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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체계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진보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체계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내용보기
반복에는 반드시 그때마다 차이가 동반된다. 따라서 영원회귀는 새로운 차이와 함께 되돌아오는 반복이다.‘진보’는 이런 영원회귀,즉 반복을 통한 차이의 생성을 그 선험적 조건으로 가진다. 달리 말해 진보는 늘 어떤 귀환, 실재의 귀환이며, 이 실재는 곧 소수자들의 존재=생성이다. 그래서 실재의 귀환이란 지배적인 물적 체제에 구멍을 내면서 도래하는 소수자=되기의 운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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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에는 반드시 그때마다 차이가 동반된다. 따라서 영원회귀는 새로운 차이와 함께 되돌아오는 반복이다.‘진보’는 이런 영원회귀,즉 반복을 통한 차이의 생성을 그 선험적 조건으로 가진다. 달리 말해 진보는 늘 어떤 귀환, 실재의 귀환이며, 이 실재는 곧 소수자들의 존재=생성이다. 그래서 실재의 귀환이란 지배적인 물적 체제에 구멍을 내면서 도래하는 소수자=되기의 운동인 것이다. 진보란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하는 소수자들의 생성/운동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한다.

 

진보란 무엇일까? 진보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 점차 발달하는 것’ 또는 ‘사물이 점차 나아지는 일’을 의미한다. 정치의 영역에서 진보가 적극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부터이다.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에서는 이런 진보의 철학적 사유체계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난해하다. 저자는 진보가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으로서 시간과 장소 , 진리의 체계가 이루어졌을 때 ‘역사의 진보’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먼저 시간으로서의 진보는 역사속에서 반복되면서 특징지어진다. 마치 우리의 삶이 반복으로 이루어지며 그 반복을 통해 시간의 마디의 층위들이 생성되는 것처럼 이런 반복의 시대가 복잡한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시간의 반복은 곧 시대의 반복을 말한다. 이제껏 역사속에서 진보가 수많은 사건의 주역이 되었듯이 차이와 반복, 진보와 퇴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이 바로 ‘시대’라 부를 수 있다. 이런 반복가운데 도래한 차이는 우리 사회를 통제사회/훈육사회에서 ‘관리사회’로 전환시켰다.

 

이런 관리사회의 개념을 쉽게 설명하자면, 몇 년 전 덴젤 워싱턴 주연의 <데자뷰>로 설명된다. 데자뷰에서는 ‘시간의 창’이라는 우주에 떠 있는 7개의 인공위성으로 작동되는 관측 스크린이 등장한다. 우주 상공의 인공위성들이 테러 같은 사고나 사건이 발생한 곳을 다양한 각도로 보여주며 사건 당시의 정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기계다. 실시간 뿐만아니라 ‘시간의 창’은 정확하게 지구 시간으로 4일하고도 6시간 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은 지구에 위치한 시간의 창 연구소에서 스크린을 통해 보는 인공위성의 전송자료들은 분명 실시간인데 그 시점은 바로 4일 6시간 전의 모습들이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인공위성에 녹화된 화면들만이 아닌 지난 과거일지라도 연구소에서는 보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인공위성으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사회는 바로 관리사회 , 머지 않을 미래 유비쿼터스 관리의 실현이다. 비슷한 맥락의 윌 스미스 주연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도 마찬가지 사회의 모습이다. 평범한 시민에서 졸지에 범죄용의자가 되자 순식간에 정부로부터 표적이 되어 쫓기는 윌스미스는 자신의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신용카드, 위성, 자동차, 신분증 이런 것들은 윌 스미스가 이미 관리사회 체제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반복 가운데서 도래한 차이는 우리를 통제사회/훈육사회에서 ‘관리사회’로 데려가고 있다.

(들뢰즈가 말한 우리들은 ‘관리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관리사회는 감금이 아니라 끊임없는 관리와 실시간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움직여진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사회는 관리사회이다. 영화는 대부분이 현실 사회의 반영이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작위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미 몇 년전에 만들어진 영화가 현실이 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렇게 관리사회에서 자연적으로 훈육의 절차를 거치고 있지만, 우리는 사실 훈육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현대의 관리사회는 이 복잡한 양상을 , 추상적 파놉티콘(모두 다 본다)을 적절히 관리함으로써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리사회에서는 타자에 대한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소수자되기로부터 “사회를 방어하려는 ”전략과 전술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관리사회에서 소수자란 다수(기득권)에 저항하는 세력을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저항세력(시민주체)을 일종의 ‘귀환’ 이라는 성격을 가진 소수자로 표현한다. 그래서 저자는 진보란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하는 소수자들의 생성/운동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한다고 한다.

 

사회주의적 진보 개념의 위기는 곧 소수자 운동의 위기이다.

 

진리란 곧 실재의 귀환이다. 실재의 귀환이란 신체와 화폐와 기호를 통제하고 조작하는 권력의 힘에 맞선 생명과 노동 그리고 주체의 귀환이다. 이 귀환을 통해서 역사는 파생적 반복의 영원회귀에 참여한다. ‘역사적 사건’은 맹목적 급류가 아니라 진리와 의미가 깃든 시간, 인간과 역사의 시간, 삶을 이끌어가는 힘으로써의 반복의 강도가 실재의 귀환일 수 있을 때, 진리를 담을 수 있을 때, 역사는 구원과 해방의 뜻을 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촘스키는 사회적 변화의 새로운 주역들은 농민들이나, 바아캄페시나, 또는 세계 농민들, 노동자 공동체들이라는 말을 했다. 앞으로는 국민이 원하고 사회에 정말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일에 투자하는 경영을 한다면 진정한 사회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진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소수자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세계를 변화시킨 주역들은 소수자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런 소수자들은 바로 생명과 노동 그리고 주체의 귀환, 즉 진정한 진보라 할 수 있다.

 

위에 말했듯이 이 책은 진보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체계이다. 조금 아쉬움이 남는 점은 지나치게 학술적이라는 사실이다.

