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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은 응답하라』 이 사람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 나도 팬질이 하고 싶다고요
몇 달 전 출간된 『요통 탐험가』 미도리의 편집자 노트를 보고 심히 부러웠다. 아, 나도 팬심으로 편집하고 싶다. 그 핑크빛 세계에는 ‘노동의 배신’이란 없으리.
행복은 주변에 있는 거라고(-_-;) 아무튼 당장 담당하고 있는 책 『중산층은 응답하라』의 저자 톰 하트만 아저씨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일단 훈훈해 보이는 마스크에 방송 들어 보니 중후한 목소리, 미중년이시군. 오케이. 일단 위키피디아로 살짝 간을 보고 점잖게 홈페이지에 놀러 가야지 했는데...
그런데 선생님(아저씨에서 어느새)... 대체 누구세요?
이력이 이렇게 다채로워도 법에 걸리지 않는 건가요? 역사에서 정치, 환경, 교육, 심리, 미디어… 이리 종횡무진 책을 내시면 저는 어떡하나요? 편집자라면 누구나 저자 소개로 소책자 한 권 정도는 써내야 하는 건가요? 자글자글 돋워 놓았던 팬심은 가라앉고, 역시나 평소와 다름없는 ‘저자와의 대결’ 모드로, 화면 가득 구글링한 저자 관련 웹페이지를 펼쳐 놓고... 자 야근이다!
# "이제 여러분이 술래!"
일단 하트만 선생은 이름난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다. 그냥 진행자가 아니라 무려 ‘진보적 성향’의 진행자로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토커 매거진>). 1980년대부터 득세한 시사 토크쇼는 2000년대 초반에도 보수가 휩쓸며 헛소리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보수를 자처하는 인물 중 목소리가 크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로버 노퀴스트(Grover Norquist)는 2001년 5월 25일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과 인터뷰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정부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정부를 축소하고 또 축소한 다음 욕조에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입니다.” (46쪽)
마침 하던 일도 쉬고 있었고 ‘에어 아메리카’ 창업자와 의견을 나누던 2002년 “라디오에서 ‘리버럴’ 토크쇼를 한번 해 보자, 뭔일 일어나나 보게.” 하고 시작한 선생의 지역 방송이 크게 호응을 얻은 것. 지금은 전 세계 전파를 타는 신디케이션 방송의 진행자 겸 제작자로 도약했다. 이제 미국에서 말발 좀 날리는 라디오 디제이랄까. 그의 방송은 사회의 여러 불편한 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프로젝트 센서드’가 선정한 올해의 뉴스상을 네 차례나 수상했다. 그렇다고 진보끼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방송은 결코 아니다. 양당제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선생은 열세 살 때부터 지역 선거 캠프에 참여해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매일같이 “이제 여러분이 술래!”라는 클로징 멘트를 날리며, 청취자들의 정치 참여를 부추기고 있으니, 『중산층은 응답하라』라는 한국어판 제목이 그냥 뽑혀 나온 게 아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과 편집자가 동갑내기라서 나온 것이 절대 절대 아니다!)
# 미국판 엄친아? 기업가에 베스트셀러 작가에 교육운동가!
그러나 선생은 말로만 진보를 외치는 이른바 ‘입 진보’와는 삶의 궤적을 달리한다. 젊은 시절부터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도 일곱 개 사업체를 거느리고 (하나만 빼고는)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가다. 광고 에이전시, 잡지사, 여행사, 컴퓨터 주변 장치 판매, 허브티 제조업체 등 다양한 사업을 건실하고도 성공적으로 운영한 덕에 「월스트리트 저널」 표지 모델로 출현한 적도 있다. (허브 사업을 하다가 약용 식물에 깊이 빠져 약초 및 동종요법 전문가로 거듭나기도 했다는데... 위키피디아에는 그가 관련 학위를 세 개나 가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정보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힘)
또한 선생은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낸 작가다. 그중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한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은 영화배우이자 환경운동가로 거듭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읽고서는 감명을 받아 <11번째 시간(The 11th hour)>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다. 여기에 하트만 선생도 출연한다. 그뿐인가. 선생이 라마 왈드런(Lamar Waldron)과 공저한 소설 『비밀의 유산(Legacy of Secrecy)』은 워너 브러더스 사에서 영화화를 결정, 주연은 무려 우리의 디카프리오! 이 영화는 2013년 케네디 서거 50주기를 기념해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헐. 케네디 암살과 관련한 소설까지?
