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쯤이면 아프리카를 비극이란 단어와 결부시지키 않고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을 무섭게 흔드는 모든 것이 아프리카에 있었다. 내전과 살상, 기아와 에이즈. 그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비극은 인간이 같은 인간을 무차별로 죽이는 일이었다. 학살은 과연 인간이 어느 선까지 내려앉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명한 척도였다. 그러므로 그 선을 넘어서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선을 넘어서는 일이 1994년 르완다에서 생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마음을 나누던 이웃이 하루 사이에 살륙자로 돌변했다.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 대학살은 인종 청소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를 냈다. 그해 4월부터 7월까지 100일 동안 80만명의 투치족이 죽었다. 투치족의 75%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 절망의 시간을 잔이란 여자 아이가 겪었다. 가족은 다 죽고 잔만 살아남았다. 대학살이 일어났을 때 잔은 8살이었다. 잔에게는 깔끔한 성격의 엄마와 진중한 성격의 아빠, 그리고 친구같은 오빠와 떼쟁이 여동생이 있었다. 집에는 집안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몇 있었고, 그들은 후투족이었다. 잔은 종족이 다르다는 것이 누군가를 죽이고 죽임을 당할 만큼 엄청난 일이라는 걸 몰랐다. 잔은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암살됐다는 소식이 들리던 날부터 설명할 수 없는 심상찮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불온한 기운은 삽시간에 후투족 사람들을 휘감았고 살해자와 피살자로 두 부족을 나누고 말았다.
르완다에서 비극이 일어난지 벌써 1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긴 시간이 지났건만 살아남은 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흔적처럼 가지고 있다. 누구도 잔의 마음 속에 새겨진 고통을 지우개로 지우듯 지워낼 수 없었다. 그러나 잔이 자신의 깊은 상처를 말하고 그 시간들을 돌아볼 때 희망의 싹은 조금씩 돋아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을 때 인간의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잔에게 독일인 엄마 한나가 있듯이, 이 책은 내게 너도 잔같은 누군가에게 한나가 되면 어떻겠냐고 말하고 있다.
* 비룡소 이달의 우수 리뷰
|
|
택배로 책을 처음 받아보았을때 투명 포장지에 가려진 책표지가 정말 인상 깊게 다가온 책이다. 해질녁 무렵인지 어느소녀가 급박하게 달려가는 모습을 담은 표지와 함께 책의 제목인 천 개의 언덕은 어렴풋이 책의 내용을 잔잔한 파도처럼 속이 보일듯 말듯 무언가를 내비치는듯 했다. 추석연휴동안 틈나는 대로 읽어내려간 책이지만 장장 500여페이지에 가까운 제법두꺼운 책으로 읽어가는 내내 흥미진진함은 이루말할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지은 작가는 독일인으로 아프리카의 전쟁고아를 중심으로 전세계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을 받아 들여 키운다고 하니 정말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잔도 평화롭게 살던 마을의 평범한 소녀였으나 1994년 르완다 내전중 민족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소녀의 이야기를 작가가 받아들여 키우면서 글로 풀어낸 이야기라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솔직히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나에게는 잔의 이야기가 허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만큼 어린나이에 죽음이라는 문턱 앞에서 겪은 일들이 마치 전쟁영화에서는 볼수 있었던 잔인함,공포를 직접 목격했다니 작가 앞에서 말 꺼내기 조차도 무척 힘들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에서도 작은 섬에 불과한 르완다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이지만 아주 오래 된 이야기도 아닌데 민족 대학살이 일어났었다니 마치 우리나라의 북한과 남한이 갈등이 있는것처럼 남의 이야기같지 않았다. 이 내전으로 인해 백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꿋꿋하게 살아남은 잔의 이야기는 읽는 이들의 독자들로 하여금 밝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뉴스를 검색해보다가 최근에 르완다 내전중에 학살에 가담한 용의자가 17년만에 체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천 개의 언덕을 통해 르완다의 민족역사에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도 큰 도움이 된것 같다. |
|
