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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경제학이 리콜될까? 그러면 좀 그러고 싶은데. 왜 우리는 경제학이란 단어만 들어도 싫어지는지? 아마 교육이 문제인 것 같다. 학문이라 어렵고,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것 같다. 시험과목으로 준비하는 정도로 전락했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경제를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경제학 바로 알기, 특히 우리가 오해하는 경제학자들 애덤 스미스나 칼 마르크스 등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자본론’은 금서로 불리며, 복사본으로 돌아다니다, 출판이 되었다. 보기는 한 것 같은데, 그 내용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마르크스가 되었다. 또 자유경제를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은 애덤 스미스, 그는 자본주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어 버렸다. ‘경제학을 리콜하라’는 잘못 알려진 그들의 글과 생각을 바로 잡아준다. 그럼, 우리의 원전에 대한 오해는 어디서 시작인가? 아마 대부분의 경제학자들 때문일 것이다. 소위 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원전에서 자기 주장에 도움이 되는 부분만 주로 발췌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그리고 자기가 동조하는 내용을 취하기 때문에 그들은 주장은 단편화된 것 아닐까. 자 이제부터 경제의 따뜻한 면과 그들의 본 모습을 보도록 하자. 경제학자들이 보는 시각. 경제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인간에 대한 경제학의 비현실적 시각, 경제학의 기본 가정인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글쎄, 또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수학과 수학적으로 설명한다. 수학대로야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수학이나 통계를 이용하는 소수의 학문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경제학자들은 세계금융위기 이후 고개를 숙였다. 부동산 시장붕괴와 금융시장붕괴는 왜 발생했는가? 이유야 많겠지만, 제도의 운영 잘못, 금리인상 경제에 파급 미국경제의 붕괴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 위기를 전혀 예측하지 못해서, 그들의 무엇을 했고, 하는지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경제학자들은 공익을 부정한다. 경제학은 시장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를 전적으로 개인의 합리적 결정에 맡겨야 한다고 말하고, 이것이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는 길이라 여긴다. 하지만 과연 개인이 합리적인 결정을 할까가 문제이다. 우리를 봐도 대부분 세금은 적게 내고, 복지는 많이 누리자는 식의 생각이 지배한다. 누리는 만큼 세금을 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현실은 정부가 가정의 뒤치다꺼리까지 맡아야 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재미있는 것은 성형수술은 결혼시장에서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몸부림이고, 불량한 부모는 자녀를 불량하게 만든다. 오직 사회 지도층만 헌신적으로 국민을 위해서 일하면 충분하다. 과연 그럴까? 도덕불감증, 금전만능주의적 사고방식에 일단 젖으면 그 다음에는 이것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경제학자 왈, 법적 규제가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없다. 그리고 실업자의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본다. 이 말이 맞는 말일까? 규제가 없으면, 이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또 과연 놀고 싶어서 노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놀 돈이 있어야 편안하게 놀지 오늘도 돈 걱정인데 편히 놀아지겠는가. 참된 시장은 거래당사자들 사이의 자발적 합의와 이들 사이의 대등한 관계가 성립될 때 형성된다. 하지만, 강요된 선택과 절망적 교환 속에서는 어렵다. 그러기에 규제도 필요한 것 아닐까. 합리적 경제학자, 주어진 목표를 최소의 비용(희생)으로 달성해야 하고, 인간(소비자)의 욕망을 절대시하고, 신성시한다. 자신의 원하는 바, 목적을 달성하는 최선의 수단이다. 인간에게는 이것저것을 늘 비교하는 성향이 있다. 항상 다른 것과 비교하면서 가치를 매긴다. 미끼효과, 공짜효과, 프레임효과-광고(0.01%에도 못 미치는 사소한 금액으로 엄청난 판촉효과가 발생하기에 대기업이 광고에 사활을 건다.), 시장에는 오직 차가운 계산만 있을 뿐 감사하는 마음이나 따뜻한 인간애 따위는 애당초 없다. 지난 200여년 동안 정통 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의 가르침을 알지 못한 채, 국부론의 가르침만 발전시켰다. 우리가 오해하는 경제학자들. 부동산 공화국에서 지가하면 생각나는 리카도, 그는 부자 급진주의자로 토지의 효율적 이용에만 집착하여 차액지대설(지가의 역할)을 중요시 하였다. 역사란 늘 그렇듯이 다수의 불행 뒤에는 소수의 행복이 있다. 그러기에 자본주의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보았다. 경제 성장 없는 장기정체 상태는 자본주의가 완숙된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경제 성장은 국민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생계의 기술과 생활의 기술 그리고 소득과 행복지수는 어떤 관계일까 좀 덜 알려진, 핸리 조지는 풍요 속의 빈곤, 자유무역, 상호이익을 강조, 문명사회도 얼마든지 퇴보할 수 있다. 정신적 능력이 진보의 원동력인데 인간의 정신적 능력이 온통 생계유지와 다툼에 소모되었으니 진보란 있을 수 없다. 