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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자주 들었으나 선뜻 용기가 안 나서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책이 두껍지도 않은데 손이 잘 안가더라구요. 독일에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되면서 카뮈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이방인이라는 소설이 다른 책에도 많이 인용되길래 구입했습니다. 현대인의 고독과 우울을 잘 반영한 책입니다. 오히려 담담한 문체로 상황을 서술하니 더 답답하기도 와닿기도 하네요. 꼭 현대인이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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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 실존주의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다.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끝까지 읽어가면서도 이러한 개념들에 대해서는 알기가 어려웠지만 주인공 뫼르소에 집중해서 보았을 때 그의 행동을 통해 나 자신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사람의 죽음 앞에서 꼭 슬픔이라는 눈물을 흘려야만 인간이라는 도덕적 기준. 왜 그러한 기준에서 벗어나면 이방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뫼로소는 언제나 현재의 욕망에 강하게 지배되어 이해타산없이 행동에 몰입하는 인간이다. 이러한 점은 자신의 욕망에만 집중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나 자신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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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전의 백미는 무엇보다 짙고 강렬한 생각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그 시대적 상황속에서 존재하는 되는 생각들. 그 깊숙한 의미가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것은 고전으로 이름불릴만하다. 때론 읽기에 부담스럽고 힘겹게 느껴지는 책들도 있다. 두껍지 않은 책 속에서 많은 의미와 생각들을 담고 있는 책. 쉽게 지루하지도 질리지 않는 책.... 고전읽기를 즐겨하는 이유다^^ 알베르 카뮈의 그 유명한 책 <이방인>을 읽었다. <이방인>은 뫼로소의 생활과 법정에서 그의 생활과 행동이 가지는 의미들을 해석하며 주인공 뫼로소의 지극히 독백적인 수기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아주 단조로우면서 단순한 구성이다. 쉽게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 흐름이다.
평범한 직장인 남자 뫼로소와 양로원에 계신 어머니의 죽음. 휴가를 내고 어머니의 죽음을 지킨다. 이 남자에게 하나뿐인 혈육인 어머니의 죽음을 지킨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것처럼 보인다. 슬퍼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아는 사람의 죽음인것처럼 멀찍이 바라다보는 느낌이다. 장례식이 끝나고 남자는 여자를 만나 밥을 먹고 수영을 하며 한밤의 달콤함을 보낸다. 그의 짧은 삶의 마감은 어쩌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오직 자신만의 세계. 그에게서 삶은 철저하게 관심밖인 듯 싶다. 자신의 세계에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그는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 주관적인 고집도 없다. 그저 깊은 생각없이 삶을 사는 그 자신에게 너무나도 무책임한 사람인 듯 싶다. 기분내키는대로........ 분위기 흐르는대로..... 시류에 맞게 그저 따라가는 사람. 사람을 죽였다. 죽인 이유가 태양빛이 너무 강렬해서라고 말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납득되지 않는 이유다. 자기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사형이 구형되었다. 사형이 언도된 이후에 자신의 행동에 적극적이지 못했음에 후회를 하게된다. 재판이 진행되고, 검사와 변호사가 그에 대한 변론으로 계속 설전을 벌이는 중에도 그는 여전히 이방인인 채 방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신을 옭아매는 삶에 진저리를 치는 듯..... 그가 원하는것은 어쩌면 관습에 얽매이지않는 자유로운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사실(사건)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남들과 똑같음을 거부하길 원하는데 사회는 그런 부류의 사람을 온전한 인격으로 봐주지 않음과 받아들이지 않음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부조리의 직설적인 고발을 뫼로소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생사의 기로에 있어서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는 한 인간에 대해 답답함을 느꼈다. 아울러 판단함에 잇어서 죽음 그 자체만을 보지 못하고, 어머니의 장례식때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로 낙인찍는 본질을 호도하는 검사의 변론은 한 인간의 타고난 나약함과 성정을 이용해 자신의 가치와 명예, 성과를 인정받으려는 모습으로 보여지기까지한다. 인정주의에 호소하는 인륜과 법치가 엇갈린 듯 싶다. 온정에 호소하며 매달려야 하는 그 뫼로소가 오히려 몰인정과 인륜적이지 못하다는 평가 속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뫼로소... 현재의 욕망에만 강하게 집착되어져 어떤 이해타산적인 욕심도 없는 인간의 전형인 듯 싶다. 왜 카뮈가 실존주의적 작가인지 알것 같다. 그리고 뫼로소란 한 인간을 통해 현대인의 사회적 소외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져있다. 이방인.... 철저하게 어느 집단에서든 어울리지 못하는 비극적인 인간군상. 자신의 죽음이 결정되어졌을때 그는 뒤늦게 삶의 가치를 알게된다. 나가고 싶다는 자유.... 심한 억눌림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그 삶의 기쁨과 희열의 상징인 자유를 말이다. 누구나 죽음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 죽음은 순서가 없다는 것..... 그래서 더욱 현재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치열하게 살아가야 됨을 카뮈는 이미 알은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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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그 유명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사실을 몰랐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를 작품이지만 아쉽게도 알아버리고야 말았다.
