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미래 기술에 대한 시나리오를 곁가지로 하고 그에 대한 정신의 변화를 본가지를 한 책인듯하다. 책의 중요한 요지는 미래의 생활양식, 로봇, 일, 증식, 교육, 과학, 테러, 인간본성 등의 변화상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동시에 우리의 정신은 어떻게 변화시킬것인가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책과 상관없는 듯도 하고 상관 있는 듯도 한 광고 카피 2가지가 떠올랐다. 그 하나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우리 생활양식을 바꿔놓지 않았던 20년 정도된 “사람들이 좋다 ㅇㅇ가 좋다(맥주회사 광고)”이고, 나머지는 정보기술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현재의 (엄마가 없어 울고 있는 애기가 LCD모니터 속에 나타난 엄마가 속삭이는 “엄마 여기 있네”(그래서 방긋 방긋 웃는, LCD모니터 광고)이다. 나는 앞의 카피에 더 정겹고, 미래의 아이들은 어쩌면 뒤의 카피가 실생활이 될 지도 모른다. 저자의 논지를 참조하면 아마도 그렇게 될거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앞의 카피가 도덕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고, 뒤의 카피가 도덕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저자의 충고는 다양한 세대가 공존해야 할 미래이기에 한번쯤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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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미래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를 생활 양식, 일, 과학, 교육 등의 분야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과학 기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설명하면서도 깊게 들어가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직업이 신경과학자이기 때문인지, 뇌에 관한 설명은 그 양이 좀 지나친 면이 있었다.
저자는 과학 기술이 가져올 변화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본성인 개인적 정체성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런 점에서 직접 밝히지는 않았으나 그녀는 기술옹호자, 기술공포자, 냉소주의자 중 기술공포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대로 될 것이라 확신하지는 않는다. 각 장의 제목을 '우리는 ~까?' 하는 식으로 달은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래를 예측하는 게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왜 지금 개인성 혹은 자아정체성이 사라질 것을 염려하는 것일까? 인류가 출현한 이래 과학 기술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개인성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미래를 주도할 기술인 정보 기술, 나노 기술, 생명 공학이 가져올 변화 때문이라 말한다. 정보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점점 가상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사람들도 느끼고 있는 바일 것이다. 우리는 PC 앞에 앉아 메신저로 대화를 하고 인터넷에 자신의 공간을 꾸미며 또다른 '현실'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또한 나노 기술과 생명 공학의 발전은 우리 몸의 일부(혹은 거의)를 인공 장기로 교체할 것이며, 심지어는 유전자조차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게 해 줄지도 모른다. 이런 기술들의 발전은 물론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바꿀 것이지만 우리의 생활이 점점 표준화되고 획일화되어 간다는 데 문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몸을 갖기 위해 표준화된 인공 장기를 사용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상 세계에서 인기 있는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런 기술들은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을 쉽게 바꿀 수 있게 해주므로 '나'에 대한 생각은 불안정해질 것이다. 또한 이런 기술이 가져올 편리함은 노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여, 사람들은 점점 수동적으로 변해갈 것이다.
저자와는 반대로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개인성을 강화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예로 들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있으며,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도 쉬어지고 있어 개인성이 존중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저자의 생각에 가깝다.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은 전체 인터넷 인구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물론 그 수는 점점 늘어나겠지만 그와 동시에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날 것이다. 전체 인류에게서 개인성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획일적이고 수동적으로 살아가게 되리라고 상상하면 끔찍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개인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획일적이고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세계에서 태어난 미래 세대들은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인간의 본성이라 여겨져 왔던 자아정체성이 영원히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단지, 개인성을 보존하고 찬양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문제라는 뜻일 것이다.
미래에도 개인의 정체성이 유지될지, 아니면 사라질지, 그것도 아니면 집단적인 정체성으로 변질될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런 대비 없이 미래를 맞이하기 보다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 책을 읽음으로써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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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과학은 우리의 삶과 정신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21세기에 무엇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느냐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이 우리의 가치관과 인간 정신의 내면생활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묻는 것이다. 새 시대의 과학기술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방식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방식까지 송두리째 바꿔 놓지 않을까. 그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어지럽고 복잡한 ‘지금 여기’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진입하도록 해 주는 휴대전화는 미래 생활양식의 전조다. 직접적인 실재를 버리고 대안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행태는 머지않아 사적인 공간으로까지 확산될 것이다. 미래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열려 있는 만큼이나 무한히 불안한 시간이다. 장생불사의 욕망과 우주 개발의 꿈이 실현되는 들뜬 기대의 한편에는 언제나, 영화 ‘터미네이터’가 그린대로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하기야 그만한 디스토피아는 환경 파괴를 막지 못해 인간이 결국 멸종하고 말 것이라는 종말론에 비하면 나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미래가 얼마나 찬란할지, 아니면 얼마나 큰 재앙으로 다가올 지 단정하긴 힘들다. 하지만 닥쳐올 100년, 200년 후의 시간에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꿈을 꿀지 예상해 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당신은 더는 현실이 지속적이고 독립적이며 ‘저 밖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주위의 세계는 당신의 생각에 따라 변할 것이다. 이제 당신은 ‘의지’만으로도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다. 당신의 세계는 고도로 쌍방향적이며 그런 만큼 고도로 불안정하다. 당신 몸의 경계를 확정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물리적인 ‘당신’이 끝나는 지점은 정확히 어디일까. 아마도 당신은 감각을 강화하고 근육의 힘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식받은 인공기관을 서너 개 지니고 있을 터이다. “당신과 외부세계 사이에, 당신과 당신의 소망 사이에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조차 모호한 현상이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은 이해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윤곽이 확실한 생각도 육체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마도 당신은 전혀 개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경험뿐이다! 당신은 이제 스크린 앞에 있다. 당신에겐 어떤 불편함도 없다. 모든 욕구는 충족되었다. 당신은 상상(想像)을, 이제껏 당신이 한 그 어떤 경험 못지않게 실제적으로 보이는 사이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당신의 생각과 그 경험들은 거의 구별할 수 없다. 새 기술들은 어쩌면 선사 시대를 부활시킬지도 모른다. 우리가 문화와 관련된 가치 체계를, 개인으로서 의미를 얻기 위한 수단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단순히 순간을 위해 동물로서 살았던 시대 말이다. 그 세계에는 자아감이 없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는 개념은 자아(에고)가 아닌가. 바로 그 소중한 자아가 새롭고 강력한 과학기술에 의해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제 대안적인 출구를 모색해야 할 때다. 개인적인 에고는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적절한 환경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 환경을 위해 설계하고 계획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합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훨씬 덜 위험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고 또한 포기해야 하는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전통적인 경계들이 허물어진다. 직장과 집, 일과 여가, 직장 생활과 은퇴 생활, 한 세대와 다음 세대 사이의 경계, 그리고 심지어 가족 내에서의 역할 사이의 경계도 허물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의 자아는 당연히 급격 해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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