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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김신영 작가의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구매할 때 제목이 비슷한 책이 있기에 같은 분의 것인 줄 알고 결재한 책이다. 도착하고 나서야 작가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미리 알았더라도 그냥 샀을 것이다.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라고 묻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이 책의 저자 박현희님은 고등학교 사회교사이다. 그러다 보니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이라는 부제처럼 사회문제, 정확하게는 학교 안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에 관심이 많다.
왕자는 왜 구두로 신데렐라를 찾았을까 라푼젤은 누구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를까 사람이 된 피노키오는 행복했을까
너무 오래되어 진리처럼 통용되는 규칙이나 가치관에 거는 딴지들. 이런 의문과 참신한 시각으로 재해석되는 옛이야기들은 체제 순응적으로만 살아 조금 주눅든 내게 새로운 관점과 함께 은근한 대리만족을 준다.
관용의 마을, 일탈의 마을, 지혜의 마을. 이 책에서 저자는 14편의 동화와 우화를 3개의 주제로 나눠 분류하고 새롭게 해석하고 그 안에서 현재를 찾아낸다.
제1장 관용의 마을 <여우와 두루미>, <늑대와 양치기 소년>, <피노키오>, <아기 돼지 삼형제>가 등장한다. 저자는 그 동안 서로를 배려하라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던 <여우와 두루미>에서 강자의 전횡에 눈감는 억지 화해의 부당함에, 정직하라는 가르침을 줬던 <늑대와 양치기 소년>우화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소년의 현실에 주목한다. 그 중에서도 눈여겨본 이야기는 <피노키오>를 재해석하는 부분이었다.
카를로 콜로디가 <피노키오>를 발표한 19세기 말은 근대적인 학교가 성립되고 확대되던 시기였다. 산업 혁명으로 사회가 밑바닥부터 재편되면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이제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다. 농사일은 아버지를 따라 밭에 나가 일하면서 전수되지만, 공장 일은 그런 식으로 배울 수 없었다. 공장주들은 기본적으로 읽고 쓰고 셈하기를 할 수 있는 일꾼들을 원했다. 노동자의 자녀에게 읽고 쓰고 셈하기를 가르쳐 내일의 노동자로 준비시킬 제도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청에 따라 생겨난 것이 근대적인 학교였던 것이다. (p.39)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아침마다 갔던 곳. 저자는 우리가 학교에 가야했던 이유에 대해 근대 산업사회에서 필요한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읽고 쓰고 셈하기뿐이랴. 시간에 맞춰 자고 일어나기, 싫은 친구와도 잘 지내기, 규칙 지키기... 수업 말고도 학교에서는 배우는 게 많다. 자유분방한 피노키오가 결코 좋아할 수 없는 곳. 학교에 가는 착한 어린이만 진짜 사람이 된다고 어른들이 얘기해도 피노키오는 사람이 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병약한 제페트 할아버지를 돌봐야하는 피노키오. 선택지가 없다. 좋든 싫든 ‘착한 아이’가 되어 진짜 사람이 될 수밖에. 저자는 피노키오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온 힘을 다해 학교와 노동이라는 근대 사회의 요구에 저항하던 피노키오가 결국 ‘착한 아이’가 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묻는다. ‘피노키오는 사람이 되어 행복했을까?’하고. 하지만 피노키오를 저항했지만 근대 산업사회의 일부로 편입된 안타까운 존재로 보는 것은 과도한 논리의 전개라고 생각한다. 학교가 근대 산업사회의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인건 맞지만 근대 사회가 도래하기 이전의 사회에서도 일부 부유한 계급을 제외하고는 노동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피노키오>는 어린이가 좌충우돌하며 어른으로 커가는 성장소설이다. 피터팬의 마을로 가지 않는 이상 어린이는 어른이 될 것이고, 피노키오는 진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행복하냐고? 어린이의 자유분방함이 오래도록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답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야한다. 어른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영원히 어린이로 남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제2장 일탈의 마을 2장에서는 <토끼와 거북이>, <빨간 모자 소녀>, <황금알을 낳는 거위>, <분홍신>, <개미와 베짱이>를 새로운 시각으로 정리한다. 이 동화들 중에서는 아이들의 입시를 치른 경험이 있어서인지 <토끼와 거북이>우화에서 불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찾아내 현재의 대학입시에 적용하는 대목에 관심이 갔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는 복잡한 게임 규칙을 정해서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어 이익을 보는 이들이 있다. 누구일까, 그들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교육 시장이다. 점점 커져 가는 사교육 시장은 이미 이 나라의 교육 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되었다. 게임을 복잡하게 만들고, 불안감을 키우고, 그리고 돈을 번다. 정치인들도 한몫 한다. 선거 때만 되면 각종 교육 정책들이 난무하는데, 그 정책들을 보면 하나같이 사교육비 절감을 이야기한다. 선심 공약 치고 이만한 것이 없다. 사교육의 폐해는 누구나 동의하는, 정말 안전한 문제니까. 아무도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학교의 근본적인 사명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p.75)
