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이문열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한때 내겐. 지금은 아니다. 그 이름 앞에 애증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조차 사치다. 그는 이미 작가로서의 생명을 다한 듯하다. 아니, 그래야 하고,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바라건대 남은 여생, 삼국지 장사에나 전념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걱정이다. 거의 독점했던 그 장사판에 강적들(황석영, 장정일)이 등장했으니... 정말 걱정이다. 이러다 또 문학하겠다고 나서는 거 아닌가. 오랜만에 이인화의 소설을 읽고 난데없이 이문열 얘기부터 꺼냈다. 그도그럴것이 진작부터 내게 두 사람은 동격 혹은 닮은 꼴, 최소한 문단 '보수공사'의 쌍雙십장 정도로 인식돼 왔던 거다. 둘은 한동안 문단에서 자취를 감추는 듯한 - 그래서 여러사람 기쁘게 했던 - 행동조차 함께 하는 의리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주 이인화가 홀연 문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과거의 그것이 아니다. 패기와 멋스러움과 활달함은 사라졌고, 그 자리를 초췌와 서늘, 혹은 초연과 여유가 대신하고 있다. 그 멜랑콜리 혹은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정체는 뭔가. 작가 자신의 자아분열이다. 이인화가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라는 이름의 자아분열者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작가 이인화는 여전히 애증의 대상이다, 내겐.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로 잠시 신선함을 주는가 싶더니 이내 하루끼의 문체를 '혼성모방'했다고 고백함으로써 문단에 패러디 논쟁을 불러왔고, 뒤이어 <영원한 제국>으로는 짐짓 움베르토 에코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환상적 리얼리즘과 지식추리기법을 흉내내며 녹록치 않은 상상력과 필력을 자랑했고, <인간의 길, 혁명의 길>로 인해 진중권 등에게 죽창세례를 받고 버둥대다가, <시인의 별>로 일약 이상문학상(나는 이 상이 국내 최고 권위의 상이라고 단언한다) 수상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던 그였다. 빨랐고 짧았고 대단했고 시기심과 실망감을 자아냈고, 그리고 은연중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도 했다. 이상문학상 효과는 참으로 미묘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상의 수상을 기점으로 뚜렷하게 상승 혹은 하강의 변곡점을 찍는다. 묘한 징후다. 이인화도 예외가 아니다. 이인화는 수상 이후 무려 4년간 공백기(작가말로는, 이 시기 영화 시나리오와 게임 시나리오 등을 썼다함)를 가졌다. 그리고 이제사 한 권의 책을 내놓았다. 『하비로霞飛路』.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내용 역시 그렇다. 앞서 언급했듯 이 작품은 작가 이인화의 지난한 자아분열의 과정을 그린 것이다. 따라서 소설의 주인공 '이준상'은 곧 작가 자신이다. 소설의 시대적·공간적 배경은 1937년의 중국 상하이지만 이것은 기실 작가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소설적 장치에 불과하다. 또한 소설의 제재로 활용한 중국 갱단, 일본 야쿠자, 조선인 폭력단 등은 곱씹어 보면 고스란히 당대의 아나키스트들이다. 이 역시 아나키스트 이인화의 coming-out일 뿐이다. 혹은 시제(時制) 바꾸기다. 1937년의 중국 상하이. 상하이적인 것(the Shanghainess)으로 불렸을 만큼 욕망과 절망, 기회와 희망, 분노와 절규, 사랑과 증오가 일제히 분출되고 교차하고 어긋나고 부닥치고 깨지고 스며들고 포옹하고 결별하던 곳. 한마디로 욕망의 분출구다. 기회와 절망의 이중주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그 속에서 때론 일탈의 유혹 앞에서 때론 끝없는 번뇌의 늪에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 존재의 허위와 허무를 발견하는 그런 곳이다. 그곳 상하이에 암흑가의 패권을 노리는 중국, 일본, 조선의 낭인 집단들 사이에 자아분열의 혼돈을 걷고 있는 프랑스 조계 형사 이준상이 있다. 형사로서,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던 그는 불현듯 해리성 기억상실에 걸려 신음하는, 끝없이 분열하는 자아에 몸서리치는 사나이와 맞닥뜨린다. 바로 자신이다. 문득 준상은 자신이 범인을 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분열하는 자아를 좇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분열적 자아의 종국점은,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담겨 있는 사랑, 아내에 대한 사랑, 학자적 양심을 지키려는 발버둥이었다. 2000년 이상문학상 수상작가 이인화는 결국 하루끼와 보르헤스, 움베르토 에코를 지나 겉으로는 댄 브라운 류의 최신 유행을 흉내내는 듯하지만 사실은 '자아분열의 작가 이상(李箱 1910∼1937)'에게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하하하, 이인화가 이상을 쫓아 도로로 질주하오."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疾走)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 이 상의 '오감도(烏瞰圖) : 시 제1호' 중에서. |
