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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을 가로지르는 환각의 시학-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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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을 가로지르는 환각의 시학     이민하의 󰡔모조 숲󰡕(민음사, 2012)에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서로 베이비”(「검은고양이소셜클럽」)라는 시구가 어울리는 사랑의 세계가 하나라면, 천사가 “거리의 냉동차에 실리는 포장육”(「천사」)으로 비유되는 죽음의 세계가 다른 하나이다. 두 세계는 물론 그녀의 시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다.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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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을 가로지르는 환각의 시학

 

 

이민하의 󰡔모조 숲󰡕(민음사, 2012)에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서로 베이비”(검은고양이소셜클럽)라는 시구가 어울리는 사랑의 세계가 하나라면, 천사가 거리의 냉동차에 실리는 포장육”(천사)으로 비유되는 죽음의 세계가 다른 하나이다. 두 세계는 물론 그녀의 시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다. 두 세계는 서로 공명하며 이민하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이룬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베이비라는 시구가 반복되는 또 다른 시 영화적인 삶을 보도록 하자. 이 시에 등장하는 화자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시나리오를 쓰는 듯싶은 이 시의 화자에게 세상은 온통 이미지로 뒤덮여 있는 장소이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화자는 하나의 기호로 존재한다. 기호로 존재한다는 것은 돌려 말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나는 어떤 이에겐 걸어 다니는 산송장이며 어떤 이에겐 창백하고 사랑스러운 유령 신부이다. 한편으로 어떤 이에게 나는 커튼이 폭풍처럼 휘날리는 불길한 밤의 올빼미이기도 하다. ‘가 무엇인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가 무엇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며, 바로 그 점이 이 세상을 구성하는 유일한 원리라고 시인이 주장한다는 점에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일종의 기호이고 이미지이며, 그 이미지(기호) 속에서만 삶을 영위한다는 점에서 관객이 줄지 않는 한 나는 상영된다.” ‘가 처한 상황은 그러므로 나 이외의 모든 존재가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엔딩 크레딧이 기차처럼 지나가고/ 첫 장면은 이제부터다.”라는 역설적인 진술이 시적 의미를 획득하는 지점은 바로 이곳에 있다. 시작이 시작이 아니듯, 엔딩 또한 엔딩이 아니다. 끊임없이 꼬리를 물며 뻗어나가는 이미지의 향연은 고정된 나를 벗어나 수많은 시뮬라크르로 현현되는 우리네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에둘러 드러낸다고 하겠다.

 