 
 

 



YES마니아 : 골드 k********2 2012.11.07. 신고 공감 12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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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에 있어서의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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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진보라는 말을 많이 듣고, 또 사용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듣고, 사용하는 진보라는 말은 정치적인 의미를 띤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또한 그것은 보수와 동반되어 사용되며, 보수가 새로운 변화보다는 현상을 보전하고 지킨다는 것을 뜻하는 것에 반해, 진보는 현상의 변화와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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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진보라는 말을 많이 듣고, 또 사용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듣고, 사용하는 진보라는 말은 정치적인 의미를 띤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또한 그것은 보수와 동반되어 사용되며, 보수가 새로운 변화보다는 현상을 보전하고 지킨다는 것을 뜻하는 것에 반해, 진보는 현상의 변화와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하고서는 진보라 불리는 정치세력들에게 주는 고언쯤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서론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진보와는 다른 뜻임을 파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진보는 역사의 진보, 쉽게 말해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는 진보이었다.

 

흔히 역사 속에서 기술이 진보되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예전에는 고칠 수 없었던 병들이 의학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고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가 진보되었다고 한다면, 한편으로는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생각하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란 무엇이지 하고 의문을 품기 십상이다. 저자는 이를 역사철학의 구도로써 설명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들은 반복되고, 이러한 반복에는 차이가 있으며, 그러한 차이는 퇴보 혹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고 그는 말한다. 따라서 그는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를 차이와 반복으로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용이 쉽게 머리 속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내가 어려워하는 프랑스 철학자들이 등장하고, 특히나 미셸 푸코의 사유가 전체내용 속에서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론으로 소개되어 있는 ‘미셸 푸코의 사유의 변환’ 이라는 [광기의 역사] 출간 50주년 기념강연을 읽고서 보니 어렴풋이나마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미셸 푸코의 저작을 읽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보론이 이 책을 소화할 수 있는 – 그렇다고 제대로 소화했다고 볼 수도 없지만 - 나침반이 되어준 것 같다. 특히나 유럽의 사상이 비유럽지역으로 퍼져나올 때 가졌던 양면성이나, 한국이 이러한 사상을 일본제국주의를 통하여 받아들인 까닭, 그리고 20세기 한국의 사상사가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라는 세개의 사조 위에서 목적론적 관점으로 전개되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설명 등은 근대와 현대의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현대사회를 관리사회라고 말한다. 그것은 차이나 타자들을 배제하거나 통제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실상의 차이들을 적절히 배분함으로써 관리하는 사회, 차이들의 생성자체가 관리되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여 현대의 관리사회는 차이생성을 관리하는 사회이고, 자유와 주체성을 관리하는 사회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 신체의 관리(차이생성의 관리), 화폐의 관리(자유의 관리), 기호의 관리(주체성의 관리)로써 나타난다.

 

인간신체의 관리는 군대에서 시작되었지만, 현대사회로 오면서 이제는 사람들의 모든 것이 관리되기에 이른다. 노동력은 물론이고, 유전자나 인종, 성비 등 인간의 신체와 관련된 것은 자본주의나 국가, 기술, 문화가 공동하는 관리하는 핵심적인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가 하면 화폐는 탄생 그 자체부터 경제적이기 보다는 정치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그것의 목적이 세금 징수에 있었던 것이 그 이유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화폐를 관리 한다는 것은 사회전체의 규약을 관리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우리는 기호화 되어있는 코드의 메커니즘에 의해 지배 받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하여 나를 나타내는 수많은 기호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결국 신분이나 지위라는 코드로 연결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우리들의 주체성이 기호에 의해 관리됨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런 관리들은 항상 어떤 귀환의 움직임을 반복되고 만들고, 그러한 반복은 늘 차이를 동반한다. 진보를 논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관리와 귀환이 부딪치는 전선에 있어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진리란 역사적 사건으로 성립하는 동시에 항상 어떤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장소는 그것을 구성하는 자리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그리고 사건들에 담겨있는 감정과 행위와 의미 등을 포함하며,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공간이지만 그것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시간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진리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유의 집착에 경종을 울리며, 그리고 균열을 내면서 끝없이 다시 도래하는 실재의 귀환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진리의 장소는 실재가 귀환하는 장소이다.

 

관리사회에서 실재의 귀환이란 생명과 노동 그리고 주체의 귀환을 의미한다. 그것은 신체와 화폐와 기호를 통제하고 조작하려는 권력의 힘에 맞서는 것으로, 역사적 사건은 이렇게 실재의 귀환을 통한 반복과 차이 속에서 진리를 담아왔다고 한다. 생명의 귀환은 진리의 존엄함을 깨우쳐 주었고, 노동의 귀환은 화폐체제 아래 은폐된 노동이 표면에 들어나면서 진리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리고 주체의 귀환은 기호가 하나의 주체를 구성하고 있는 관리사회에서 진리의 또 다른 차원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생명과 노동과 주체가 귀환하는 장소는 해방의 장소이었고, 투쟁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장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귀환이란 일종의 반복이라고 한다. 그리고 반복되는 사건들은 차이를 동반하는 사건들이다. 또한 반복은 항상 그 고유의 강도를 동반한다. 신체의 관리에 대한 저항, 기호체계에 대한 저항, 그리고 오직 돈이 되는 욕망만을 긍정하는, 대중의 욕망을 식민화해 우려 짜내는 자본주의의 천박한 욕망에 저항하는 욕망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볼 때, 반복과 차이는 역사의 가장 근원적인 형식이며, 이것이 바로 역사의 흐름이고 진보라고 할 수가 있으리란 생각이다.