TO. 잔 잔, 너는 가족들을 모두 잃었어. 단지 투치족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말이야. 너는 사촌들과 함께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너의 여동생 테야와 사사건건 경쟁을 하기도 했고 오빠 장도와 재밌는 장난을 하기도 했어. 그런데 그 행복했던 시간들은 후투족들이 투치족을 학살함으로써 무참히 깨졌지. 이웃들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철저히 적이 되어있었어. 그들은 목숨을 위협하며 투치족들의 재산들을 강탈했지. 결국 너는 가족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았어. 나쁘고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던 반군들은 후투족들을 살해하고 너희를 구해줬어. 하지만 너는 그들도 후투족들이 남기고 간 재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걸 보고 가해자와 피해자만 바꼈을 뿐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했어. 잔, 네가 독일에 살던 이모 덕분에 다시 사랑받을 수 있는 가족들이 생긴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 넌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네 곁에 너를 사랑하고 너만큼 너의 상처를 아파하는 가족들이 있어서 넌 점점 네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될거야. 잔, 넌 죽음을 이긴 아주 강인하고 대단한 아이야. 그러니까 꼭 행복해 지렴. 이 책을 읽고 생각난 건 '까마귀의 여름'의 헨리가 생각났다. 헨리는 전쟁 때문에 가족을 잃고 군인이 되었다. 그리고 잔은 민족 대학살 때문에 가족을 잃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격따윈 없는건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인 것 같다. 거기다 잔 같은 경우는 자신과 다른 종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였다. 보기에는 구분도 못하는 그 종족 때문에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었다. 잔은 후투족에게 강인하게 맞섰다. 어리고 약한 여자아이였는데도, 굴복하지 않았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잔이 좋아했던 제임스조차도 자신의 집에 있는 마리 앙젤라 나무를 마음대로 이용하는 걸 보고 세상에 완전히 질렸을 때, 나 역시 이 세상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하지만 지금 잔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세상에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도 전혀 지겹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잔의 심정이 되었고, 잔의 이야기를 잔에게서 직접 듣는 것처럼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원래 이런 책은 재미 없을 거라는 내 편견이 부끄러워졌다.
|
|
‘천 개의 언덕 너머 그래도 태양은 떠오르고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꾼다.’
![]()
|
|
천 개의 언덕
|
|
데데!
고작 해 줄 수 있는 게 네 옆에 앉아 호흡을 함께 하고 네가 울 때 가만가만 등을 토닥여 주는 것 뿐이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약속할게. 두 눈 똑바로 뜨고 인간의 광기가 이 세상을 활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섣불리 용서라는 말도, 희망이라는 말도 하지 않을게. 절대 잊을 수 없겠지만, 잊어서도 안 되겠지만 과거 속에 너를 가두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넌 '잔 다르크'처럼 죽음의 늪에서 살아온 불굴의 투사이자 '우무비에이'라는 이름처럼 생명을 선사하는 아프리카의 딸이니까.
<천개의 언덕>은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아프리카의 르완다에서 벌어진 '대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오랫동안 함께 살던 이웃들이 고작 백일 만에 정글 칼과 몽둥이로 서로를 죽인 숫자가 백만 명이 넘는다. 후투족과 투치족!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보이는 데로 서로를 무참하게 도륙했다. '잔 다르크 우무비에이' '잔'이라고도 부르고 '데데'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던 소녀는 눈 앞에서 머리가 깨진채 죽어가는 엄마를 봐야 했고 얄밉다고 눈 흘기던 여섯 살난 동생을 폭탄이 터지던 주민 회관 속에 남겨 두고 도망쳐야 했다. 재앙을 예고라도 하듯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폭격을 당하고 그 끔찍한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순간 평화롭던 '키분고 마을'은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시민들을 책임져야 하는 시장이 오히려 시민들을 버리고 투치족의 집단 학살 현장을 묵과한다.