| 이인화는 논란의 주인공으로서만 내 기억에 있다. 그 논란이 한참일때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서울대 출신의 어느 잘난 젊은이가 꽤나 많은 부러움을 사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인화는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났다. <하비로>를 들고. 무척 호흡이 빠른 소설이다. 중학교 때 수업 시간 짬짬이 읽은 <영웅문> 이후로 이토록 흡입력이 강한 소설은 만나본 적이 없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서 내려야 할 지하철 역을 지나치고픈 유혹마저 느꼈다. 추리소설이라는 매력적인 얼개에, 1937년의 상하이라는 흥미로운 배경, 그리고 태평천국을 지탱했던 상제교라는 액자가 멋들어지게 버무려져 있다.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재미거리들이다. 때문에 이야기가 본류에서 벗어나도, 아니 벗어날수록 독서의 집중력은 더 높아진다. 이 재미있는 소설을 쓴 사람이 왜 욕을 먹었나가 궁금하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과거 논쟁의 흔적들은 이런 죄목을 씌웠더랬다. 박정희를 영웅시하고, 서울대를 나왔고, 이상문학상을 탔다, 그리고 새로운 조류의 소설기법을 잽싸게 차용해서는 자기것인양 떠들었다는 것 정도... 별로 납득이 가지 않는 죄목이다. 소설은 일단 재미있고 볼 일이다. 그 재미에 색다른 감성과 지식을 담을 수 있다면 그건 능력이다. 잘은 모르지만 이 사람, 필요 이상으로 많은 욕을 먹었던게 아닌가 싶다. 욕해서 문단에서 쫓아내기보다는, 칭찬해서 더 많은 글을 쏟아내게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
| 베스트셀러의 진입을 눈앞에 두었다는 여러 광고의 문고와 개인적으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에서 보여주는 스피드와 글 전개, 소재개발이 마음에 들어 읽기 시작했다. “음 그러고 보니 2005년의 첫 읽을거리인 셈이군!” 상하이 하비로라는 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은 너무도 끔직하고 이미 무정부 상태의 마약과 혼란, 폭력과 조직이 난무하는 상하이에서의 1930년대를 무척이나 실감나게 그렸다. 삼국시대의 조조는 그 많은 군사비용을 도굴부대를 만들어 충당해왔다. 이 도굴부대에서 금광을 발견하고 그 지리를 지도로 만들어 조조에게 바치게 된다. 그러나 조조는 금광을 캐보기도 전에 죽게된다. 이 보물지도는 세월이 흘러 태평천국군에 손에 들어가게 되나 승승장구하던 태평천국군은 청 정부군과 영국군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태평천국군은 영국군 사령관에게 많은 보물과 이 보물지도를 배에 실어 뇌물로 보내면서 자신들 배후의 청군을 쳐줄 것을 바라지만 이 배는 심한 물살에 수장되어 버려 혁명의 꿈은 실현치 못하고 비참히 몰락하게 된다. 결국 모든 보물은 비밀 지도와 함께 전설로만 남게 된다. 1930년대 다시 이 보물지도가 빛을 맞게 되고 이 보물지도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또는 관련 있는 자들이 하나 둘씩 비참하게 살해된다. 사건을 맡은 담당 형사는 부인을 잃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국인으로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발견되어 지는 단서들이 자신과 관련 있음을 알고 자신의 비밀에 두려움을 느낀다. 단서들에서 나타나는 암호를 풀은 형사는 보물지도의 열쇠를 손에 넣게 되고 각 나라의 폭력조직은 무참히 자신을 쫒아오는데......6년 전 사라진 불쌍한 아내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주인공은 죽음의 한가운데로 몰리게 된다. 디지털미디어 학부의 교수답게 그리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돌려놓기라도 하려 듯이 이 소설은 무척이나 스피드하고 암호화된 살인사건을 과거의 옛 역사와 맞물러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특히 상하이의 어둡고도 화려한 표정, 하비로의 짙은 냄새, 시대를 잃고 방황하는 군상들의 모습을 무척이나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어 마치 한 편의 영상을 접하고 난듯하다. 그리고 간간의 패러디는 오히려 잔잔한 웃음을 주고 있다. -적어도 나에겐- 죽은 자의 피로 암로를 만들어 놓은 것과 그 암호를 풀어 다시금 그 자리에 돌아오게 되는 과정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고 전설의 갱의 화려한 전설적 활약은 <유쥬얼 서스펙트>에서의 <카이저 소제>를 본 딴듯해 보인다. 벌써 영화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까지 하니 과연 어떤 영상이 펼쳐질까 자못 기대된다. |