 

저자는 미셸 푸코가 그의 저서 [광기의 역사]에서 다룬 논의를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반복과 차이를 통한 실재의 귀환을 진리라고 보고 있으며, 이는 윤리적으로 타자(他者)되기에 다름 아니다. 자(自)와 타(他)는 객관적으로 대칭적이지만, 각각의 주관에 있어서는 비대칭적 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정한 윤리의 근원은 남을 배려하는데 있지 않고, 자기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타자화 하려는 노력이 윤리의 근원이자 근본이라고 말한다. 결국 저자는 진보의 새로운 조건으로 타자화하려는 자신의 변화를 통하여 실재의 귀환을 이루어 내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어려운 책 읽기가 끝이 났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혹시 오독은 없었는지 아리송하다. 근대와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의 사상서를 읽어보고, 또한 미셸 푸코의 저작들을 읽어 본 후에,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빈약한 이해였다 할지라도 한국사회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우리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혹 시간이 되면 다시 한번 읽어보고, 그때의 느낌은 지금과 어떻게 다른지 다시 써보고 싶다.



k*****1 2012.10.18. 신고 공감 11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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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보가 그 진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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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라는 이름은 나에게 개념의 철학자로 각인되어있다. 그분이 쓴 철학 개념어 풀이 책인 <개념-뿌리들 01,02>를 읽고 우리가 사용하는 철학적 개념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그 과정을 매우 설득력있게 설명해주었다. 평소에 개념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던 부분들과 상응하는 면이 많아 매우 공감하였고, 사람들이 보통으로 쓰는 철학개념들을 저들을 알고 사용하는 것일까하고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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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라는 이름은 나에게 개념의 철학자로 각인되어있다. 그분이 쓴 철학 개념어 풀이 책인 <개념-뿌리들 01,02>를 읽고 우리가 사용하는 철학적 개념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그 과정을 매우 설득력있게 설명해주었다. 평소에 개념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던 부분들과 상응하는 면이 많아 매우 공감하였고, 사람들이 보통으로 쓰는 철학개념들을 저들을 알고 사용하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가졌던 것들을 이분의 책을 읽고 그 의문을 정리할 수 있었다. 어떤것을 설명할 때 그 근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렇게 된 연유를 설명해주므로 논리적 비약이나 생략으로 인해 생기는 낯설음을 없애주는 매우 탁월한 철학자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하여 그리스 철학을 강조하며 그리스 철학이 모든 철학의 기초라고 말한다. 이분의 글은 매우 탄탄한 기초적 철학의 매트리스가 깔려있다. 그뿐 아니라 미셀 푸코도 전문적인 연구가이다. 그래서 이 책 곳곳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푸코 뿐 아니라 베르그송이나 들뢰즈 같은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어느정도 상당한 수준의 철학적 훈련과 기본 배경이 없이는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다시 앞장을 넘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책이 어려우면 차리라 마지막에 보론으로 첨가된 ‘미셀 푸코와 사유의 변환’이라는 저자의 글을 보고 푸코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꽤 많은 분량으로 쓴 서론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에서 전체적인 책의 윤관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적 철학자답게 약간을 역사와 진보의 문제를 사변적으로 다루고 있다. 즉 역사를 반복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반복에는 퇴보의 얼굴과 진보의 얼굴이 있는데 이 두가지로 인해서 역사에는 차이가 나타난다고 한다. 반복을 통해 시간에는 수많은 층위들이 있는 마디가 새겨진다고 한다. 이러한 반복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진보적인 사간에 매듭을 지어주는 것은 인간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며 사건 자체가 역사적인 계열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고 한다. 즉 사건의 계열은 늘 주체에 의해 구성되며 주체에 의해 반복되어진 진보의 시간을 매듭짓는 행위를 통해서 진보적 역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진보란 끝없는 귀환이라는 것 자체가 물적 체제의 끝없는 재생을 전제하기 때문에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하는 소수자들의 생성/운동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실재의 귀환은 물적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때에만 진정으로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 p.29

 

1장 ‘관리사회’에서는 현대사회를 관리사회로 정의하므로써 생성되어진 생명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닫혀진 사회이다. 타자들을 관리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차이를 막고 그 차이를 적절히 배분해 단지 그것을 하나의 일관된 특성으로 취급하여 상품처럼 관리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생명과 차이가 하나의 시스템속에서 제단되어져 버린다. 즉 관리사회란 자본주의의 대전제 위해 적절히 타자들의 차이를 배치하므로 그 치부를 인폐시키는 사회를 말한다. 1장에서 언급되는 화페 또한 순수한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정의되며 단순히 사물의 가치를 표시하는 등가물이 아니라 단지 사물과의관계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하므로 화폐가 괸리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어지는 장을 통해서는 서론을 통해서 이야기된 것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사용되는 ‘진보’라는 용어로 이해해서 정치권에서의 진보들이 어떻게 변화되어져야 할 것인지로 이해하면 큰 오산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철학적인 관점에서 특히 생명과 타자, 차이와 생성 등과 같은 개념을 만들어낸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의 개념을 사용해 진보를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차라리 제목을 <진보의 철학적 성찰>이라든지 <생성과 차이에서 본 진보>라고 붙이는게 더 적절할 것 같다. 괜히 대선이 다가오므로 진보정당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로 착각하여 덥석 이 책을 사는 오류(?)를 범하지 말도록 말이다.

