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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들이다. 좀 고달프고 좀 누추하고 좀 서럽기도 한 생의 이야기를 노래로 바꾸어 놓았다. 읽는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서도 정겹다. 모른 척 고개 돌린 채로 살아가고 있는 내 마음이 그러하고, 그럼에도 마음 따뜻하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있어서 또 그러하다.
작가가 남편의 고향 사람이란다. 시에도 경북 방언, 특히 문경의 지방말이 꽤 나온다. 함축적이면서도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은데, 이 지방말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썩 반갑고 다정하게 다가올 것 같다. 지방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글쎄 낯설 것도 같고 어떤 대목은 외국 시 번역문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방말에는 뜻만으로는 모자란, 이를테면 뉘앙스라는 걸 품고 있게 마련인데 그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또 커다란 차이를 낳기도 한다. 남편이 평소에 쓰는 말들로 익혀 둔 표현들을 시어로 만나 보니 특별한 멋이 있다. 사투리의 소중한 역할을 새삼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재미들보다 아프다는 느낌을 더 자주 더 많이 느끼게 한다. 아직은 살맛 나는 세상이 못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서 저마다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날이 과연 있겠는가 싶기는 한데, 그래도 나날이 심해져만 가는 듯이 보이는 세상을 향한 불평불만의 어느 한 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좀더 억울한 사람들 편에서, 좀더 고달픈 사람들 편에서, 좀더 말없이 참고 사는 사람들 편에서,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것에 더 많이 고마워하는 사람들 편에서 내보이는, 길지도 않은 짧은 노래들이 읽는 마음에 걸려 떨린다. 여기 이렇게 살고 있노라고, 외치지 않고 있음에도 생생하게 들리는 노래로 만든 시인의 목소리가.
비유나 상징으로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는 편이 아니어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대신 마냥 아름답고 마냥 순수하기만 한 세상을 보이는 게 아니어서 읽는 마음이 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픈 사람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하는데, 이마저도 내가 비겁한 사람이 되고 마는 형편이라면 변명 없이 받아들이려고 한다. 내 이기심의 그릇을 깨 나가려는 데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 이 시집은 스스로를 들끓게 해 준다.
가을이 오고 있다. 지리산에는 이미 가을이 한창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올 가을이 조금은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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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게와 잉 사이
전라도 구례 땅에는 비나 눈이 와도 겁나게와 잉 사이로 내린다
가령 섬진강 변 마고실의 뒷집 할머니는 날씨가 쫌만 추워도, 겁나게 추와불고마잉! 리어카 살짝 밀어줘도, 겁나게 욕봤소잉! 강아지가 짖어도, 고놈의 새끼 겁나게 싸납소잉!
조깐 씨알이 백힐 이야길 허씨요 지난 봄 잠시 다툰 일을 얘기하다가도 성님, 그라고 봉께 겁나게 세월이 흘렀구마잉!
궂은일 좋은 일도 겁나게 잠자리 떼 날아도 겁나게와 잉 사이로 날고 텔레비전 인간극장을 보다가도 새끼들이 짠해서 으짜까잉! 눈물 훔치는 너무나 인간적인 과장의 어법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 허공에라도 비문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 그라제, 그라제, 겁나게 좋았지라잉!
시인은 유목민이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마음 내키는 곳을 마음껏 내달린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머리를 깎았다가 신군부에 의해 하산당하고, 도시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지리산으로 훌쩍 떠났다. 지리산으로 떠난 뒤 “10년 동안 걷고 걸으며 세상 공부를 하고 / 10년 동안 생의 한 수 한 수를 복기하며 / 결국 오지의 야생화와 별들을 찾아다녔다.” 시인은 “좀 더 아프고 외롭고 가난한 길”(「시인의 말」)이었다고 돌아본다. 도시를 떨쳐내고 지리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기였으리라. 그리하여 시집에는 “바이칼 호수에서 맨 처음 목욕재계하듯이 / 산꼭대기에서 훌훌 옷을 벗고 / 기막힌 정수리에서 용천혈까지 별빛 샤워”(「별빛 내시경」)를 하며 본 별들이 반짝인다.
지리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포함한다. 겁나게와 잉 사이에 너무나 인간적인 과장의 어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85년 만에 소돌마을회관 책상에 엎드려 / 연필에 침 발라가며 한글을 배우는데 / 난생처음 자기 이름 석 자 써놓고 / 아이고 어매, 아이고 어매요 엉엉 울”(「김길순 - 일생 단 한 편의 시 1」)어버린 김길순 할머니, “한평생 고무신 털신 행여나 오밤중에 버선발로 지내다 / 이래 못난 발톰에 삼세판 봉숭아 꽃물” (「발톱마다 꽃 등불 - 일생 단 한 편의 시 2」) 들이고 홀로 저승길 캄캄한 길도 꽃 등불 환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여든아홉 살의 속골댁, 밤마다 백 살 먹은 먹감나무 찾는 소쩍새를 두고 “내 다 알제라, 환하게 알고말고잉 / 저눔의 소쩍이가 워디 워디로 밤마실 댕기는지” (「소쩍새의 길 - 일생 단 한 편의 시 4」) 말하는 섬진강 변 용두리 뒷집 할머니 같은 사람들이다. 어느새 시인이 닮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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