어쨌든 이방인은 읽고 나서는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 나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생활 속에서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다들 멀찌감치 두고 애써 외면하려는 모습들이 생각나서다.
이런 느낌 말고도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더클래식 시리즈는 정말 확실하게 읽을만한 책을 낸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문학의 느낌을 살려줄 수 있는 라인업이 좋다. 표지가 예쁜 것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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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방인은 좀 많이 특별하다.
인간은 모두가 사형수다.
엄마가 죽었다. 그리고, 뫼르소는 울지 않았다. 난 아빠가 죽었다. 그리고 난 울지않았다. 나에게 독하다느니 슬프지도 않은가보다느니 그런 말들을 뺃으며 숙모라는분은 까무르치게 울었다. 난 오랜병끝에 죽은 아빠의 죽음보다 숙모의 통고같은 울음의 의미를 모르겠고 아빠의 죽음을 더 실감할 수 없고 슬퍼할 여유도 없었다.
계획적 살인이 아니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상황이지만, 피의자가 변명이나 뉘우침이 없고 엄마가 죽어도 울지 않았기 때문에 계획적 범행으로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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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아빠 사진만 보면 화나고 눈물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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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에서 선박 중개인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는 주인공 뫼르소는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다. 바로 다음 날 평소에 호감을 갖고 있던 여자와 유쾌한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던 뫼르소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레몽과 친해지고, 레몽은 변심한 애인을 괴롭히려는 계획에 뫼르소를 동참시킨다. 뫼르소는 레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치는데, 그들과 싸움이 벌어져 레몽이 다치게 된다. 뫼르소는 답답함을 느끼며 시원한 물가로 가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레몽을 찔렀던 아랍인과 만나게 되고 그가 꺼내든 칼에 반사되어 강렬하게 빛나는 태양에 자극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는 줄거리의 이방인. 나는 소설 속 주인공 뫼르소에 대해 공감할 수 없었다. 어머니장례식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죽였다는 변명을 공감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현대사회에서 내가 어른이 되자.. .. .. 공허한 개인주의의 허전함.. 타인과 관계속에서의 어려움. 외로움. 욱하고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은 작품을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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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라는 나라때문에 우연히 읽게된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읽으면서도 이렇게 대박일줄은 몰랐다. 어마어마한 감동을 내게 준 너무나 멋진 이 책. 이 책을 읽고 바로 알베르 까뮈의 다른 소설도 찾아 읽고 있다. 사진을 붙이려고 예스24에서 보니 이 명작이 e-book으로 사면 660원. 컥 660원이면 이 책을 사서 볼 수 있다. 대박. 뭐라 말할 수 있으랴!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며 진한 여운을 남기는 이 책의 몇 부분을 아래와 같이 옮겨본다. ----------------------- 잠시 후에 사장이 잠깐 보자며 나를 불렀다. 전화 통화는 그만하고 일이나 하라고 잔소리할 거라 생각해서 순간 짜증이 났다. 하지만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직은 구상 단계인 일에 대해 내게 이야기하려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다만 그 문제에 관한 내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그는 큰 회사들과 직접 거래하기 위해 파리에 사무실을 낼 계획인데, 내가 그곳에 갈 마음이 있는지 당장 그 자리에서 알고 싶어 했다. 그러면 파리에 살면서 일 년에 얼마 동안은 여행을 즐길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자네는 젊으니까 그런 삶을 분명 마음에 들어 하리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기는 하지만 사실상 내겐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삶의 변화에 흥미가 없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도 삶을 바꿀 수는 없고, 어디에 살든 결국은 그게 그거이며, 나는 이곳에서 사는 것에 전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사장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항상 핵심에서 비껴나는 대답만 하고 야망도 없으며 사업을 할 때 그런 성격은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다시 일하러 돌아왔다. 나는 사장의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삶에 변화를 주어야 할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나도 학생일 때는 야망이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학업을 그만두어야만 했을 때 그런 것들이 실제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았다. 