왜 나만 살아 남은 것일까? 오빠 '장도'의 신발 한짝을 숨기느라 장난치던 시간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침대 밑에서 끌려나와 광장에서 몽둥이에 맞아 죽어 가던 오빠를 보던 잔은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비명도 지를 수 없다. 울음도 비명도 꽁꽁 얼어붙어 꼼짝을 할 수 없었던 소녀... 르완다는 후투족이 84퍼센트, 투치족이 25퍼센트, 트와족이 1퍼센트로 이루어진 나라다. 15세기경 유목민 출신의 투치족이 농경 생활을 하던 후투족을 흡수하며 지배하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을 거치며 두 부족은 갈등 속에서도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잘 살아 나갔다. 하지만 서구 제국주의의 힘이 미치면서 두 부족은 식민지 열강의 '분열 정책'에 말려들며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된다. 두 부족을 이간질 시키면 자기네들끼리 싸우느라 독립은 뒷전일 거라는 교묘한 술수에 놀아난 것이다. 벨기에는 당시 지배 계급인 투치족을 우대하고 후투족을 차별함으로써 갈등 관계를 조장한다. 그렇게 바라던 '독립의 날'이 왔지만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았을까? 한국 전쟁 때 남북한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었던 것처럼 부족 간의 전쟁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후투족과 투치족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그 후로 다시 권력을 찾으려는 투치족 반군과 내어주지 않으려는 후투족 정부군 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지고 '민족 대학살'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불러오게 되었으니... '한나 얀젠'은 14명이나 되는 아프리카 아이들과 다문화가정을 이루며 글을 쓰고 있는 작가다. 그녀 역시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일까? 말도 통하지 않는 '잔'을 이 먼 곳까지 데려 오며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잔'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 자신을 회복시키는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꿈 속까지 따라오던 그 날의 기억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혼자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에 몸서리 쳐야 했던 소녀의 아픔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진다. 하지만 작가이기 이전에 '잔'의 엄마로 함께 고통을 나누고자 했던 '얀젠'의 뜨거운 기다림이 있었기에 '잔'은 동굴 속에서 힘겨운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이 세계의 차원과 양극, 즉 처음과 끝은 실은 우리 자신의 한계가 만들어 낸 거야.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앞으로도 끊임없이 전진할 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 해. 하지만 난 확신해. 시간은 결코 앞으로 뻗어가는 화살이 아니라는 걸. 시간은 원이야. 삶과 죽음의 원리로 돌아가는 원이지. -본문 486 발췌- 왜 사람들은 시간이 끝없이 직선으로 뻗어 나간다고 믿는 걸까?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엄청난 일들이, 내 편이 아니면 곧바로 적이라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누군가의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꼼짝없이 과거에 붙들려 있게 하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매순간 살아가고 있는 시간이라는 개념 역시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라고 구분짓는 것 또한 시간의 흐름을 직선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논리일테니까... 오히려 시간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원리'로 맞물려 있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죽지만 누군가는 살아 남아서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동그란 원... '잔'은 살아 남았다. 살아 남은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것도 행복하게 보내는 것도 '잔' 스스로의 선택이지만 결코 그 굴레가 녹녹치는 않으리라.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기도 하지만 '홀로코스트' 같은 '집단적 광기'를 보일만큼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에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이보다 더한 비극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레 '희망'이라는 이름을 얘기하고 싶다. 살아남은 '잔'이 곧 희망이듯이 그녀가 무언가를 이루리라 믿어서가 아니라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아 남았기에 희망이 아닐까? 생명이란 이토록 눈물겨운 존재가 아닐까? <천 개의 언덕>을 넘어 온 '잔'에게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때로는 그 언덕들이 커다란 산으로 자라나 앞을 가로 막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로지 살기 위해 걷고 또 걸었던 그 걸음이 '삶의 길'로 인도해 주었듯이 '잔'의 손을 놓치 않으리라 확신한다.
삶이란 때로는 험하고 거친 언덕을 천 개나 넘어야 하지만 그 언덕 너머에 있을 태양을 바라보기까지 참고 견디며 살아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다. 쉽사리 포기하고 때로는 순간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생명을 져버리는 청소년들에게 삶이란 이렇게 치열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가르쳐준 뜨거운 책이었다. |
|
잔은 르완다에서 아빠 아나니,엄마 플로랑스,오빠 장도,여동생 테야와 살고 있는 평범한 소녀였다. 그녀가 투치족이란 것을 빼면 남들과 다를 바 없었다. 르완다는 후투족 84퍼센트, 투치족 25퍼센트, 트와족 1퍼센트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르완다의 대통령이 죽은 후 후투족은 투치족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정글칼과 몽둥이로 죽이기도 하고 투치족을 한 곳으로 몰아넣어 그 곳에 수류탄을 던져 한꺼번에 죽이기도 한다. 잔은 죽을 뻔 했으나 가까스로 살아남아 카린, 샹탈, 마리아의 아이들과 함께 이웃 사촌이었던 마리아이 친정집으로 간다. 하지만 마리아의 가족들이 자신들을 반기지 않는 것을 보고 잔, 카린, 샹탈, 마리아의 양 아들들은 마리아의 친정집을 도망친다. 하지만 곧 갈 곳이 없어서 다시 돌아온다. 그 후에 마리아의 양 아들들은 마리아의 오빠에게서 죽고, 잔,카린,샹탈은 마리아의 집에서 하인 노릇을 한다. 그러다가 반군이 들이닥치게 되고 마리아의 가족들은 잔과 카린 자매들을 데리고 피난을 간다. 그 곳에서 잔과 카린 자매는 반군이 자신들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서 마리아의 가족들을 피해 반군에게로 가고 반군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던 중 전쟁이 끝난다. 전쟁과 사람들은 모두 도둑이라는 생각에 말을 하지 않고 지내던 잔은 독일에 자신의 이모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이모에게로 간다.
