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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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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는 계몽주의와 낙관주의의 시대인 19세기 말에 태어나 양차대전의 참화를 겪으며 새로운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모색하던 시기의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올더스 헉슬리 자체가 바로 이런 지적 요구에 누구보다 충실하여 여러가지 시도와 성찰을 통해서 새로운 사회상을 제시하려 했던 작가인 것은 그의 양대 대표작인 '멋진 신세계'와 '아일랜드'가 모두 기존 사회를 초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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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는 계몽주의와 낙관주의의 시대인 19세기 말에 태어나 양차대전의 참화를 겪으며 새로운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모색하던 시기의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올더스 헉슬리 자체가 바로 이런 지적 요구에 누구보다 충실하여 여러가지 시도와 성찰을 통해서 새로운 사회상을 제시하려 했던 작가인 것은 그의 양대 대표작인 '멋진 신세계'와 '아일랜드'가 모두 기존 사회를 초극하는 일종의 유토피아를 그려낸 작품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인도양의 가상의 작은 섬나라 팔라를 배경으로 한 아일랜드는 적당량의 과학기술과 동양적인 성찰, 완전히 새로운 가족과 사회관계의 유형 등을 통해 올더스 헉슬리가 생각하는 이상사회를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이 작은 나라의 어린 전제군주로서 서구의 과학기술과 무력, 소비문화 등을 도입해 나라를 근대화하려는 무르간 모자와 팔라의 석유자원을 노리는 다국적기업, 이웃에서 바로 그런 근대화를 통해 힘을 키워 팔라를 합병하려는 랜당의 독재자 등을 대비시킨다. 이 대비는 영국계 석유회사의 비밀 사절이면서 저널리스트라는 직함을 자기고 있는 영국인 윌의 눈을 통해서 중심이 흔들리는 렌즈를 통해서와 같이 포착된다.

 

결국 근대화 세력의 승리를 암시하는 결말로 끝나고, 그것이 인류가 올더스 헉슬리 이후 반세기 가량 겨어온 역사임에 틀림 없지만 결론보다는 그가 그려내는 이상적인 사회에서 어떤 부분들은 경계와 터부가 없는 지적 편력과 통찰의 산물로 주목할만 하다.

 

고전이란 읽어보지 않았다고 고백하기엔 부끄러운 작품을 말한다지만 아일랜드를 읽고 보니 멋진 신세계를 필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헉슬리의 작품은 후기 것부터 거꾸로 읽어나가는 양상.

e****h 2013.09.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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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k은 자물쇠가 아니라 머리털입니다.
"Lock은 자물쇠가 아니라 머리털입니다." 내용보기
9. 수북히 ->수북이 37. 녹색의 그늘 속에서 번개가 쳤고, 잠시 후 들것은 숲을 빠져나와 눈부시게 빛나는 열대의 햇빛 속으로 나왔다 ->정말 번개가 쳤나요? 날이 이렇게 맑은데요? 숲속으로 들어온 햇살이 번득인 것이 아니고요? 48. 상처 입기 쉬어 보였다 -> 쉬워 49. 녹색의 풀과 호수 그리고 바위에 비친 황금빛 햇살, 버팀목 사이에 기울어진 그림자를 볼 수 있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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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수북히 ->수북이


37. 녹색의 그늘 속에서 번개가 쳤고, 잠시 후 들것은 숲을 빠져나와 눈부시게 빛나는 열대의 햇빛 속으로 나왔다 ->정말 번개가 쳤나요? 날이 이렇게 맑은데요? 숲속으로 들어온 햇살이 번득인 것이 아니고요?


48. 상처 입기 쉬어 보였다 -> 쉬워


49. 녹색의 풀과 호수 그리고 바위에 비친 황금빛 햇살, 버팀목 사이에 기울어진 그림자를 볼 수 있었요 -> 버팀목이 제대로 번역된 것인가요?


58. 다시 들릴 거고 -> 들를 (들리다, 들르다 는 다른 단어입니다)


76 에 꼼비엥 씽빠띠끄(car samere est parisiene)->원어가 잘못 들어갔음


94.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다.->비치기


108. 그는 이마를 가로질러 비스듬히 흘러내린 노화된 자물쇠를 들어올렸다 ->머리털 (lock2 :타래, 타래진 머리털)

이건 원서를 읽지 않고 한글만 읽어봐도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마에 생긴 상처를 보여주기 위해서 앞머리 털을 들어 올리는 내용이었잖아요. 갑자가 자물쇠가 나오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드셨나요? 이건 초고를 묵혀두셨다가 퇴고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이지요.


