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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나 예술가에게는 그들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알아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다시한번 실감을 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그의 형제자매들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점, 어려운 살림에서도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살려주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준 정명훈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에 대한 존경심이 일었다. 이러한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세계적인 지휘자 마에스트로 정이 되기까지의 음악 인생이 담겨 있는 이야기로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의 일환으로 나온 책을 읽게 되었다.
그가 세계적인 지휘자라는 것. 어느 책에선가 본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그의 다정한 모습들과 최근에 우리나라의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는 피상적인 것만 기억하고 있었던 내게 이 책은 마에스트로 정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집 아들로 자라 부모의 아낌없는 배려와 지원 덕택에 음악공부를 했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그들 형제는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고 부모의 일손을 도와드리는건 예사였다. 그가 피아노를 배울때나, 지휘자 공부를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 천재였는지 알수 있었다.
정명훈은 인생에서 두 분의 좋은 스승을 만났다.
정명훈을 가리켜 '내 작품 최고의 해석자', '진정한 천재'라고 불렀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과 LA 필하모니에서 부지휘자로 있을때 상임지휘자로 있었던 스승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그들이다. 정명훈은 두 스승을 믿고 따랐다. 요즘에는 소위 멘토라고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이끌어주었던 스승때문에 자신의 삶이 성공적이었다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이처럼 우리 삶에서 자신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스승이 있다는 건 커다란 행복인것 같다. 스승 또한 제자가 노력과 열정을 다해야 스승에게도 사랑받는 법. 정명훈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이 그처럼 좋은 스승을 갖게 했을 것이다.
세계적인 지휘자로 이름을 알린 정명훈이 잊지 않는 사실 하나는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생각한 그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오면서 우리나라의 오케스트라를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오케스트라로 만들고 싶어했다. 모든 단원들을 오디션으로 다시 뽑고 젊은 단원들로 탈바꿈하여 그는 열정을 다해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세계를 향한 발돋음을 시켰다. 그는 시민들에게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어 시민들이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게 했다.
이 책의 저자 음악 칼럼니스트 류태형은 프롤로그에서 정명훈의 성공비결을 크게 두가지로 말했다. 첫 번째, 음악가로서 한결같은 직업의식이라며, 어떤 분야에서든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있게 마련이지만, 꾸준히 계속하는 사람은 당해내지 못합니다. 최후의 승자는 '계속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법이지요. (11페이지) 라고 말했고, "나는 끌고 가는 지휘보다 따라가는 지휘가 좋다." 라고 정명훈이 말한 것처럼 두 번째, 유연한 리더십을 들었다.
힘든 과정이었을텐데도 음악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열정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은 우리 청소년들의 롤모델이 되기에 넘치는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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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이 성년의 나이를 지나자 자유를 주었다.
그전에도 거의 방목 수준으로 키웠기에 간섭보다는 지켜봄이 많았지만 가끔은 부모를 실망시키기에 혼자 가슴앓이를 하는 날들도 있었다. 탈선이나 인격적인 결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가야할 길에서 머뭇거리고 한눈 팔 때 느끼는 실망감 때문이다. ‘한국인의 열정으로 세계를 지휘하라’를 읽으며 부러운 것은 7남매가 한결같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았고 그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것이다. 그들을 키운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남아있는지라 새롭지 않았지만 같은 부모로서 가진 부끄러움은 있다. 그것은 그녀의 신앙심이 자녀 교육의 원천이고 전부였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렵던 시절 생계를 위해 이원숙 여사는 시애틀에서 ‘코리아 하우스’라는 한식집을 경영했다. 불고기, 닭찜, 갈비찜과 같은 한국 음식이 주 메뉴였는데 놀라운 일은 식당에서 술을 팔지 않은 것이다. 술을 판다는 것은 신앙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쉬운 길도 있었겠지만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신앙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자산이고 믿음의 승리를 보여주는 행위다. 가끔 자신의 신앙을 돌이켜 볼 때가 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주위 친구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비춰지기도 하고 “혹시 다원주의자 아닙니까?”라는 빈정 상하는 소리도 들었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삶이 뒷받침 되지 않는 믿음은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원숙 여사의 믿음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가 저렇게 신앙의 원칙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삶속에서 보여주었을 때 비로소 믿음은 힘을 갖게 된다.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자기반성부터 시작하며 책을 읽어 나가는데 슬금슬금 “뭐야? 이거 정명훈 위인전 아니야”란 생각이 들며 책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자신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의 목적은 표지에 은색의 작은 글씨로 쓰인 것처럼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014’ 였다.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하여 쓰인 책이기에 정명훈이란 인간에 대한 조명보다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기, 지휘자로서의 꿈을 이루어 가는 시기와 그가 꿈꾸는 마지막 소망까지 연대순으로 기록을 했기에 위인전과 같은 느낌을 벗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이 책은 “정명훈이 어떻게 자신의 꿈을 이루었나?