 

몇 번이나 읽어봐도 잘 모르겠다. 근데 이 책 드럽게(?) 어렵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f****1 2012.10.10.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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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진리, 장소에 관한 새로운 시각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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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와 미셸 푸코의 연구가 전공인 이정우 교수의 책입니다. 그래서 책 곳곳에 푸코, 아리스토텔레스 뿐만 아니라 베르그송,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들도 대거 등장하고, 그들의 견해도 많이 인용을 하고 있어 이쪽에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었다면 적어도 저처럼 이렇게 헤메진 않을 것입니다. 혹시나 저와 같은 독자들은 보론으로 첨보된 ‘미셸 푸코와 사유의 변환’ 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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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와 미셸 푸코의 연구가 전공인 이정우 교수의 책입니다. 그래서 책 곳곳에 푸코, 아리스토텔레스 뿐만 아니라 베르그송,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들도 대거 등장하고, 그들의 견해도 많이 인용을 하고 있어 이쪽에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었다면 적어도 저처럼 이렇게 헤메진 않을 것입니다. 혹시나 저와 같은 독자들은 보론으로 첨보된 ‘미셸 푸코와 사유의 변환’ 이라는 이정우 교수의 ‘광기의 역사’출간 50주년 기념강연을 먼저 보고 푸코에 대하여 겉핥기를 하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먼저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 라는 서론에서 전체적인 개관을 합니다. 역사를 무엇보다도 우선 반복으로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반복에 동반되는 차이는 퇴보라는 얼굴과 진보라는 얼굴의 상이한 두 얼굴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또한 반복은 시간에 매듭을 주는데 반복 없는 흐름은 마디 없는 시간이며, 사실상 무와도 같지만, 반복을 통해 시간에는 수많은 층위들이 있는 마디가 새겨진다고 합니다. 게다가 사건들의 계열화는 항상 인간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며, 사건들 자체에 있어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계열화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고, 설사 존재한다 해도 우리로서는 해명하기 힘들다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즉 사건들의 계열화는 늘 주체의 구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렇듯 반복,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는 “진보란 끝없는 귀환이라는 것 자체가 몰적 체제의 끝없는 재생을 전제하기 때문에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하는 소수자들의 생성/운동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실재의 귀환은 몰적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때에만 진정으로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 (29)”고 진보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제1장 ‘관리사회’ 에서는 현대 사회는 관리사화와 주체성 사이의 접힘과 펼쳐짐의 놀이라고 하면서, 오늘날의 관리사회는 신체와 생명을 착취한다거나 개발, 지배, 조작한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하고 지속 가능하게 가꾸어 나가고 살린다고 말한다고 비판을 합니다. 즉 통제하기보다는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리는 결코 자본주의라는 대전제는 건드리지 않고, 이 대전제 위에서 오히려 신체와 생명을 아낀다고 말한다면서 관리사회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특히 화폐란 그 탄생에서부터 경제적인 것이기보다는 정치적인 것이라면서 화폐에 대한 개념 정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즉 화폐는 단순히 사물을 표상하는 등가물이 아니며, 화폐는 사물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차례로 ‘실재의 귀환’, ‘진리의 장소’, ‘타자-되기’ 로 이름지어진 장에서는 서론에서 언급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란 역설적인 존재, 즉 자신의 동일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바로 그 동일성을 변화시켜 나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이 점에서 생명이란 시간이라는 타자를, 시간이 끝없이 도래시키는 타자성을 포섭하는 가장 근본적인 형식이며 인간 역시 이런 근본 형식을 통해 살아 간다로 요약할 수 있는 제4장 ‘타자-되기’ 장에서 “관리사회란 바로 사건-의미를 사상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개발해 내는 사회이다 보수정권이 언론의 장악에 그토록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관리사회에서의 투쟁은 곧 의미를 둘러싼 투쟁이기도 하다. (175)”란 관리사회에 대한 특성도 밝히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결코 쉽게 쓰여진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 사건, 진보 등 흔히 쓰기는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개념들에 대해서 무진장 많은 의미를 실어주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큰 선거를 앞두고 있어 각 후보들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그 전에 정치에 관한 특히 진보에 관한 책이어서 먼저 읽었으면 하는 책이었습니다.

y********a 2012.10.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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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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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진보’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고 많이 듣는다. 그런데 이 ‘진보’라는 용어가 주로 정치와 연결되어서 사용되는 편향성이 두드러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진보적’이라고 하면, 과거와의 단절을 일차 목표로 내세우는 성향을 일컫는 표현이 되었다. 하지만 ‘진보’라는 개념을 이처럼 단순히 정치적 차원으로만 환원시키지 않고, ‘발전적, 긍정적 변화’라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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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진보’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고 많이 듣는다. 그런데 이 ‘진보’라는 용어가 주로 정치와 연결되어서 사용되는 편향성이 두드러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진보적’이라고 하면, 과거와의 단절을 일차 목표로 내세우는 성향을 일컫는 표현이 되었다. 하지만 ‘진보’라는 개념을 이처럼 단순히 정치적 차원으로만 환원시키지 않고, ‘발전적, 긍정적 변화’라는 더 큰 함의와 연결 지어 이해한다면, ‘진보’란 우리가 속한 국가, 사회, 가정이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적 모습에 점점 더 가까워져 가는 추이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렇게 이상적 모습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단순히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주체들의 의견이 종합적으로 수렴되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점은 우리 사회에 대해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은 현재 우리 사회를 과거의 통제 사회와 구별되는 관리 사회로 이해하도록 주문한다. 그래서 관리 사회는 다양성과 차이가 서로 갈등하고 마찰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과 차이의 생성 자체를 관리한다. 그래서 관리 사회는 ‘억압’이나 ‘배제’가 아니라 ‘차이 배분을 통해’ 전개된다.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은 또한 시간, 혹은 역사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시간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기억되어야 할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역사에 진보가 있으려면, 반복, 차이, 진보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 개념이 도입되어야 함을 말한다.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은 또한 진리 역시 ‘사건으로서의 진리’ 개념을 말한다. 다시 말해, 진리를 사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진리의 사건은 실재의 귀환이며, 이런 실재의 귀환은 기존 계열화의 허구를 폭로하는 사건을 통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런 실재의 귀환은 지배계급이 통제하는 이데올로기에 타파하고 끝없이 귀환하는 운동인데, 이 운동은 소수자 운동이며, 이 운동의 귀환이 곧 사건으로서의 실재의 귀환이다.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은 그리 녹녹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날처럼 부조리하고 어지럽고 사회 질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듯한 상황에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꼭 읽어야 할 책인 것 같다.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어구

“자기가 바라보는 타인의 눈길에 비친 자기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자기다.”

