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이라는 작가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차에 신간이 나왔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읽느냐 마느냐로 잠깐 고민 했었다. 하지만 제대로 해석이 되지 않는 제목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책을 사서 읽어 보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의 실망이다. 이래서 소설은 사 보는게 아니라 빌려 보는 건데..라는 본전 생각까지 날 정도였다. 작가는 거창하게 시간의 압제에 맞서는 남자 이야기라고 운을 떼지만 아내 몰래 옛 여자 만나 대낮에 어울리지 않게 시를 읊어대며 여관방에서 정사를 벌이는 일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라 할 수 있을까. 회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소설을 썼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또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시들은 왜 그리도 우스운지. 사춘기 소년이 이웃집 소녀를 짝사랑하며 잠 안자고 공책에 써내려가며 자신에 도취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듯한 인상만 준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사회비판은 왜 그리 해대는지? 도대체 마법 이야기도, 시도 사회 비판도 연애 얘기도 서로 어울리지가 않아 소설이 아주 우스꽝 스럽다. 제목조차도 웃긴다. '깨끗'이 아닌 '끼끗'이라니? 어디 사투리인가 아니면 작가가 지어낸 말인가. 꼭 그런 식으로 사람 눈을 끌어야 하나? 한 가지 더 불평을 하자면. 시간을 왜 이기려 드는지? 시간과 함께 늙어가는 것에, 추억이 바래지는 것에, 새로운 기억이 더해지는 것에 순응하며 살아가면 안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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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나는 복거일에 대한 그동안의 편견을 씻어냈다. 일단 나는 소수자를 위한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믿고 싶은 영어공용화에 대한 그의 의견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 자유주의자인가봐, 그런 생각을 하며, 왠지 문화 칼럼이 아닌, 그의 시와 소설들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이 책은 예상보다는 훨씬 가볍고 경쾌했다. 일단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장별로 끊어놓은 점도 맘에 들고, 딸이 쓴 마법의 성 동화가 중간중간 삽입되어 이 소설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었다. 굳이 결론 부분만 보자면, 실직한 중년 사내의 통속적 사랑 이야기라고 압축해서 시시하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은 작가의 세계관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 자신도 다소 과도하게 노출되었다고 인정하고 있는, 여러가지 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한 사회 현상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지적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나는 자기색이 강한 그의 글이 그의 매력이라는 생각도 한다. 중간중간 주인공의 입을 빌어 들려주는 서정적인 시들도 아름답다. 시도 읽고, 소설도 읽고, 동화도 읽을 수 있는 복거일의 이 책에 대해 나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문제의 핵심은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보다 남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훨씬 크다는 사실이었다. 사랑의 회계에서 그런 불균형은 자연스럽지 못했으므로, 무엇이 그의 부족한 사랑을 메워주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부족한 사랑을 짜증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았고, 그의 아내는 남편의 부족한 사랑을 자신의 사랑으로 메우려 했다. 그는 자신의 태도와 아내의 태도가 함께 못마땅했다. 사랑의 회계학은 참으로 가늠하기 어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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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서나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작가님의 이미지로 보아 상당히 어렵고 심오한(?) 내용을 예상하고 읽었는데... 어쩌면 너무 평범하고 너무 담담하게 받아 들여진 소설이다. 예전에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었을 때처럼... 사랑하던 여인과 헤어진 후 15년이 지난 남자의 심리가 과연 이런 것일까? 뭐 사람들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주인공 도린같은 남자라면 참 "끼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장 좋아한 부분은 도린의 딸인 효민이가 썼다는 이야기 부분이었다. 어른이 되어 아이의 시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힘들었을텐데...그래서인지 효민이의 글은 작가 말대로 어른스러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난 참 많은 부분에 밑줄을 쳐놨다.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많은 머랄까 화두라고 해야 할라나..매춘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나 우주의 생성과 소멸 등등 각인 유전자의 학설(?)은 너무나 흥미진진했고 남녀 간의 사랑은 삼십개월 이상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낭만적인 사랑이 식기 전에 동반자적인 사랑을 키워 나가야 남녀가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다는 주장도 그럴듯했다.
