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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굳이 시나 소설처럼 문학작품이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글 한 줄 쓰기는 어렵다. 그래서 페이스북의 담벼락 글이나 트위터의 기발한 140자 글을 읽다보면 주눅들 때도 많다. 하물며 기자들의 기사, 정치인들의 발표문, 변호사들의 변론글, 작가들의 작품, 고전작품을 생각하면 기가 질리기도 하다. 글 쓰기는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글 쓰기는 글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만이 가능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글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을까 생각해보자. 한글이 대중들에게 베포되기 전에는 중국의 한자가 조선 사회의 유일한 글이었다. 당연히 사대부와 양반들만이 글을 사용했고, 백성들은 글에서 소외된 채 착취받고 고통받기만 하였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도구가 없었다. 역사시간에 배운대로만 말하면, 세종대왕이 약670년 전에 백성들의 어려움을 '어엿비 너겨' 집현전 학자들과 한글을 만든 것이다. 이제 한국인들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누구나 글을 읽고 쓰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글을 써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글을 써보지 않았을까?
한국인이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초등학교 입학 전후에 시작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일기도 쓰고 작문도 한다. 그런데 국가가 주도하는 제도교육 12년과 대학교육 4년을 경과해서도 사람들은 글 쓰기를 두려워 한다. 교과서나 교육 취지만 고려하면 중학교만 나왔어도 글쓰기는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중졸이든 고졸이든 대졸이든 모두가 어려워 한다. 왜 그럴까?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제도교육 12년이나 대학교육 4년 동안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쉽고 자유롭게 펼치고 서로 나누고 배우도록 하지 않고 학교가 제도교육의 틀에 맞추어 가르치기 때문이다. 특히 성적 위주, 시험 위주, 대학입시 위주로 이루어지는 학교 교육은 아이들에게서 말과 글을 빼앗아 갔다. 심지어 논술마저도 대학입시에 맞추어 성적이 나올 수 있는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니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SNS상에서 자주 목격하는 욕설과 비방은 무섭기까지 하다. 이념을 떠나 정치적 적대관계를 떠나 세상과 사람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 테두리에 가두어 놓고 배설하는 욕설은 민망하기 그지 없다.
두번째는 글쓰기의 상품화와 독점화다. 이놈의 자본주의 사회는 무엇이든지 상품화한다. 무엇이든지 상품가치를 매기고 그에 따라 차별을 부추긴다. 소위 전문가라는 작자들이 이상한 기준과 수준을 설정해 놓고 자신들의 잣대에 맞으면 상품화를 부추기고 조금이라도 다르면 폄하하고 비하한다. 글의 내용과 진심을 보려하지 않고 6하 원칙이니 문법과 상징을 들이댄다. 그렇게 글쓰기를 밥벌이로 하는 자들이 글쓰기를 독점해 버렸다. 언론이나 인터넷 포탈, 논문지나 잡지마저도 엘리트나 유명인들의 글만을 모아놓고 마치 그런 글들이 최고인양 장벽을 친다. 그렇기 때문에 중학교 출신도, 대학 출신도 글쓰기에 주눅이 들고, 16년이라는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입한 다음에도 여기 저기를 찾아다니면서 글쓰기 강좌에 다시 등록한다. 이게 무슨 낭비인지... 그런 사회적인 현실은 글쓰기가 학력이나 직업, 자산이나 소득에 따라 자연스럽게 차별이 이루어진다.