151. 세 개의 R(Research:연구)-> Three R's(reading, writing, arithmetic) 을 가리키는 단어 아닌가요?


183. 머리가 벗겨진 -> 벗어진(머리가죽을 벗겨내는 것이 아니잖아요.)


220. 마음의 상태가 초상현상적(초능력이나 심령현상)-> 초상현상적이란 단어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입니다. 초현상적이 아니었나요?


247. 로드 액턴 -> 액턴 경(卿)


291. 이곳에 들리곤 해요 ->들르곤


292. 어리석음을 들어내는 행위를 ->드러내는


310. 275 센티미터 키에, 182 센티미터 체구 ->275cm 부분이 이상합니다. 그렇게 큰 사람이 없잖아요.




이 책은 제가 2009년도 초봄에 100페이지 가량 읽었다가 놓았던 책이었어요. 제목에 쓴 것처럼 lock 을 자물쇠로 번역한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 번역자님께 말씀을 드려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책이었죠.


그동안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번역가의 이메일도 찾아보고, 이름을 검색도 해보고 하면서 끈질기게 끈을 놓지 않았던 책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고백할 것은 그 100 페이지 가량을 읽으면서 제가 인도신화와 철학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후 2년 동안 저는 저도 모르게 인도신화와 철학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찾아서 읽어뒀어요. 이번에 다시 첫 페이지부터 읽으면서 제가 왜 그렇게 인도신화에 대한 책을 찾아 읽으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이제는 책에 나오는 이름과 용어들이 너무도 쉽게 다가왔습니다. 저도 그동안 숙성을 거쳤다고 해야겠죠. 참 기쁩니다.


또 하나 더. 그동안 저는 줄곧 Lock(머리털)의 주인공을 여자아이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다시 읽어보나 중년의 사나이더군요. ^6^ 기억이란 이처럼 거짓말을 자주 합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저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법>을 떠올렸어요. 윌 파너비와 팔라 섬의 학교 선생님이 나누는 대화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법>에 나오는 파이드로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질(質)’이란 개념과 아주 유사합니다.


여기서 ‘질’이란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글이 어떤 것인지 구별해낼 수는 있지만, 좋은 글을 좋은 글로 만들어주는 질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파이드로스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열렬히 추구했던 그 질을 찾는 여정을 쫓아가다 미쳐버립니다.


실제로 <아일랜드>의 내용도 그리스 철학자들의 얘기가 많이 나와요. 비교해서 읽으면 좋은 공부가 되겠습니다. (<파이드로스>도 읽어보세요. 엄청나게 뛰어난 “美文”입니다. 2000 년이 더 된 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6^)



100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책은 또 다른 책을 떠오르게 합니다.


제임스 힐턴의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를 읽으신 분들은 금단의 섬 팔라가 티베트의 깊은 오지에 숨어있다는 ‘샹그릴라’를 닮은 곳이란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윌 파나비가 섬에 난파하는 장면은 <잃어버린 지평선>의 주인공이 샹그릴라에 불시착(?)하는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았어요. 주인공의 여정과 섬을 건설한 건설자의 모습을 들여다봐도 두 책이 유사하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의 말미에 들려오던 기관총 소리가 귀에 쟁쟁하시다면, 또 다른 책 <새-대프니 듀모리에>에 들어있는 <몬테 베리타(진실의 산)> 이란 단편을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그 산 정상에 자리 잡은 한 수도원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곳도 이상한 곳이죠. 사람들이 영원히 사는 곳이란 소문이 떠돌아요. ^6^ 그러니 <뫁테 베리타> 라는 단편은 <잃어버린 지평선>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책이죠?


<아일랜드>는 갑작스럽게 끝나지만 우리는 그 결말을 다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혹시 끝부분에 적혀있지 않은 팔라 섬의 미래의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저 단편을 꼭 읽어보세요.



여기서 팔라 섬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볼까요?


