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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군목으로 계시는 어떤 목사님이 ‘울지마 톤즈’라는 영상을 절대 교회에서 보여주지 말라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 기독교지만 개신교와 가톨릭이 지니고 있는 서로 다른 교리적인 문제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가관이었다. 천주교 군신부로 계시는 신부님들이 군목들을 무시한다는 이유였다. 쉽게 얘기해 교회에서 천주교 영상을 틀어주면 자기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감히 반박을 할 수 없는 입장이라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하지 않았는데,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실제 그렇게 보는지 보지 않는 지는 내가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만약 그렇게 본다면 본인이 목회자로 부족한 점이 없는지 우선 자아성찰을 해야 하지 않나 싶고, 더불어 상대방이 그렇게 나오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사랑으로 이해해줘야 하는 것이 성직자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이 목사님뿐 아니라 내가 경험한 바로 현재 한국의 여러 목사님들 수준이 여기서 많이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정말 큰일이다. 이럴수록 더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해서 바른 목회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제가 나 싫어하니까, 나도 제 싫어할 거야.’ 하는 니편내편 식의 유치함은 정말 눈뜨고 봐주기가 힘들다.
사실 난 ‘울지마 톤즈’를 이야기로만 들었지 실제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목사님 때문에 그 영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울지마 톤즈’에 나오는 주인공 이태석신부가 쓴 이 책까지 보게 되었다. 물론 서로가 추구하는 종교성은 다르지만 정말 존경할만한 종교인이었다. 그 분의 행동과 자세는 개신교에 몸담고 있는 내게도 큰 귀감이 되고 여러 면에서 성직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러 문제가 공존하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어둠의 지역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남북이 분쟁 중이 수단이란 나라의 어느 오지, 그는 그곳을 자신의 선교지로 택했다. 지역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나누며 점점 자신을 그곳에 동화시켜 어려운 이웃을 돌보았던 사람. 예수를 닮으려고 그렇게도 노력했던 이가 바로 이태석 신부가 아닐까 싶다. 안타깝게도 50세도되지 못해 소천 했지만 그가 이 땅에 남긴 사랑의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리의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나가 있다. 이태석신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험한 아프리카 땅에 자원봉사로 선교사로 나간다. 그들도 이태석신부 못지않게 헌신으로 희생하며 지낸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적당히 알고 지내는 사람은 있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나 역시 귀로는 들었을지언정 쉽사리 그들이 겪는 그 고생스러움이 피부로 와 닿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감동적이고 눈물도 흘렸지만 읽고 난 후 나는 원래 아무렇지 않은 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런 내 자신을 보면 생각이 좁아 보인다. 마치 한 편의 영화, 드라마로 보고 공감으로만 끝난다면 이건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나 마찬가지다. 그저 저런 사람들을 보며 내 주어진 상황과 비교하며 위안을 얻고 삶을 다지는 모습을 취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런 마음보다 실제 내가 이 땅의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을까 심각히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내가 그런 의욕으로 아프리카나 세계의 오지로 가서 이태석신부처럼 봉사를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내가 서 있는 자리 혹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내 미래 상황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분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 철저하게 준비하고 나갔다. 완벽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음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굳의 결의와 각오 헌신의 마음, 상대방과 동화되고 이해할 수 있는 넓은 포용력. 신부나, 목사나, 스님이나 이런 면은 꼭 필요한 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북한을 가고 싶었다. 그곳에서 거기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위해 과연 무엇을 얼마나 준비했나. 생각할수록 부끄러워지고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이런 측면에서 이태석신부의 삶은 내게 다시금 내 꿈에 대한 동기를 자극시키고 보다 철저히 그 땅에 갔을 때를 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또 다방면으로 필요한 무언가가 있다면 열심히 배워야겠다.