‘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겉표지를 넘기자 출판사는 자신들이 이 책을 출간한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세계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꿈을 크고 넓은 비전의 토양으로 바꿔줘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가치지향적인 사고를 꿈꾸며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인간의 이러한 사고와 노력을 가능케 하는 것은 롤모델이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의도를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 책은 제대로 읽히기 시작한다. 비록 정명훈에 대한 미화와 찬사로 가득한 책이지만 “내 아이도 이렇게 키워야겠구나!” 란 깨달음이 있다. 한참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이 책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정명훈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7남매가 자라면서 부모의 잔소리 하나 없이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을 보면서 질투나 “우리 아이는 왜 이러지?”란 실망이 아픔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의 롤모델이 된 정명훈에게서 어떤 교훈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한 분야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특징은 재능보다 노력에 있다. 정명훈도 마찬가지다. 아홉 살 때 처음 콩쿠르에 나간 명훈의 연주는 심사위원, 청중은 물론 참가자들까지도 우승을 점칠 정도로 빼어났다. 그러나 마지막 참가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연주를 하는 순간 명훈은 자신은 1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만큼 그 아이의 연주 실력은 탁월했다. 그 다음 해 명훈은 10살이 되었고 다시 콩쿠르에 참가했다. 물론 작년에 1등을 한 아이도 함께 했지만 이번에는 작년과 달리 명훈이가 1등을 했다. 그 이유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이야기 하지 않고 1년 동안 조용히 실력을 연마한 결과였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지만 정명훈은 1등보다 2등을 더 많이 했다. 그럼에도 그가 탁월한 지휘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실패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한 후에 정명훈은 한 인터뷰에서 “그때 1등을 했다면 계속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을 것이고, 어쩌면 지금처럼 지휘자 인생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정상의 자리는 하나고 그 길은 쉽게 열리지 않지만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열린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은 프랑스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을 때 뚜렷이 보인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피아노를 쳤다. ‘신문을 보듯이 악보를 샅샅이 훑어보고, 요리도 했다. 바스티유 오페라에서의 5년이라는 세월 내내 정명훈은 아홉 시에 출근해 밤 열두 시까지 오페라 극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처음에는 서툴던 프랑스어도 열심히 공부해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됐다. 정명훈은 완벽주의자답게 연습시간을 열 배 이상 잡고 세밀하게 음색을 고쳐나갔다.’ 이렇게 정명훈은 천재라는 찬사보다 노력하는 수재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
바스티유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정명훈은 이렇게 완벽한 음악을 추구했고 프랑스의 르몽드는 ‘정명훈은 진정한 승리자’라는 제목과 함께 작품을 꿰뚫는 통찰력과 추진력을 찬양했다. 옛 혁명의 발상지인 바스티유에서 정명훈은 세계 음악계의 정상에 우뚝 솟는 역사를 이루었다. 그러나 보수당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정명훈도 경질되게 되는데 예술의 나라인 프랑스도 정치적인 힘이 예술위에 굴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우리나라와 별 차이 없다) 그러나 정명훈은 불합리한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법정싸움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가슴을 뜨겁게 하는 감동이 있다. 자신이 정한 원칙에 타협하지 않은 한국인의 기상을 보기 때문이다. 정명훈이 바스티유 오페라단 음악 감독직을 사임하자 전 세계의 오케스트라가 정명훈을 원했다. 그러나 정명훈은 모든 좋은 조건을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가 국제무대에서 한물간 지휘자가 아니었나?”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에 불과하다. 그는 아직도 꿈꾸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말러 교향곡 8번의 연주가 끝났을 때 감동한 청중은 우뢰와 같은 환호를 보내며 감동을 표현했다. 이때 정명훈의 가슴이 뜨거워지며 ‘오늘같이 감동적인 무대를 한국의 오케스트라로 꼭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 내 조국의 사람들이 ’우리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가졌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할 테다. (295쪽)란 꿈을 갖기 시작했고 그는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서울시립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고 도이치 그라모톤에서 앞으로 5년 동안 매년 2장씩 총 열장의 앨범을 발매하는 계약을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달라진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위상을 볼 수 있다. 이제 60살을 코앞에 둔 정명훈에게 새로운 꿈이 있는데 ‘음악을 통한 남북 화해와 통일이다.’
정명훈이란 인물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그의 성공이 자신을 치장하고 빛내는 것에만 사용되었다면 그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벗어나 조국을 위해 남은 인생을 헌신할 멋진 계획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그 꿈은 진행되고 있다.
자신을 위해 성공한 사람들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다. 그러나 정명훈처럼 자신보다 조국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모습은 이 책이 주는 가장 위대한 교훈이다. 우리의 청소년들도 이 때문에 정명훈에 대하여 긍지를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성공의 가치와 의미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될 때 빛이 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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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진짜 유일무이하게 완벽한 연주를 한다면 내일은 다시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완벽한 오늘을 재현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런 완벽한 연주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거기에 가까이 가려고 애쓸 수 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 우리는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순수한 그의 음악 열정,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남긴 굵직한 그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이 이제 이 책 한권으로 시작된다.
