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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는 오스만제국의 통치와 헝가리의 통치를 받다가 다시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나라다. 1881년에 터키로부터 독립하여 루마니아 왕국이 성립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연합국에 가담했다가 동맹국에게 져 나라가 분할, 점령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0년 10월, 독일군이 진주하는 바람에 1941년 6월, 소련과의 전쟁에 억지로 참가하였다. 더더욱 불행하게도, 1944년 패전 이후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47년 12월에 왕정을 폐지하고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948년 2월에 공산당과 사회당이 합쳐져 루마니아 노동당이 만들어졌다. 1964년 4월부터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겠다고 선포하여 독자노선을 걸어갔다. 1965년, 루마니아 공산당으로 개칭하였고 차우셰스쿠라는 독재자가 나타나 국민을 아주 많이 괴롭혔다. 1989년 민주화운동 때 군대가 시위대와 합세하여 이 독재자를 체포, 사형에 처했다. 바코비아는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 나처럼 학교를 그만두었고, 신경쇠약증에 걸렸으며, 소도시에서 자라났기에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여러 직업을 전전했는데 나 역시 학교로 오기 전에는 출판사 직원, 기업체 홍보실 직원, 기업 사사편찬실 직원, 편집회사 직원 등을 해보았기에 공통분모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시집을 열심히 읽었다. 바코비아의 시는 음울하고 음산하고 음습하다. 봄노래조차도 밝지 않다. 노이로제 등이 제목에 많이 나오는데, 우울증과 신경쇠약증, 정신질환의 증세가 언뜻언뜻 보인다. 그리고, 시인은 색채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하다. 보색이나 원색을 즐겨 사용한다. 시세계가 중기로 후기로 가면서 크게 변화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뒤로 갈수록 도시적 이미지가 강해지고, 우울증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는 것 같다. 절망에서 낙심으로, 낙심으로 회의로, 회의에서 관조로 바뀌어 간다고 할까. 또한 뒤로 갈수록 자신의 내면세계 표현에서 타자와의 관계 설정으로 변화해 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가 전체적으로는 단조롭고 맥이 없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활동한 시인으로서 사회비판이나 체제비판을 표나게 하지 않아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아무튼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받은 행복한 시인이었다.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본인의 시가 다른 나라의 시인에게 영향을 준 바는 없는 것 같다. 아니, 6년 연하인 게오르크 트라클이 바코비아의 영향을 받은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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