그날 저녁에 마리가 나에게 와서 자기와 결혼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결혼을 하든 안하든 별 차이는 없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마리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지난번과 똑같이, 그런 건 아무 의미 없지만 아마도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럼 왜 나랑 결혼해요?"하고 마리가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그녀가 먼저 청혼을 하니까 나는 동의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자 마리가 결혼은 진지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말했다. 마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만약 다른 여자와 이런 관계가 되어서 청혼을 받았어도 내가 동의했을지, 그것만이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당연하지"라고 대답했다. 마리는 나를 왜 사랑하는지 모르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나라고 그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 ----------------------- 담배도 문제였다. 구치소에 들어왔을 때 나는 허리띠, 구두끈, 넥타이와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모든 소지품, 그리고 특히 담배를 빼앗겼다. 독방을 배정받은 후에 내 물건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그건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나로서는 가장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담배 문제였다. 나는 침대의 판자에서 뜯어낸 나뭇조각을 빨았다. 하루 종일 구역질이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담배를 왜 내게서 빼앗아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야 그것도 징벌의 일종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뒤라 내게는 더 이상 벌이 아니었다. 이런 불편함들을 제외하면 나는 별로 불행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주된 문제였다. 그것도 지난 일을 떠올리는 법을 깨우친 이후로 전혀 따분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가끔씩 내 방을 생각했는데, 상상만으로 구석에서부터 시작해 방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빨리 끝나버렸다. 하지만 되풀이할 때마다 점점 더 시간이 길어졌다. 방 의 모든 가구를 떠올리고, 가구의 각 부분과 안에 든 물건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그 물건들 하나하나마다 흠집이나 금 간 것, 이 빠진 가장자리, 그 색과 질감 같은 세부적인 모습까지 모두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내가 가진 물건의 목록에서 단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완전한 일람표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몇 주가 지나고 나자 내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것만으로 몇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가 알지 못했거나 잊고 있었던 것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단 하루만 살다 들어온 사람이라면 감옥에서 백 년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심하지 않도록 떠올릴 수 있는 추억거리가 충분할 테니까. 어떻게 보면 그건 이점일 수 있었다. 잠을 자는 것도 문제였다. 처음에는 밤에 잠이 오지 않았고 낮에도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밤에 잘 자게 되었고, 낮잠도 잘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마지막 몇 달 동안은 하루에 열여섯 시간 내지 열여덟 시간씩 잠을 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하루에 여섯 시간 정도 남는데, 이 시간을 식사와 용변, 기억놀이,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인의 기사로 보냈다. 실은 짚 매트리스와 침대의 판자 사이에서 오래된 신문 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천에 거의 달라붙어 있었던 신문은 누렇게 바래고 앞뒤가 비쳤다. 기사는 앞부분이 잘렸지만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사건에 대해 쓰여 있었다. 한 남자가 돈을 벌기 위해 체코의 고향 마을을 떠났다. 이십오 년 후 그는 부자가 되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고향에 돌아왔다. 그의 어머니는 고향 마을에서 남자의 누이와 함께 여관을 경영하고 있었다. 남자는 어머니와 누이를 놀라게 하려고 아내와 아이를 다른 숙소에 묵게 하고 어머니의 여관에 갔는데, 그가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장난삼아 남자는 방을 하나 잡기로 했고, 그의 돈을 보여주었다. 밤중에 그의 어머니와 누이는 돈을 빼앗기 위해 그를 망치로 때려죽이고 나서 시체를 강물 속에 던져버렸다. 다음 날 아침, 남자의 아내가 찾아와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어제 투숙한 남자의 신원을 밝혔다. 어머니는 목을 맸다. 