그렇다. 하트만 선생은 문어발 지식인. 특히 미국의 정치와 역사, 그리고 헌법에 대한 무궁한 탐구심을 가지고 여러 책을 쓴 비정규 역사학자다. 『중산층은 응답하라』가 여타 사회비평서들과 논의의 지평을 달리하는 것도 그래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미국의 독립과 건국의 맥락에서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살피고, 토머스 제퍼슨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의 인물에게서 중산층 부활의 가능성을 찾는 것. 물론 지금의 중산층 위기를 초래한 기업 권력 및 보수 패거리의 작태를 질타하는 신랄함은 기본이다. 가슴이 다 뻥 뚫리게, 활명수 한 뚝배기 하실↗래예? 그럼 이 책을.
그러나 여기서 그칠소냐. 그는 오랫동안 교육 운동에 투신해 여러 혁신적 대안 교육 프로그램을 일찍부터 도입한, 교육 운동가이기도 하다. 1970년대에 학대 아동을 위한 교육 공동체를 세워 다년 간 운영했고, 1998년에 아내와 함께 설립한 ADHD 아동을 위한 학교 헌터 스쿨은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하트만 선생의 책이 두 권인데, 그중 하나는 ADHD 아동의 교육을 다룬 『산만한 아이들이 세상을 바꾼다』이다.
(거의 모든 외국 저자 프로필 클리셰에 따라 대단원은...) 그는 지금 워싱턴 DC 에서 아내 루이즈, 그리고 공격형 고양이 히긴스와 살고 있다.
# 나도 중산층이 되고 싶다!
흠흠. 좀 길었나... 차마 책 날개에 다 담지 못한 자료들이 아까워서 이러는 것이 결코 아니다 ^^; 하트만 선생의 날렵한 현실 감각과 균형 잡힌 시선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선생의 실천가로서의 매력을 알면 ‘응답’률이 응당 높아질 거란 믿음으로 (영 어울리지 않는) 팬질 코스프레를 해 보았...어요.
무엇보다 하트만 선생은 저녁 있는 삶의 가치를 강조하셨으니, 즉 나 같은 보통 노동자가 하루 8시간 근무하고도 중산층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에 응답하기 위하여, 자, 이제 퇴근이다!
그의 글, 방송을 접하고 싶다면 www.thomhartmann.com
여름이 갔으니 이제 숏팬츠는 안 입는 걸까 궁금하게 하는 부키 기획편집부 붉은손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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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이번 대선의 화두는 단연 복지가 될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경제위기로 팍팍해진 서민의 살림살이를 더 잘 보듬어주는 후보가 유리할 것입니다. 과거 거의 무명이었던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유명한 구호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의 경제가 “중산층”으로 바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잃어버린 중산층의 회복이 당면한 큰 과제이니 말입니다.
미국판 ‘나꼼수’라고 불리는 진보적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저자는 책 곳곳에서 보수 진영 그중에서도 ‘보수 사기꾼’을 향한 비판을 멈추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 사이의 싸움이 아니라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사이의 싸움도 아니며 건국의 아버지들이 물려준 유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국민을 한편으로 하고, 기업 권력과 상속받은 재산을 토대로 현성된 소수 엘리트에게만 유리한 미국을 만들려는 보수 ‘사기꾼’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싸움이다. (p. 23)”라고 포문을 연 저자는 노골적으로 기업과 그 CEO들은 미국의 새로운 봉건 영주이고, 그 밑에 포진한 보수 정치인과 언론인은 그들의 충성스런 하인이자 대변인으로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 대신 기업가 귀족이 등장해 미국을 잠식해 가는 중이라면 기업가 정치를 비판합니다.
