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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미니우스주의를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칼뱅주의에 대한 대화로 이어진다. 애초에 칼뱅주의가 탄생한 것도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부정하기 위한 다섯 기둥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기에,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전제를 살펴보면 왜 그러한 움직임이 시작했는지 알 수가 있다. 물론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진정으로 신을 경외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을 진정으로 경외하기 위해서는 한정된 세상의 이성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이론을 비추어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아르미니우스주의보다 칼뱅주의가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