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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작가의 책을 검색해보다가 이 책에 리뷰가 아직 없다는 것을 보고 속이 상해 과제물로 고생하여 아픈 손가락을 놀려 리뷰를 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의 첫 리뷰를 쓰게 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착한 마시우, 바보 마시우, 등신 마시우, 불쌍한 마시우, 순수한 마시우. 정선 아우라지의 자폐아 청년 시우가 사회의 뒷골목의 음습한 곳에 쓸려 다니게 되면서 겪는 가지가지의 인간군상과 삶의 희노애락을 엿보고,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소설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출판사 리뷰에 세태고발소설이라고도 했다)
레포트던 기안이던 글을 써보면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게 되는데 작가의 글이 바로 그러하다.(좌절~) 한국소설을 읽다보면 세대에 따라 확실히 획이 그어짐을 알 수있는데 요즘 우리 세대작가들의 책도 물론 재미있고 흡인력이 상당하지만, 이 작가 세대의 글맛과 내공을 느끼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아직 아이가 어려 요즘 초중고생들의 필독서에 대하여 잘 모르지만 작가의 책은 반드시 교과서에 올라야 한다고 옥상에서 외치고프다.(이미 올라있는데 뒷북치는거면 죄송)
모질기 짝이 없는 뒷골목에서 뒹굴어도 사라지지 않는 시우의 순수한 정서는 늘 깊은 울림을 준다. 장애아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때로 살짝 작위적인 감동을 원하는 글을 볼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살갗에 대고 문지르는 듯한 현실감으로 부대끼게 하면서도 마음을 꽝꽝 울리니 읽으면서 감동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원일님같은 작가가 천수를 누리시며 계속 좋은 작품을 계속 내주시길 빈다. 작가의 건강을 기원한다. (동생분 건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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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한 구절+ 나무도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타. 외로움은 병이 되지. 나무들은 함께 어울려 있어야 잘 자라. 햇빛을 더 많이 받으려고 경쟁적으로 키를 키우구.
울창한 산을 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아우라지 가는 길> 중에서 p125
1. 대학생 때 한 번도 문학기행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많이 아쉬웠다. 졸업 후에 틈만 나면 문학기행 때 친구들이 갔다던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가보지 못한 곳을 마음속에 그리곤 했다. 그중 한군데가 바로 ‘아우라지’다.
[산이 첩첩한 산골이었다. 강이 흘렀다. 두 갈래 내가 합쳐지는 여울목을 아우라지라 불렀다. 나루터가 있는 작은 마을이 싸릿골이었다. 우리 식구는 그 마을에서 살았다._<그늘 속의 사람들>중에서 p7]
이 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아우라지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학기행의 단골장소이기도 한, 아름다운 아우라지. 그 땅을 밟기 전에 아우라지에 관한 소설을 읽고 싶었다. 게다가 김원일 선생님의 소설이다. 언젠가 문인들 틈에서 어렴풋이 봤던 김원일 선생님이 내게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강하고, 우직하고, 힘 있어 보이던 그 얼굴. 그리고 그 외모만큼이나 강하고 힘 있는, 김원일의 문장들을 읽는 것이 좋았다. 고작 단편 몇 편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문학가의 힘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2. 《아우라지 가는 길》은 자폐 청년 마시우가 어린 시절 아우라지에서 보냈던 일들을 추억하면서 시작한다. 어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시우는 과거를 회상한다. 아버지의 말, 할머니와 집 나간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시우의 모든 유년의 기억은 아우라지에서 출발한다. 이 소설은 찬찬히 그렇게 시우의 과거를 보여주면서 현재의 사건을 진행한다. 시우가 어떻게 자랐고, 왜 아우라지를 떠나왔으며, 어떻게 조직폭력의 세계로 빠져들었는지 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시우의 과거와 맞물려 돌아간다. 말 그대로 현재형과 과거형의 조합이 김원일 특유의 단문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문장과 문장 사이를 연결하는 일이 어려웠다. 시우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3. 시우는 남들과 조금 다른 아이였다.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두세 개의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이 꼬여 대답하지 못했다. 흔히 그런 아이를 두고 사람들은 모자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시우는 결코 모자란 아이가 아니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시우의 남다른 점을 진심으로 사랑해주었고, 해서 시우가 늘 자연과 가깝게 지내도록 도와주었다. 꽃과 풀 이름, 곤충과 하늘의 움직임, 자연의 소리를 가르쳐주었고, 자연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주었다. 시우는 어떤 사건은 금방 잊어버리지만, 아버지의 그 가르침은 오래 오래 기억했다.