또한 성직자로서 그는 큰 본이 된다. 비록 나와는 교리가 다르지만 그분이 삶에서 얼마나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는지 이 책을 읽을수록 크게 느껴졌다. 어느 날 어떤 목사님과 장애 지체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에 예배를 드리러 간 적이 있다. 목사님과 나뿐 아니라, 교회의 한 모임단체도 함께 갔었다. 가자마자 바로 예배를 들렸다. 그 뒤 그곳 지체들과 간식을 나누고 담소를 나누려 할 때였다. 목사님이 전도사인 나를 잠시 부르더니 이곳 사람들하고 시간 보내다가는 오후 예배에 참석 못할 수 있으니, 함께 간 모임단체를 빨리 재촉해 교회로 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교회 예배도 중요하다. 하지만 두 달에 한 번 와서 이곳 사람들과 만나는데 단순히 설교 하나 해 주려고 이곳에 왔단 말인가. 누구를 위한 예배인지 모르겠다. 실천이 없는 예배는 죽은 예배다. 내가 괜히 그 모임단체와 그곳 지체들에게 미안해졌다. 이렇게 성의 없이 우리 만족을 위해 이곳에서 봉사를 하러 왔다고 생각하니 창피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예수님이 공생애 때 이렇게 행동하셨던가. 힘없고 약한 자들과 항상 어울리던 예수님의 모습이 교차해 지나갔다. 예수님이 그렇게 비판하던, 당시 위정자들하고 우리가 다를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태석신부님은 예수님의 그런 모습을 그대로 행하고 있었다. 아픈 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고 또 기쁜 일에 함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그런 점을 꼭 본받아 닮아야겠다.
이런 분들이 세상에 좀 더 많아져야 할 텐데, 그래야 이 세상이 보다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될 텐데,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윤리적으로 삶의 방향을 제시해줘야 할 종교가 썩으니 세상도 함께 흔들린다. 그나마 천주교는 사정이 나은 것 같은데, 우리 개신교는 그러지 못하다. 오히려 개신교 밖에서 개신교의 무너짐을 걱정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물론 개신교에도 존경할 만한 많은 분들이 계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분도 상당수다. 지금 내가 속해 있는 개신교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가끔 비판도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나 역시 속이 쓰리고 마음이 아프다.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은 딱히 말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성직자에게 요구되는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것이다. 왜 다들 자기 욕심만 차리는지 모르겠다. 신부님들이 목사님들을 무시한다고? 그들은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근 10년을 철저한 통제 속에 절제하며 공부를 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는 비교적 덜 통제를 받고 3년을 공부한다. 길고 짧고를 굳이 따지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준비했나를 생각해 본다. 깊은 사색과 고민, 그리고 성경의 연구, 사람들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어 보인다. 예수님은 30년을 준비하고 3년 사역하시고 가셨는데, 우리는 3년 준비하고 30년을 버티려고 하니... 좀 더 겸손하게 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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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FM 라디오 프로그램중에서 유일하게 청취중인 프로그램은 GMP(Good Morning Pops)이다. 예전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스마트한 시대가 되다 보니 그 덕을 꽤나 솔솔하게 보고 있다. 본방사수는 시차 때문에 어림없고 앱이나 파앗캐스트를 통해서 습관처럼 듣는다. 매주 일요일이면 한국의 위인을 소개하고 그 내용을 영어로 듣고 이해하는 코너가 있는데 The Great Korean의 한 분으로 이미 몇 개월전부터 이 태석 신부님의 아프리카 남수단에서의 삶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주고 있다. 다큐영화로도 신부님의 삶이 재조명되었고 책으로도 출간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마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어수선할 때 읽어 보았다. 정신상태가 극도의 이기심을 누릴 때 그 이기심이란 녀석을 꽈악 눌러 주기에 그만인 책은 바로 위대한 인물들의 말씀이나 삶이 아닐까 한다.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의 이야기는 따로 말하지 않으련다. 아마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 내용을 모조리 알고 있을 것이고 눈물 닦아내며 <울지마 톤즈>를 봤을 것이다. 신부님의 다큐영화를 볼 땐 암말기 병상에서도 가만히 계시질 못하고 합창과 음악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저 분은 정말 잠시도 가만히 계시질 못하네." 안스러움은 보는 자의 몫이지만 삶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존중은 일분일초도 어긋나서는 안되기에 주어진 그 시간 그 자리에 충실한 모습이야말로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삶이란 그 누구에게도 짓밟혀서는 안되는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것임을, 밤하늘의 반짝이는 총총한 별들임을,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아이들의 커다랗고 순수한 눈망울같은 것임을, 마음 깊이 새겨본다.