정명훈은 정명화, 정경화로 유명한 음악가족의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 우수한 음악적 유전자는 정명훈에게도 그대로 전해진 듯 하다. 그의 누이들에게도 그랬듯 지금의 정명훈을 있게 한 것은 어머니의 아낌없는 지원과 애정 어린 격려 덕분이었다. 전후 힘들었던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누이들과 함께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어머니. 전쟁의 난리통에도 피아노를 포기할 수 없어 피난길에도 가져갔던 일화는 억척스러웠던 어머니의 교육열을 쉽게 가늠할 수 없게 한다. 본격적인 음악교육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후 정명훈은 본격적으로 피아노와 지휘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어렵게 마련한 첫 독주회에서 실수를 하여 의기소침한 명훈에게 어머니의 말씀은 평생의 교훈이 되었다. “명훈아, 난 네가 단지 정확한 연주를 했다는 평을 받기보다는 실수를 하더라도 청중에게 감동과 설렘을 주는 연주를 했으면 좋겠다.” 지휘자로 입지를 다져가던 정명훈은 파리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의 초대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어 자신만의 색채로 프랑스 음악계 및 세계에서 인정받으며 그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된다. 그러던 중 정치적인 외압으로 바스티유를 떠나게 되고 바라던 조국에서 지휘봉을 들게 되는데.. 이 책은 위대한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어릴 적 성장기부터 조국의 품으로 돌아와 음악으로 세계를 하나 되게 하려는 그의 평생의 신념을 이루기까지의 여정을 담담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틀리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연주에는 울림이 있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니까 내 악기는 여기까지만 연주하면 된다’ 하고 스스로 정해놓은 규칙을 깨야 합니다.” 정명훈의 말은 오케스트라 단원 뿐만 아니라 삶의 궤적을 따라 걷는 우리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 책은 명진 출판사에서 기획한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14번째로 세상에 나왔다. 출판사는 이 기획 시리즈를 내면서 이렇게 출판 의도를 말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가치지향적인 사고를 꿈꾸며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인간의 이러한 사고와 노력을 가능케 하는 것은 롤모델이 있기 때문이다.” 롤모델 시리즈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고 인생을 결정함에 있어 ‘의미 있는 타인’의 영향력이 필요하다는 교육학적 배경을 앞세우고 있다. 참 고마운 발상이다. 당신에겐 롤모델이 있는가? 어릴 적 나의 롤모델은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였다. 인도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문명세계의 기득권과 편안함을 뒤로 한 채 아프리카 밀림으로 들어간 슈바이처 박사는 어린 날 내게 ‘사람을 위해 사는 삶’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요즘 청소년들은 너무 바쁘다. 내 학창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시간을 입시 공부에 할애하면서 보낸다. 이들 중 자신의 롤모델을 정하고 따라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모든 것은 ‘대학 입학 후에’ 라는 모토 아래 아직 롤모델을 정하지 못한 젊음도 많지 않을까? 롤모델을 맘으로 정하고 그 길을 따라 가는 것. 이것은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지 않을까? 책을 통해 살펴 본 정명훈은 천부적인 재능과 부모의 헌신적인 후원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무서운 집중력이 더해진 피나는 노력이었다. 세대를 아우르며 칭송받는 인물은 역시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재능과 환경이 갖추어져야만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조건 위에 노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천재도 그냥 범재일 뿐이다. 이 땅의 청소년들이 마에스트로 정명훈을 비롯하여 시대를 아우르는 동서양의 위인들 혹은 주변의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들을 롤모델 삼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골인지점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오늘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한국인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말은 나를 비롯하여 이제 꿈꾸기 시작한 청소년들이 가슴으로 새겨야 할 금언이 된다.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음악이 있었고, 내가 가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음악은 들려올 것이다. 그렇게 음악은 계속 이어진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내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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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가 하는 일은 뭘까?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그것이 아닐까? 사실 개인적으로도 지휘자의 역할은 때에 맞춰서 움직여주는 메트로놈 이상의 기능(?)이 있을까 싶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참 단편적이면서도 관계자를 모독하는 갸륵한 발상이지만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기도 하다.
노다메 칸다빌레에 보면 치아키가 파리에서 플라티니 지휘자 콩쿠르에 참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후보자들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지휘하고 심사위원들은 지휘에 따라 곡이 어떻게 해석되는 지를 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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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곡의 해석이지 정식 오케스트라 단원을 신출내기 지휘자가 압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음악의 이해력, 표현력, 청력과 재능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만 가능하다. 바이올린이 리듬이 흐릿할 경우 좀더 명확하게 할 것을 주문하고, 악센트도 챙겨야 하며, 음의 길이도 체크해야 한다. 티파니의 리듬을 좀더 또렷하게 할 것을 지시하고, 호른의 소리를 더 높이게 한다거나, 하모니의 속도와 폭을 조율한다.
본선으로 올라가면 연주자 중에 한 두명이 일부러 실수를 하면서 그걸 골라내는 지를 심사하므로 곡을 완벽히 숙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폭넓은 이해를 하지 않고는 지휘자의 역할은 해 낼 수가 없다.
이 책을 보고 나면 지휘자에 따라 똑같은 곡의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지는 지 느낌으로라도 알 수 있다.
파트1, 역시 어머니!
자서전에서 어머니의 위대함을 강조하지 않은 책은 본 적이 없다. 정명훈의 어머니도 억척스레 7남매를 키워냈다. 피아노를 본 사람도 없던 시기에 국밥집을 하면서 피아노를 산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 피아노를 싣고 피난을 갔다는 사실은 위대함마저 느끼게 해준다.
첫째 정명소는 플루트, 둘째 명근은 바이올린, 경화는 바이올린, 명화는 첼로를 선택 했지만 사실 그 아래 명철, 명훈, 명규까지 음악을 시키기엔 너무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명훈의 피아노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이화여전 후배 덕분에 명훈은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배운다. 그리고 겨우 일곱 살의 나이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하며 천재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음악을 하기에 국내 여건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을 알고 명소, 명근을 시작으로 자식들을 미국으로 보낸다. 여기서 나는 로버트 케네디의 명언을 떠올린다.
한 인간이 이상을 위해 일어설 때마다, 혹은 운명을 향상시키기 위해 행동할 때마다, 혹은 불의에 맞서 투쟁할 때마다 그는 아주 자그마한 희망의 물결을 일으킨다. 그리고 수백만이나 되는 힘의 중심으로부터 파생된 서로를 가로지르며, 도전하며, 그 물결들은 가장 강력한 탄압과 저항의 벽마저 허물어 내릴 수 있는 조류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정명훈의 재능이 어머니의 열정과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그저 음악을 잘 했던 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1962년 시에틀 세계박람회 한국관에서 일할 생각을 어떻게 했으며, 그 많은 자식들을 데리고 어떻게 타향에서 버틸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하지만, 앞뒤를 재고 이해관계를 따지는 동안 클라이막스는 지나가는 법. 어머니는 주저하는 법이 없었다.