하지만 작가가 만들어 낸 한도린이란 인물은 결국 한 여인의 남편이자 그 여인의 아이의 아버지라는 점에서 나쁜 사람임이 분명하다. 평생 한때 사랑했던 여인을 잊지 못하고 가슴속에 품고 사니 말이다. 그리고 소설 끝부분에서 그 여인과 만나 서로간의 사랑을 확인까지 하니...나같은 보통 사람들 - 작가는 이것을 세상이라고 했지, 자신들의 세계는 마법이라 했고 - 에겐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다. 그렇담 평생 그 여인만을 사랑하며 혼자 살 것이지 왜 결혼을 했으며 왜 효민이 같이 마음 아픈 자식을 갖게 됐을까? 그리고 왜 그의 사랑이던 "끼끗한 들깨"씨는 딴 사람과 결혼을 했을까? 내 기억에 의하면 소설책 어느 부분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어 나같이 무식한 독자들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오래된 농담처럼 지금은 잘 모르지만 후에 다른 소설을 접하고 나면 꽤 좋은 소설이었구나..라는 느낌이 들 것같은 작품인 거 같다. [인상깊은구절] 결혼의 가치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른들을 만드는 것이다.(P.62) 낯선 사람 둘이 만나서 가정을 꾸미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거기서 제외되지. 현재 자매처럼 가까운 사람들까지...어쨌든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만나서 새로 가정을 꾸미면, 단숨에 높은 담이 솟는거라. 가까운 피붙이들까지 이내 그 담밖으로 밀려나고."(p.82) 그는 사람의 기억이 흔히 부정확하고 거의 언제나 변형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끔찍한 기억들을 흔히 잊는다. 덜 끔찍한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잊혀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사건에서 괴로운 면들보다는 즐거운 면들을 자주 회상한다. 그렇게 경험의 부분들을 선택적으로 잊거나 기억해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자신의 삶이 좀 더 가치있게 보이도록 경험의 모습을 담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물론 이 힘든 세상에서 살아나가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p.171) 자신의 이름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알 수 있다....자신의 참이름은 사람이 평생을 두고 씨름하는 수수께께다. (p.256) |
| 줄거리를 두줄로 요약하자면, 글쎄, 세상의 많은글들이 그러하거니와, 참 썰렁한 문구로 요약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두줄로 요약했을 때 세상의 상투성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글은 얼마나 될까? 결국 이 글도 중년남자의 옛사랑에 대한 그리움 혹은 미화라고 밖에 말해질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워낙 이리저리 가지가 많이 뻗어나간 글이라서 결국 옛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마지막 너댓장에서 다 나올뿐. 그것도 구체적이지 않고. 그저 주인공인 도린(시인이며 번역가인 평범한 중년의 남자)가 느끼는 감정이 글 여기 저기 줄줄 흘러내리고. 그게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다면, 그저 연애 소설로 포장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잠깐씩 보이는 '시간의 압제'나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거리의 여인들', '담의 두 얼굴'과 같은 소재들에 대한 단상이 이 글이 보여주고 싶은 의도일까. 겉으로 보여지는 이 글은 어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술술술 잘 읽혀지는 편에 가깝다. 만약 줄거리를 쏟아가는 일에 우선해서 읽는다면 도대체 옛사랑이 어떻게 되었다는 걸까 하는 의문을 해결하는데 책의 중반부까지를 할애햐여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도 주인공 시점에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정임이라는 여인을 '나의 끼끗한 들깨'로 풀어낸 것하며 글 안에서 주인공이 읊어대는 시들은 결국 신파조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이 신파를 비웃을 수만은 없는 것은 사는게 징징신파이기 때문일까. 중년 남자의 심리묘사에 내가 깜박 넘어갔기 때문일까. 내공없는 작금의 젊은 작가들이 같은 뻔하디 뻔한 소재를 다루었다면 이런 글이 나올 것인가. 나는 작가의 내공에 별을 준다. 소설 속의 사랑과 주인공의 태도에 별점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무의미할 것이므로. |