지난 여름 한국여행동안 안면이 있던 신부님을 뵙게 되었는데 특히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인기있는 이 해인 수녀님을 뵙게 되어 무척 행복했다. 이 해인 수녀님은 투병중이셨지만 흔쾌히 우리에게 다가와 주셨고 고운 시어를 주무르는 시인이라기보다는 거인다운 면모를 보여주셨다. 실제 그 분을 보면 정말 대담하다라는 걸 느끼게 된다. 목소리톤, 말의 리듬을 들어보면 사람의 기(氣)가 느껴진다고 하지 않던가. 이 태석 신부님 관련 이야기들로도 꽃을 피웠었고 그 분의 선종이후 남수단이 독립이 되고 선교사 파견과 지원이 물흐르듯 진행되었다는, 사람이 만든 기적에 대하여 파안대소와 함께 뜻있는 자리에 함께 했었다.
의술과 음악, 건축과 공학, 교육과 기술이 그 한분 안에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통합하고 감싸 안을 수 있었던 고귀한 미덕은 바라보는 상대가 삶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구체화시켜야만 하는 소명감이지 않았을까, 국내에도 버림받고 불행한 자들이 많은데 굳이 멀리까지 가서 그럴 거 뭐 있나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하는 이야기이다. 이 책안에 한 인간의 신념과 계기가 들어 있다. 신앙의 힘이라거나 사랑의 힘이라거나 봉사정신이라거나 사명감이라거나...그런 개념들로 덧칠하고 싶지 않은 논픽션이다. 그러기에 별점에 관한 점수두기도 무척 난감하고 무의미할 뿐이다. 책장을 넘기면 이 태석 신부님의 사인복사본이 보인다.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 이 태석 신부님의 아프리카 이야기는 한 사람이 일군 기적이지만 그 기적이 현재도 진행중이라니 가슴이 벅찰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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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란, 사제란 어느 누구나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뵈었던 많지 않은 사제분들은 언제나 희생하고 봉사하고 자신을 낮추고 사시고 계셨다. 친척분중에도 신부님이 한분 계시고 수녀님도 한분 계시지만, 모두 한결같은 모습이 정말 보기가 좋았다. 난 어릴때 부터 성당을 다녔었다. 할머니가 항상 기도 하고 계시는 모습이 어릴땐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수가 없었다. 항상 경건하고 엄숙한 성당은 선뜻 발길을 들여놓기가 무서울 정도로 어린 나에겐 묵직한 그 무엇이었다. 그러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기에 신비감과 경외감에 더 우러러 보았던 것 같다. 동네의 조그만 성당이라 그런지 유아세례를 받고 자주 들락이다 보니 신부님 수녀님과도 친해지고, 사춘기 시절엔 앓던 속을 고해성사를 보며 신부님께 토해내기도 했었다.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면서 냉담을 하기도 했었지만, 결혼식 역시 성당에서 치렀다. 이렇듯, 성당과 신부님은 나의 생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을 접하기 전 우연히 TV에서 이태석 신부님에 대한 다큐를 보게 되었다. 많지 않으신 나이에 선종하신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가 이렇게 TV로, 책으로 알려지게 되어 다시 한번 신부님의 그 마음을 기리게 되어 감사히 생각한다.