파트 2.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궤적을 되짚어 그의 화려한 수상내역과 경력을 일일히 적어주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마에스트로'라는 호칭만으로 그의 인생은 이미 화려하므로 말이다. 대신 나는 그에게서 여느 위인들에게서 보듯 '열정'을 본다. 그것은 단순히 음악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한 열정이다. 그것은 음악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으며, 또는 무모한 그 어떤 것이 될 수 있지만, 열정 만큼은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청소년 롤모델용 도서이다 보니 아무래도 디테일한 내용은 좀 부족하지만, 전체적은 흐름과 관심을 이끌어 내는데는 손색이 없다.
나는 첫째로 인간이요, 둘째로 음악가, 셋째로는 한국인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 '자존'을 갖는다는 것은 위인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가 바스티유 오페라 회견을 할 때도 자신의 이름을 바로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는 점이나, 세계적 유명세를 얻고도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 이런 부분은 최근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싸이에게서도 볼 수 있는 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결코 자기 분야에서 성공할 수 없다. 설사 요행히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할 지라도 그것을 지켜내기 어려울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 그리고 자아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모습이 청소년 들이 따라가야할 발자국이다.
책의 말미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조련해 가는 마에스트로의 이야기가 나온다. 광복 6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연주한 그들의 첫번째 곡은 베토벤의 '운명' 1악장이었다. 이는 1945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전신인 고려교향악단이 첫 연주회 때 무대에 올렸던 곡이었다. 이는 악단의 운명 뿐만 아니라 정명훈의 운명과도 같은 연주였다. 이후 서울시립교향악단은 2011년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을 달고 첫 음반을 발매하고,유럽 순회공연을 할 정도로 업그레이드 된다.
그 모든 운명의 시작을 다시한번 떠올리며, 베토벤의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가 전했던 말이 새롭게 와닿는다.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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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한국인 지휘자 정명훈의 음악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청소년 권장도서라서 그런지 위인전 스타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세계인이 귀하게 여기는 '마에스트로 정'에 관한 좋은 점, 배울 점을 알기 쉽게 풀어가고 있다. 그에게는 '메시앙의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지휘자', '바스티유 오페라의 지휘자'라는 호칭이 따라 다닌다. 이 책은 전 세계인이 귀하게 여기는 '마에스트로 정'이 되기까지 어린 시절부터 성장기, 명지휘자를 얻게 된 활약기, 현재의 활동들을 모두 담고 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정명훈의 성공요인과 관련해서 특징적인 몇 가지가 잘 분석되어 있다. 첫째는 어머니의 존재와 역할에 관한 부문이다. 어린 시절 한국이 낳은 세계적 음악가족 7남매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하고 그들에게 길을 열어준 존재는 역시 억척스러운 존재, 어머니였다.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자식들을 모두 유학시킨 어머니, 6.25 전쟁통에도 피아노를 가지고 피난가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는 역시 한국의 어머니밖에 없는 것 같다. 치맛바람이라는 부정적 측면이 있긴 하지만,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헌신해 왔던 한국 어머니들의 역할이 없엇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는 음악에 대한 정명훈의 열정과 의욕이다. 피아노를 선택했다가 지휘자의 길을 가게 되기까지 우여곡졸과 약간의 방황이 있긴 했지만 동양인을 보기조차 힘든 세계 음악계에서 마에스트로로 활약하기까지 밑바탕이 된 것은 결국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의욕이었다. 이 책에서는 그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 시절 겪은 많은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단원 한 사람 한사람을 존중하고 설득하고 이해시켜 그들 스스로 베스트 상태에서 참여하게 만든 유연한 리더십은 그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만들어간 원동력이었음을 밝힌다.
셋째는 최고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 부분이다. 음악의 세계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예외없이 적용되는 대표적 분야이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 음악가라도 연습없이 이루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이 책에서도 스스로 만족하고 완벽하다고 느낄 때까지 끊임없이 연습하고 반복하고 숙달하는 과정이 여기저기에서의 연주사례를 통해 자세하게 소개된다.
넷째는 세계적 거장이 되기까지 그에게 많은 영감과 가르침을 주었던 멘토의 존재이다. 명지휘자 정명훈을 있게 만든 마에스트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밑에서 부지휘자로 일하면서 '사랑으로 표현하는 리더십'을 배웠다. 작곡가 올리비아 메시앙을 범접할 수 없는 성자같은 분으로 여기며 평생 존경하고 따랐다. 역시 거장 아래서 또 다른 명장이 나오는 법이다. 정명훈에게도 이런 훌륭한 멘토가 자신을 더 넓은 음악세계로 도약하게 만든 촉매제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음악이 그의 삶의 핵심적인 부문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인간 정명훈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과 가정, 음악 그리고 세상과 어울리는 삶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조율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사실 오케스트라 자체가 다양한 악기간의 균형과 조화가 생명이다 보니 지휘자인 정명훈이 이런 인생관을 가진 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불우한 이웃을 위한 수많은 자선음악회 개최, 가정적인 삶의 모습,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모습이 소개된다. 단점이나 실패의 모습은 거의 소개되지 않는 위인전 형태의 전기가 오히려 인간 정명훈의 매력을 제대로 전달해 주지 못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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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그 이름만으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국위선양을 하시는 분들은 애국자다. <이책은> 명진출판사의 예스 단독 서평단 100명 선착순 모집에 냉큼 참여한 당첨물.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읽은 소감> 맹모삼천지교를 습득하던 한 소녀는 어느덧 고3 엄마가 되어 있다. 모르고 실천하지 않는 것과 알고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으로 비난의 칼을 들이댄다면 결코 자유롭기는 어렵다. 허나, 알고서 실행하지는 못한다해도 적어도 그에 근접한 방법으로의 일깨워줌은 할 수 있다는데서 그나마 알고 있으나 행하지 못함을 미화하려한다.