누이는 우물에 뛰어들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마 수천 번은 읽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있음 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그럴싸해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그 남자가 그런 일을 당할 만했고, 절대로 장난을 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잠을 자고, 기억을 더듬고, 기사를 읽고,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나는 감옥 안에 있으면 시간관념이 없어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글을 읽었을 때 그것은 나에게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나는 하루가 왜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짧게 느껴지기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살아가려면 긴 시간이지만 한 시점에서 다른 시점으로는 금방 지나가 버려서 그 경계가 없어졌다. 거기서 시간과 관련된 이름들을 잃어버렸다. 어제 혹은 내일이라는 단어만이 나에게 아직 의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 ----------------------- 그 무렵, 엄마가 내게 들려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났다. 나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내가 그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라고는 아마도 그때 엄마가 내게 말해준 이야기가 전부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떤 살인범이 사형당하는 광경을 구경하러 갔다. 거기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아버지는 탈이 날 지경이었다. 어쨌든 형장에 갔고, 돌아온 후에는 아침에 먹은 음식의 일부를 토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아버지가 약간 역겹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사형 집행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으며, 사형 집행은 인간이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왜 지금까지 몰랐는지! 이 감옥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나는 모든 사형 집행들을 구경하러 갈 것이다. 내가 그런 가정을 했던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느 이른 아침, 경찰 경계선 뒤에서, 이를테면 자유인 신분으로 서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그리고 사형 집행의 구경꾼으로서 돌아와 구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을 마비시키는 환희의 감정이 가슴 벅차게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성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상상을 하며 흥분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생각을 하면 바로 온몸이 몹시 으슬으슬해져서는 담요 아래에서 몸을 웅크려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덜덜 떨었고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은 언제나 이성적일 수는 없다. 예를 들자면, 나는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내가 형법을 고친 셈이다. 나는 사형수에게도 기회를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 명 중 단 한 명꼴일지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다. 나에게 떠오른 생각은, 화학약품을 섞어서 수형자에게(나는 '수형자'라는 단어를 생각해냈다) 그걸 먹이면 열 명 중에 아홉 명만 죽는 것이다. 사형수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유일한 조건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모든 과정을 차분하게 생각해보아도, 단두대형은 어떠한 요행도 허락하지 않으며, 살아남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한 번 결정되면 사형수는 어떤 경우에도 죽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명백하며, 기정사실이고, 암묵적인 동의이자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기적적으로 실패한다 해도 다시 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형수는 단두대가 잘 작동했으면 하고 바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그것이 잘못된 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내 말이 옳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뛰어난 제도적 장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사형수는 형 집행에 정신적으로 협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탈 없이 모든 일이 진행되어야 사형수에게도 이로운 셈이다. 나는 그때까지 사형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왜 그런지 이유도 모른 채, 단두대에 가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것은 1789년의 대혁명에 대해 내가 보고 배운 것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낟.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어느 사형 집행이 있었을 때 신문에 실렸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실제로 그 기계는 그냥 땅바닥에 아주 단순하게 놓여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폭이 좁았다. 그걸 좀 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우스웠다. 사진에 나온 그 기계는 완벽하고 반짝거리는 정교한 기구의 모습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과장된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모든 것이 지극히 간단했음을 알게 되었다. 단두대는 사형수가 걸어가는 형장과 같은 지면에 놓여 있다. 