이태석 신부님은 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군의관으로 복무를 하셨고, 군복무를 끝내신후 다시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성직자의 길을 걸으셨다. 그후 로마유학을 마치고 2001년 사제서품을 받으시고는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나셨다.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톤즈라는 작은마을에서 신부님은 모든걸 다 바쳐 봉사하셨다. 톤즈는 수단의 끊임없는 내전으로 거의 황폐화된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콜레라와 말라리아등 황토병으로 죽어가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세우고, 전쟁으로 무너져내려 공부할 곳을 잃은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브라스밴드라는 밴드부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도 하였다. 3월말에 시작된 콜레라는 이렇게 한 달 정도를 누비고 돌아 다니며 마을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마을에 상을 당하지 않은 가족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콜레라에 대한 주민들의 무지 때문이었다. 대부분이 처음 당하는 일이라 간단한 설사병으로 여기고 하루 이틀 저절로 멎기를 기다리다 병원에 와 보지도 못하고 집에서 변을 당한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환자들을 보며 정말 무서워해야 될 것은 우리가 앓고 있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age 66)
이태석 신부님은 그렇게 8년을 톤즈에서 봉사하시고 휴가차 귀국을 했다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꿈을 찾아가던 톤즈는 신부님이 안계시자 다시 황폐화 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꿈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신부님이 안계신 병원에는 아직도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신부님의 선종소식을 전하자 마을 주민들은 통곡을 했다고 한다. 특히, 신부님이 몸을 아끼지 않고 돌보아 주었던 나병환자들은 신부님의 사진을 꼬옥 끌어안고 눈물을 지었다고 하니, 정말 가슴이 뭉클해져온다. 얼마전 신부님의 선종 1주기를 맞아 방송된 다큐프로에서 그 모습을 보니 절로 눈물이 흘렀다. 성심을 다해 톤즈 주민들을 위해 봉사를 하신 신부님의 진심이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성직자라 해서 누구나 다 이렇게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라고 강요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많은 성직자 분들이 이렇게 살고 계신걸로 안다. 조금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자 하는 마음만이라도 가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환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선종하신 고 이태석 신부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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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장식한 사진속의 아이들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진지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포즈, 쿵푸와 닮았는가? 맞다. 처음 쿵푸 영화를 보고 나서 따라해 보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싶은 사내아이는 별반 없을 것이다. 영화 관람은커녕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 지역 어린이들이다. 한 한국 신부 덕분에 세상에 쿵푸라는 무술도 있구나, 알게 된 아이들.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가전제품이 뭔지, 할부구매가 뭔지 질문하는 아이들.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의 저자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에 와서 성당을 먼저 지어야 하나, 아니면 교육 시설을 먼저 마련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망설임 끝에 후자를 선택한 신부는 한국에서 의사로서 안락한 생활을 정리하고 신부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한국인 신부 중에 처음 아프리카를 지원하여 언젠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톤즈 땅을 밟았다.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온 환자를 물리칠 수 없어 한밤중에도 진료를 거부하지 않는 의사로서, 고등학교 과정 수학 교사로서, 복음을 전파하는 신부로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영혼의 안식을 선사하는 음악가로서 뭇사람 몇 배의 삶을 미리 살아서인지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떠나기 전에 자기가 그간 보낸 아프리카 생활의 기록물이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지난 9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 마 톤즈>과 함께 보면 더 좋을 듯. 활자를 읽으며 영화 장면이 스친다면 저자의 진심이 크게 울릴 것이다. 또한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금 더 단순한 삶의 풍요를 넌지시 알려 준다는 것을 눈치 챌 것이다. 타종교, 비종교자들이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종교적인 내용이 자주 등장하지만 고 이태석 신부의 깨달음은 종교를 넘어섰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며 사랑을 잃은 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데에 그들이 가톨릭이나 개신교면 어떻고 이슬람교면 어떤가? 그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꼭 우리가 믿는 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내 안에 잠재된 강박적인 사고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P. 194) “음악도 하느님의 창조물이라고 했던 신부님의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하느님이 창조하지 않았다면 그 누가 창조할 수 있을까요. 총과 무기를 녹여서 드럼펫과 클라리넷을 만들어 톤즈에서 수십 년간 들려오던 총소리 대신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P.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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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거기에 난 한 가지를 더 붙이고 싶다. 향기도 남긴다라고....
쫄리신부님, 이태석 요한신부님을 영어식으로 읽어서 생긴 이름이 쫄리다. 그 쫄리신부님의 아프리카 이야기.
이미 <울지마 톤즈>로 접한 것들도 많지만 역시 영상과는 또다른 재미가 글에는 있다. 영상을 담은 3자의 시선과는 다른, 글쓴이의 감성과 애타는 마음이 녹아있는 글. 구성이나 전개에 얽매이지 않은 진정성 가득한 글은 나도 모르게 뭉클해지고 두고두고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맞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전쟁으로 얼룩진 아이들에게 쫄리신부님은 솟아날 구멍이었던 거다. 아픈 사람에게는 주사와 약을,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아이들에게는 음악의 힘으로 어루만짐을. 다양한 사랑의 표현으로 온전히 그들에게 다가선 그분을 그 누가 미워하리요.