또한 과거 중산층의 전형이었던 자신의 아버지의 예를 들면서 오늘날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평생 중산층이 될 수 없기에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과 미국의 현실은 오래 전부터 어긋났다고 말합니다. 즉. ‘법을 어기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풍문에 불과하며 어떤 기업은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하고 사회 안정망은 누더기가 되었으며 중산층이 나날이 줄어들고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합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개인적인 이익의 추구가 아니라 자시의 이상을 좇아 정치의 길로 들어선 청치인들, 즉 토마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플랭클린 루스벨트 등의 예를 들었는데,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네 아들은 모두 군대에 갔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무공훈장을 받았지만 부시 가문과 체니 가문 역시 공직을 맡아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고 그들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면서 두 가문을 통틀어 자제들 가운데 그들 부모가 ‘고귀한 명분’으로 일으킨 전쟁(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한 이가 한명도 없다고 비교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레이건으로부터 시작된 중산층 무너뜨리기는 부시, 클린턴, 최근의 아들 부시를 거치면서 거의 완성되었다면서 정부는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미국 중산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활임금을 보장해야 하고 사회보장제를 더욱 강화하는 데 힘쓰고 질 높은 무상 공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며 소위 큰 정부론을 주장합니다.
특히 그가 인용한 토마스 페인의 “인간의 권리”중 인가에 관한 대목은 우리나라의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이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옮겨 봅니다. "인가에 의해 권리가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은 용어의 왜곡이다. 오히려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 본질적으로 말해서 권리는 특정 지역에서 살아가는 주민에게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인가는 다수 주민의 손에 있던 권리를 빼앗아 소수 특권 세력의 손에 쥐어 준다. 인가는 결국 불의를 저지르는 도구 구실을 한다. (p. 116,)"
흔히들 중산층은 경제를 떠받치는 그룹이라고 합니다. 그 그룹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것은 비단 먼 나라, 이웃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나라의 이야기입니다. 매일같이 들려오는 하우스 푸어, 워킹 푸어 등 OO푸어는 과연 아직도 생길 것이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저자의 방송은 아직 들어 본적이 없지만 그의 클로징 멘트 "그만 일어나 뛰세요. 이제 당신이 술래입니다.“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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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이 시작한 민주주의의 참된 의미를 바라보게 되는 책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그 열망과 노력이 얼마나 왜곡되어 가고 있는 모습도 함께 바라보게 되는 책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시견을 가지게 도움주는 책이였다. 내용이 어렵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만큼 내용에 빠져드는 책이였다. 새롭게 알아가는 것들에 재미가 있었고 알게되는 것만큼이나 이 책을 더 읽게되는 시간이였다.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현명함을 우리에게 주는 책이다. 그리고 냉철하게 짚어가는 하나하나의 주제들을 알아가는 것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던 내용이다.
우리가 중산층인지..아닌지 냉철하게 바라보면서 우리가 속한 사회는 과연 누군가를 위한 사회인지 분명하게 바라보기를 희망해보게 된다. 현명함을 요한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지혜롭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다시금 권하고 싶다. 영국의 역사를 바라보고 미국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역사적인 오점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지금 이 사회의 모습은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함께 투영해볼 수 있는 책이다. 미국사회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사회는 과연 어떠한 현상으로 달리고 있는지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다.
기대한 책이였는데 기대이상의 책이였다. 그리고 섬특한 사회의 모습을 더 냉정하게 바라보게된 책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 왜 투영되어 보이는것인지... 무너져가는 중산층 소식을 자주 접하는 우리 사회. 안전한 중산층인지 다시금 바라보게 되는 책이다. 거대한 집단인지 소수의 집단인지 단정지을 수 없는 그 집단에 의해 우리 사회도 너무 착하게 돌아가는 중산층이 되지 않기를 희망해본다. 미국사회가 왜 힘겨운지 짚어보면서 우리의 중산층도 함께 몰락해지지 않는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평소 생각하는 부분과 상통하는 것들이 자주 내용에 나오는 것을 접하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참 많았던 책이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되는 것들 덕분에 저자에 대한 호감도 높았던 책이다. 저자의 또 다른 도서도 읽고 싶어지는 도서였다. 지루한 내용이였다면 뜨문 뜨문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도서는 시간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면서 읽었던 도서이다. 깊이 있고 폭넓은 것들을 전해주는 도서다.