마치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단두대까지 걸어간다. 그 점 또한 곤란했다. 교수대에 오르는 것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갖가지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와 반대로 단두대 같은 처형 도구는 단번에 모든 것을 끝낸다. 사형수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아주 정확한 방법으로 신중하게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내 머릿속을 계속 사로잡고 있는 것이 두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새벽과 항소였다. 하지만 나는 자신을 설득시키면서 그런 일들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거기에 흥미를 느끼려고 애썼다. 하늘이 초록빛으로 변하면 저녁이 왔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기를 썼다. 내 심장의 박동 소리가 더 이상 머릿속에서 들리지 않게 되는 순간을 그려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새벽이나 항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나 자신을 억제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언제나 새벽에 찾아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새벽을 기다리며 매일 밤을 보낸 것이다. 나는 결코 놀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날 때는 나도 그 자리에 깬 상태로 있고 싶었다. 그래서 낮에 조금 잠을 자고, 천창에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 버티며 밤을 지새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들이 언제 집행할지 모르는 그 불분명한 시간들이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리면서 지켜보았다. 그렇게 많은 소리들을 듣고, 그리고 그렇게 작은 소리에까지 귀 기울인 적은 없었다. 게다가 그러는 동안 내내 발자국 소리는 한 번도 듣지 않았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엄마는, 사람이 완전히 불행해지는 경우란 없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하늘이 밝아오고 또 새로운 하루가 내 독방 안으로 찾아올 때면 나는 교도소 안에서 엄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얼마든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을 수 있고, 그걸 들었다면 내 심장은 터져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작게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나도 나무 문에 귀를 바짝 대고 넋을 잃은 채 기다리다가, 마치 개처럼 헐떡거리는 나 자신의 숨소리를 듣고 무서워질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내 심장이 터질 일은 없었고 나는 다시 스물 네 시간 동안의 유예를 얻곤 했다. 낮에는 하루 종일 항소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항소를 생각하면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냈다고 믿는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따져보고 최선의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는 늘 최악의 경우를 가정했다. 항소가 기각되는 것 말이다. '그래, 결국 나는 죽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분명히 먼저 눅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사실 나는 서른에 죽거나 일흔에 죽거나 별 상관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경우가 닥치더라도 당연히 다른 남자들과 여자들은 계속 살아갈 것이며, 앞으로도 수천 년은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이든 이십 년 후든 어차피 죽을 사람은 바로 나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방해가 된 것은, 앞으로 이십 년을 더 산다고 생각하면 내 가슴이 너무 두근거린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십 년이 지나더라도 어차피 똑같은 상황이 닥칠 거라고 생각하면서 감정을 다스려야 했다. 죽는 순간에 어떻게 언제 죽느냐는 의미가 없다. 그것은 분명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라는 말을 하면서 이 추론에서 얻은 모든 관점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항소의 기각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때, 오로지 그때서야 나한테 권리를 부여했다. 말하자면 나 스스로에게 두번째의 가정을 검토하라고 허락한 것이다. 그것은 특사였다. 그것의 문제는 미칠 듯한 기쁨으로 따끔거리는 눈과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피를 어떻게든 달래야 하는 거였다. 나는 그 환호를 진정시키고 이성을 되찾기 위해 애써야 했다. 첫번째 가정에서 얻은 체념을 더욱 그럴듯 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가정을 하면서도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다. 내가 그러는데 성공하면 한 시간 정도의 평온을 얻었다. 그것은 나름대로 대단한 일이었다. 내가 부속 사제의 방문을 다시 한 번 거절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나는 누워서 하늘이 금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여름 저녁이 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내가 항소를 막 포기했을 때, 내 몸 안에서 규칙적으로 돌고 있는 피의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부속 사제를 만날 필요가 없었다. ----------------------- ----------------------- 나는 바닥을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내 쪽으로 한걸음 다가오다가 더 가까이 올 용기가 없는지,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창살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님"하고 그가 말했다. "당신에게 더 요구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게 뭐죠?" "당신은 보셔야 합니다." "뭘 보라는 거죠?" 