이 책은 참으로 술술술 읽힌다. 마치 초등학교때 읽은 위인전을 연상시킨다. 그때의 정신연령으로 보면 누구나 다 훌륭해 뵈고 어쩜 그리도 부모님 말씀에 다들 순종을 잘하는지...대부분 실패는 무척 작게 하고 성공은 무지 크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상과 기개들에 불끈불쑥이 치솟는 정의감과 공명심 등...따라서 위인들의 생애를 본받아 나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짐짓 다짐하게 되는 매우 교훈이 되는 책. 출판의 명가 명진출판 의 롤모델 시리즈 다.
부모가 되어 내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으나, 이젠 그런 바람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다. 자신의 맡은바 소임을 다하되 만족감을 가지고 성취욕을 높이는걸 바라게 된다. 성취동기가 없는 것보다는 있어야하고 목표치를 정해놓고 이뤄가는 기쁨을 알기를 바란다.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게 많지 않음을 알기에 정신적인 올바름을 많이도 심어주려 애쓰기는 했다. 미약하지만 사는동안의 정신적 자양분으로 작용할거라 생각한다.
정명훈은 형제가 참으로 많다. 음악이 함께하는 집안인데 그 영향은 모친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신식교육을 받은 대단한 여성으로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고, 그 기운이 아이들에게 골고루 포진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걸 할때의 마음가짐은 미쳐있다. 미쳐있는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다. 그 좋아하는걸 알게 해준 모성의 힘이 많은 음악가를 배출했다. 피아노로 시작한 실전이자 음악에 흥미를 부추겼지만 저마다의 악기에 소질이 다름을 알게 해준 것도 어머니의 안목이자 식견이셨다.
매우 흥미롭게 본 건 정명훈의 아내다. 무려 그 당시에 연상녀를 첫눈에 반해서 교제한 것. 5살 연상녀도 놀랄일이건만 겹사돈이라니. 끝내 아버지는 결혼식장에 불참하셨다니 그 시대의 사회적 잣대를 떨치고 이룬 사랑에 경의를 표하며, 또 한편으론 그런 열정은 예술가의 괴팍함(?)으로도 다가왔다. 자신이 믿는 것에의 도전이자 이룸이기에 그는 그렇게 가정적이란다. 어릴때 동생을 보살핀 가장아닌 가장이었으므로 요리도 곧잘 한다고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끝없는 가능성을 가진 희망이다. 한나라를 책임질 동냥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가능성을 열어두고서 끝없는 인내와 기다림을 가지고 차근차근 지켜보고 이끌어주는게 어른몫이다. 허나, 이런 어른몫이 자꾸만 속행의 길을 만들고 있다. 허리띠 졸라매고 그 무엇보다 먹고살기위해 고군분투한 부모님들이 이룬 경제를 바탕으로 자꾸만 나약한 아이나 손자를 양산하고 있다. 물질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정신이 나약한 어른아이다. 헝그리정신이 주는 절박함이나 간절함이 배제된 양육은 지향해야 한다.
아이사랑은 속으로 이뻐하고 겉으론 무심해야 한다. 이뻐하던 아이는 조금의 서운함도 못참아 일을 내기가 쉽다. 반대로 늘 무심한듯 지낸 아이는 그렇게 또 내성이 생겨 아무렇지 않은듯 지내다 외려 자그마한 말 한 마디에 감동받곤 한다. 당근과 채찍을 잘 사용하라는 말은 알되 실전에서는 어려운 신세대들을 많이 본다. 내 아이를 망치는 길은, 대놓고 내 아이만 이쁘고 내 아이만 잘났고 내 아이가 최고라는 생각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길이라 생각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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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것이 중학교때였던 것 같다. 교내 합창대회가 있었고 1학년 우리반은 자유곡으로 <코시코스의 우편마차>라는 곡을 선택했다. 당시 지휘자는 반에서 그리 주목 받지 않았던 한 친구였는데 어떤 경위로 지휘자가 되었는지 그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었지만 중학생이 되어 첨으로 하는 행사였기에 그러려니하고 모든 결정을 따랐었다. 연습은 시작되었고 그야말로 오합지졸 거의 70명에 가까운 한 반아이들을 데리고 파트를 나누고 연습을 하고 화음을 맞추려니... 정말 처음에는 아수라장 같았다 점점 파트 연습이 되고 파트별로 맞춰 곡을 불러보는데 합창 중간에 파트별로 짧은 음을 서로 교환하듯이 부르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박자를 맞추지 못하면 그야말로 음이 짬뽕이 되어서 난장판이 되는 그런 부분이었다..연습할때는 그 부분이 자연스럽게 불러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결전의 날은 다가오고.. 첨으로 많은 청중들 (전교생들)이 바라보는 무대에오르고 보니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시선을 줄 수 있는 곳은 지휘자의 손과. 얼굴뿐,,, 지휘자의 지휘와 그 표정과 입모양에 의존하면서 약 60여명의 우리반 학생들은 집중을 하고 합창을 했는데 이게 웬일... 그렇게 연습할 때는 되지 않던 그 부분이 정말 너무 자연스럽데 잘 불러진 것이다.. 그때처럼 그 지휘자친구가 커보이고 위대해 보인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 한 친구의 팔동작 하나하나에 우리의 화음과 하나됨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 지휘자의 모든 동작과 표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 그 결과는 바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지휘자라는 것의 중요성을 첨 알게 된 나의 경우인 듯 하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그렇치 않은 사람이든 지휘자 정.명.훈의 이름 석자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지휘자라는 수식어 이외에 어떤 지휘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자세히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나의 경우도 피상적으로 알려져 있는 그의 이력정도만 그를 알고 있었고 어린시절 짧은 경험과 드라마의 감동을 통한 (베토벤 바이러스) 마에스트로라는 명칭의 위대함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정경화, 정명화, 정명훈,, 세 남매 정 트리오.. 한명도 나올까말까한 천재적인 음악가 남매들 이미 그것으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지휘자인 정명훈보다는 바이올리니스트. 첼로스트였던 누나들이 더 유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언론에서 접했던 화려한 외국에서의 연주경력,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시립교향악단을 맡았다는 것,대중들과 클래식을 좀 더 친근하게 하기 위해 구청에서 음악회를 열었다는 것..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그에 대한 지식이었고 한국으로 들어와 그가 하는 활동을 보면서 참 다른 사람이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명진출판에서 출간된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의 한 인물로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음악 인생의 근원은 신여성이셨던 어머니 이원숙여사였다. 