평등한 상태의 협동적 결합을 중시하였다. 토기-지가 앙등의 악순환, 무엇보다 공정한 거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토지의 몰수가 아닌 지대의 몰수로 정부의 재정지출을 토지세 세수의 범위만으로 국한 시키자. 마르크스처럼 잘못 알려지고 오해를 많이 받은 사상가도 별로 없을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자로 세상에 잘못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생활의 모습은 혁명가와는 거리가 멀다. 그가 혁명을 주장하였는가 주류경제학, 인간의 욕망을 절대시하면서 이 욕망을 어떻게 최대한 잘 충족시킬 것인가와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연구하는 것이 경제학이다. 현재 경제학과에서의 교육은 대부분 주류경제학(마셜, 케인즈, 로빈슨 등이 발전시킨 이론)으로 한마디로 철학이 없는 경제학이다. 집단행동이 필요한 경우에는 인간관계가 더욱 더 중요해진다. 무엇을 문제 삼느냐에 따라 학문의 성격이 전혀 달라진다. 모순과 갈등 때문에 변화가 초래된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익은 상호의존적이면서 동시에 상호대립적이기 때문에 모순이다. 물신숭배가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계층간 이동은 점점 줄어든다. 계급갈등의 저변에 깔린 경제적 요인을 밝혀내는 것이 경제학의 주된 목적이다. 주류경제학은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관한 개념을 기초로 한 이론이다. 자본주의는 격이 낮은 욕망을 자극하고 부풀림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체제로 각 개인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조장하며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드는 사회이다. 가치와 가격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 주류경제학, 인간욕망과 생산비가 가격을 결정한다.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것(현상), 가치는 물건을 만드는데 흘린 인간의 땀과 수고를 반영하는 것,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본질)이다. 자본주의는 국민이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것만을 생산하고, 자본가와 노동자는 노동력을 사고 판다. 노동력의 교환가치, 사용가치가 임금이기에 노동력을 구입한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올리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강도를 올리고, 노동자는 여기에 저항한다. 착취, 자본가가 일방적으로 노동조건을 주도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회정의나 분배정의는 가치판단, 기여의 원칙 등을 고려해야 한다. 사회정의를 요구하고 정의사회 구현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회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야말로 필요의 원칙이 적용되기 가장 어려운 사회이다. 경제위기는 이전 거시경제변수들(총생산, 고용, 물가, 통화량 등)이 급격하게 변동함으로 인한 문제다. 기계화에 의한 대량생산과 기계화 정도(자본의 유기적 구성)는 이윤율을 저하한다. 생산의 기계화로 노동자의 필요 감소, 축적되는 자본재의 양을 크게 증가하여 과잉설비 및 과잉축적으로 평균 이윤율 감소된다. 가치실현의 실패, 기업의 생산력이 너무 높다. 그러기에 시장 소화 이상의 상품 생산이 생산된다. 장기적 자본가의 투자지출은 기업의 생산력을 높이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경제위기를 초래하는 장기적, 전반적 이윤율 저하 추세는 자본구성고도화이론, 가치실현실패이론 그리고 이윤압착이론의 복합적 작용, 생산, 교환, 분배 전 과정에서 위기 초래요인으로 작용한다. 경제성장과 행복의 역설, 노동 비율 생산성과 1인당 소득수준을 보면 자본의 독점화 심화되고 있다.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저해한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 제도는 점차 굳어지면서 생산력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족쇄가 되기 시작한다. 기득권자들은 보수세력으로 뭉치면서 낡은 제도를 옹호하고 고수한다. 결국은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국민의 행복지수를 더 높일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비상시국에 빛 난 케인즈, 비상시국에 대한 경제이론 제시, 완전고용의 달성을 국가의 책임이라고 주장, 철학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손에 있는 통계자료는 현실을 오도하는 위험한 장난감이 되기 십상이다. 돈에 대한 욕망, 대공황이 빈곤의 위기가 아니라 풍요의 위기이다. 케인즈는 화폐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경제학자로 화폐애착(큰 돈이 생겼다는 그 자체가 큰 즐거움)을 다룸, 신용카드 사용이 미국인의 저축률을 0%로 끌어내린 중요한 요인이고 자본주의 사장의 자동 조절 기능 작동 하지 못하게 하였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이상하고 비현실적인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현실에 있지도 않을 것을 연구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폐인이 된 다음에 경기가 회복된다면 무슨 소용인가. 리스크(위험)는 어느 정도 확률이 알려진 것이고, 경제에 관련된 수많은 주요변수들이 불확실한 것이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2008 세계금융붕괴, 불확실한 것을 단순히 위험한 것으로 처리한 경제학자들의 지적 오만에서 비롯 된다. 미래에 발생할 경제적 이익과 손실은 온갖 불확실성에 싸여 있어서 확률조차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이익보다는 손실에 대해서 민감하고, 손실가능성이 있는 모험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케인즈의 교훈. 