사제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더니 갑자기 지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 있는 모든 돌에는 고통이 서려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압니다. 이 돌을 괴로운 심정으로 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신들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도 이 어둠 속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는 사실을,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보기를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 신의 얼굴입니다." 나는 약간 흥분했다. 나는 벌써 몇 달째 이 돌벽들을 보아왔다고 말했다.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 어느 누구도 이 돌들보다는 더 잘 알지 못했다. 아마도 아주 오래전, 여기에서 어떤 얼굴을 찾아보려고 했었다. 내가 찾는 얼굴은 태양처럼 밝고 욕망에 불을 지피는 화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마리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말았다. 이제 다 끝난 일이고, 어떤 경우라도 땀이 밴 돌덩이에서 내가 무엇을 보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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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읽었던 이방인이지만, 지금 다시금 찾게 된 책이다. 무미건조한 문체와 삶의 서글픔을 깔끔하게 표현했으며..불의가 판치는 지금 이방인을 정독하면 할수록 이방인이 되어버린 내 자신을 발견할수 있다. 영문판과 세트로 가격대비 꼭 소장해야할 책이기에 추천한다.읽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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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이 책을 읽었는지 곰공 생각해봐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죄와벌' 외엔 읽어본 세계고전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대학생 때로 추정된다. 왜 이 책을 읽었는지에 대한 부분은 명확히 기억한다. 관심을 가졌던 여학생이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는 것 때문에 읽어봐야지 했던 듯하다. 젊은 시절. 나는 소설 속 주인공 뫼르소에 대해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어머니장례식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죽였다는 변명을 받아들일 독자가 과연 있겠는가. 이제 세월이 흘러 인생의 중반을 넘겨 사는 입장에서도 그 점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좀더 안목을 키웠고 세월 만큼이나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평가해본다면, 겨우 만 29살에 이 작품을 쓴 카뮈의 시각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자기가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 '나'란 호칭을 쓰며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변론을 지켜보는 뫼르소는 자기 범죄행위에 대해 당사자인 자기 대신에 변호사가 당사자가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내 일인데 나는 말할 자격이 없고 나의 상황을 대신 말하는 변호사. 사건과 전혀 무관한데도 검사는 장례식 다음날 해수욕을 하고 여자를 만나 육체관계를 맺고 여자랑 둘이서 희극영화를 보며 희희락락대는 모습을 굳이 강조하며 배심원들에게 이 파렴치한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1942년에 묘사된 법정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오늘날의 사법제도. 소설은 작가의 사상과 사회관을 묘사하는 수단이다. 그 사상에 공감하는 이도 있고 반감을 갖는 이도 있지만 의도하지 않았을 그 시대의 상황과 배경을 통해 얻는 지식이 있다. 그래서 고전이라고 불리는 저작들은 세월이 흘러도 다시 새로운 독자를 맞이하고 평가받는 것이 아닐까. 오랜만에 옛 고전들을 읽으며 그 때 남기지 못한 감상평을 써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 뫼르소와 달리 난 '희망'을 가진 Not Stranger인가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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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의 글을 읽으면서 적은 페이지에 참 많이 숨어있는 재능을 느겼습니다 다른 책도 읽고 싶어지네요 깔끔하면서도 생생한 표현 마치 함께 옆에 있는 뜻한 착각을 느끼면서 읽었어요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시작해서 주인공의 어처구니 없는 하지만 이유있는 살인으로 인한 사형으로 끝 나지만~~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할 내용이네요
죽음,장례식, 친구,여자친구,이웃,직장,해변가,외국인여인, 아랍인의 끈질김, 아랍인의 죽음, 주인공의 실수,재판,감옥,사형, 하나님,회계, 희망,절망, 모두 들어있네요
현재 감옥에 있거나 재판관들, 변호사들도 이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가리라고 생각이많이 듭니다.
후회하지 않은 선택의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