다양한 독자층을 가지는 도서가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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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건국 당시부터 모든 시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규정해 온 미국이라는 나라가 보수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기업귀족들의 사기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나 레이건 정부 이후의 공화당 정책의 초점은 한결같이 안정된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정치적인 의사집단으로 대두되어 온 중산층의 삶을 파괴하는 방향에 맞춰져 있으며, 그 이유는 소수의 거대재벌들이 정부의 의사결정에 좀 더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라는 것. 책은 민주주의란 안정적인 중산층이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경제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강조한다.
2. 감상평 。。。。。。。
자주 가는 도서관 신착도서 코너에 있기에 눈에 띄어 집어 온 책.
책 속에 등장하는 미국 공화당과 이를 뒤쫓는 일부 민주당 인사들의 행태는 한국의 그것과 딱히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수의 재벌기업 오너(사실 이 말도 웃기는 게 정작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인사들의 주식 소유 지분은 한 줌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에게 편중된 온갖 특권과 변칙적 법 제정과 집행은 대놓고 부정하기 어려운 지경이니까.(대기업 회장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휠체어 타고 검찰 몇 번 다녀오고 교도소 특실에서 조금 쉬다보면 금방 나올뿐더러, 심지어 얼마 후에는 사면까지 받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이런 행태들이 결국 민주주의의 실제적인 부정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자칭 보수주의자들(이게 모든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을 비난하는 표현은 아니다)은 국민들의 눈을 속이며 차근차근 정부의 부와 권력(모두 국민들로부터 나온)을 민간 기업들에게 넘겨주고 있다는 것.
책 속에 등장하는 한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1972~2001년 사이 30년 동안 미국의 소득 수준 상위 10%의 실질소득은 34% 증가했다. 그런데 이 구간을 좀 더 세분화 해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같은 기간 상위 1%의 소득은 87%가 증가했고, 0.1%는 181% 증가했으며, 0.01%의 소득은 497%가 증가했다. 전체적인 부의 양이 증가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대부분은 아주 소수의 손에 들어가고 있다는 지적. 매년 경제지표를 발표하면서 대한민국이 발전하고 부유해져왔다고 홍보하는 정부 당국자들의 발표와는 달리 갈수록 먹고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대다수의 중산층들의 하소연이 이해가 되는 부분.
책은 이런 상황들을 열거하면서 좀 더 옳은 방향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왜’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답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상황이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가장 저자의 의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명분으로 싸우기로 일어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진 않다. 좀 더 와 닿는 이야기로는 이대로는 점점 가난해져갈 뿐이니 일어나서 너희 것을 찾으라고 말하거나, 헌법에 어긋나는 일이니 바꿔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도 역시 임의성이 강하니 모든 것을 걸고 일어나 나서야 할 충분한 명분이 될지, 그리고 기층까지 미치는 실제적인 반향을 일으킬 수 있지는 모르겠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어떤 비전을 그려낼 수 있을지.