 

- 책 소개 중에서 -

 

우리는 해방 이후 자유주의의 형태로든 사회주의의 형태로든 또는 민족주의의 형태로든 다분히 목적론적 역사철학의 그림자 아래에서 사유하고 행동해 왔다. 1990년대에 미셸 푸코의 등장과 더불어 목적론적 역사철학의 한계가 노정되었고, 역사에 대한 불연속적 이해라든가 미시사라든가 하는 새로운 방식의 사유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저작은 모든 것들이 혼란하고 모호한 오늘날 역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로써 윤리와 정치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생각해 보려 한다. 목적론적 역사철학이나 또는 역사철학 자체의 거부를 넘어서 ‘반복과 차이’라는 새로운 역사철학적 구도로 역사를 바라보고, ‘타자-되기’ 또는 ‘소수자의 윤리학 및 정치학’이라는 윤리학적-정치학적 비전을 모색하고 있다

n******n 2012.09.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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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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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은 두 번 등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 반복에는 항상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삼촌 나폴레옹의 비극을 반복한 것은 조카 나폴레옹의 소극笑劇이었다. 이처럼 반복에 동반하는 차이는 상이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즉 퇴보라는 얼굴과 진보라는 얼굴이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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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은 두 번 등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 반복에는 항상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삼촌 나폴레옹의 비극을 반복한 것은 조카 나폴레옹의 소극笑劇이었다. 이처럼 반복에 동반하는 차이는 상이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즉 퇴보라는 얼굴과 진보라는 얼굴이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마르크스

 

 

역사는 시간의 종합이며, 인간의 생명이란 결국 차이와 반복의 놀이이다. 철학사史적으로 볼때 '시간의 종합'이란 개념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추구했던 시간 초월에 대한 대안으로서 등장했다. 19세기는 역사의 시대였고 19세기의 철학은 '진보/진화'의 철학이었다.

 

다윈, 니체, 베르그송 등은 '우발성'개념에 입각해 기존의 종합 이론을 비판하고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생성존재론을 주장했다. 이런 두 갈래의 흐름에서 발생한 존재론적인 화두는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시간에는 의미가 있는가? 역사에는 진보가 있는가?

 

 

 

 

 

한국사에서 해방 후 발생했던 각종 운동은 역사의 진보에 대한 신념을 전제했었다. 당시 지식인들의 교양이었던 마르크시즘은 분명히 19세기적 역사철학의 영역 안에 있었다. 그러나, 1987년을 전후로 역사는 매우 복잡해지면서 진보가 아니라 단절을 통해 뭔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미셸 푸코의 역사철학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었다. 목적론적 역사철학의 한계를 폭로하면서 역사에 대한 불연속적 이해, 미시사微視史 등의 새로운 방식의 사유들이 등장했다.

 

 

 

 

저자는 역사철학에서 반복과 차이라는 새로운 구도를 설정하고 윤리와 정치가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그렇다면 역사에서의 반복, 차이, 진보를 어떤 개념으로 논할 것인가. 그는 현대사회가 '관리사회'로 변화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사건, 진리, 장소를 화두로 각 분야에서 진보를 실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관리사회는 타자他者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타자들을 배제하거나 통제하는 사회가 아니라 관리하는 사회다. 타자를 관리한다는 것은 차이의 생성을 막는다는 것이다. 관리사회는 매우 다이내믹하게 변해가는 사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차이들을 적절히 배분함으로써 타자들을 관리하는 사회인 것이다. 따라서, 소수자 - 되기를 막는다는 의미다.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란 곧 실재實在의 귀환이다. 이는 생명, 노동, 그리고 주체의 귀환으로 설명된다. 우선 생명의 귀환이다. 생명의 한 형태에 불과한 인간은 자신들의 근본 자리인 생명을 끝없이 갉아먹어 왔다. 부도덕한 기업이 만들어내는 환경오염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고통에 빠지게 했다. 아이로니하게도 이 얄궂은 고통을 받는 대부분이 소수자들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노동이 귀환한다. 현대의 관리사회는 화폐의 관리를 하나의 축으로 삼는다. 그래서 가치의 근원인 노동은 화폐체제 속으로 은폐되고 만다. 산업자본주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노동의 황금시대였다. 그러나, 금융자본주의가 확립되면서 노동은 화폐체제 하로 아예 잠수해버렸다. 노동이 화폐라는 껍질을 둟고 사회에 그 모습을 드러내면 바로 투쟁의 성격을 띤다. 

 

마지막으로 주체의 귀환이다. 근대 이래의 역사는 곧 주체성의 역사다. 한 인간은 사회 속에서 형성되는 주체성과 고유의 내면적 주체성이라는 두 겹으로 주름 잡혀 있다. 사회에서 차지하는 이름은 지위로 표현된다. 진정한 주체는 결코 소진되지 않는 실재로서 꺼지지 않는 생명의 불꽃인 것이다. 관리사회는 기호를 관리한다. 주민등록번호, 면허번호, 주소, 학번, 군번, 심지어 신옹카드번호 등등. 그러나, 진정한 주체들은 이와같은 관리의 그물망을 찢고서 다른 몸짓들을 표출한다.

 

장소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은 '영토화'를 기초로 한다. 참새는 참새대로, 개미는 개미대로, 물고기는 물고기대로 역시 그들 나름대로 영토화를 통해 삶을 살아간다. 실제 삶은 장소에서 출발한다. 'A라는 감옥은 삼청동에 있다'는 말은 단순히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장소를 구성하는 사람들, 건물들, 집기들까지 의미하며, 나아가 이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코드들까지 포함한다.