| 원래 소설을 좋아 하지만 왠지 요즈음은 국내작가의 소설이 잘 잡혀지지 않았다. 일부 '잘나간다는' 작가나 이들의 독자는 사상적 편향, 이념성이나 선정성이 지나쳐 보이고, 그 가운데 진정으로 독자를 위하여 고뇌하는 작가와 작품, 소위 세계 문학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전통을 계승한 문학다운 문학은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 입장에 있는 나 자신의 탐색 노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에서 사상성, 이념성, 선정성의 범람은 결국 독자들로부터의 외면과 손실만을 초래할 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진정한 문학은 정치 철학을 초월한 데서 감동성을 갖춰야 한다. 또 문학은 인간의 진실한 삶 그 본질을 다루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세대와 세월을 넘어 전해지는 고전들이나 동화들의 공통분모일 것이다. 그런고로 요즘은 새로이 번역되어 선뵈이는 추억어린 고전들, 그리고 몽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낭만적인 영웅담에 자주 손길이 갔다. 소설가는 일단 작품을 재미있게 써야하고 작품성도 갖춰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인화에 대한 신뢰감은 절대적이었다. 그의 소설은 거의 다 읽었는데,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소설도 그의 분방하면서도 치밀한 상상력과 장인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장기인 추리소설 기법을 뼈대로 지난 세기초의 '상해'라는 국제도시에서의 세기말적 퇴폐 분위기, 나라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청년들(우리 할아버지 세대이지만), 광신교 집단에 대한 묘사 등이 혼합되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사건은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다. 원래 좋은 책일수록 곱씹어 읽어야 하는데, 워낙 재미 있어 단숨에 읽고 나니 허무하기도 하다. 곧 영화화한다는데, 그만큼 이 작품의 작품성과 흥행성을 널리 평가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봉박두를 기대한다. 다만 한가지, 영화는 결말 부분이 좀더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 하비로.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의 새 신작소설이다. 기대를 잔뜩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매우 치밀하고 정교한 플롯에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인상적으로 읽었다. 필립 말로우 같이 냉철한 남자. 외적으로는 너무 강하지만 잃어버린 기억과 실종된 아내로 가슴엔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남자. 1930년대 암울한 일제강점기. 가난한 식민지 조선청년들이 모이는 곳은 상하이 싸구려 골목. 예술을 한답시고 술에, 모르핀에 절어 사는 그들. 형사인 이준상은 친구 한화영을 따라 그곳에 우연히 가게 되고,, 몇몇 인물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한달 후 살인사건이 일어나 자신이 직접 그 사건을 맡게 된다. 워낙 암흑가 투쟁이 심하던 곳이라 그런 종류의 싸움일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점점 계속되는 살인으로 뭔가 있을 거라는 의혹이 점점 짙어진다. 중반에 다다를 때까지만 해도 설마 이준상을 기다리는 사건이 '그 것'일 줄이야. 형사가 되기 전 일본서 공부하던 전도유망한 중국학자였던 이준상은 태평천국운동과 관계된 논문을 썼는데, 그것이 이 곳 상하이에서 '그런 움직임'으로 연결될 줄이야. ........................................................................................................................... '이것이 한국 역사 추리소설'이다 라고 호기롭게 써 있는 책 선전 문구를 보고, 이제는 모두 다 팩션(faction)을 표방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The Da Vinci Code와 Angels&Demons를 읽으면서 플롯이 꽤나 치밀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비로 또한 결코 뒤지지 않는 것 같다.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한 경험..은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스릴감이었다. 역사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꼭 읽으라고 '안겨'주고 싶은 책이다. 한류바람을 타고 널리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소설가 이인화씨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 대중 소설 못지 않게 재밌다는 게 나름대로 자랑스러웠다고나 할까..) |