| 믿기 어려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아이가 썼다는 '은자나라의 마지막 마법사'의 노숙함이 그렇고, 결말부분에서 보여준 한때 선데이서울의 전매특허였으며 지금은 거의 시전되지 않는 순전한? 통속성이 그렇고, 또한 평생에 걸쳐 딱 한사람만 사랑할 수 있다는 명제가 그러하고, 무엇보다도 시간에 대한 압제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마법성의 존재가 미심쩍다. 연재소설이라는 한계가 (중간중간에 삽입된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사회전반에 대한 환부를 드러내놓고 작가의 의견을 피력한 대담들을 포함하여) 흡사 잘 맞지 않는 액자에 구겨넣은 연결이 안되는 여러장의 빛바랜 사진처럼 만들고 말았다. 기대치 않은 결말에 놀라고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은 고이 간직 하는 것으로만 아름답다고 여기는 내가 오히려 더 통속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름값에 걸맞는 재미는 얻지 못했으며 복거일의 새로 나온 소설(처럼 보이는 책)을 한권 읽었다는 가쁜함외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 나는 지금 차라리 늙은 두 연인을 마법성에 있는 타임머신에 태워서 15년 전으로 보내버리고 싶다. |
| 느낌은 기억의 지평너머에서 돌아올듯 돌아올듯 돌아오지 않았다." 소설속에서 주인공은 어느날 잠자리의 아내를 안으면서 그녀를 처음 안았을 때의 느낌을 불러오려고 하지만 끝내 그 느낌을 되돌릴 수 없었다. 복거일의 중편소설이다. "비명을 찾아서",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에 이어 나로서는 세번째가 되는 그의 책이다. 소설은 그의 옛애인 ''들께 荏을 쓰는 민정임" ( 지금은 비교적 유복한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있다.) 을 잊지못하는 오십초반의 번역가 한의 일상기록의 형식이다. 소설 속의 연인은 15년전에 실장과 직원으로 만나 연인으로 지내다 헤어져 유복한 집안의 처가 된 삼십대의 여자다. 경제적으론 비록 궁핍하긴 하나 주인공은 어느모로보나 인텔리전트하고, 정신적으로 안정적이며 사회적 문제들에 대하여는 극단을 피하는 되도록 가치중립적이되 자신만의 정도를 신봉하는 우리들 소시민의 전형이다. 이런 등장인물들을 가지고 소설이라는 것을, 그것도 신문연재소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무척 지난한 일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역량을 숭찬해야할 지 아니면 뻔뻔하다고 해야할 지 알수가 없다. 왜? 주인공은 별나게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독자자신에게 매우 근접해 있는 인물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처럼 열정적 사랑을 하고 아침 저녁으로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도망다니는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사실 우리네 사는 세상은 기나긴 일주일의 중간쯤 되는 날 한번 쯤 소주한병정도를 훔쳐먹고 일상의 권태를 이겨나가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집합이지 않은가. ''소설화된 평범을 읽는 맛''.(... 지리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중간 중간 신문연재소설이었다는 태생적 한계를 생각케 하는, 성적활동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은 요즈음 젊은 소설가들이 보면 피식 웃고야 말 정도라 페이지를 빨리 빨리 넘겨야 할 부분들도 적잖이 있다. (전혀 세련되지 못한 성활동 묘사... 작가는 완전 구닥다리다.) 소설의 말미 부분에선 예상치 못한 전개에 흠칫했다.. |
| 신문 연재 소설이었다는 태생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이 소설의 엉성한 구성은 '복거일'을 기억하는 내게 실망을 주었다. 다만 옛사랑에 대한 추억이라는 화두에 이끌려 끝까지 읽었다고나 할까. 이 소설은 네가지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다. 주인공 한도린의 아이 한효민이 썼다는 '은자 왕국의 마지막 마법사'라는 환타지동화가 주는 설화의 교훈과 주인공이 군데 군데 드러내는 자작시가 전해 주는 서정성, 출판 관계자들의 담화에서 보여지는 현사회에 대한 담론, 한도린의 정임에 대한 옛사랑의 기억이 그것이다. 물론 작가는 소설속 동화와 등장인물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묶으면서, 그것으로 미쳐 드러내지 못한 사랑에 대한 갈증을 시로 메꾸고 있다. 