시력을 결산하는(최종 결
"[리뷰] 김남조의 시집 - 가슴들아 쉬자" 내용보기

  김남조 시인은 시력 70년이 훌쩍 넘은 원로시인이다. 1953년에 첫 시집을 낸 이래로 20권 가까운 시집을 펴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시인에 대해 잘 몰랐다. 국어 교과서를 통해 몇 편의 시를 접한 게 다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그러니까 내가 처음으로 읽는 김남조의 시집이다.  2012년에 초판 1쇄를 찍은 이 시집은 발간 당시를 기준으로, 시인의 오랜 시력을 결산하는(최종 결산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성격을 띤 시집인 것 같다. 

  이 시집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마다 11편씩 모두 5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부를 나눈 (편집자의) 기준은 모르겠다. 내 멋대로의 생각에, 1, 2부는 연가풍의 시 위주로, 5부는 대표작(교과서를 통해 만난 시들이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 위주로 엮은 것 같은데. 3, 4부는 나라를 생각하는 시도 있고, 신앙 고백 계열의 시도 있고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 <편지> 전문 (1부, 16쪽)

 

  그대가 나에게 처음으로

  그대에게 내가 처음으로

  산자락 개울가 정갈한 외딴집에

  새 기름 새 심지로

  불 켜고 마주 보는 그들이고저

 

  그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그대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쓰다 헐어진 헌 기름등잔에

  알갱이 겨우 남은 성냥으로 불 켜고

  남루야 어쨌거나

  간절히 마주 앉은 그들이고저 - <무제.2> (1부, 24쪽)

 

  1

  사랑은 말하지 않는 말,

  아침해 단잠을 깨우듯

  눈부셔 못 견딘

  사랑 하나

  입술 없는 영혼 안에 집을 지어

  대문 중문 다 지나는

  맨 뒷방 병풍 너머

  숨어 사네

 

  옛 동양의 조각달과

  금빛 수실 두르는 별들처럼

  생각만이 깊고

  말하지 않는 말,

  사랑 하나

 

  2

  사랑을 말한 탓에

  천지간 불붙어 버리고

  그 벌이 시키는 대로

  세상 양 끝에 나뉘었었네

  한평생 다 저물어 하직 삼아 만났더니

  아아 천만 번 쏟아 붓고도

  진홍인 노을

 

  사랑은

  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답구나  -  <사랑의 말> 전문 (2부, 38~39쪽)

 

  언젠가 물어보리

 

  기쁘거나 슬프거나

  성한 날 병든 날에 

  꿈에도 생시에도

  영혼의 철삿줄 윙윙 울리는

  그대 생각,

  천 번 만 번 이상하여라

  다른 이는 모르는 이 메아리

  사시사철 내 한평생

  골수에 전화 오는

  그대 음성,

 

  언젠가 물어보리

  죽기 전에 단 한 번 물어보리

  그대 혹시

  나와 같았는지를  - <상사> (2부, 44쪽)

 

  무작위는 아니고, 괜찮다고 생각한 시편을 부마다 2편씩 골랐다.

  모두 그대를 생각하는 노래인데, 이 시에서 그대는 누구일까? 아무리 봐도 신앙의 대상(주님이나 성모)은 아니다. 이 4편의 '그대'를 동일인물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대'는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하면(사랑을 표현하면) 안 되는 존재다. 가난해도 좋으니 외딴 곳에서(사랑을 방해하는 게 없는 곳에서)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대'는 화자와 함께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화자는 '그대'가 자기의 편지를 와서 읽는다고 생각하며(시 '편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랜다. 여기에서 거리는 물리적 거리일까? 심리적 거리일까? 어느 경우든 사랑이되, 슬픈 사랑이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겨울 바다> 전문 (5부, 88~89쪽)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오직

  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 <설일> 전문 (5부, 102~103쪽)

 

  5부에는 이외에도 '정념의 기'라는 유명한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나는 <겨울 바다>와 <설일>은 정말 빼어난 시라고 생각한다. <겨울 바다>를 읽은 감동으로 혼자 영동선 기차를 타고 겨울 (동해)바다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나는 시인이 못돼서 추위만 느끼고 왔지만ㅠ <설일>은 새해의 다짐을 하는 시인데, 상투성을 벗어난 진심이 매우 감동적이다.

  이 두편의 시 모두 카톨릭적 세계관을 배경에 깔고 있다(시인은 카톨릭문인회 회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나는 솔직히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 시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두 시는 종교적 색채가 전혀 거부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좋은 종교시는 종교색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종교적 세계관이 드러나는 시라고 생각한다.

 

  3, 4부에서는 끌리는 시가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김남조의 시에는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사랑을 화두로 한 시가 많은 것 같다는 게 이 시집을 읽고난 소감이다. 아, 그런데, 사랑을 화두로 하지 않은 문학이 과연 얼마나 될까?

t*******1 2021.09.11. 신고 공감 5 댓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