 

산보자에게 공간/장소는 그저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무언가가 나타나는/드러나는 곳, 때로는 숨겨진 진실이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희노애락이 드러나는 장소, 은폐에서 탈은폐로의 이행이 이루어지는 장소, 존재의 숨겨졌던 얼굴이 드러나는 장소, 이런 장소들을 우리는 진리의 장소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진리의 장소를 사는 것, 진리의 장소에서의 사건들을 사는 것은 산보자의 시선으로 그것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진리의 장소를 사는 것과 산보자로서 그 장소를 발견하는 것, 이 두 사건 사이에 장소의 진리가 존재한다.

 

소수자 윤리학의 철학적 근거로 '타자他者 - 되기'를 설명하면서 이 책은 마무리하고 있다. 윤리적 존재가 되는 것은 타자를 배려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물론 타자의 배려도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윤리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내가 타자가 '되려는'노력을 함축한다. 내가 다른 존재가 되려는, 내 몸 자체가, 내 행위와 기분, 감정 모두가 타자가 되려는 노력 없이는 진정한 윤리는 불가능하다.

 

 

역사의 사건들을 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들을 긍정적으로 반복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가 차이와 반복의 원리에 따라 생성하는 한, 역사의 사건들은 끝도 없이 반복된다. 이 반복은 퇴보를 가져오는 반복일 수도 있고 또 진보를 가져오는 반복일 수도 있다.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가?         

 



5****0 2012.10.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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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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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두 번 읽었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을 다 소화시키지 못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들은 미처 다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들뢰즈에 대해 접해본 적은 있지만 그의 저서 대부분은 못 읽었다. 푸코나 다른 철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오는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어렴풋이 알겠지만 다른 국어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 었다. 글자는 읽히는 데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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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을 다 소화시키지 못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들은 미처 다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들뢰즈에 대해 접해본 적은 있지만 그의 저서 대부분은 못 읽었다. 푸코나 다른 철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오는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어렴풋이 알겠지만 다른 국어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 었다. 글자는 읽히는 데 뜻을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접하기에는 조금 일렀던 것 같다. 철학 기본서들과 곁눈질로 배운 지식으로는 이 책에 나오는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들어봤던 사람이 했던 이야기인 것 같은 데 역시나 철학이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이 전에 이해한 척하고 이해 한 것에 대해서만 늘어놓아 볼까 했었다. 하지만 막상 쓰려니 그렇게 하면 나를 속이는 일일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이 책이 리뷰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고 있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내가 이 책을 물 흐르듯 읽을 수 있을 때 다시 이 책의 리뷰를 쓸 것 이다. 


쓰지 않아도 될 것을 굳이 쓰는 이유는 이 책을 주신 분과의 약속 때문이다. 그리고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 


죄송하단 마음이 든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마음도 든다. 


 이 책은 소화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훗날을 기약하려 한다. 



d****7 2012.09.25. 신고 공감 1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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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진보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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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2012) 4장 타자-되기에 서두는 “‘타(他+the other)’는 항상 어떤 ‘자(自=the same)의 ’타“이다. 달리말해 타자는 항상 어떤 동일자에 대한 타자이다. 이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윤리에의 길은 요원하지만 이런 벗어남은 극히 힘든 무엇이다. 아(我)와 비-아, 아국과 타국, ‘우리’와 ‘그들’등등, 동일자는 타자 없이는 스스로를 정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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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2012) 4장 타자-되기에 서두는 


“‘타(他+the other)’는 항상 어떤 ‘자(自=the same)의 ’타“이다. 달리말해 타자는 항상 어떤 동일자에 대한 타자이다. 이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윤리에의 길은 요원하지만 이런 벗어남은 극히 힘든 무엇이다. 아(我)와 비-아, 아국과 타국, ‘우리’와 ‘그들’등등, 동일자는 타자 없이는 스스로를 정립하지 못한다. ‘자’와 ‘타’는 객관적으로는 대칭적이지만 각각의 주관에 있어서는 비대칭적이다. 이 대칭적 비대칭성의 이율배반적 구도, 여기에서 모든 인간적 드라마들이 펼쳐진다.” 


라는 구절로 이뤄져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문장의 해석을 라깡에서 찾는다. 


“라깡에게서 타자의 문제가 예민하게 등장하는 것은 인간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언어의 윤리학 혹은 타자-되기의 윤리학 또는 내재성의 윤리학이다. 더 나아가서 윤리의 정치학. 원래부터 정치의 기본법칙은 자와 타 이에 서로간의 인정투쟁사이다. 


‘아’의 코뮤니티와 ‘타’의 클럽 간에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세워진 강령에 따라 혹은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가들은 이 말의 뜻을 유념해야 한다. 지금 현 시점에서 정치가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동일성의 원칙에 너무나 강렬한 이끌림에 의한 왜곡현상이다. 


항상 그들을 보면 ‘타’에 대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수라장 속에 정신분석학이 틈입하게 하여 다른 방향으로 갑작스럽게 선회하게 만든다. 불신이며 불임이러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2012년은 다행히도 이런 원칙들의 계획에 대해서 수행할 실험장에 원년이 되는 해이다. 


진보원년(zero degree). 이러한 근거는 이 책을 집필한 저자의 사유가 고스란히 가지고 와야 한다. 이정우는 이 책에서 보론으로 언급한 ‘미셀 푸코와 사유의 변환’이라는 <광기의 역사> 출간 50주년 기념 강연록에서 보다시피 푸코와 들뢰즈에 대한 해설자이다. 그의 이론에서는 항상 그들의 재취를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정치와 역사라는 보편적인 개념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 우리에게 가징 시급히 구호를 외쳐야 하는 것은 정치의 ‘광기’혹은 ‘열정’이다. 이런 유형의 말은 쉴 새 없이 우리들의 주위를 떠돌고 있거나 배회하며 우리들의 지적 사유를 더하게 하거나 방해하며 그동안 ‘직관’을 괴롭혀 왔다. 여기서 각자가 마음에 드는 누구 누구를 투표를 하여 새로운 정치가를 선택하자는 공허한 메아리적 메시아의 다른 표현을 돌려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형도를 새롭게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조건들을 수용해야 하는 약점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가스통 바슐리와의 <부정철학>(1940) 


”우리가 실재를 담론화해 제시하면 실재는 늘 ‘아니오’라고 말한다. “ 


를 끄집어내는 행위이다. 부정변증법. 