저자는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를 근면 성실한 거북이의 인간(?)승리로 이해하지 않는다. 어차피 거북이와의 달리기는 토끼에게는 얻을 것 없는 불리한 게임이었다며 이 경주의 배후에 판돈을 노린 제3자가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그러면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같은 불공정한 게임을 대학입시에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자녀의 입시를 치러본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암호문같은 대입 전형들이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입시 설명회에 여러 번 참석해야 했다. 그나마 쓸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입시 설명회는 아무나 갈 수도 없어서 드라마에서처럼 영향력 있는 엄마들에게 알음알음 이야기를 얻어들어야 했다. 지방은 학원도 서울만 못하고, 입시 정보도 1년 이상 더디다는 맥 빠지는 말들. 아이나 나나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박탈감이 느껴지던지. 저자는 복잡한 규칙을 가진 입시 게임이 입시 당사자 모두에게 불리한 제도라고 말한다. 정말 이 게임에 유리한 참가자는 없는 걸까? 규칙이 복잡하고 자꾸 변한다면 누구에게 유리할까? 규칙을 만드는 사람, 정보를 먼저 얻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활용할 힘을 가진 사람. 다들 목격하지 않았던가. 공정을 가장한 불공정한 일들. 일선 교사로서 생각하는 바가 많을 텐데 그러한 불공정한 현실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아쉬웠다.
제3장 지혜의 마을 드디어 공주님들이 등장한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라푼젤>, 그리고 <미녀와 야수>. 조심성 없이 자꾸 문을 열어주는 백설공주나 거울에 집착하는 왕비의 사연을 헤아리는 것도 재밌었지만 긴 머리의 공주 라푼젤을 진화심리학으로 해석하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머리카락은 인간의 신체 가운데 가장 선명하게 주인의 건강상태를 보여 줄 수 있는 신체 부위라고 한다. ... 남자들은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보며 건강 상태를 판단할 수 있고, 건강한 여성은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보여 줌으로써 자신의 건강 상태를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필요 때문에 남자는 여자의 긴 머리를 좋아하게 되었고, 여자들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쪽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설명이다. (p.188~189)
반쯤 이해되고 반은 이해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건강의 상징이라면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할 텐데 머리를 기르고 싶어하는 사람은 대부분 젊은 여성이다. 남자의 머리카락은 진화심리학에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인지, 머리카락 말고도 남성성을 보여줄 다른 것들이 있기 때문인지 궁금해진다.
저자의 견해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동화 속이든 현실이든 약자에게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좋았다. 선생님의 시각으로 동화를 재해석하고 학교의 현실을 짚어보는 책,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 중고등학생과 학부모님께 먼저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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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사회교사로, 책 부제 자체가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이다. 이 책이 나온 시점이 벌써 10년인데, 최근 구매한 판권을 보니 '29쇄'로 나와 있다. (그동안 나는 왜 이 책의 존재조차 몰랐을까. 이 책을 검색하면서, <백설공주는 왜~>로 시작하는 책이 꽤 많은 것도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수긍이 안 가는 대목도 있고, 동화를 끌어오는 부분에서도 해당 동화를 읽어내는 관점이 나와 안 맞는 지점도 보였다. 그래도 저자의 집필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학교에 대해, 세상에 대해 품고 있는 의문과 의심들을 동화 이야기를 통해 풀어 보고 싶었다"고 밝혔듯이, 이 책은 동화의 재해석 자체보다 동화를 통한 사회의 재해석에 방점을 둔다. 그렇다 해도, <아기 돼지 삼형제>를 풀어낸 이야기는 동화 자체를 다시 읽게 만들어준다.