| 주인공은 조선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공부하고 중국에서 살아가는 그 시대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몇년전 자신의 아내를 잃고서 그는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형사다. 어느날 그가 알던 사람이 목이 잘린채 변사체로 발견된다. 그리고는 사건이 시작된다. 그 살인사건을 풀어가면서 그 시대 복잡하게 얽혀있던 상하이 틈에서 살아가면서 사건을 해결해 가는 도중에 자신의 그 살인자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된다. 정신분열증. 최면을 통한 살인. 어쨌든 그는 형사신분이지만 살인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썼던 논문들은 중국을 지배하려는 일본을 배후세력으로 두고 있는 종교집단의 교리가 된다. 그 역시 그 종교의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재밌게 봤다. 추리소설..여러가지 섞은 듯한 이야기. 하지만 나름대로 읽으면서 재미를 느꼈다.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주인공에 연민을 느끼면서..살인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태평천국운동으로 생뚱맞는 기독교 내용이 들어가서 좀 이상했지만 그래도 중반까지는 재밌다. 이것도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은것 같다. 다만 본아이덴티티 하고 조금은 비슷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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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화의 장편 소설 " 하비로 "이다. 드물고 드물게도 우리나라 작가의 책이었다. 옛날에는 없던 우리 소설에 대한 편견까지 들고서 이 책을 읽자니 영 게름직해서 어쩔줄 몰라했다. 물론 내가 고른 것이 아니라 집 근처에 드문 드문 찾던 '헌책방'에서 와이프가 고른 것이었다. 그래도 책이란 참으로 묘한 것인가 보다. 한 번 빠지면 그걸로 끝이었다. 우리나라 소설이든, 외국 소설이든, 그건 문제가 되지않고 그저 그 내용에만 집중하기때문에 다 읽고 남는 여운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같다. 1937년경의 중국 상하이 배경으로 이루어진 어두운 암흑가의 비정한 스토리를 그려내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집단 청방, 일본의 야쿠자, 나라를 잃고 비정한 거리의 삼류로 살아가야하는 조선인들의 세상을 향한 몸부림을 잘 묘사하고 있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나라 잃은 조선인들의 처절한 날개짓이, 암담한 시대에 부딪혀 산산조각나는 자기 파괴의 인생을 만들어 내는 비참함을 그리고 있다. 희망이 없는 그 시대의 젊은 이들은 어쩌면 그랬을 법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나도 절망적이고 비관적이며 삶의 어두운 면만 부각시켜서 이 책에 솔솔하게 묻어있는 그 '재미'를 희석시키고 있어서 다소 안타깝게 생각했다.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도시의 우중충한 회색빛과 곧 다가올 어둠이 이 책의 주 배경인것보면 얼마나 암울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너무 관조적인면과 자기 연민에 빠져 자아적 회색 도취에 빠진면이 자주 나오는데 그 부분은 잘 이해되지도 않았고 잘 읽혀지지도 않았다. 그 부분은 괜히 이 소설을 어렵게만 만들고 지루하게만 느껴졌지만 혹 그렇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어쨌든 스토리 소재하나는 잘 골랐고 어려운 과거사를 소설에 잘 녹아내리도록 한 작가의 역량은 높이 살만했다. 재미면에서는 별 4개정도, 글 소재발굴면에선 4개 반, 실제 일어날것 같은 현실성을 보면 별3개, 문장력은 4개, 평균적 독자의 이해력 추구면에선 3개..... --> 내 나름의 느낌이다. 좀 건방진가? 헤헤... 어쨌든 읽을 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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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제국과 비교 해 보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애초의 의도가 추리소설 기법이었고 잘 되면 영화로도 만들고 싶었고 게다가 오랜 기간의 공백을 한숨에 뒤집어야 하는 다목적의 소설이었으니 큰 문학적 기대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이란 생각이 들었다. 2005년 벽두부터 가야 했던 출장, 그리고 14시간의 비행에 적합한 내용의 적절한 재미를 던져 준 점은 인정하지만, 이인화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내용임은 분명했다. 