그러면서 이정우는


 ” 우리는 그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통해 인식 전체를 재조정하며, 그 차이를 통해 인식의 발전을 가늠할 수 있다. 인간이 자의적으로 실재에게 진리를 강요할 때 실재는 늘 이렇게 ‘아니오’를 통해서 귀환하단다. 진리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소유에의 집착에 경종을 울리면서, 그 소유에 균열을 내면서 끝없이 다시 도래하는 실재(와 주체)의 운동이다. 진리란 ‘실재의 귀환’인 것이다.“ 


라고 조언한다. 우리의 사고는 너무나 ‘부정’이라는 이미지에 몰두 해있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진보의 담론에 토론을 적정하게 만들었다면, 그 실재의 본질에 대한 언급은 우리들의 정치지형을 변하게 만드는 모티브의 운동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진리’를 말하는 것은 철학의 개념을 수용하는 것이지만 또다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선택할 기회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 반복의 의미와 차이의 구별. 그것은 이 책의 사건, 진리, 장소 라는 작은 소제목처럼 그것에서부터 유도하며 시작하는 것이다. 




n*****m 2012.09.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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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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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열심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나는 너무 무식한가보다. 이 책을 읽기에 아는게 너무 없다.     고생한 만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한줄을 몇번씩 다시읽고, 찾아보고, 이해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려보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읽었다. 책을 집었을 때 가볍길래 내용이 길지 않겠거니~ 하면서 읽었는 데 한 단락 읽기도 버겁다.     철학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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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열심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나는 너무 무식한가보다.

이 책을 읽기에 아는게 너무 없다.

 

 

고생한 만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한줄을 몇번씩 다시읽고, 찾아보고, 이해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려보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읽었다. 책을 집었을 때 가볍길래 내용이 길지 않겠거니~ 하면서 읽었는 데 한 단락 읽기도 버겁다.

 

 

철학이라는 것은 도덕책에서 본게 전부. 얼마전 철학자들의 말들과 현실에 적용을 쉽게 풀이해 놓은 책을 읽은게 최근의 일.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단어'가 갖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이런 것은 개인의 취향이니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을 누가 좀 알려줬으면 했던 것들이라서 반가웠다.

 

 

논문의 형태를 띠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챕터를 보니..

서론, 1장~4장, 보론의 형태로 되어 있다.

각 챕터 안에도 보론이 있는데 뒷 부분에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출간 50주년 기념강연의 내용이 있다.

나는 1장까지 읽다가 답답해서(너무 모르는게 많아서)

저자의 스타일이라도 알면 읽는데 수월할까 싶어서 강연 내용을 먼저 읽었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겠다.

 

솔직히 책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모르는 말이 많아서 검색하고, 책에 달린 주석읽고,, 그 주석읽다가 또 검색하고.

중간에 읽다가 덮었을 때 뒤 표지에서 발견한 단어.. 정치철학..!! 단어만 봐도 어렵다!

진리에 대한 내용, 잠재성과 가상성에서 설명을 위해 든 예문은 정말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이미 알고 있는 단어를 새로운 시각을 보는 기회가 주어진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그 단어가 그 단어가 아니다.

 

계속되는 질문의 연속과 의미의 설명. 말장난 같은 뒤엉킨 말들 속에서 깊이 깊이 또 다른곳으로 이동하면서 이해하는 묘미가 있다.

 

그러나 왜 꼭 이렇게 써야만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화한다'라는 이 말이 맞는건가?

읽다보면 문맥상 그래야 할 것 같고 어쩐지 가장 적합한 단어같다. (벌써 작가의 매력에 빠져들었나?)

자주 사용 되지만 지금 당장 책을 펴서 가장 먼저 나오는 화한다라는 문장을 써 보겠다.

' 시민들의 생물학적 정체성을 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현대인은 완벽한 관리와 조작의 대상으로 화하기에 이르렀다.

이 테이터베이스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지는 알 수 없다.

이 유전자 관리의 사회에서 주체성은 극한으로 절편화되고 희박화된다.'

 

대체 이 대상으로 화한다는게 뭔 소린지.. '조작의 대상이 되었다'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그리고 마지막의 '희박화된다'.. '희박하다'도 아니고 '희박화된다'라니..'희박하다'라는 '본래말'이 있는것 아닌가?

저자는 '희박하게 되어간다'라는 말이 하고 싶은건가?

 

 

개인적으로 어려운 내용을 가장 쉽게 말하고 싶은 사람으로써

책에서 아쉬움을 느낀 부분이 '어렵게 쓴 문체'인데

아이러니 하게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을 흥미+재미있게 읽은 이유가 어렵고 힘들게 읽었기 때문이다.

 

 

3장 진리의 장소에 이르면 살짝 익숙해 질 수 있다.

최대한(내 나름대로) 집중해서 읽으면 슬슬 '이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내 취향은 소설류의 책은 거의 안 본다. 시는 더 못 읽겠다.

애매모호한 표현, 마치 내 마음을 맞춰보란 듯이 써 있는 비유와 은유를 보면 숨이 막힌다.(왜? 이해를 못하니까)

정확하게 꼬집어 말해주지 않고 애둘러 말하거나 설명이 줄줄이 늘어선 것을 다 읽고 결론에 도착하는게 답답하다.

그래서 이 책을 신나서 읽었나보다.

마음 한켠에서는 정신 차리고 다시 읽어 보고 싶지만 은근히 겁이나서 또 읽는 다면 그건 '도전'이다.

아무래도 저자의 다른 책인 세계철학사1,2권을 사야겠다.

책 내용을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내가 모를 땐 질문하면서 들었으면 좋겠다.

재미있는데 어려워서 내것으로 다 이해 못한게 억울하다.