{우리는 학생들에게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보라고 말해요. “하지만 분석적으로 보지 마세요. 과학자나 정원사로서도 보지 마세요.” 라고 그들에게 말해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고 완전한 무지로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정말로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을 보세요. 전에는 한 번도 그런 것을 보지 못했던 것처럼. 그것이 이름도 없고 구분할 수 있는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보세요. 분류하거나 판단하거나 비교하지 말고 수동적으로, 수용적으로 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그 신비를 깊이 들이쉬세요. 감각을 느끼듯이 피안의 지혜의 향기를 들이쉬세요.}

z******y 2011.03.2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헉슬리의 이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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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자신의 평생에 걸쳐 대작 '파우스트'를 집필했다면, 올더스 헉슬리 에겐 유작 '아일랜드'가 있다. 하지만 둘다 나에겐 정말 괴로운 책이였다.특히 아일랜드를 읽을 때면 머리가 깨질것같은 느낌을 수십번도 더 받은거 같다.이 둘의 유사성을 느낀것은 인간 군상들에 대한 모든 희노애락들,개개의 사건들과 그에 따른 인간의 감정과 변화들을 통해, 어떤것이 천국이고 지옥인가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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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자신의 평생에 걸쳐 대작 '파우스트'를 집필했다면, 올더스 헉슬리 에겐 유작 '아일랜드'가 있다. 

하지만 둘다 나에겐 정말 괴로운 책이였다.

특히 아일랜드를 읽을 때면 머리가 깨질것같은 

느낌을 수십번도 더 받은거 같다.

이 둘의 유사성을 느낀것은 

인간 군상들에 대한 모든 희노애락들,

개개의 사건들과 그에 따른 인간의 감정과 변화들을 

통해, 어떤것이 천국이고 지옥인가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만든다는 점인거같다. 

차이점은 무엇인가.괴테는 이해 가능한 

이 세계의 상식 (설령 환타지의 세계관이더라도)의 

기반위에서 이야기를 펼친반면, 

헉슬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었다.


헉슬리의 『아일랜드』를 이야기 해보려면

어쩔수없이 『멋진 신세계』 이야기를 

할수밖에 없는데 구성이 아주 비슷하다.


멋진 신세계의 전반부, 중반부는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그것에

적응시키는 구간이다.헉슬리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장면은 후반부의 압축적이면서

박력있게 진행되는 총통과 야만인의 대화이다. 

인물들에게 대입을 해보자면

총통은 이 세계를 만든 헉슬리이고, 

야만인은 보편적인 우리들이다.

여기서 살짝 스치듯 블레이크의 유리즌이 

생각이 나지만, 괜한 오버는 아닌듯 싶다.

아일랜드에선 노골적으로 블레이크를 두번이나 

언급하고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고있으니.

어찌되었든 이 둘의 대화는 철학논쟁이다.

세상의 모든 과학과 상식과 이념들. 

그리고 그것들에 의한 폐해에 대해 잘 알고있는 총통과, 읽은것이라곤 셰익스피어의 전집이 전부인 

야만인과의 어떤 세계가 더 나은 세계인가에 대한 논쟁.


총통에겐 이 세계가 유토피아 이지만 

야만인에겐 디스토피아 이다.

정말 대단한것은 굉장한 지식으로 무장한 

총통의 논리에

야만인 '존'은 단지 셰익스피어 글들을 

인용함으로서 반박을 하는것.

총통의 논리를 듣고 독자인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존이 질문한다는것.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철학적 토론에있어서 가장 

인간다운 보편적 해답을 제시해준다는것.

하지만 총통역시 그것을 알고있으며, 

그의 주장 역시 논리적이라는것.

그리고 이 둘의 대화를 만들어낸 천재적인 헉슬리이다. 


이제 아일랜드로 넘어가면 내가 머리가 깨질것 같았다는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할수있는데.


아일랜드는 멋진 신세계의 후반부를 장식했던 철학논쟁이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진행되기 때문이다.



미래의 멋진 신세계는 →

1960년대 남태평양의 외딴 섬으로,

야만인은 → 

사고로 인해 표류한 '윌 파너비'로,

총통은 → 

이 '팔라'라는 섬에 살고있는 팔라인들로 바뀌었다.

윌은 무지한 야만인이 아니라 매우 지적이고 

상식적이며 의심이 많은 현대인이고, 

팔라의 석유를 노리고 있는 이웃 군국주의 국가 랜당과 자본주의 기업에 연관 되었기에 

매우 냉철한 판단이 가능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감정 이입이 보다 쉬워졌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힘든 팔라인들의 

생활방식을 낯설어하는 윌에게 

그들의 이념과 철학을 설명하는것이 

이 소설의 전체적인 전개인데,

멋진 신세계가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 

그 감정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호소 하는거라면, 

아일랜드에선 아주 구체적으로

인간이 원하는 유토피아가 실현될수있는 방법을 

말해주고있다. 


어찌보면 헉슬리 개인이 생각하는 이상향 이겠지만, 

여러 지식인들 혹은 인본주의자들이 

지향해야 한다고 했던 이념들을 포괄하고 있기에 

객관적인 낙원일수도있다.