잔은 지금 이 책의 글쓴이에게 입양되어 살고 있다. 잔은 무사히 살아남았지만 잔의 가족들은 무참히 죽었다. 그 외에 많은 투치족이 죽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죽어야 했을까? 후투족 사람들이 투치족을 학살하는 부분에서는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어제까지만해도 사이좋게 지내던 이웃을 어떻게 하루 아침에 무참히 죽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서도 느꼈지만 인간은 잔인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이 '잔인함'을 절제하고 행복해지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노력해야겠지만.... |
|
나는 먼저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책을 읽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입니까? 라고 묻고싶다. 사람마다 책을 읽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나같은 경우는, 공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 작가와 그 책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읽은 독자의 공감대 형성 말이다.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면, 누가 그 책에 흥미를 느끼고 감동을 느끼겠는가? 하지만, 이 책은 사실 아프리카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책이기 때문에, 어떻게 공감대를 형성했을까? 하고 궁금해할 수 있다. 공감대 형성은 그리 어려운것이 아니다, 매우 쉬운것이다. 마치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두 남녀가 상대방이 좋아하는 걸 찾아내어 사소한 것 까지도 자신과 연결시킬 때 더 가까워진것 같고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처럼, 사소한 것이라도 나와 연결시켜보면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친숙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의 앞부분에 보면, 주인공 데데가 동생 테야와 경쟁하는 부분이 나온다. 나는 그 부분에서 격한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딱 2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아는 언니와 동생의 경쟁사회는 정말 유치하고 조그마한것까지 자존심을 지키려 하며 언니와 동생이 아니면 상상도 못할만큼 살벌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데데와 테야처럼 나도 항상 동생에게 언니니깐 나만 혼나고,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내가 희생했는데 정말 이세상에 모든 언니들은 다 똑같은가보다. 아무튼 이 책은 이 사소한 공감하나로 작가와 '오래전 부터 알던 사이'가 된 기분으로 즐겁게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의 앞부분은 거의 데데의 가족 이야기로 전개된다. 정말 화목한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말이다. 하지만 어느날 데데, 즉 잔이 말라리야로 고생해 겨우 나은 날, 르완다의 대통령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해서 대통령과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르완다 정치인들까지 모두 죽게된다. 그 일로 전쟁의 기미가 보이는 듯 싶더니 얼마 되지 않아 후투족이 갑자기 광적인 집단들에 내몰려 이웃에 살던 튀족을 살해했다. 정말 민족 대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투치족인 잔의 가족들이 살고있는 곳까지도 피란민들이 몰려오고, 결국은 잔의 가족들과 이웃들 모두 젊은 청년들과 민병대에게 모두 죽고만다. 간신히 수류탄이 터지기 전에 빠져나온 잔은 아빠와 오빠, 그리고 샹탈 자매를 만나 도망치지만, 그 과정에서 아빠와 오빠가 죽고만다. 그 모든 사람들 중에 살아남은 세명, 샹탈 자매와 잔은 이웃 여자였던 후투족 마리아를 만나서 마리아의 집에 가게 된다. 비록 투치족인 걸 아는 몇 사람때문에 가는 길 내내 고초를 겪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힘을 내 자자마을에 도착한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반군, 즉 투치족들이 몰려오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마리아의 오빠가 투치족인 잔과 샹탈 자매를 죽이려 한다는 걸 알고 도망치게된다. 다행이 반군인 여군 콩솔레를 만나게고, 반군의 보호아래 무사히 지내던 중 마침내 전쟁이 반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게 된 잔은 우연히 알고 지냈던 임마쿨레를 만나고 용기를 얻어 독일에 살던 자신의 이모를 찾아 비행기로 떠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잔의 용기와 똑똑함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린아이가 정말 가족의 죽음을 다 지켜보았으면서도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가히 높히 살만했다. 