아, 그리고 저자가 미국인이라는 걸 감안해도 미국 건국 ‘신화’를 너무 낭만적으로 (그것도 꽤나 많은 지면을 사용해서) 그리는 건 아닌지 싶은 생각도 들고.(이건 뭐 괜한 트집일 수도 있고)
언제나 진실을 알아내는 것보다 감추는 게 더 쉬운 게 안타깝다. 뭐, 감추려는 사람은 분명한 이익이 눈에 보이니까 돈도 들이고 시간도 들이면서 즐겁게 해내겠지만, 이미 감춰진 걸 드러내기 위해선 당장 이익이 보이지 않아도 찾아서 읽고, 듣고, 배워야 하는 거니까. 대선만이 아니라 몇 년마다 반복되는 각종 선거는 진실을 감추려는 사람들을 제지하고 심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좀처럼 세상이 변하지 않는 건 누군가의 부지런함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의 게으름 때문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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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과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중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히려 중산층이 늘어나야 맞을 법한데,왜 오히려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는 것일까? 톰 하트만의 <중산층은 응답하라>에서는 이 원인으로 보수들의 음모를 꼽고 있다. 즉,보수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지지세력을 대변하기 위해 중산층을 포함한 부유층 이하 계층 사람들에게 각종 사탕발림 공약과 제도를 만들어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뉴스 같은 매체를 통해서만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이 책에서는 정확하게 미국의 사례들을 들어 그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실례와 함께 보수들의 음모를 파헤치고 있어서 쉽게 눈에 들어올 수 있었다. 특히 저자가 가장 끔찍한 보수파라고 생각한 것이 바로 레이건과 부시 정부 때다. 레이건 때는 레이건 자신이 정부가 할 일이 없다고 주장했으며,부시 정부 때는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이 사실은 이라크의 각종 재건 사업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일명 '작전'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정말 진짜였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냉철하고 신랄하게 평가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들의 문제 뿐 아니라 일명 대기업들에 대한 문제도 지적하고 있는데,흔히 대기업에 일하는 사람들이 높은 연봉에 여러가지 보험 혜택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지만,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월마트의 경우 물품 가격이 오르면 당연히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월급이나 혜택도 올라가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사실은 혜택을 줄이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이러한 일이 있었는데,이것은 진정한 기업이 아니다. 흔히 기업이 이윤을 얻는 것이라 생각할 지 모르지만,사실 기업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또 그들에게 일자리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주어야 하는 임무가 있는 것이다. 최근에 경제민주화하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아마 이러한 문제들이 곪을 대로 곪아서 터져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보수들이 주장하고 있는 여러가지 민영화들에 대한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데,최근 정부가 하고 있는 여러 민영화들도 따지고 보면 이 책에 나온 것들과 크게 다른 것이 없어보인다. 민영화라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걸 다시금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주로 미국의 상황만을 다루고 있지만,책에서 나온 일부 주제들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전혀 다른 게 없다. 선진국이면서 경제 대국임을 자부하는 미국이지만,루즈벨트의 뉴딜 정책 이후 미국에서 제대로 된 경제정책이 나온 게 있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대답할 거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 또한 보수들이 만든 여러가지 법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가 마지막에 강조하고 있는 보수들과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인 대중 매체 선전이라든가 정치인과 직접 소통하기 같은 방법들은 지금 정치에 무관심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작은 행동이야말로 잘못된 길을 바로잡을 수 있는 하나의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거짓 발언에 속아넘어가지 않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12/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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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만 해도 내 주위에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불과 몇 년이 흘렀을 뿐이지만 지금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스스로를 서민이라 생각하며 현 경제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느끼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 그들이 이제는 국가를 이루는 국민의 전형적인 모습이 되어 버렸다.
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할 듯 보이고 이로 인해 단지 ‘삶이 힘들다’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앞으로는 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라는 심리적인 고충까지 안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국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가가 추구하는 현 경제론의 문제는 무엇인가? 국민이 피해자라면 가해자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고민하고 해결해 보고자 하는 작가의 집념이 담긴 책이 ‘중산층은 응답하라’이다.
책의 겉표지를 장식하는 ‘정치에 속고 자본에 털린 당신’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유쾌함과는 다르게 책의 내용은 매우 진지하며 디테일하다. 작가가 현재의 상황을 굳이 중산층에게 어필 하려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는 중산층은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밑거름이 되는 사회 계층이며 이들이 안정을 찾을 때 그 사회도 안정을 갖는 것이라 말한다. 큰 물고기를 거대 자본에, 중간 물고기를 중산층에, 그리고 작은 물고기를 서민층이라 가정 하였을 때 중간 물고기의 개체가 안정적으로 버텨내야만 그 바다의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듯 우리의 사회도 중간 계층인 중산층이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할 때 국가가 건강한 모습으로 지속될 수 있다고 저자는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기에 저자는 ‘싸우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전 세계적으로 중산층은 나날이 줄고 있으며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나라에 진정한 중산층이 존재하려면 대다수 국민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해야 하고, 올바른 정보를 토대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언론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국민이라면 인간다운 주거 조건에서 생활하고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 의미 있고 보수도 괜찮은 일을 하고 은퇴하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라는 작가의 말은 현실적으로 내게 가장 와 닿는 말이다. 당연한 인권이 왜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가? 과거에는 노력만으로 가능했던 이런 것들이 왜 더 이상 노력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 된 것일까?