기업가들은 주로 자신의 직감과 주먹구구에 따라 행동하고 야성적 충동에 따른다. 보통 느낌이 먼저, 다음이 합리적이다. 여기에다 많은 사람들은 떼 짓기, 많은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관습이나 관례에 따라 행동한다. 보통 금리인하는 부동산 가격 상승시킨다. 하지만, 구입 당시의 가격과 현재 가격을 물가를 고려하여 계산해보라 그럼 얼마가 올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경제호황과 부동산, 고차원 투기열풍이 만든 붕괴, 써브 프라임 담보대출은 신용도 낮은 사람들의 담보대출, 분산된 위험들이 서로 상승작용 하여 위험을 더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국가가 야성적 충동의 변덕으로부터 경제를 보호해야 한다. 고용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다. 불확실성 증가하면 현금소지가 증가한다. 문제는 화폐애착, 무한정 부를 추구하는 성향과 필요 이상 많은 돈을 보유하려는 성향에 있다. 경기회복에 필요한 수준 이하로 시장에서 임금과 금리가 떨어져주지 않는다면 경기침체가 장기화, 불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실업은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이다. 행복친화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 역할과 철학이 담긴 경제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던 문제들과 인물 그리고 경제학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고, 국내학자가 쓴 책이라 더 뜻 깊은 것 같다. 우리가 언론과 방송 등에서 전하는 몇%의 변화와 성장, 경제의 목표가 단지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 경제학자들이 시장, 가격, 수요, 공급문제들에만 고민한 것도 아니라는 것, 사람을 배려해야 하는 마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경제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신봉하는 주류경제학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왜 우리는 새로운 경제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한편, 우리의 단편지식을 꾸짖는 면도 있다. 흔히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지적처럼,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고 한다. 인간들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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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기고칼럼들에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사회를 읽는 데 있어 경제학적 관점을 늘 시도한다. 이 경제학적 관점이란 주류 경제학의 특정한 의견이 있는 것이 아닌 기본적으로 경제학과의 접점에 대한 연구라는 의미이다. 이는 여러 사회현상을 읽는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촉구하고자 했던 새로운 경제학의 모습이란 현재 저자가 경제학자의 양심을 가지고 행하고 있는 이러한 연구가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사회현상들과 경제학적 문제제기는 개인경제가 나아가 국가경제와 세계경제에 주는 나비효과 들에 역학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여지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듯 하다. 이는 독자의 세상을 보는 시선을 고양시키는 데 매우 고무적인 문제제기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제시한 여러 문제 중 낙태, 성매매, 생명가치의 문제는 내게 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의 변화를 가져온 과정에 대해 경제학적 관점으로 생각해볼 때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혼외출산아의 범죄율의 감소는 사회의 잘못된 윤리적 잣대로 생성된 지원정책의 부족에서 오는 생계형 범죄였을 가능성이 높다. 가정의 부양을 위한 생계형 범죄율의 감소와 혼외출산아들의 교육정책이 미흡함에서 오는 범죄율 또한 감소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범죄율의 감소는 세금을 사용하는 국고를 절약하는 셈이니 낙태의 합법화가 가져오는 국가의 경제적 효과 또한 있었을 것이다. 특히 저자는 이러한 문제점을 제시할 때 주류 경제학이 어떻게 이들을 해석하고 있는지를 매번 비판하고 있었는데 성매매 또한 그들의 입장에서 금지라는 것이 경제학(자본중심적으로 볼 때)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것 또한 생각해 볼 일이다. 인간사회란 경제학의 효율성과는 다른 것을 추구할 때가 많다. 그들에 의하면 예술 또한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발생과 발전을 해왓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카니발적인 표출구의 역할로서 경제활동과 정부유지에 안정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예술이 추구하는 것이 순수한 미적활동이거나 저항의 의미로 표현되었을 때 조차를 설명할 수 있지는 않다. 과연 저자가 설명하려던 주류 경제학의 가장 큰 약점은 모든 사회현상을 일반화하고 통계학적으로 우선순위에 있는 현상만을 해석하려 한다는 데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도덕적 가치와 예외적 사례를 고려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현재 주류 경제학의 가장 우선적 과제로 보인다. 윤리적 측면의 다양한 의견을 경제학적으로 보지 않으려 할 때 ‘안락사’와 같은 사회문제는 옹호라는 한쪽 측면만을 대변할 수 밖에 없어질 것이며 이는 필립모리스가 겪은 흡연에 대한 연구보고와 다를 바 없는 협소한 학문으로 치부될 가능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 경제학을 리콜하고 더 이상 경제학의 어떤 것도 신뢰하지 않게 될 날 또한 만나게 될 것이다. 