한국사회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이 글쓰기라는 표현행위도 분위기 상으로는 많이 대중화되었다. 글쓰기라는 행위가 보편화 되었다기 보다 '글쓰기에 특별한 계급이나 자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보편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신, 그런 보편화는 기존 구조에 의해 또 다른 상품화를 가져온다. 유명인들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떻게 글을 잘 쓰게 되었는지, 어떻게 글을 쓸 것인지에 대한 교재나 강습이 광범위하게 생겨났다. 하지만 스스로의 필요성과 자질을 토대로 자신의 글쓰기를 유도하지 않는 대부분의 글쓰기 교재나 교양강좌는 '상품화' 내지 '밥벌이'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런 현실에서 이 책은 의미가 크다. 저자가 애기하는 글쓰기는 우리가 기억하는 '작문'이나 '논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존 학계나 전문가가 말하는 '작문법' 같은 것이 애초에 필요 없다. 저자는 보통 사람들처럼 시가 뭔지도 모르고 시인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하여 오랫동안 좌충우돌하던 자신의 경험에서부터 청소년, 농민,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글쓰기 수업을 하며 마주쳤던 어려움을 정감 있는 말투로 풀어놓는다. ‘글’이라고 하면 왠지 어렵게 느껴진다. ‘말’은 곧잘 하면서도 ‘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글이라면 말과 달리 뭔가 좀 그럴듯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바로 이런 생각을 깨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글을 쓰려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 쓰고 싶은 이야기는 넘치는데 펜을 잡으면 손가락이 딱 굳어버리는 사람,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글쓰기냐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들의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줄 ‘속 시원한 글쓰기’의 세계를 제시한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의 핵심은 "자신을, 꾸미지 말고, 거침없이 토해내라"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내 행동, 내 생각, 내 모습을 그대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멋지게 꾸미고 싶은 마음에, 잘 알지도 못하는 성인군자나 유명학자의 말을 인용하거나 이런저런 비유를 끌어와 표현을 부풀리곤 한다. 내가 진짜로 느낀 것도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써내려간다. 멋지게 꾸미고 싶은 마음은 그만 내려놓고,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에 집중하자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자기가 아니면 그 누구도 쓸 수 없는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다. 지구 위에서 사는 수 십억 사람 중에서 유일한 것은 내 생각과 느낌일 뿐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저자가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만난 수강생들의 글과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된 평범한 사람들의 글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화려한 글이 아니라 그 자신이 아니었으면 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솔직하게 적어낸 이런 글들을 보고 있으면 삶에서 우러나오는 글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더불어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긴다. 즉 ‘글이라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내 속에 있는 얘기를 옆의 친구에게 말하듯 그대로 글로 옮겨 보라.’ 이것이 글쓰기와 친해지는 첫 걸음이다. "‘말과 달리 뭔가 좀 그럴듯해야 하고, 입에서 제멋대로 나오는 소리가 아닌 고상한 단어를 골라 써야 할 것 같다. 형식도 있어야 하고, 문법도 알아야 글을 쓰는 거 아닌가.’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여기선 이 말을 지겹도록 되풀이해 ‘씹을’ 것이다. 이 생각을 깨야 글쓰기는 골치 아프고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걸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p.12)
그리고 "글을 쓸 때는 솔직하게, 쓰고 나선 뻔뻔하게"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솔직하게 글을 쓰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 남에게 보여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로 썼는데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그 글은 제 생명을 잃는다. 물론 남에게 보이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조금은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처음 한두 번이 어렵지 한번 뻔뻔해지면 그다음에는 쉽다는 것이다.
우선 주변 사람들에게 쓴 글을 보여주고 반응을 들어보라. 그냥 ‘좋네’ 하고 마는 사람들은 아마 제대로 안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냥 글만 휙 던져주지 말고, 쓴 글을 직접 읽어줘라. 옆에서 속삭이듯 읽다보면 스스로 입에 걸리는 부분도 나올 것이고 자기한테는 문제가 없지만 듣는 사람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대목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부분을 고쳐나가면 한결 좋은 글이 된다. 그래서 SNS에 올려 지인들의 생각과 의견을 겸허하게 듣거나, 서로 멘토가 될 수 있는 한 두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글쓰기 선생으로서 저자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수업이나 주변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좋은 글을 신문사나 잡지사에 보내도록 끊임없이 독려한다. 일단 활자로 찍혀 나온 자기의 글을 경험하게 되면, 주변에서 말려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글은 소통하려고 만들었다. 감추고 있으면 글이 제 생명을 잃는다. 남에게 보이는 일이 쉽지는 않다. 제 속살을 보이는 일과 같은데 어찌 쉽겠는가. 하지만 세상에 드러내야 글쓰기가 왜 즐겁고, 행복한지를 알 수 있다. 글쓰기의 참맛은 소통에 있다. 나는 뻔뻔함이 지나칠 정도다. 글 한 꼭지를 쓰면 온갖 호들갑을 떨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여준다. 글 좀 쓰는 사람이 있으면 발목을 붙들고 귀찮게 한다."(p.64)
책의 후반부에서는 기사 쓰는 요령, 인터뷰하는 법 등을 소개한다. 시민기자나 르포작가가 될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샛길로 새고, 이렇다 할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마냥 침묵만 지키고 있었던 인터뷰도 멋진 취재의 일부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저자의 경험담과 그를 바탕으로 한 기사문으로 확인하고 나면, 독자들도 '나도 한번 해볼까?"라고 마음 먹을 수 있다.