수많은 위기속에서도 상황을 잘 판단한 잔은 정말 위대한 소녀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잔이었다면, 사랑하던 가족이 끔찍하게 죽은걸 보았다면, 살고싶다는 의욕조차 없어졌을것이다. 요즘 인터넷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성폭행이나 살인 등 범죄 기사가 뜨고, 하루라도 발뻗고 편히 잘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종말이라는 단어가 어울릴만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아무리 험악하고 위험한 세상에서도 아직 희망과 사랑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그럴것이라 믿는다. 잔이 끝까지 희망을 가지고 사랑을 가진 사람들을 믿고 포기하지 않았을 때 그 끔찍하고 잔인한 민족 대학살 중에서도 잔에게 생존이라는 단어가 얻어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믿을 사람하나 없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 어두운 세상에, 마치 빛 한줄기 안보이는 끝이 없는 길을 달려가고있는 지금 이시점에, 우리 모두 희망과 사랑, 두 단어를 믿고 끝까지 달려가보자. 그러면 빛이 환하게 비치는 출구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
책은 오랜 내전으로 부모와 형제,온가족을 다 잃은 르완다 소녀의 아픔을 토해내는 일기이자 희망을 찾아 한걸음씩 세상을 향해 내딛는 소녀의 고백같은 이야기이다. 먼저 이 책을 읽기전에 르완다가 왜 그렇게 오랜기간동안 내전이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알고 읽으면 더 도움이 될것이다. 독일과 벨기에에 의해 오랫동안 식민지로 있으면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가난한 후투족과 소수이면서 부를 독차지한 투치족의 갈등은 필연적일수 밖에 없고 그런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지않은 유럽사람들에 의해 갈등은 더 심화되어갔다. 그래서 끊임없이 정권을 차지하고 그 정권을 반대하는 반군들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항상 소수인 투치족들이 당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부를 가지고 있는 투치족들은 물러서지않았고 그들간의 내전은 다른 나라의 관심에서 벗어나면서 장기적으로 악질적 만행으로 이어져 오고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저택에서 교사이신 부모님과 오빠,여동생과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잔. 비록 소수인 투치족이지만 여유롭고 윤택하게 살아가고 있어 걱정이라고 없는 생활을 하던 잔 네 가족에게 어느날 불시에 벼락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대통령이 타고 가던 헬기가 폭발하고 주요관리들 역시 죽으면서 투치족들은 공포에 휩싸이고 피난길에 나서지만 집들이 파괴되고 거리한쪽에서 약탈당하고 거리낌없이 총들을 겨누는 사람들..그들은 같은 동네에서 자라서 서로 알고 지낸 사람들이자 평소에는 의식하지않았던 후투족이었고 그들은 투치족들을 향해 망설임없는 살육을 저지른다.눈앞에서 엄마와 오빠가 처참하게 죽는걸 목격한 잔은...피난길에 오르지만 도아주는 사람도 없고 더 이상은 사람들을 믿을수도 웃을수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기만 하다.지옥과도 같은 르완다를 벗어나 유럽으로 온 잔은 혼자만 살아남은것에 죄책감을 느끼는데..
갓 8살을 넘긴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잔혹한 현실이다. 거기다 그들의 집을 빼앗고 눈앞에서 가족을 죽이는 사람들은 생판 모르는 남이 아닌 얼굴을 알고 지낸 사람이거나 그들을 아는 사람들이란 점이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다.오랜세월 동안 곁에서 빈부의 격차와 서로 다른 민족이란 눈에 보이지않는 벽이 작은 사건을 빌미로 도화선처럼 터져 무자비한 약탈과 만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소녀가 느끼는 절망과 공포를 느낄수 있었다.같은 사람이면서 다르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폭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서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웃고 즐기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점이 더욱 공포스럽다.그들에게도 과연 죄의식이란게 존재하는걸까? 비겁하게 군중의 힘을 빌어 내 이웃을 ,같은 국민을 처단하는 사람들의 형태와 그들의 약탈을 지켜보면서 말없이 침묵하는 다수의 사람들 역시 그 죄에서 벗어나긴 힘들것 같다.지독한 악몽과도 같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꺽지 않았던 잔과 또다른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아이가 좀 더 크면 꼭 읽어보게 하고 싶은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