위기를 읽지 못하고 언젠가 나아질 상황, 랠리경제를 인정함으로써 경제학이 겪게 되는 상황은 분명 그 필요성의 추락이다. 우리는 이렇게 균형상태만을 위한 경제학에서 위기를 위한 경제학, 그리고 경제외부의 인류의 삶을 위한 새로운 경제학의 끊임없는 재탄생이 필요하다. 아마도 여러 분야와 결합한 이 하이브리드적 경제학은 퓨전경제학(?)쯤으로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는 대자본가들에게나 적용가능한 경제위기와 회복의 랠리는 실업과 빈곤의 상황에 있는 시민에게는 계속되는 경제적 추락에 더 가깝다. 주류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빈익빈 부익부를 양상하는 필연적인 학문이 아닐까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경제학판을 보는 느낌을 준다. 저자가 전체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지금 주류 경제학이 배제하고 있는- 인간중심의 철학적 사유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데 공감하며 경제학이 잃어버린 사회과학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학이 사회과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새로운 경제학에 대한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는 책들을 만나면 경제학이 사회과학적 측면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 들기도 한ㄷ. 그들은 주로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이란 다름 아닌 인간과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사회현상의 측면을 고려한 경제학이다. 그 인간관계는 지극히 기업 위주가 아닌 더 작은 공동체의 문제이기도 하며 이는 지역과 소수 공동체를 위한 경제정책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 저자가 통칭해버리는 주류 경제학의 원리를 듣자면 반박하기는 실제로는 어려울 것이다. 비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원리 내에서 빈부의 격차는 정당한 것이며 그들의 설명은 -적어도 그들의 논리 안에서-앞뒤가 맞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그 해결점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으며 인간의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주류 경제학이 정치에 밀접하게 유착되어 있으므로 인간의 행복이라는 목표는 어쩌면 정책들에게서 아직은 멀리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저자의 말대로- 가치중립적이어야 하는 과학에서 주류 경제학은 멀리 존재한다. 사회현상을 획일적인 도식에 적용하고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는 학문을 과학이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주류 경제학이 국가에 자문할 때 정책은 어떻게 될까. 국가의 위상을 경제척도로 판단하는 정치경제의 유착적 인식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경제학은 그를 더 부추긴다. 국가의 화폐보유를 위한 정책은 국민에게 그 부담감을 떠넘기는 결과를 낳고 국민 또한 화폐보유를 위한 목표를 향해 살아가게 된다. 마르크스의 경제성장에 대한 추가된 질문 ‘경제성장이 국민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는가?’에 대한 답이 거기에 있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이론과(특히 잉여가치의 설명이 탁월하다) 케인스 이론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로 독자에게 알기 쉬운 설명을 들려준다. 케인스의 이론에서 집중해야 할 부분은 정부의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개입에 관한 것이다. 지금의 자본주의 내에서의 정부가 경제성장만을 위한 자본위주의 정책을 가지고 있다면 정작 케인스가 주장했던 정부의 개입이라는 것이 이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관리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하나의 큰 기업과 같이 국가의 자본력을 우선시한 나머지 기업 위주의 정책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기업과의 연계 혹은 제재의 시점과 포인트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이상적인 정부의 대처로 보인다. 매번 다른 양상의 경제위기상황에 유연하면서도 과거의 해석과 함께 현재의 대안을 적시에 제시하는 경제학이 절실하다. 또한 끝까지도 우려되는 점은 어느 나라나 같은 경제학의 잣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이다. 최소한 각 국가의 현재에 맞는 자국적 경제학의 모델은 연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보다 넓게는 지역과 개인을 위한 경제학이 필요하지만 이는 모든 경제적 상황을 경제학자들과 정책연구가들에게만 맡길 일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시민이 자신의 경제활동의 흐름과 그 배경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절대 화폐축적이 아니다) 이익을 위한 이타적 관심에서 앞뒤가 들어맞는 안정적인 경제를 유지하는 출발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쯤 케인스가 말한 ‘화폐애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기엔 삶의 모든 것에 화폐가치가 매겨져 있는 듯 해서 비관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화폐가치를 우선시한 교육과정을 밟게 되어 있어서 이 화폐애착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극단적인 비관에 이른다. 