이 책 속에 담겨있는 평범한 이들의 글은 몇 번이나 내 마음을 흔들었다. 유명학자나 기자들이 쓴 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려운 글, 현란한 글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말해주는 글, 우리의 마음을 대시하는 글이 더 감동적인 이유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시 한 편이 있다. 노동자 시인인 박노해씨의 <이불을 꿰매면서>가 내 양심을 계속 찔렀다.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속옷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 달라 물 달라 옷 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 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 근로자였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표창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 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족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짜꺼기를 배설해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 2012년 9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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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시중의 흔한 '작법' 뭐 이런 부류의 책으로 생각했다. 읽을수록, '글쓰기'를 빙자한(^^) 비판적 수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끝에 가서는 다시 그래도 역시 글쓰기 책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결국 글쓰기가 삶, 그리고 사회를 떠나서 될 수 없기 때문이리라.('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쓰고 싶었는데, '것'을 빼라는 책 내용이 떠올라서 고쳐 보았다.^^) 글을 쓰는 사람이 갈수록 귀해지고, 더구나 잘 쓰는 사람이 보배같아지는 세상이 되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일상화되고 있으니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겠지. 있는 척, 아는 척 하는 글이 대접받는다. 나도 그랬고, 앞으로도 어느 정도 그러면서, 어깨와 목에 힘을 주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결국 겸손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 인정받게 되는 것은, 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원고지 잔뜩 그려놓고, 빨간펜으로 첨삭해가며 구체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어서 좋았다. 쉬운 글이지만 무겁게 다가오는 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글을 그래도 한번쯤은 쓰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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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한 글쓰기
쓸 때는 솔직하게,쓰고 나선 뻔뻔하게,내 삶을 바꾸는 글쓰기 교실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글이라는 걸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글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신기하다. 그리고 한번 그 맛을 알게되니 글이라는 걸 자꾸 자꾸 끄적이게 된다. 그런데 또 어느 순간 글이라는 걸 쓰기가 아주 부담스럽게만 느껴지고 한줄쓰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속시원한 글쓰기 이 책을 읽다보니 아마 글에 힘이 들어가서 그런 것 같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더 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뭔가를 꾸미고 있고. 그런 것들이 글쓰는 것 자체를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끼게 만들어버렸다. 이 책을통해 글쓰기란 어떻게 써야하는 것인지를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내가 찾은 방법은 나만의 소리로 솔직하게 꾸밈없이 쓰는 것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잘썼다라고 감탄이 나온 글이라도 그 안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진솔함이 없으면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고 한다.
"'내가 쓰는 게 글이 되겠나?'
띄어쓰기, 표준어, 맞춤법 그런 것들에 얽매이기보다 내 이야기를 적는 것이 글이라는 말이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책 속에서 소개되고 있는 예시글들은 글을 수려하게 잘쓰는 작가들의 글이 아니다. 일반인들. 평범한 고등학생, 포장마차를 하는 아줌마, 노동자들. 글을 쓰는 것과는 멀게만 보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글들은 저자가 왜 예시로 담고 있는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특히 포장마차를 운영하다 노상방뇨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아주머니의 속사정 글은 마음을 짠하게 하는 뭔가가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뭔가가 짠하게 느껴지는 진짜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라고 말한다. 또 하나 글쓰는 방법을 배우려면 좋은 작가의 좋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권을 필사해보는 것이라고 한다. 한권을 끝까지!!! 벌써부터 자신이 없어진다.
"굵어야 할 것이 있다 이 낙서가 '시'라고 불리고 전태일 문학상을 받고 시집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읽을면 읽을수록 느껴지는게 많은 문구다.
속 시원한 글쓰기를 한방에 확! 배우고 싶었는데...!! 역시 세상에 쉬운일은 하나도 없다. 글씨기란 정말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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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책을 펴보는 일은 즐겁다. 지금도 여전히 새책을 사고, 펴보는 일이 즐거운 것은 아직 내게 지식에 대한 갈망과 열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니 다행이다. 가끔은 책만 읽고 싶은 때가 있다. 예전에는 마음에 들지 않은 책은 서평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스스로 한 약속 때문에 읽은 책에 대해선 반드시 서평을 쓴다. 가끔 아주 형편없는 책만 빼고, 1년 동안 손에 잡은 책 대부분 후기를 남긴다. 사실 읽는 일은 즐겁고 쉬운데 쓰는 일은 여전히 고달프고 어렵다.
서평이기 때문에 책에 대해서 쓰면 된다. 소재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책 한 권을 읽고 뭔가를 쓰려고 앉으면 머릿속은 백지 상태가 된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직장생활에 치여 한달에 고작 읽는 책이 3~4권 남짓, 쓰는 서평도 그 정도지만 언제나 글쓰기는 어렵다. 1년 책읽기 중 글쓰기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보는 이유다. 글쓰기 책 저자들은 글쓰기 강사부터, 기자, 시인, 소설가 등 다양하다. 그 다양한 직종만큼이나 그들은 글쓰기에 대해 할말이 많다.