문득 방문한 수단장학회 홈페이지의 소식으론 톤즈의 병원에 의사가 없다고 한다.아마도 누구의 대신이라는 것을 지우기 힘들지도 모르며, 누군가와 비교당하면서 봉사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도 않을 것이고, 건강이 허락지 않을 것이기도 하다. 또한 기한이 되어서 돌아가야 하는데 교대해줄 봉사자가 없어서 힘들기도 할 것이다. 맞다. 내 재주를 내어준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재주를 내어야할 자리가 있다는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리고 용기도. 가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는 말도, 누구의 뒷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은 바로 나에게 하는 것이다. 곁에 있는 혹은 멀리 있는, 사랑이 필요한 자리를 외면하고 있지 않은지 하고 말이다.
책을 덮으며 마지막 부분쯤에 나온 구절을 옮겨 본다.
나와는 먼 일이라 여기며 애써 외면하지 않았는지.......반성할 일이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신 신부님이 남겨주신 사랑에 또 한 번 자각하고 실천의 의지를 굳혀본다....
-이 책만큼은 정말 별점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 책의 내용과 편집, 구성을 평하기엔 사랑의 힘이 너무도 강했다고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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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끌렸습니다.
소제목으로 '쫄리 신부'라 되어 있어서 궁금했는데 신부님의 세례명이 요한 그리고 영어식으로 부르는 '존리'가 마을 주민들이 발음하기에 편한 '쫄리'가 된 사연
여아로 태어난 경우 더할 수 없이 소중하게 여겨지지만 사연인 즉 시집보낼 때 엄청난 지참금을 챙기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는 그야말로 기막힌 여아선호사상,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깊은 상처들을 보듬어 주시는 신부님의 사랑이야기가 그들만의 세계라고, 그들만의 고통이라고 너무나 편협했던 저에게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분들에게 대한 연민을, 그리고 그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조차 기도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진들을 통해서 아프리카의 생생함이, 삶의 현장을 느낄 수 있었는데 특히 한 어린이가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에서는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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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많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그들 안에서 신부님이 체험한 따뜻하고 감동적인 글을 통해서 새로운 이웃을 만나게 된 반가움과 더불어 그들이 낯설게 느껴지지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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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텔레비전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모습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지난 해 말에 감성 대상을 받은 게 계기가 되어서 아마 여러가지 광고에 사용하는 듯 하다. 어쩌다 보는 텔레비전 화면에 신부님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다시금 내 마음을 다잡아본다.
지난해 몇몇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극장에 가서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보고 이 책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해를 넘겨 올해 첫 날에 읽게 되었는데 어쩌면 그게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신부님의 따뜻한 사랑을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었고 올 한해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계획하는데에도 큰 역할을 하게되었다.
책 속의 톤즈 사람들에 비하면 난 너무나 가진 것이 많고, 욕심도 많이 부리고, 감사할 줄도 모른다. 좀 더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고, 잠깐 필요한 것에 욕심을 부리지말고 불편하게 사는 것에도 익숙해지도록 할 것이며,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부님의 글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때렸던 것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한심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을 보니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지금 처한 상황을 불평하지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부님의 바람대로 이 책에서 톤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읽기위해 노력했다. 은총이 가득한 내 삶을 환하게 밝혀보고 그렇게 얻은 힘으로 톤즈 사람들뿐 아니라 오늘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과 친구가 되어야겠습니다.