배화여고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유학까지 한 신여성이었지만 그 당시 할 만한 일들이 많지 않았고 생활을 위해 국밥장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교육시킨 어머니였다. 아이들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차리고 피난길에 피아노를 싣고갈 정도의 열정을 보이며 아이들의 음악인생을 열어준 어머니셨다. 짧은 글 속에 그 세월이 어떻게 다 얘기 될까 싶다. 그래서 일단은 결론위주의 이야기들이 전개되지만 어려웠던 시절,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할 수 없던 그 시절,그리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으면서 아이들의 천재적인 재능을 살려 음악을 계속하게 할 수 있게 한 모성애는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의 지휘자로서의 근본적인 자질은 스승인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의 영향이 컸다. 지휘자는 모든 악기 연주와 그 곡의 흐름을 파악하고 조율해야하기때문에 어찌보면 절대권력의 자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 권력을 행사하며 강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끌 수 있지만 정명훈은 스승 줄리니의 영향으로 강합적인 긴장감보다는 인격과 덕성의 지휘봉 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수 있는 덕장이 된 것이다. 단원들을 이끌기 보다는 그들이 훨훨 날 수 있게 하고 그들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그의 리더쉽이었다. 젊은 나이에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이 되고 정치적인 이유로 그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 그에 대한 세계 각국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과 신뢰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굳검함과 애절함이었던 것 같다.. 그러한 그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자신은 동양인. 한국인이다.. 나의 이 손으로 과거의 역사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한국, 일본, 중국을 정치적인 이념의 떠나 음악으로 하나되게 할 수 있다면. 더 나아가 한반도의 분단상황을 음악으로 하나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소망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언젠가 임진각의 평화공원에 나들이 갔다가 그 야외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가 리허설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지휘석에는 빨간 스웨터를 입은 정명훈이 앉아 단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정명훈이 이렇듯 훌륭하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지휘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웬지 지휘자하면 카라얀처럼 외국인이면서 중후한 멋을 지닌 그런 사람이어야한 다는 어줍지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에서 그 때를 생각해보면 그 모든 명성을 뒤로 하고 고국에 들어와 클래식의 대중화, 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들으러 찾아오지 못하면 직접 찾아가 연주를 하겠다는 그의 신념의 일환이었던 연주회 리허설 장면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악의 천재,, 물론 타고 난 재능도 있었겠지만 그 재능만을 가지고 모든 결과가 나오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음악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음악을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픈 마음, 음악이 그저 일부의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을 뛰어넘고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 것들의 그의 동작 하나하나. 손 끝 하나하나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그의 음악은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음악이 주는 감동이 각박한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했으면 한다.. 뜨듯미적지근 한 것이 아닌 매콤하고 짭짤한 한국인의 그 열정으로 세계를 지휘하는 그의 행보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함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는 첫째로 인간이요, 둘째로 음악가,셋째로 한국인입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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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네이트4 이건 자존심 문제야!’를 읽으며 생각했던 '나는 뭘 잘하고 있을까' 다시 생각하고 '우리 애들은 뭘 잘 할까' 생각하고 천재라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은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라는 걸 새삼스럽게 알면서 행운이란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얻는 거구나 느꼈다.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마에스트로 정, 프롤로그에 이 책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들어있다. ‘음악과 함께하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파티’ 음악전문지 ‘객석’의 기자였으면서도 막상
형제들은 처음엔 모두 피아노로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에게 맞는 악기로 바꾸고 우리가 아는 플루티스트 정명소,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클라리넷 연주가 정명철, 포크음악을 했던 나는 뭘 잘할까? 정리, 싫증 내지 않기 그리고 잔소리..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 혼자 잘 놀기 (역할놀이) 그리고 어지르기. 요리사가 되고 싶고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아이들.. 음.. 좀 더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 ‘음악이 잘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기술은 기본에 불과합니다. 음악 안에서 무엇보다 자유로움을 찾아야 합니다.’ 347페이지. 은하수관현악단과의 마지막 연습 후.