견고한 집이 곧 좋은 집이 맞을까. 저자의 문제의식과 견해를 따라가보면 이렇다. 우리는 짚으로 집을 지으며 살아온 민족이고, 벽돌집을 짓고 사는 이들은 서유럽 사람들이다. 유럽에서는 '견고함'이 집의 미덕이라면, 몽골에서는 쉽게 허물 수 있는 집이 미덕이라는 이야기를 담은 동화도 있어야 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풀로 지은 집이 아름다운 집일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모여 이야기의 세계가 더욱 풍성해지고, 그런 이야기를 접하는 아이들이 더 행복해지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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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는 왜 그랬을까요 정말? 왜 계속 당하면서도 문을 열어줬는지 어릴때부터 궁금했는데, 이런 궁금한 인간의 심리를 잘 풀어쓴 책입니다. 왜 문을 열어줄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되지 않던 백설공주의 심정이 이제 이해가 되었네요. 재미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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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교재로 구입했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교훈"이라 쓰고 "나쁜 교육" 이라 읽는다 동화 속에 숨겨진 교훈의 비밀과 진정한 동화의 의미에 대한 신개념 사회학 에세이 의심을 가득 안고 동화를 읽는 여자가 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을 보면 무슨 수로 “그 후로도 오래오래 행복했”는지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분홍신을 신고 춤추던 소녀는 끔찍하게 생을 마감했고, 피노키오는 학교를 거부한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한 벌을 받는다. 그뿐인가. 「미녀와 야수」의 미녀 같은 지극한 효녀 주인공들은 도대체 자기 살자고 자식을 사지로 내몬 부모를 어떻게 다시 볼지 궁금하다. 왜 동화 작가들은 주인공들을 이토록 고생시키면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입하려 했을까? 답은 이미 안다. 재미와 교훈을 얻으라고. 그런데 과연 거기에서 얻은 교훈은 공평무사하기만 할까? 동화를 통해 만들어진 규범은 좋은 세상에 기여했을까? 다음 세대에 의심할 바 없이 전수해 줄 정도로 좋은 가치를 담고 있기는 한가? 동화의 미심쩍은 부분에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관계와 연대를 상상하는 사회학 에세이『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동화로 만나는 사회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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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늘 읽어왔던 동화책의 내용을 뒤집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동화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의문을 던지고, 꼭 틀에 박힌 생각만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다. 백설공주는 왜 맨날 당하면서도 문을 열어주었던 건지, 빨간모자 소녀가 샛길로 가는 건 왜 꼭 나쁜 건지, 여우와 두루미는 왜 꼭 화해를 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건지 등, 읽다보면 '맞아, 왜 꼭 그런 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책을 아이들이 많이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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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에게 더 많은 책을 읽히되, 깊이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싶어서 함께 읽으려고 구입했다. 쉽지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책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는 소위 옛날 이야기들 속에서 다양한 사고를 하며 재미있는 독서의 시간을 아이들과 보낼 수 있었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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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의 부제는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이다. 나 역시 사회학은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데 이를 동화로 풀어냈다고 해서 관심있게 책을 구매한 것 같다. 동화로 접근해서 더 쉽게 다가온 부분들도 있고,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면 생각이 변할까. 아무튼 책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접하는 눈을 키울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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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이라는 분야는 나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거의 접해본 적 없는 분야이며, 알고자 하면 얼마든지 알 수야 있었겠지만 왠지 이름만 들어도 전혀 알고싶어지지 않는 분야다. 학창시절에 사회를 특별히 싫어한 것도 아닌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또 박식해지고 싶은 욕심은 있어서 나중에 한번 읽어보자 기한 없는 다짐을 했었는데 이번에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다. 그것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청소년을 위한 사회학이다. 분량도 많지 않고, 사회학 도서답지 않게 표지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만만한 느낌에 일단 아주 기대가 됐다. 어린시절을 한번씩은 접해봤을 법한 동화들을 통해 알아보는 사회학이라니 누구라도 거리감 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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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개방적인 척하는 꼰대 선생의 글을 보는 느낌입니다. 독선적이지 않은 척 완곡한 문체로 저자의 생각을 강요한다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다각도로 학생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 주려는 점은 좋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사회학으로 접근한다고 하면서 저자 개인의 사담이 많게 느껴진 것은 제 기분 탓일까요? 특히 미녀와 야수 부분은... '네 주제를 알라'도 아니고 새로운 계급 사회, 신분제를 받아 들이라는 말 같아서 기분이 참 그랬구요. 하나하나 반박해서 적자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가르치거나, 미래의 제 자식에게는 그닥 추천해 주고 싶지 않은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