 

책 내용을 무어라 줄거리 비슷한 것이라도 쓸 수 없음은

하나를 쓰려면 (아니 하나를 이해하려면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것과 연결되어

스키마처럼 떠오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기호는 욕망, 관리, 숫자, 편견, 신체, 구속, 지배층 등 줄줄이 따라다녀서 쓸 수가 없다.

이게 매력포인트!^^

 

 

c******6 2012.09.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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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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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놓고 봐서는 선거시즌에 맞춰나오는 불쏘시개류의 책 같다.   하지만, 우리는 저자의 이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정우'. 깊이와 시야를 갖춘 강의로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는 지식인이 아니던가. 최근에는 세계철학사라는 시리즈의 집필에 매진하는 듯하다.   어쨋거나, 그런 사람이 이런 불쏘시개같은 제목의 책을 냈으니 내용이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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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놓고 봐서는 선거시즌에 맞춰나오는 불쏘시개류의 책 같다.

 

하지만, 우리는 저자의 이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정우'. 깊이와 시야를 갖춘 강의로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는 지식인이 아니던가. 최근에는 세계철학사라는 시리즈의 집필에 매진하는 듯하다.

 

어쨋거나, 그런 사람이 이런 불쏘시개같은 제목의 책을 냈으니 내용이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그래서, 읽어봤습니다.

 

아... 교수님답네요.

 

이 책, 에세이라기보다는 학술서에 가깝습니다.

 

좀 쉽게 쓰여져서 잘 읽히긴 해도, 글의 형식 자체가 그 쪽이네요.

 

논의도 상당히 추상적인편이구요.

 

이정우 교수님 역시 멋져요...

 

 

 개 중 인상적인 부분을 인용합니다.

 

 파시즘의 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집단 열등의식은 불길한 정치의 추동력을 크게 높여주는 특급 연료로서 작동한다. 그래서 근대화에 뒤처진 사람들이 "조국 근대화"에 목을 맨 체 그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던 자들을 따라갔듯이 금융자본주의에 농락당했던 사람들이 "2만불 시대"에 목을 맨 채 그들에게 당근을 내미는 자들을 따라가고 있다. ... '대운하'는 단지 하나의 정책이나 계획이 아니다. 그것은 개발독재 시대의 광경을 어리둥절할 정도로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하나의 형상이다.

 

 19p

 

 이런 흐름은 해방 이후 겨우 싹터서 피려 하던 민주주의적 시도들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은 초점을 상실한 말이다. ... 중요한 것은 정권들 사이의 비교가 아니라 대중들의 바람이 구현되는 장 자체가 악화되었다는 데에 있다. 그 바람을 실현시켜 주지 못한 무능력한 정부에서 그런 바람을 아예 거부하는 수구적인 정부로 말이다. 이런 선택은 어리석은 대중이 한 것이고, 따라서 결과에 대해서는 그들이 책임져야 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러야 할 부담은 결국 소수자들에게 지워진다.

 

19~20p

 

 현대의 관리사회는 차이생성을 관리하는 사회이고, 자유를 관리하는 사회이며, 주체성을 관리하는 사회이다. 이런 관리는 세 가지 영역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따.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관리하는 신체의 관리, 정치경제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관리하는 화폐의 관리, 문화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관리하는 기호의 관리가 그것이다.

 

53p

 

우리가 실재를 담론화해 제시하면 실재는 늘 '아니오'라고 말한다. 우리는 다른 대안을 만들어 다시 실재에게 제시한다. 다시 '아니오'라는 답이 돌아오지만 그 '아니오'의 내용은 달라진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통해 인식 전체를 재조정하며, 그 차이를 통해 인식의 발전을 가늠할 수 있다. 인간이 자의적으로 실재에게 진리를 강요할 때 실재는 늘 이렇게 '아니오'를 통해서 귀환한다. 진리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소유에의 집착에 경종을 울리면서, 그 소유에 균열을 내면서 끝없이 다시 도래하는 실재(와 주체)의 운동이다. 진리란 실재의 귀환인 것이다.

 

97p

 

 은폐에서 탈은폐로의 이행이 이루어지는 장소, 존재의 숨겨졌던 얼굴이 드러나는 장소, 이런 장소를 우리는 진리의 장소라 부를 수 있다.

 

145p

 

 타자를 동일화한다는 것은 곧 내부화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바깥을 있는 그대로의 '바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에게 끌어들여 내부화하는 것. 그럼으로써 타자를 위한다고 생각하는 것. 타자를 배려한다고 생각하는 것. 타자성, 외부성은 그 자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타자성은 낯섦이다. 그 낯섦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낯섦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낯섦의 공간은 관계가, 사이가 고착화되지 않은 카오스의 공간이다. 그 카오스의 공간에서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 낯섦의 공간을 통과해서야 비로소 어떤 구체적인 관계가 정립되기 때문이다. 그 낯섦을 자기의 관점에서 미리 재단할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람과 사물 사이의 폭력이 시작된다.

 

 진정으로 윤리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내가 타자가 "되려는" 노력을 함축한다. ... 자기 자리에 앉아서, 자기의 동일성에는 흠 하나 내지 않으면서 윤리를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위선적인 것도 없다.

 

 타자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자기'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양보하려 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이 타자-되기를 위해 그것을 포기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 정규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자리를 확고하게 지키면서 비정규직 종사자들을 배려하는척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무의미하다. 동일자들은 타자들을 배려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그들과 자신들의 차이를 지키려 안간힘을 쓴다. 그 차이가 존속되어야만, 즉 그 차이가 실체화되고 고착화되어야만 자신의 동일성도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윤리나 도덕은 위선일 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동일성을 바꾸어 나가려 할 때에만 윤리적 행위가 성립할 것이다.

 

189~191p

 

 쉽지만은 않아도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인용된 글에서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주저없이 도전해 보기 바란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a**l 2012.09.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