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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의 이론』과 나
김미라
나는 참 정리정돈을 못한다. 물론 내 나름대로는 노력을 하는 편이지만 치운다고 치워놓아도 다른 이(대표적으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상태가 된다. 우선 정리할 때 나의 가장 큰 취약점은 분류를 못한다는 것이다. 정리할 땐 곰곰이 생각한 뒤 꽤 신중하게 분류하는 편인데도 필요할 땐 되려 못 찾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정리하는 이도 나요, 물건 쓸 사람도 나인데 남도 아닌 내가 세운 분류기준을 나중에는 기억 못하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이렇게 정리해놔도 끝내 못 찾는 물건들이 있는데 대부분 이사 간답시고 짐 정리하기 전까지 다시는 볼 수 없을 때가 많다. 내 물건들은 벤다이어그램 안에 들어가는 원소라든지 대차대조표에 들어가는 항목(나름 생각해서 넣은 비교항목이지만 비교도 참 구리게 한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면봉을 예로 들면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 간질간질 귀를 팔 때는 제 용도이지만 아이라인을 수정하거나 눈화장을 지울 때는 화장품 종류에 가깝다. 때로는 핸드폰이나 안경 등의 이음새부분을 닦을 때 면봉이 쓰이기도 하고 급할 때(?)는 나무 면봉을 부러뜨려 이쑤시개로 사용하기도 한다. 너무 용도가 다양한가? 그러나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방식으로 면봉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때문에 정확한 분류는 어려워지고 눈에 보이는 곳에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널어놓다보니 자연스레 내 주변은 지저분해진다. 이런 분류 불가능(?)한 요상한 습성 덕에 정리정돈 능력 역시 신통치 못하게 됐다. 사실 이렇게 분류를 못하는 나는 공부에도 소질은 없었다. 시험과목의 필기내용을 한참 정리하다가도 전체를 보지 못하고 소주제 정리에 집착하거나 처음에 너무 힘을 빼 머릿속 지도는 반토막짜리가 된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이가 공부도 잘하고 정리도 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대로 보고 감상하고 느끼는 것은 정말 자신 있는데! 이토록 정리정돈과 거리가 먼 내게『한국시의 이론』은 무척이나 친숙하지 않은 책이다. 냉철(?)한 책이라고나 할까. 제 1부 차유의 시학에서는 시의 네 가지 유형에 대해 서술되어있다. 이어 현대시의 구조와 은유, 환유 그리고 차유, 차유의 종류, 6·25 전쟁시의 언어적 전략-남·북 시의 이질성에 관한 저자의 객관적이면서도 독특한 관점들이 차근차근 서술되었다. 제 2부 우리 시의 논리에서는 전통 서정시를 비롯한 사회의 변화에 따른 시의 다양한 양상들을 담고 자생 전위의 중심축이었던 김지하 시인에 대한 다양한 담론도 서술되었다. 또한 낯선 감이 있는 바다시의 다양한 유형에 대해 재조명해 바다가 가진 미적 영역과 그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했다. 내 방 하나 치우고 정리정돈 하는 일도 벅찬데 내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우리 시의 역사와 그 유형, 정의에 대한 분명한 이야기들을 전달하기 위해 대체 얼마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을까 생각하면 도리질과 탄식이 절로 나온다. 나는 감히 어떤 범주에 무슨 유형의 시를 넣어야 할지도 모를 텐데! 그러나 이 책이 가지는 특별함은 교과서적인 이론서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다정한 문체이다. 시에 대한 애착과 치열한 고민이 묻어나 책을 읽는 일이 마치 저자와 1대1의 토론을 벌이며 독자 역시 고심하며 서정시를 파악해가는 느낌이 든다. 단순히 분류해놓은 것 그대로를 다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판단해가며 이 논의의 진위를 파악하라, 는 무언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리는 듯 했다. 책 속에는 매우 낯익은 시부터 알려지지 않았던 숨은 진주 같은 시들까지 모두 게재되어있다. 어쩌면 나는 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있고 그 치열한 시인의 삶, 작업의 고뇌, 시문단의 병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떠들어 대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소설에 비해서도 낮은 시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은 시 한 편이 가진 가치를 밑바닥까지 깎아내렸다(나도 크게 한몫 했다). 그러나 그 고뇌의 산물, 아름다움의 결정체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그것들을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고 마치 모두 하나의 서랍 속에 넣어 고이 간직하며 꺼내보려는 듯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시에 대한 철저한 분류의 정의 내리기를 해나간 저자의 작업은 문학을 동경하는 모든 이들에게 내린 은총과 같다고 생각한다. 시를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시에 대해 이토록 관심을 가지고 시를 어루만지고 그것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면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준 것일까. 저자의 서문에 나의 대학시절 근현대사와 시론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게 되어 더욱 반가웠다. 그분의 자료를 얻어 그 노고에 감사하는 저자의 마음 역시 반갑기 그지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사실 내 머릿속에는 물음이 끊이질 않았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서정시’, 그 좁디좁은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엄청난 양의 책으로 쓰여진 서정시가 맞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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