무언가 부족했던 것이다. 도대체 뭐가? 첫째, 무너진 밸런스다. 글은 초반부이든 중반이든 결말이든 밸런스가 있는 것이다. 처음에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서 글은 움직인다. 그 안에서 기승전결을 논해야 할 것이다. 추리소설에서 판타지로, 게다가 문학과 역사로 옮겨 다니는 것을 탓할 바 없으나 그 정도가 기존의 틀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흘러 가다가 주인공이 댄젤워싱턴에서 주드로가 될 순 없지 않은가? 둘째, 서사의 상실이다. 묘사는 강해졌지만 서사는 줄었다. 작가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게임이니 영화니 하는 다른 매체의 틀속에 있었다. 그러니 소설의 그 광활한 서사는 사라질 수 밖에.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얻는 것이니... 전쟁이나 추격이나..이런 장면들의 묘사는 영화급(?) 이다. 이것을 얻었으니 만족할지도... 세번째, 가장 슬픈 부분이다. 그의 ~ism은 어디로 갔나? 그가 인간의 길을 사랑하든 그래도 괜찮다. 같은 인간들이 사는 것은 재미 없으니까. 그런데 그는 나와 다른 사람인가 아니면 같은 사람인가? 우리는 소설가의 이름만을 보고 책을 산다. 그에게 기대 하는 것은 그의 그 정신을 원해서 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인화는.... 아! 그의 말처럼 보헤미안이 되어 버린 것일까? 허무한 슬픔이 그를 말해 준다. 비판만 할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다빈치코드 보다 뭐 그렇게 못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추리 소설처럼, 판타지 소설 처럼...그리고 조조(생뚱맞기도 한데...조조 아니면 어때?) 도 나오니 다빈치의 모나리자와도 맞 먹는 급이다. 이런 시도... 이인화니까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판타지 소설도 좀 격이 있으면 어때? 라는 욕구... 우리도 이젠 수준있는 영화화 될 소설을 지녔다라는 자부심에서 이 책을 구입하라. 아주 기쁨이 넘칠 것이다. ps. 혹 검은꽃 때문에 이인화가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다른 길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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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대박을 터뜨린 소설들을 보면 하나 같이 추리 소설의 기법을 띠고 있다. 적당히 미술이나 역사, 고고학 아니면 과학을 재료로 하여 얼마간의 독자의 지식에 대한 허영을 채워주고 추리와 빠른 사건 전개로 독자들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 누군가 항상 ‘나쁜 놈’이 있고 작가가 가치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고, 항변을 받지 않기 위해서 그 나쁜 놈은 누가 보아도 나쁜 놈이며 항변할 수 없는 위치의 사람들이다. 즉, 죽었기에 항변하지 못하는 역사적 인물이거나 누가 뭐라고 말해도 절대 대꾸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대박을 터트린 소설가들은 비난 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갑을 열어 소설책을 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적을 만들지 않거나 아주 소수에 국한 되도록 하는 것이다. 대박의 또 한 가지 조건은 소설을 쓰면서 이미 영화화했을 때 멋있는 화면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계산을 깔고 글을 쓴다는 것이다. 또한 두 시간 이내로 요약될 수 있는 내용도 중요하다. 마이클 클라이튼은 쥐라기 공원에서 멋있는 공룡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에서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들이 어떤 식으로 구체화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요즘 영화로 만들고 있다는 다빈치 코드도 화려한 루브르의 박물관과 오래된 성당들의 장중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루브르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 영화가 상영되면 당장 예약을 할 것이다. 여기서 더 발전한다면 추리극은 컴퓨터 게임이나 비디오 게임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문화 산업의 기반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화나 역사에 기반을 두었던 아니면 과학에 기반을 두던 바탕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실정에서 어떤 것이 경쟁력이 있을까? 과학은 좀 어렵고 이미 미국과 유럽이 선점하고 있는 서부의 중세 이야기로는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럼 한민족 신화? 