2012년 3월14일, 파리 살 플레엘 극장, 은하수 관현악단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합동공연 ‘아리랑’ 지휘자, 단원들의 연주 모습 그리고 아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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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락(伯樂), 천리마를 발견하다. 흔히 천재는 타고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천재란 재능이라는 다이아몬드를 가진 원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천리마를 알아보는 명인(名人)인 백락(伯樂)처럼, 그 재능을 알아보고 다듬는 사람이 있으면 ‘천재’로 각광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의 재능 자체를 알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영선수 박태환이 인기종목인 축구나 야구를 하도록, 아니 공부만 하도록 강요 받았다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이 존재할 수 있을까? 대(大)음악가나 명(名)지휘자를 일컫는 마에스트로, 즉 거장(巨匠)도 마찬가지다. 널리 알려진 대로 정명훈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정명훈이라는 위대한 지휘자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원숙 여사가 어떻게 행동했기에 정명훈이 마에스트로가 될 수 있었을까? 우선 그녀가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였다는 점부터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교육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 하면 흔히 떠올리는 치마바람을 일으키고 다니는 어머니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식들이 어떤 재주가 있는지 눈여겨보고 그 곁에서 재능을 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충실한 후원자였다. 시작은 미미했다. 비록 일제시대에 대학교육을 받고 해외유학까지 갔다 온 엘리트 지식인이었지만, 생계를 위해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겨우 시장에서 장국밥 장사를 하는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장통이라는 환경은 아이들의 정서나 교육에 별로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맹자의 어머니도 이사를 가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녀는 이사를 가는 대신 환경을 바꾸기로 했다. 바로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음악교육을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넉넉하지 않는 살림이었기에 피아노를 빌려 아이들에게 레슨을 시키는 것만으로도 많지는 않지만 빚을 저야 했던 것이었다. 다행히 그녀의 자녀들은 음악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선택은 조기교육을 통해 자녀들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여 공부에 대한 바른 습관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녀가 생각한 공부에 대한 바른 습관은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면 매일 꾸준히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녀의 신념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바로 한국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을 가면서 피아노를 가지고 간 일이었다. 음악에 대한 자녀들의 재능이 하나하나 들어나자, 그녀는 “이 아이들이 서양 음악에 인생을 걸 거라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부터 그 세계의 언어와 문화를 알아야 해. 1)”라고 결심하고, 해외유학을 보낼 준비를 하였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시애틀에 정착한 정씨 일가는 그 음악적 재능을 세상을 상대로 화려하게 펼쳐내기 시작했다. 비록 7남매 모두가 끝까지 음악의 길을 간 것은 아니었지만, 첫째인 故 정명소(鄭明素) 목사는 플루트를, 둘째인 정명근은 바이올린을, 셋째인 정명화(鄭明和; 1944~ )는 첼로를, 넷째인 정경화(鄭京和; 1948~ )는 바이올린을, 다섯째인 정명철은 클라리넷을, 여섯째인 정명훈(鄭明勳; 1953~ )은 피아노를 각각 선택하여 대중 앞에서 그 실력을 뽐내었다. 심지어 클래식 교육을 받지 않은, 막내 정명규조차도 ‘영원한 사랑’과 ‘자기’라는 2곡의 포크 음악을 남겼을 정도였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한다. 정명훈의 첫 번째 스승은 제이콥슨 여사였다. 그녀는 “네가 단지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한다면, 나는 너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너 역시 굳이 내게 배울 필요가 없단다. 연주 기술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은 아주 많으니까. 그러나 네가 피아니스트를 넘어 음악가가 되고자 한다면 내 제자가 되렴.2)”이라고 하며, 어린 정명훈을 단순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술자가 아닌 곡 전체를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음악가로 키우기 시작했다. 제이콥슨 여사가 다진 토양 위에 거름과 물을 주어 마에스트로로 키워준 것은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였다. “지휘에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작품을 만든 작곡가들 그리고 연주자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곁에 머물면서 마에스트로는 음악에 봉사하는 사람이며 음악을 통해 인류에 이바지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우는 <용비어천가> 제2장을 보면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라는 부분이 있다. 어머니 이원숙 여사와 제이콥슨 여사, 그리고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라는 스승은 음악가 정명훈의 뿌리를 깊고 튼튼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정치적인 이유로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단 음악감독 자리에서 부당하게 해임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도리어 기회 삼아 아시아 8개국의 교향악단이 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설할 수 있었다. 마에스트로가 되기 위해. 지휘자는 어떤 존재일까? 저자는 지휘자에 대해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서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책임을 지는 존재입니다. 지휘자의 역할은 악보대로 연주하도록 이끄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음악을 훌륭하게 해석하기 위해 단원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매 순간 음악의 표정을 살려서 연습해야 합니다. 틀린 소리를 잡아내는 그 누구보다도 좋은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한쪽으로 쏠리는 일 없이 전체적으로 균형을 잡아서 몰고 가야 합니다. 지휘자를 관찰하다 보면, 지휘는 우리가 말하는 리더십을 가장 잘 보여주는 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휘는 정치와도 가깝습니다. 지휘자가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확고한 철학으로 음악을 해석해야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거대한 화음으로 열매 맺게 되지요.3)”라고 말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휘자는 단원들과 의사소통을 통해 단순한 합주(合奏) 그 이상을 보여주는 사람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런 지휘자, 아니 지휘자 중의 지휘자인 마에스트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불행히도 이 책에는 그런 내용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성공비결에 대한 언급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음악가로서 한결 같은 직업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단한 음악가들 역시 매일매일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한다는 사실을 잊곤 합니다. (하지만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악보를 검토하고 피아노 앞에 앉아서 해석을 점검하는 일을 날마다 거르지 않고 계속한 결과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있게 마련이지만, 꾸준히 계속하는 사람은 당해내지 못합니다. 