놀라운 건 그들도 여전히 글쓰기가 어렵고 힘들다고 자백하는 점이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글 잘쓰는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작가들은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쓴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잘 쓸 수 있다. 평범한 우리는 그래서 조급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바쁜 직장 생활 가운데서도 책 한 권을 읽고, 반드시 서평을 남기는 습관을 들이고자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결국 글쓰기도 연습이다. 꾸준히 하면 잘 쓰게 된다. 책과는 인연이 없던 내가 지금은 서평가 시늉을 하며 사는 건, 그래도 십 수년 책과 가까이 지내며 책 후기라도 끄적였기 때문이다.
<속 시원한 글쓰기>의 저자 오도엽은 노동자 시인이다. 그도 어릴 적부터 문학이나 학문, 글쓰기 소리를 들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용접, 도장 노동자로 변신한다. 어느날 화장실에서 힘을 쓰다가 벽에 낙서를 시작으로, 시를 쓰기 시작해 훗날 전태일 문학상을 받는다. 이 책은 노동자가 시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글쓰기 노하우를 담았다. 그 노하우란게 별게 아니다. 삶과 노동을 글로 쉽게 풀어내는 것이다. 어려운 말 하려하지 말고, 쉬운 말로 자신의 노동과 삶을 그려내면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줄기에 해당하는 글쓰기 노하우다.
저자는 글 잘 쓰는 비결로 자신이 행한대로, 생각한 그대로, 생긴 그대로, 곧 사실대로 쓰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노동을 글쓰기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노동은 정직하고 건강하다. 건강한 삶에서 건강한 글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글을 쓴다고 하면 모두 소설가나 시인처럼 멋지게 쓰려고만 한다. 글쓰기가 삶을 옮겨 놓는 일임에도 말이다. 글에 삶이 담기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우린 모두 노동자임에도 노동과 노동자라는 말에는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지 않는 잘못된 교육탓이다. 노동은 삶의 터전이다. 노동을 소외하니 글의 소재가 빈약해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노동을 소재로, 노동자를 인터뷰하며, 노동을 시로 옮긴 시인다운 말씀이다.
"글을 쓰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글을 쓰지 않아도 건강하게 산다. 노동을 하며 사람과 어울리는 게 세상살이다. 그러면 일하다 억울한 일이 생겨 세상에 알리고 싶을 때가 있을 거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하소연할 곳이 없으면 답답해 일기를 쓴다. 사랑에 빠지면 글 한 번 쓰지 않던 이도 연애편지를 쓸 생각을 한다. 이처럼 글은 책상 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바로 삶과 노동에서 나온다." 49쪽, <속시원한 글쓰기>, 오도엽
많은 글쓰기 책이 문장법과 기교를 가르치려 한다. 이 책은 그것을 몰라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이며, 그 소재를 풀어낼 수 있는 정직과 용기이다. 책을 꾸준히 읽으면 문장법과 기교는 터득이 된다. 문법적으로 잘못된 문장을 쓰는 일이 없다. 기교는 배워서 익힐 수 있다. 하지만, 문장법과 기교만으로 화장한 글은 읽을 맛이 없고, 재미도 없다. 좀 투박한 글이라도 소재가 신선하고 진실하면 읽을 맛이 난다. 가볍긴 하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글쓰기론이다.
요즘 많은 곳에서 글쓰기 공모전을 개최한다. 작년까지 연속 3년 모 국가기관에서 개최한 청렴글짓기 대회 일반부에 응모했다. 요즘 많은 회사가 청렴을 강조하다보니 국가 기관에서 개최하는 청렴글짓기 대회 수상은 곧 회사 청렴도 점수와 직결됐던 거다. 그러니 회사에선 많은 직원이 응모하길 바라는 눈치고 말이다. 3년 동안의 노력끝에 작년에 일반부 장려상을 받았다. 그 상을 수상하면서 상금과 특전 등 두둑한 보너스까지 챙겼다.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얻은 작은 결실이다.
이 책에는 소설가 김별아가 쓴 에세이 한 편이 인용 돼 있다. 제목이 `에세이 공모전 입선 비결'이다. 이 글에서 김별아는 공모전의 입상 비결을 몇 문장으로 요약한다. `용례는 자신의 눈길이 닿는 곳, 반경 50미터 안에서 찾으라' `잘 쓴 글보다는 좋은 글이 오랜 감동을 불러오니 경험에서 건져올린 진정성을 담으라' 내가 삼수끝에 장려상이라도 받을 수 있었던 걸 되짚어 보니, 공모전의 심사위원 출신인 김별아의 비결에 수긍이 간다. 예화를 가져올 때,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불러오고 일상에서 감동을 가져오려 노력했던 것 말이다.