[“새끼 밴 두꺼비 암놈은 스스로 뱀에게 잡아먹히지. 날 잡아잡슈 하며, 뱀에게 대든단다. 그럼 뱀이 두꺼비를 낼름 먹어치우지. 그러면 뱀은 어미 두꺼비가 품은 독으로 죽게 돼. 그러면 두꺼비 배 속에 있던 새끼들이 뱀 뱃속에서 내장을 파먹으며 자란단다. 죽은 뱀 몸에서 통통하게 살찐 새끼들이 살아 나와.” 할머니 이야기는 무서웠다. 쌍침 형님은 두꺼비를 닮았다._<살아남기>중에서 p228]
[“시우야, 들풀의 생명력은 대단하단다. 환경의 어떤 악조건도 이겨내지. 일 년에 삼십 분 정도 여우비가 내리는 사막에서도 자라는 풀이 있어. 삶이 괴롭고 견디기 어려울 때, 나는 이 들풀을 보지. 그러면 풀이 내게 말한단다. ‘우리를 봐요. 우리를 보고 이겨내요. 고통 속에 생명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오.’ 그래서 나는 화사한 꽃보다 거친 땅에서 자라는 이런 꽃이 더 아름답게 보여.” 어느 가을 날, 아버지가 길섶에 돋은 강아지풀을 보고 말했다._<살아남기>중에서 p250]
그런 시우를 보면 처음에는 바보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그 누구라도 시우를 천사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시우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은 시우의 순수한 마음가짐을 늘 부러워한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고질병이 시우 앞에서는 그저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4. 시우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한다. 그토록 아우라지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기적인 조직폭력의 세계에서 그것은 배신과 같은 이야기다. 어떻게든 시우를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시우는 아우라지의 풍경을 상상한다.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여동생이 집을 나갔지만, 어쩌면 할머니는 살아계실지도 모른다고 희망한다.
[지금쯤 아우라지 일대는 온갖 꽃이 다투어 피었을 것이다. 꽃향기가 산과 들에 진동할 터이다. “내 귀에는 꽃들의 자랑스러운 외침이 들린다. ‘내가 이렇게 예쁜 꽃을 피웠어. 벌들아, 나비야, 나를 찾아오렴.’ 너희 귀에는 식물의 외침이 들리지 않니? 꽃들은 저마다 다른 향기를 가졌지. 인간들이 어둠 속에서 목소리로 서로를 분별하듯이, 꽃들은 향기로써 서로를 분별해.” 아버지가 말했다._<지하조직 식구들>중에서 p136]
시우의 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시냇물 소리를 상상하고 꽃향기를 그리게 된다.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며, 입가에 미소를 띤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자랑은 시우의 의식의 흐름에 있다. 처음에는 시우가 생각하는 대로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것이 황망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도 모르게 시우처럼 마음이 맑아져 그 흐름을 쫓는 것이 오히려 즐거운 마음 여행 같아진다. 또 나도 모르게 시우가 어서 아우라지로 돌아갔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토록 맑은 영혼이 지낼 곳은 오직 아우라지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5. 시우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중에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시우의 천사 같은 마음을 알아본 사람이다. 나는 그녀의 그런 마음에 감동했다. 사람을 볼 때,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바라보는 마음. 지금의 나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못할 것이기에, 한없이 부럽고 이따금 의뭉스럽기도 했다. 그녀는 어쩌면 시우가 마지막까지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한 명쯤은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결국 시우의 마지막은 행복하고 아름다웠다. 어떤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면 가끔 식 상하고 짜증날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소설만큼은 시우와 같은 마음으로 읽어나갔기에, 나는 간절히 해피엔딩을 바랐다. 그래서 참으로 다행이다.
6. 봄이 오면, 이 책을 들고 아우라지에 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우를 기억하겠지.
by pE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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