책속에서 특히 머리가 밝아지던 한 구절
하느님께서 우리가 그렇게도 원하는 왕복 10차로 고속도로 같은 탄탄대로의 뻥뚫린 인생의 길을 쉽게 주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이것이 바로 그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고생할 줄 뻔히 알면서도 웅덩이가 있고 고개가 있어 쉽게 빨리 달리지 못하는 길, 때로는 진흙탕에 빠져 한참을 한곳에 머물러야 하는 길, 먼지가 나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험한 흙 길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는, 좋은 길만 보면 탄탄대로라고 마음껏 달리고마는 인간의 교만에 제동을 걸고 그것으로 인해 타인에게 주는 상처도 줄이며, 때론 함께 손잡고 때론 누군가를 부축해 주거나 등에 업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는 길, 교육적으로 좋은 길, 미래를 위해서 좋은 길을 주시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달릴 수 있는 길, 평탄한 길에만 집착하는 고집스러운 인간들을 가르치기 위해 하느님 스스로도 골고타로 향하는 길,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p 157-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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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저| 생활성서사| 245쪽| 450g| 2010년04월11일| 정가:13,000원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가 이태석 신부의 선종 이후 이태석 신부의 행적을 되짚어보고 추억하는 것이었다면 이 책은 이태석 신부가 직접 쓰고 출판을 준비했던 책이다. 선종 전 발간되어 이 책을 보셨을 생각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하던 책의 출간을 목전에 두고 세상을 떠나는 작가 분들이 사연이 유난히 마음에 남아서 말이다. 내가 읽은 책은 증보판으로 '울지마, 톤즈'의 제작 이야기도 약간 들어가 있다.
올해 1월 대장암으로 선종하신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의 상황을 적어내려간 이 책을 읽고 다큐에서 생겼던 궁금증이 어느정도 해소된 듯 하다. 남자들 보다 입성이 좋은 여자들을 보며 '여자를 귀하게 대접하는구나' 생각했건만, 여자를 재산으로 생각하기에 귀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생각들 때문에 똑똑한 여자 아이들도 시집으로 팔려가는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읽으며, 기가막혔다. 훌륭한 신부감과 너무나 갖은 것 없는 신랑감 사이에 이어지는 이루어 질 수 없는 러브스토리도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다큐 내에 비치는 다양한 한국 상품들이 어떻게 저기까지 들어갔을까 몹시 궁금하던 차에 한국에서 보낸 물건이 어렵사리 톤즈에 도착한 사연까지 있어 하나로 연결된 기분까지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톤즈의 상황을 잘 아는 듯 느껴지고, 아이들과 친해진 듯 한 느낌까지 드는 건 왤까? 겨우 책 한권 읽었다고 말이다.
남수단의 어려운 상황과 덧붙여 환자는 많으나 의사와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해, 피검사나 조직검사를 할 상황이 안되어 도사가 된 듯 질병을 때려 맞추게되었다는 이야기는 무책임이 아니라 사랑으로 보였고, 어른들의 총을 가져다가 악기를 만들고 싶다는 아이들의 어렵고 힘들었지만 즐거웠던던 연주 투어(?)의 이야기와 수단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브라스밴드의 모습에 따라 붙는 논란에 관한 이야기들이 아주 재밌게 그려져 있다. 힘든 상황이지만, 그 상황에 적응하고 그 상황에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행동했던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들은 마음에 많이 남는다. 이태석 신부의 선종 이후의 톤즈 상황은 많이도 무너졌있었다. 이 책에 서술된 밝은 모습은 한 사람이 사라짐으로써 빛을 잃는 듯 했다. 하지만 뿌린 씨들이 말라 죽어버릴 일은 없을 듯 하다.
신부라는 신분 때문인지 책이 종교색을 띄고 있으나, 천주교인으로 살았던 적이있으면서도 종교색을 싫어하는 내가 읽기에 무난했으니 비종교인이 읽어도 부담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상태도 널찍한 줄간격과 나름대로 넉넉한 크기의 글씨로 세대를 아우르며 읽힐 수 있는 편집에 수단의 아름다운 풍경과 경쾌하고 친근감 넘치는 아이들의 사진이 겹쳐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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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유로운 영혼이셨던 고 이태석 신부님! 이번 사순기를 보내면서 고통만 있는 사순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그분의 한없는 사랑에 생을 이어갈 힘을 얻게되는것도 그분의 한없는 겸손과 순명에 합일치 될 수있음을 희망해 보는 것도 이번 사순안에서 언제나 사랑과 웃음으로 가득찼던 신분의 삶과 아프리카의 맑의 영혼들이 함께 함을 느끼며 하루를 선물로 받은 오늘....부디 잘 기쁘고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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