주류 경제학이 주장하는 경제성장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경제성장을 어디까지를 목표로 삼으면 될까. 그 끝이란 없어보인다. 그렇다면 경제성장과 화폐가치에 그 목표를 둔 인류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케인스의 말대로 화폐획득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랠리를 계속하는 ‘디딜방아 효과’를 반복하는 우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말한대로 선진국의 경우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경제성장보다는 실업과 가난의 퇴치에 역점을 둔 성장은 국민의 행복지수를 실질적으로 끌어올리고 빈부의 행복지수 또한 그 간격을 좁힐 수 있을 것이며 -저자의 의견과 같이-케인스 또한 이를 지지했을 것이다. 저자가 주류경제학이라며 통칭하면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마저 통쾌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저자가 경계하는 주류경제학의 태도는 인간관계, 사회문제 등을 당연시하는 도식적 해석이라는 전체적인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 은퇴한 한 학자의 비판이 새로운 경제학의 모습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는 경제학자들에게만 던지는 비판이 아님 또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 애덤 스미스 등의 경제 고전 등에 관심을 가지고 경제학자들이 정확한 해석을 함과 동시에 대안연구에 열정을 가져야 할 때이며, 이는 경제활동의 중심인 개인에게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하나의 힌트가 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시되는 부분들은 말그대로 부분일 뿐이지만 경제학의 고전을 다시 읽는 작업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 저자의 글들은 현대 주류 경제학의 변질된 모습을 지적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저자는 쉬운 어휘로 일반 독자에게 서브프라임 발발로 인한 미국경제위기의 과정과 마르크스, 애덤 스미스, 케인스를 설명한다. 아마도 국어로 쓰인 이 설명이 번역서보다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쉽게 경제학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국어로 씌여서 때문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저자의 설명이 정교하고 논리를 벗어나지 않는 점에 감탄했다. 경제학 도서를 어렵게만 생각했던 독자들과 경제위기와 현재 경제학의 위치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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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은 경제학자들이 쓴 교과서를 읽지 않는다. 대중들도 경제학자들의 예측이나 설명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때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무림맹주였고, 후계자인 사회학과 더불어 심리학을 팔푼이로 취급하며 왕따시키곤 하는 지적 오만을 그동안 보여왔다. 그러나 진화심리학, 신경심리학과 뇌과학 등이 급성장하면서 오히려 '합리적 선택 이론'에 기반한 경제학의 기존 이론들이 헛소리라는 것이 판명나고 있다. 이제는 심리학자들이 경제생활에 대해서 경제학자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시대가 되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은 주로 감정의 지배를 받으며 이들의 선택은 비합리적이고 환경이나 초정상자극 등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민물' 경제학자들이 고등수학과 통계학에 기대어 지적 오만을 부릴 과학적 근거가 희박해졌다. 이제까지 경제학자들은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지식의 착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경우다. 솔직히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지만 자연과학의 정확함이나 고상함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제는 경제학의 약점을 보완하고 잘못된 논리를 바로잡아 현실경제에 도움이 되는 학문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요즘 유행하는 행태경제학과 행복경제학이 바로 그런 대안 경제학의 후발주자들이다. 후발주자들은 그동안 왕따당했던 막내인 심리학과 사촌형 물리학을 잘 챙긴 덕분에 각광받고 있다.
이정전의 [경제학을 리콜하라](김영사, 2011)는 국내 경제학자가 쓴 교양경제서 가운데 수작에 속한다. 저자는 경제학의 변천사에 따라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며 일반 경제학 교과서의 잘못된 논리와 가정 그리고 원리들을 비판한다.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과 손익계산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시장경제의 불확실성과 경제적 행태의 야성적 충동을 무시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저자는 먼저 여러 현실적 사례들을 열거하며 경제학 교과서의 논리를 비판한다. 저자가 언급하는 사례는 범죄율, 성매매, 담뱃값 인상논쟁, 이혼율, 환경오염, 실업, 사채업 등이다. 주류 경제학 교과서의 논리는 합리적인 이해득실을 따지는 합리적 선택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예컨대 범죄행위가 발생하는 이유를 손익계산에 따른 합리적인 행위라고 간주한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시장경제 메커니즘과 인간 행태에 대한 무지를 보여줄 뿐이다.