작가가 지적하는 국민의 공적은 보수파 그리고 중도파라 불리는 사회의 집권세력들이다. 그들은 알고 있다. 중산층이 두터워질수록 민주주의는 발전하게 되며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그들의 부와 권력에 대한 욕심을 채우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그들은 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갖은 말장난과 속임수로 국민을 우롱해 왔으며 어느덧 정부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이 되어 간다. 이러한 기업들이 득세하면 정치인은 더 이상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나마 중산층이 득세하던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을 보자. 그의 뉴딜 정책으로 중산층은 안정되는 듯 보였고 이와 함께한 민주주의 발전으로 보수는 잠시 힘을 잃었다. 하지만 보수는 굴하지 않았고 이 시기에 그들이 자행한 갖은 음모와 전쟁, 인권유린으로 그들은 한 단계 더욱 발전하며 드디어 무상 공교육 폐지, 언론 매체의 집중적인 소유,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 안정망을 축소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중산층 죽이기이다.
정부는 보수가 없앤 공교육에 투자 하고 힘을 주어 무상 공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의료 서비스는 부익부 빈익빈이 아닌 인간의 인권으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민주당이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현실 정치 밖에서 배회하지 말고 진정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 중산층은 싸워야한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해법이다.
작가가 디테일하게 제시한 몇 가지 해결 방안은 미국 사회를 예로 했기에 다소 우리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핵심적인 한 가지. 지배계층이 된 보수도 선거 때 만큼은 서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대처하며
우리는 적극적으로 정치와 소통해야한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가 아닌 대표를 선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의 모습들...보수와 많이 닮아있다. 내가 중산층인가는 더 이상 중요치 않은 것 같다.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번쯤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좋은 책이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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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진보계열 사람들이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면서 사례로 쓰이는 영화가 식코(sicko)라는 영화이다. 두 손가락이 잘렸는데 제대로 치료할 돈이 없어서 한 손가락만 겨우 붙였다는 이야기의 영화는 의료민영화가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알려주며 과연 미국이 우리가 생각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의 땅인지 의심하게 했다.
[정치에 속고 자본에 털린 당신 중산층은 응답하라(영어제목: Screwed: The Undeclared War against the Middle Class)]의 저자 톰 하트만은 ‘진보적’ 라디오 진행자이다. 그는 우리가 몰랐던 미국의 숨겨진 자화상, 특히 자본에 묶여서 자본가 위주의 정책만 내놓는 미국의 정치경제현실에 대해 비판한다. 예전 미국의 건국 초기의 애국정신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정치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민영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잇속챙기기에 쓰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그것은 공화당이 정권을 잡았을때 더욱 심하게 드러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들었고, 이에 맞서는 모범적인 대통령을 루즈벨트 대통령으로 꼽았다.
미국이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사실 시스템은 상당히 조악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선거후 투표함의 소유권을 민간기업이 가지고 있어서 공화당이 대통령이 되기 쉽고, 의료 서비스가 민영화 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은 제대로 의료서비스를 받기 어려우며, 법인세나 소득세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에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질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불법고용주들이 많아서 생활임금이 제대로 보장되기 어렵고, 노동조합을 와해하려는 세력도 존재한다. 이런 사례를 보면 오히려 우리나라에 사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저자의 해결책은 ‘고전경제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감면한 결과가 저소득층에게 돌아온다고 이야기하는 트리클다운(trickle down)정책은 완벽하게 틀렸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뼈대인 중산층이 더 잘살게 만들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비즈니스 규칙을 다시 정하고, 중산층도 노동조합과 같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놀란 것은 MB의 4대강이나 부시의 정책들이 너무나도 비슷했다는 것이다. 허울 좋게 만든 사업들이 사실은 그들의 뒷돈 챙기기에 유용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자의 논지가 예전에 내가 읽었던 선대인소장의 [문제는 경제다], 가끔 듣는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줄기차게 나오는 내용들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가장 자본주의다운 곳 월스트리트에서 시위하던 사람들이 괜히 시위를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신자유주의가 당연하게 우리의 안방까지 들어온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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