모든 글쓰기 책에는 글쓰기에 관한 특별한 처방이 없다. 허나, 그러한 처방을 받는다 해도 자신의 글은 곧바로 나아질 순 없다. 글쓰기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해도 글이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세상에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유명해지는 작가들이 넘쳐날 게다. 이 책의 저자는 노동처럼 정직하고, 땀이 깃든 글을 쓰라고 가르친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글은 곧 개성이며 각기 다른 개인의 인생이다. 누구나 훌륭한 소설을 읽으면 그처럼 쓰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 높고 높은 목표를 정해두고, 글쓰기를 갈고 닦아야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게다. 하지만, 글쓰기에서 이상도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것 아닐까? 그래서 난 기본적인 문장법을 익힌 후엔 스스로 자신이 지향하는 글쓰기를 갈고 닦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갈고 닦는 길은 많다. 가장 쉬운 것이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기는 일이다. 지속적인 서평쓰기는 책을 요약하는 능력을 키우게 한다. 어떤 책을 읽고도 요약하지 못하면 내 지식으로 온전히 소화된게 아니다. 서평쓰기를 통해, 내 생각을 보태어 책을 평가할 수 있는 실력이 는다. 좋은 점을 칭찬하고 부족한 점을 비평한다. 영화를 본 후, 영화평을 남기는 것도 좋다. 서평쓰기가 문장을 읽고 글로 풀이하는 것이라면, 영화평은 영상을 보고 느낀점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 두가지만 꾸준히 해도, 글쓰기 연습이 가능하다. 생각해보니, 지난 5년 동안 내가 쓴 글이 주로 서평과 영화평이었다. 그것도 한달에 겨우 3~4 편을 썼다. 단, 한달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했을 뿐이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이제 서평과 영화평을 시작으로 칼럼 쓰기로 글쓰기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 물론 목표는 내년부터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서평과 영화평도 마찬가지로 처음 쓸 때 두렵고 어려웠다. 처음엔 모두가 형편없이 부족한 법이다. 그렇게 차분히 쓰다보면, 새로운 글쓰기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게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마음 가짐으로 읽고 쓰자. 글쓰기는 오랜 수양임이 분명하다.
2012.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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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치유다.' 이 책과 잘 어울리는 문장이다.
물음표를 던져야 자신의 생각을 올바로 풀어낼 수 있다. 회사의 부당함이 무엇인지 당연히 설명해야 한다. 그 부당함에 맞서 파업을 했다.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한 것은 당연한 권리하고 행각했기 때문이다. "왜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자신이 아는 당연함도 물어야 한다. 생략 이처럼 하나씩 물음을 던지며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자신의 삶에 물음표를 던지면 억울함의 진짜이유를 알 수 있다 생략 자신과의 대화는 성찰이다. 묻고 답하며 글을 쓰면 한숨이나 체념은 사라진다. -p70~71
말을 글로 옮기듯 글 다듬기도 입으로 하는 게 좋다 - 한비야가. 쓰는 대표적 방법 문장을 나눌 수 있을 때까지 나누자 훌륭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적는 일보다 좋은 수업은 없다 - p164
글 잘쓰기 팁 1. 짦을 수록 좋다. 한문장은 30자 이내 두줄이내, 한문단은 3문장 이내 2. 없어도 되는 '것'이다. 3. 생각해 보지 말고 생각하다. 생각해 본다 -> 생각한다. 4. 반복되는 단어는 지우자 5. 문장의 시작은 깔끔하게 분명,왜냐하면,결국 같은 강조하는 말이나 그러나,그러므로 같은 접속사도 빼자. 6. 문장의 끝도 깔끔하게 ~고 한다. 빼자 7. 같을 필요 없다. ~ 인것 같다. 빼자 8. ~으로서, ~으로써 는 쓰지 말자. 9. 과거의 과거도 과거일뿐. 지난일을 말한다는 걸 독자에게 알렸다면 현재처럼 문장을 써도 상관없다. 세제에 너무 앍매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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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기술에 대한 책이 아니라 글쓰는 자세에 대한 책이다.
인터뷰에 대한 내용과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 기사쓰기 대목이 새로웠다. 인터뷰할 때 준비물인 연필, 수첩, 녹음기, 사진기에 밑줄 쫙 ㅋㅋ
쓸 때는 솔직하게
쓰고나선 뻔뻔하게
하루에 한줄이라도 글 쓰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나만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써서
책으로 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보충수업|아홉 가지만 고쳐도 글맛이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