이 팔라를 창조한 헉슬리는 말도 안될 정도로 

정치,경제,문화,과학,교육,기타등등 모든 분야에 걸쳐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한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어느 한쪽만 강조한것이 아닌 모든것이 

상호 보완작용 으로인해 서로를 지탱해 주고있다.


마르크스의 실패를 본다면,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해도 아직도 신의 권위가 

유지되고 있는 사회를 본다면

사회구성원들 모두는 저자가 위치한 경지(?)에 

오를수 없다.

헉슬리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 경지에 오를수 있는 방법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아주 정확하고 자세하게 말해주고있다.


윌 파너비가 팔라안에서 이곳저곳을 견학하거나 

일상속에서 겪게되는 상황들에서

팔라인들의 철학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이끌어내는지 우리의 실제 생활에 하나하나

대비시켜 주고있다. 

또 역시 야만인 존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궁금하던것을 정확히

윌이 질문하고있고, 팔라인들은 대답해준다.  

 

뉴욕타임즈에서는 -"이 책에서 헉슬리는 인간조건과 이상사회의 가능성에 대한 마지막 비전을 제시한다.

<아일랜드>는 정치학자,심리학자,철학자, 그리고 신학자들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다."

라고 평했는데, 

과연 이들은 헉슬리의 아일랜드에 어떠한 반론을 펼칠까. 나 역시 궁금하다.

 

인용구에 신학자는 왜 들어갈까.
멋진 신세계는 주제를 확장하면 
인간은 종교 없이 살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진리탐구, 인류의 발전, 효율성의 극대화로 무장한 
과학이라는 초거인의 대척점에서
'윤리'라는 방패를 들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마지막까지 외칠수 있으면서
그 근거로 무시할수 없는 권위를 가진것은 
신약성경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일랜드 에서는 이 종교 조차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헉슬리가 여러시대의 학자들보다 

뛰어나느냐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제한된 일반적 수명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방대한 분야들을 습득하고 이해하고

조립했느냐 하는것에 대한 감탄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도 아닌, 자본주의도 아닌, 

무신론도 아닌, 유신론도 아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가상의 세계안에 <무엇이 무엇인가에 대한 소고> 

라는, 그 가상의 세계를 지탱하는 

완벽한 가상의 철학서 까지 창조해 내었다.(책속의 책) 그러한 헉슬리에게 경의를 표하지만.

그것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몇페이지만 읽어도 

현기증을 느끼며 책을 덮게 하는 이유였다.  


헉슬리의 본심?


멋진 신세계와 아일랜드에는 환각제가 나온다.

'소마' 와 '모크샤 매디신' 이다.

『모크샤』라는 헉슬리의 환각제에 대한 연구, 

보고, 강연내용,

과학자들과의 서신교환등을 담을 책을 보면 

헉슬리가 옹호를 넘어 얼마나 환각제의 

예찬론자인지를 알수있다.

헉슬리는 환각제 복용후 신체적 건강을 해치는 

후유증이 없다는 가정아래, 

이 환각제에 중독이 되지않고, 신체와 정신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수있는 논리를 펴고있는데

이 두꺼운 조각모음집에선 자칫 그의 의도를 

잘못 받아들이기 쉽다.


아일랜드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데

중반부분에 모크샤 매디신에 대한 언급이 있음에도,

모크샤 매디신은 소설의 끝자락에 와서야 

윌이 팔라인들의 철학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는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딱 한번 수행한다.

만약 윌이 중반부터 모크샤 매디신을 복용하고 

그 미숙한 정신상태 에서 도취된

감정만이 나열되었더라면 나 역시도 아일랜드를 

음모가 있는 소설쯤으로 치부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팔라인들은 인간이 제대로된 교육과 사회환경,그리고 끊임없는 자아발전을 통해

외부로부터 온 자극(기쁨,슬픔,고통,쾌락등)의 원인을 확실히 파악할수있고,

그 자극을 이성적으로 조절할수 있으며 명상과 요가를 통해 환각제의 도움없이도

초월적 자아를 완성해 깨달음을 얻을수 있을때에,

평소엔 즐기지않고 어쩌다 즐기는 대만찬 의 의미로서 모크샤 매디신을 복용할것을 이야기하고있다.


결국 주된 주제는 의식의 확장을 통하여,

내적자아의 성장을 이루면

우리도 팔라에서 살수있다며,잔인(?)하게도 

그 방법을 너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헉슬리의 위험성?