다음은 경제학의 변천사에 따라 원류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덤 스미스부터 경제학을 이론적 반석 위에 올린 데이비드 리카도, 헨리 조지, 자본주의 시장의 정체를 근원적으로 파고든 카를 마르크스, 거시경제학의 지평을 연 케인스까지의 경제학의 굵직굵직한 사상가들을 정리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토드 부크홀츠를 비롯한 다른 유명 교양경제서도 이런 식의 정리를 하고 있기에 저자의 300년 경제학사의 간단한 정리가 이 책만의 강점은 아니다. 이 책의 강점은 바로 주류 경제학의 치명적인 약점을 체계적으로 들춰내고 아울러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발생 맥락을 이론적 측면에서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더 큰 금융경제 쓰나미가 오리라고 점치는 이들이 있는데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경제학의 비조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인데 현재 보수주의자와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영원한 우상으로 취급받는다. 저자는 바로 신자유주의자들이 보지 못한 애덤 스미스의 또다른 면모를 통해 '새로운 중상주의'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부각시킨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공격한 당시의 지배적 경제체제는 중상주의였다. 중상주의는 국가간의 관계를 먹지 않으면 먹히는 관계로 보고 정부주도의 상공업육성책, 저임금, 보호무역정책 등을 주장한다. 이와는 반대로 애덤 스미스는 자유방임과 최소정부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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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 열풍과, 정의란 무엇인가의 광풍 이후 한국의 출판계는 인문학 열풍, 특히 신자유주의와 평등, 분배, 정의와 같은 화두가 장식하고 있다. 몇년 전 몰아쳤던 재테크와 자기계발 붐 신드롬에 이어, 엄마를 부탁해로 정점을 찍은 소설 열풍에 뒤이어 인문학 분야, 특히 경제 정의 분야를 주로 한 책들이 붐을 이루고 있다. 이 책 <경제학을 리콜하라>역시 이러한 붐을 타고 기획되었다고 할 수 있는 책 중 한 권이다. 한국에 녹색경제라는 단어를 심어준 명망높은 교수의 책이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 기획의도에서는 나쁜 사마리아인과 정의란 무엇인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분위기가 책에서 풍겨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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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자는 초심으로 돌아가 고전을 다시 만나보자고 말하고 있다. 경제학의 실패를 경고해 왔던 대가들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면서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가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이해해보고, 경제학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알아보자는 것인데, 경제학이라면 우선 머리부터 지끈거리는 두통을 동반해왔던 것이 사실인 학문이었음에 이 책에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지만 제목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을 리콜하라니,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을까 기대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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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이나 신문에는 연일 금값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전세가는 부동산의 실매매가에 육박하고 있으며, 가구당 부채는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등 앞이 안보이는 우울한 보도뿐이다. 세계경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로 불어닥친 금융위기는 전세계 경제에 불황의 그림자를 드리웠고, 유럽 국가 중에서는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며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세계 석학들은 앞다투어 지금과 같은 현상을 분석하고 진단하지만, 어느 누구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돌파할 만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내노라하는 경제학자들이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현재의 사태를 설명할 수도 대책을 마련할 수도 없다는 것인가? 지은이는 현재의 주류경제학을 리콜해야만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리콜은 잘 알다시피 상품이나 용역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사후적으로 수리, 보완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라고 한다. 