그리고 덧붙여 대사회적 발언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무리하게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삽입하고 있다. 이 소설이 어긋나는 지점은 그런 무리한 대사회적 담론의 등장이다. 15년만에 둘만의 해후를 맞은 연인들이 광주항쟁에 대한 기억으로 화두를 잡아간다는 것이 소설속의 리얼리티를 간단히 제압해 버린다는 것을 작가는 몰랐을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등장인물의 갑작스런 욕망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그런것일까....그렇게 자신이 없었을까....옛사랑에 대한 기억의 힘을 말하면서 그들의 해후에 지난 시절의 정치적 사건이나 둘 사이의 일상들을 떠올리게 해야만 지난날의 사랑의 감정이 떠오른다고 본 것 일까. 동화속에서, 그리고 소설속 주인공의 일상에서 그렇게 올곧이 살아있다고 말하던 옛사랑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왜 작가는 마지막 순간에 상식에도 못미치는 에피소드에 맡겨 버린 것일까.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의 대상인 정임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형상화하지 못했다는 것은 복거일이 관념으로 글을 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을 관념으로 말하려니 이런 어설픈 소설이 나온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사랑'이란 결코 지식과 관념과 추상으로는 온전히 말하는 것마저 기어이 실패한다는 것이다. |
| 고등학교 때 읽은 '비명을 찾아서' 이후로 처음 읽은 복거일의 소설인데, 두 소설이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다. 사실 '비명을 찾아서'는 너무나 놀랍고도(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코 쉽게 할수없는) 발상의 전환이 눈부신데, '나의 끼끗한 들깨'는 중년남자의 연애소설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중년남자..것도 번역일을 근근히 하는 무명시인의 '옛사랑과의 조우'가 이 소설의 줄기이다. 함의에 의한 이별이 아니라 일종의 버림을 받은 주인공 도린은 15년이 넘어서도 애틋한 마음을 계속 갖고 있다. 아내에 대한 신의도 있지만 첫사랑에 대한 신의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엄연히 괴리될 수 밖에 없는 두 신의 사이에 도린은 도덕적인 잣대나, 양심, 부끄러움 이런 별 흔들림없이 낭만에 젖는다. 물론 도린 자신 스스로가 첫사랑 정임에 대한 무언의 자존심 겨루기를 했을뿐이다. 도린의 심장이 약한 딸의 동화를 통해, 정임과 그는 첫사랑이라는 마법성안으로 들어간다. 물론 통속소설처럼 가볍지만은 않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생물학, 천문학 등에 의한 토론거리들은 많은 흥미를 자아낸다. 특히 '성의 경제학'에 대한 토론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공창제 논란과도 직결되어 더욱 눈길을 끈다. 이 소설이 몇년전 동아일보에 연재된 소설이기에 작가의 앞선 생각은 놀랍다. 그리고 촌스런 이름 '정임'을 한자뜻인 '끼끗한 들깨'로 풀어낸 것도 재미있다. 그렇지만 말미에 통속소설처럼 두 사람이 여관에 들고 관계를 갖는 장면은 아쉽다. 나는 뭔가 다른 결말을 기대한듯싶다. 몇억년후의 해후를 기약하며...결말을 맺는다. |
| 이 책은 신문의 소개와 아는 선배의 소개로 읽게 되었다. 평소 복거일씨의 산문집을 자주 읽는데, 소설은 처음이었다. 제목부터 아리송했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중년 남성이 시간에 이기기 위해 어떻게 버텨나가는 지를 풀어나가는 이야기 같았다. 작가는 시간에 저항하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동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담함을 느꼈다. 필자보다 나이도 많고, 세상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훨씬 많을,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지식인이 시간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특히 결론부분)를 했다는데 대해서 약간은 의문을 던져보고 싶다. 방법은 없을까? 시간에 저항하는...과연 작가의 부인이 이와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면, 작가는 그것도 타인(?)이 시간을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비참하다. 작가의 결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