그것은 너무 국지적이고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할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생소한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새로운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제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중국과 일본을 엮은 역사물일 것이다. 최소한 그것으로 중국과 일본에서는 통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한류라고 일본과 중국에서 한국 문화가 뜨고 있지만 몇몇 꽃미남들의 부드러운 미소의 약발은 얼마나 갈까? 이인화는 이런 인식에서 한국의 댄 브라운이 되기로 했나보다. 내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길’을 쓰는 이인화보다는 한국문화의 세계화의 첨병이 되는 이인화가 더 좋다. ‘내가 누구인지...’에서 받은 감명은 ‘이문열’이라는 논문집을 엮은이가 이인화라는 사실에서 무참히 깨졌고 ‘시인의 별’에서 받은 아련함은 ‘인간의 길’에서 애처로와졌다. 내가 그 문장을 사랑하는 이문열씨는 평생 어릴 때 받은 영남 보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문장은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문장이 엉뚱하게 결론을 맺을 때 받는 상처라니.... 이문열씨 다음 세대인 이인화는 출발은 비록 ‘이문열 닮기’에서 시작되었지만 거기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서 움베르토 에코, 댄 브라운이나 마이클 크라이튼 식의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소설을 쓰려면 기본기가 있어야 하고 자본과 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재미있고 유익한 추리물에 내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사람이다. 작년에 읽은 대부분의 소설이 추리물일 정도로 추리물의 왕팬인 나로서는 ‘하비로’는 좀 김이 빠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추리물이기 때문이다.) 첫째로 어디서 이미 읽은 듯한 데자뷰 현상(영화 본 아이덴티티, 단테클럽, 다비치 코드 등등)이 두드러졌고 주인공은 마치 1930년대 상하이에 떨어진 ‘내가 누구인지...’의 주인공처럼 행세를 했다. 작가는 아직도 10여년 전의 자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건지.... 나는 추리물에서의 주인공은 좀 강건한 사람을 좋아한다. 둘째로 소설이 길이가 너무 짧다는 생각을 했다. 점점 길어지는 해리 포터 시리즈, 댄 브라운의 책들, 마이클 크라이튼의 책들은 요즘 조금씩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좀 더 디테일이 상세해지고 서스펜스의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해서 2권 정도의 길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셋째로 요즘 대부분의 책처럼 영화로 만들었을 때 영상이 별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유럽식 석조건물과 중국식 사합원과 후동이 섞여 있는 안개 낀 1930년대 상하이의 이미지는 조금은 데카당적이고 몽환적일수 있겠지만 멋있는 그림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잘 해봐야 요즘의 영화 ‘ 월드 오브 투머로우’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모든 것이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 것처럼 저자도 자꾸 쓰다보면 재미있는 소설이 나올 것 같다. (댄 브라운은 4번째 소설에서 대받을 터트렸다.) 다만 이제는 주인공이 소설이나 논문 쓰는 직업이 아닌 다양한 직업이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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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만주침략과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제국죽의 국가들의 혼란과 한중일 삼국의 이해 관계가 뒤얽힌 시대...
상하이는 이 혼돈의 시대를 상징하는 도시였습니다. 날것에 가깝게 거칠고, 잔인하면서도, 이국적인 환상이 깃들어 있는 도시- 상하이 마약시장을 배경으로 조선인 형사가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플롯만큼 이 작품도 가히 환각과도 같은 느낌을 줍니다. 여기에 중국 역사 최고의 미스터리라는 조조의 무덤을 찾아 그 안의 보물을 쟁취하기 위한 혈투까지...
기억 장애라는 장치에 수많은 단서들이 복선으로 작용하면서 내면의 갈등과 암흑 조직들의 전쟁이 뒤얽히고, 그야말로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작품. 흥미로운 소재와 생생한 인물 상이 이인화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