이민하의 시에는 아버지와 엄마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나오지만, 그들이 제 형상을 부여받고 묘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버지는 계곡으로 사라”(모조숲-)졌으며, 엄마는 아버지만 부르다”(일요일의 정부) 죽어버렸다. “고장난 엄마라도”(가위잠) 있었으면 하고 화자는 소망하지만, 그것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와 엄마가 부재한 세계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가위눌림을 당한다(클럽 아프리카). 아버지가 눈치 채기 전에/ 여길 빠져나가자”(셔터)고 중얼대는 아이는 목 잘린 새”(죽은 새들의 행진)가 되는 악몽만 되풀이하여 꾸고 있다. 표제작인 모조 숲을 본다면, 마부인 는 간밤에 떠내려 온 사람들을 싣고 숲속의 오후를 달리는데, “그들 중 절반은 익사체다.” “발목이 잘린 소년들은 주저앉아 더는 자라지 않는 이 모조 숲에는 지뢰가 대물림되는 건물들이 있으며 그 사이로 팝콘처럼 떨어지는 새들이 보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치마가 찢긴 맨발 소녀들을 낚시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이 숲에 널리 퍼져 있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베이비라는 시구가 무색할 만큼 비정한 이 숲이 시인(화자)의 시나리오 속에 오롯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모조 숲에서 펼쳐지는 온갖 사건들은 하나의 대본이 되어 이민하 시의 세계를 구성한다. 퍼펙트 데이에 나타나는바, 이 모든 사건들은 일어나고 사라지는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퍼펙트 데이라는 완전한(완결된) 날은 없다.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흐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모조 숲을 울리는 말굽 소리에 하염없이 매혹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은 시간 속에서 나타남과 사라짐을 반복하는 이 시대 주체들의 이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라는 증상에서 시인은 듣는 자와 말하는 자를 이야기의 기본 항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듣는 자가 있으면 당연히 말하는 자가 있을 테지만, 문제는 듣는 자와 말하는 자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있을 것이다. 시인은 듣는 자와 말하는 자를 침묵의 차원으로 재의미화하고 있는바, 듣는 자-말하는 자에 대한 이러한 의미 부여는 결국 이야기의 이면에 드리워진 침묵의 차원, 달리 말해 이야기의 바깥에서 또 다시 이루어지는 이야기의 쉼 없는 연쇄를 시인 스스로 인정하고 있음을 예시한다. 의사와 환자라는 일방적인 관계에 새겨진 틈새를 시화하고 있는 이 시에서, 증상은 완전하게 해독될 수 없는 꼬리”, 요컨대 흔적으로 나타나 현실 세계를 끊임없이 교란하고 있다. 불현듯 현현하는 그 흔적 앞에서 의사는 딴청을 부리고 나는 뾰족하게 치켜든 구두코를 어디에 찍어야 할지 당황한다. 신성성이 사라진 고요한 밤(고요한 밤), 거룩한 밤(거룩한 밤)의 세계는 이처럼 서로 닿지 못하는 두 개의 행성 사이”(거룩한 밤)를 가로지르며 숱한 증상들을 번식시키는 고양이들의 신음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증상의 밖은 없다. 이 세상이 온통 증상들로 넘쳐난다.

 

 

토마토는 붉고

침이 고인다 깨물지 않아도

어둠이 닳도록 핏발을 모으는 관중과

한 장 한 장 혀를 넘기며

입에서 입으로

時代에서 詩代

갈라 터지는

입맞춤과 시치미의 논란 속에서

사랑,

 

그 영원한 표절

- 베스트셀러전문

 

 

증상은 영원한 사랑에 목을 매는 베스트셀러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붉은 이미지에 핏발을 모으고 집중하는 관중들의 그 영원한 사랑의 욕망이 있었기에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졌다. 시인의 말마따나 그것은 사랑,// 그 영원한 표절을 입증하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라는 증상에 드리워진 사랑의 역학은 그러므로 한 시대의 이면에 감추어진, 정확히 말하면 보여도 보이지 않는(보려고 하지 않는) “꼬리의 흔적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달콤한 맛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사탕처럼, 이 시대의 우리들은 달콤한 사탕의 이면에 감추어진 흔적을 보려고 하지 않고, “그래도 사탕은 나의 힘”(사탕을 줄게)이라는 주문을 거듭 외우며 자본주의 사회가 생산한 증상들을 기꺼이 즐긴다. 시간이 흐르면 만성이 되는 키스처럼, 아니 그럼에도 그 키스에 끊임없이 열광해야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사랑이라는 언어(표절)를 곱씹으며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영위하는지도 모른다

 

 

이민하가 그려낸 모조 숲은 이러한 삶의 바깥에 펼쳐진 또 다른 삶에 대한 기록으로 흘러넘친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황들을 특유의 상상력으로 펼쳐내는 이민하의 시는 숱하게 죽은 존재들의 숨결과 어울려 현실도 아니고 상상의 세계만도 아닌 중음신(中陰神)의 독특한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새의 얼굴을 참조한다면, 그것은 나의 지렁이공포증처럼/ 환각이 절벽으로 떠미는 순간갑작스럽게 현실세계로 밀려들어온다. 모조 숲을 울리는 말굽소리 또한 이러한 환각의 순간과 다르지 않은데, 이민하의 시는 무엇보다 환각의 순간과 조우하는 시적 주체의 황홀경을 밑거름으로 하여 창작되고 있다. 키스처럼 달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죽음의 냄새에 한없이 전 그녀 시의 이중성은 바로 이러한 시의 환각성으로부터 뻗어 나오고 있는 셈이다.

o*****s 2017.08.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