이제까지 현실경제를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하였던 주류 경제학으로는 지금과 같은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데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경제학은 시장 경제는 언제나 균형에 다다르게 된다는 가정이나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가정 등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주류 경제학에 이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 이론의 토대를 이루었던 내용들을 전면 폐기하고 인간을 위한 경제학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며 행동경제학, 인간경제학 등을 주장하는 견해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책도 바로 그와 같은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9장에 걸쳐 경제학 교과서의 논리, 신중상주의, 애덤 스미스의 이론, 마르크스와 케인스의 이론 등 경제학사를 통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굵직 굵직한 경제 이론을 소개하고, 각 이론들이 가진 장점 뿐만 아니라 그 약점과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경제학의 역사와 함께 이론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전혀 새로운 내용이거나 들어보지 못한 내용은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서 지적되고 이야기된 부분들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경제현실에는 전혀 변화가 없이 예전의 경제이론을 그대로 적용하며 현실경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서점가에는 현재의 경제를 진단하고 대책을 호소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처방전을 내려주는 글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리콜은 전문가들이 할 수 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로 대중들을 현혹시키지 말고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손에 잡히는 처방전을 주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들도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현재의 경제시스템과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이제는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는 단계에 온 것 같다. 20세기 기계론적인 사고 방식에 들어맞던 주류 경제학이 21세기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경제학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옷을 갈아입을 단계가 된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리콜 처리를 할지 기대해본다.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한 힘든 시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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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때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학을 접목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범죄, 사회학, 정부 정책, 문화 등등에 걸쳐서 마치 경제학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제학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 어떤 발표를 보더라도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경제학적 가치, 경제적 효과라는 쓰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경제는 총체적 난국이다. 더군다나 최근들어 발생한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나, 미국의 경제 불황, 유럽국가들의 신용등급 하락 등으로 인한 국내 경제의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더이상 경제의 현재의 경제난을 해결한 특단의 조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 책은 현 시점에서의 경제학을 문제를 논하고, 이런 경제학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적은 글인 듯 하다.
1장에서 나오는 경제학 교과서의 논리는 딱딱한 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면서 시작하고자 우리들의 일상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이 상당히 흥미로우면서 재밌게 다가온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장르에 대해 상당히 시사적이면서도 독자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어 당길 수 있는 소재들을 초반부에 잘 배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본론으로 들어가서는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의 이론을 다양한 사례로 들어서 쉽게 설명함과 동시에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선보이고 있다.
행태 경제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들을 경제학/심리학적으로 살펴보면서 그의 주된 논리와 경제학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흔히들 사회주의 경제학자로 인식하고 있는 마르크스에 대한 좀 더 진지하고 다양한 접근과 그의 경제학 이론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쳐 보는 시간은 확실히 유용했던 것 같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사회주의적인 주류경제학에 대한 좀더 솔직한 평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화두로 떠오른 분배에 대한 마르크스의 입장을 들어 볼 수도 있다. 그가 생각하는 가격과 분배에 해안 입장은 무엇인지를 통해서 현재 경제논리 속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부의 재분배와 복지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도 한번 생각해 볼만할 듯 하다. 