 

헉슬리의 책을 읽다보면 그는 지적이며, 논리적이다.

그의 논리는 얼핏보면 비상식적인것 같지만,

비상식같아 보이는 논리를 상식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그의 비상식적 논리는 대단히 상식적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헉슬리의 작품을 단지 공상소설 수준에서 그냥 읽고 

덮는건 괜찮다.

하지만 책을 분석하면 위험하다.습자지 두께 만한 

알량한 지식으로 토론하는것을 좋아하며

자신만의 논리 펴는것을 좋아하는 사람.

소위 개똥철학으로 무장된 사람에게 

(나 역시 포함되지만)

헉슬리의 글들은 일반적으로 사회통념에 반하는 행위에 대해 (혹 그것이 법에 위배되는 행위일지라도)

그것을 정당화 하는 명분을 만드는것에 영향을 

미칠수있다.

단적인 예로 마약복용 같은 경우에도 해당되겠지만.

멋진 신세계와 아일랜드에 나오는 미취학아동을 

포함한 소년,소녀들의 섹스놀이는(어른들이 권장하는)

우리의 세계에서는 지탄의 대상이지만 헉슬리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선 놀랍게도 

상식(우리들의 상식)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헉슬리의 의도와는 달리 자신을 상식적이라 생각하는 비상식적 인간이 될 위험성이 있기에.

나는 헉슬리의 작품을 읽을때마다 긴장감이 든다.


2011년 개인적인 공간에 쓴 리뷰를 사락으로 옮김.
l**********8 2025.09.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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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Island (1962)
"[아일랜드] Island (1962)" 내용보기
3.4   442페이지, 25줄, 28자.   비교적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는 '팔라'라는 나라에 조난을 당한 신분으로 도착한 '윌 에스퀴스 파너비'는 '메리 사로지니 맥파일'이라는 소녀를 만납니다. 소녀의 할아버지는 로버트 맥파일로 의사를 겸하고 있어 도움을 받습니다. 로버트의 할아버지 앤드류가 처음 이곳에 온 의사입니다. '라자'라는 직책의 국왕이 다스리는 입헌군주제의 나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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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442페이지, 25줄, 28자.

 

비교적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는 '팔라'라는 나라에 조난을 당한 신분으로 도착한 '윌 에스퀴스 파너비'는 '메리 사로지니 맥파일'이라는 소녀를 만납니다. 소녀의 할아버지는 로버트 맥파일로 의사를 겸하고 있어 도움을 받습니다. 로버트의 할아버지 앤드류가 처음 이곳에 온 의사입니다. '라자'라는 직책의 국왕이 다스리는 입헌군주제의 나라인데 다음 라자는 아직 미성년이여서 그 어머니 '라니'가 대신 존재/통치합니다. 자문은 몇 사람의 위원회가 하고 있고. 앤드류와 몇 대 전의 라자는 개혁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팔라는 그러한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중입니다. 차기 라자인 '무르간 마이렌드라'는 랜당의 디파 장군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팔라의 문화와 격리된 상태입니다. 최고지배자가 지도자층 이하 국민과 괴리가 있는 것이지요. 사실 100년 전에는 그런 괴리가 발전에 도움을 줬는데 이번에 어떻게 될까요?

 

윌은 팔과 다리를 다친 상태라 치료를 받으면서 로버트의 며느리 '수실라'나 조수 '비자야 바타차리야'의 안내로 사회를 돌아다니며 견습할 기회를 갖습니다. 윌의 원래 의도는 라니와 결탁하여 석유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처삼촌인 '조 알데히드'의 지시로 렌당에 가서 디파 장군을 만나고 이곳으로 향하던 중 조난을 당한 것이지요. 감화된 윌은 마지막 순간에 자본과 군대(렌당의 디파)를 배반합니다.

 

무더위 속에서 읽기엔 부적절한 책입니다. 좀더 차분한 분위기에서 천천히 읽어야 하는 것인데 잘못 빌린 셈이네요. 철학적인 사고가 첨가된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다른 분들은 책을 읽을 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읽은 시기로 인해 손해를 보았습니다. 점수는 덕분에 낮아졌습니다. 좀더 고평가 되어야 할 책이 아닐까 합니다.

 

적어도 175페이지 부근의 챕터8은 다른 사람이 번역한 것 같습니다. 내리 디파 '장군'이라는 표현이 여기서만 '대령'으로 나오니까요.

 

130810-130810/130810

k****8 2013.12.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