최후의 승자는 ‘계속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법이지요. 두 번째는 유연한 리더십입니다. 정명훈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끌고 가는 지휘보다 따라가는 지휘가 좋다.” 그것은 정명훈이 단원들을 존중하고 설득하고 이해시켜 음악을 만드는 데 스스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참여형 리더십을 구현한다는 뜻입니다. 4)” 혁신을 이끌어내다. 한 차례의 실패를 거쳐 그가 다시 고국의 교향악단 음악감독이 되기까지는 거의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번에 그가 맡게 된 것은 한때 한국 제일의 오케스트라였었지만 어느새 그 위상이 형편없어진 서울시립교향악단이었다. 당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가장 큰 문제는 연주실력의 저하였다. 정년제와 호봉제라는 철밥통을 믿고 외부 레슨에 매달리느라 연습을 게을리 하는 단원들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는 과감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하기로 결심했다. “정년제를 실력에 따른 계약제로 바꾸고, 호봉제를 실력에 맞추어 연봉제로 (바꾸어야 했다.)5)” 이를 위해서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 오디션을 진행했다. 당연히 단원들은 거세게 반발하였다. 사실상의 정리해고로 받아들인 단원들은 파업까지 불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디션을 지속하였고, 그 결과 기존 단원의 약 1/3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젊은 연주자들이 채웠다. 젊은 피의 수혈을 통한 조직의 체질변화를 꾀했던 것이었다. 그의 혁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 소외자를 찾아가는 무료공연인 ‘우리 동네 음악회’를 기획하고, 전공학생들을 위한 ‘작곡 마스터클래스’ 등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를 모색하였다. 물론 과거 1년에 12~14회에 불과했던 정기공연 횟수도 늘렸다. 그 결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개혁은 “세계 교향악단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혁신6)”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 컬럼비아대 MBA에서 학습교재로 채택되었고, 2011년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향상된 실력을 인정한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 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과 음반발매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아직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정명훈이 가야할 길은 남아있다. 음악을 통한 남북 화해와 통일이라는 그의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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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은 누구나 몇 번씩 받아봤을 것이다. 얼핏 떠오르는 부모님, 아니면 위인들, 주변의 선생님들, 친구들...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을 가까이에서 만나 가르침을 받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독서 같은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삶의 배움을 얻는 것도 지혜라고 생각한다. 정경화, 정명화 같은 음악 천재를 누나로 둔 정명훈은 열정적인 어머니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살아왔다. 정 패밀리를 거론 할 때마다 어머니 이원숙 여사를 빠뜨리지 않는 것은 이들의 성공에 어머니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상황이 안 된다고 해서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 상황을 되는 쪽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남들의 시선이나 자신의 곤혹스러움 따위는 무시한 어머니가 아니었더라면 세계적인 음악가 정 패밀리는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재능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드러난다고 하였다. 정 패밀리의 재능이 세계를 넘나들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일찍 아이들의 재능을 간파한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었지만 미래에 대한 선택은 아이들에게 맡겼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이런 어머니의 헌신이었다. 모성은 신과 가장 닮은 성품이라고 들었다. 자식에게 모든 걸 다 주고도 더 주고 싶어 안달하는 모성. 그리고 결코 되돌려 받으려 하지 않는 모성의 헌신이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나 역시 이해되지 않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내 아이의 기억 속에 저장된 모성의 헌신이 무얼까 생각해보니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의 역할이 무언가를 생각해보게 한 내용이 한참동안이나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는 두 명의 스승으로부터 무엇보다 본질이 우선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본질을 잊지 않으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음악의 본질이 악기를 다루는 테크닉에 있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전하는 것을 기억한다면 오케스트라에서 불거져 나오는 어떤 잡음도 다 잡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이것은 어떤 단체에서든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본질을 잊지 않는다면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때 독서야말로 참 좋은 스승이란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20년을 살았고, 그 후 25년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살았던 정명훈은 이제 자신의 고국인 우리나라에 와서 아직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가 이순의 나이에 꾸는 꿈은 남과 북이 정치적인 계산을 떠난 순수한 예술로 만나는 것이다. 정치는 달라도 예술은 같다는 믿음이 그에게 북쪽의 문을 자꾸 두드리게 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인정을 받고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무기력해지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정명훈은 변함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에게서 리더의 여러 덕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자기 기준과 하루도 빠지지 않는 음악연습을 통한 노력, 철저한 자기 관리 같은 것들이 모여 자기 세계가 분명한 예술가들의 강한 기질을 조화롭게 만들 줄 아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모습을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명훈은 어머니에게서 가족의 사랑과 헌신을 배웠고, 스승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이라는 기본자세에 대해 배웠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어떤 상황에서도 순발력을 발휘할 줄 알며 단원들에게는 동기부여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고, 실수에도 의연해하며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대가가 되었다. 당신이 먹은 게 바로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그를 길러준 스승들, 어머니와 음악과 조국을 보았다. 그리고 어떤 천재라도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이루지 못하고, 실패를 딛고 서지 않은 성공은 커다란 의미가 없다는 것, 실패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는 것. 이것이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모습이라는 것도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