그리고 급변한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현경제 상황을 마르크스의 경기 변동 이론과 경제 성장에 대한 시각을 통해서 제대로 분석해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끝으로 케인스의 적용에서는 위험과 불확실성이 난무하는 예측 불가능한 경제 상황 속에서 케인스의 이론과 철학을 통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경제가 단답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이상 단 하나의 정답은 있을 수도 없고, 100% 정답도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어느 한 경제학자의 주장이 모두 맞을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의 경제학이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있는 것처럼 경제적 난국을 해결하는 방향도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다양한 견해를 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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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오랜시간을 경제학자로 살아오면서 느끼는 점들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원래는 경제적인 현상들을 이야기를 하고 앞날을 예상을 하여야 하는 경제학자들이 왜 앞날을 예상을 못하고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한 현상 파악도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일침을 내리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쓴 국부론을 기초로 하여서 생성을 한 경제학은 사람들이 살아 가면서 발생을 하는 여러가지의 경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을 제시를 하는 것이 학문의 목적인데 현재는 현상에 대한 연구가 아닌 만들어진 결과를 가지고 그것에 맞추어서 모든것을 설명을 하려고 하고 자신들이 교부로 생각을 하는 국부론에 대하여서도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 모든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는 학자들에게 진정으로 경제학을 하려면 기초를 다지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하여서 평범한 시민의 사고에 맞는 연구를 하라고 일갈을 한다. 자신들의 세계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일상과는 괴리과 되는 수학적인 이야기만 하고 그러한 것들만을 연구를 하고 있다면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필요가 없는 학문이 되므로 경제학의 시조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연구를 하고 그에게서 발전이 된 경제학의 기초를 연구를 하여서 생활과 밀접한 연구를 하고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서 생활에 발전을 도울수 있는 학문을 알리는 방향으로 책을 만들은 것 같다. 1. 애덤 스미스 국부론의 저자로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책을 출간을 하던 시기에는 자본주의가 태동을 하는 시기였고 그러한 태동을 보면서 많은 문제들을 알게되고 그 문제들을 지적을 한 책이 국부론이라고 하는데 많은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맞는 부분만을 발췌를 하여서 사용을 하고 있고 애덤 스미스가 말을 하려고한 진정한 부분들은 생략을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한다. 오랜전의 책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국부론에서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것처럼 현대의 학자들도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과거의 인물인 애덤 스미스를 이용을 하여서 자신의 생각과 같은 부분을 발췌를 하고 그러한 부분을 알리면서 자신의 생각이 오류가 아니고 정설이라는 사실을 주장을 하는 부분으로 사용을 하고 있는것 같은데 이러한 행위는 진정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모습이 아니라 일명 호가호위를 하는 모습과 같다. 국부론은 저자가 많은 심혈을 기울여서 발간을 한 책이 아니고 자신의 취미를 위하여서 발간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러한 책을 그동안의 오랜 시간동안에 다른 책으로 대체를 하고 자신의 새로운 현실과 맞는 학설을 만들어 내는것이 아니고 오랜 고인의 명성만을 빌리는 행위를 하고 현실에 맞는 연구는 게을리 하면서 고인의 진정한 사상도 제대로 공부를 한하고 있는 현대의 학자들의 모습이 갈수록 어려운 것들은 싥어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일맥상통을 하는 것 같다. 2. 경제학을 지금의 위치로 만들어온 학자들의 저술을 후대의 학자들이 이용을 하면서도 그들이 진정으로 생각을 하고 강조를 한 부분들은 사라지고 자신들의 필요에 의하여서만 강조를 하는 부분들이 많은데 그러한 부분들 때문에 갈수록 경제학이 연구실에서만 활용이 되는 학문이 되어가고 본질적으로 실생활에서 유용한 부분을 찾지를 못하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갈수록 이상한 수학적인 방법만을 찾고 인간을 상상속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경제학을 버리고 고전적인 학자들이 연구를 하였던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하여서는 연구실에서만 있을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공부를 하여서 다시 경제학을 인류가 필요로 하는 학문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