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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波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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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온다는 서른.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삶 사이에 놓인 벤치 같은 나이가 대개는 헤엄치는 자의 등에 올린 돌덩이처럼 여겨지기 마련. 서른이 최승자에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이런 시를 써서 세인의 공감을 얻고 더불어 위로하는 것을 보면. 숫자의 의미가 부여한 중압감에서 헤어나면 그렇게 아름다운 시절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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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온다는 서른.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삶 사이에 놓인 벤치 같은 나이가 대개는 헤엄치는 자의 등에 올린 돌덩이처럼 여겨지기 마련. 서른이 최승자에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이런 시를 써서 세인의 공감을 얻고 더불어 위로하는 것을 보면. 숫자의 의미가 부여한 중압감에서 헤어나면 그렇게 아름다운 시절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만 서른에 머문 이의 오늘은 심각하다.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피아니스트 윤디 리. 열여덟의 나이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며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한 어린 피아니스트는 12년 후 베토벤을 선택하며 서서히 거장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를 방증하기 위함일까. 서른이 되기 직전인 2012년 9월, 윤디는 베토벤의 유명 피아노 소나타로 구성된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다.


  ‘비창’, ‘월광’, ‘열정’그의 연주를 들으며 그의 손끝을 상상한다. 그의 손끝이 닿는 건반의 끝을 상상한다. 그의 손끝이 건반 끝에 닿을 때마다 현이 품고 있는 깊은 음이 터져 나오고, 터져 나오는 음들이 충돌하다 이내 조화를 찾는 순간을 상상한다. 미치도록 황홀한 순간과 벅차오르는 감정이 제 자리를 찾을 때까지의 시간, 그 짧고도 긴 희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으로 출발하여, 14번 ‘월광’, 23번 ‘열정’의 격정에 이르면 밤하늘도 파랑을 모으려고 애쓴다. 오선지에 걸린 위태로운 음표들이 숨겨온 청명함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 모든 사물 또한 파랑을 모으려고 애쓴다. 심장을 단 한 사람의 발길도 허락하지 않은 남태평양에서 헹군 듯한 착각에 빠진 이들은 자기 안에 파랑에 귀 기울이게 되겠지. 비창 소나타 3악장 론도- 알레그로, 월광 소나타 2악장 알레그레토, 열정 소나타 3악장의 끝부분 프레스토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미리 진정시켜야 마지막까지 무사히 감상할 수 있음을 잊지 않기를.


  작곡가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거나 새롭게 접근하도록 안내하는 연주자가 훌륭한 연주자라면, 거장 소리를 들어도 좋을 만큼 그는 성장했다. 가슴에 온통 파란 칠하고 연주한 의의 청명한 연주는 축복이다. 음악사에서 거대한 다리가 되어준 베토벤. 위대한 영혼을 연주하며 윤디 리의 음악 세계는 나뉜다. 그 전과 그 이후의 음악 세계를 연결하는 작품은 당연 베토벤일 테고.


  베토벤을 탐구하고 연습하고 녹음하며 서른을 맞이한 피아니스트. 먼 훗날 자기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던 모습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나르키소스처럼 한없이 자기의 연주 모습을 끝없이 재생시키며 자기애에 빠질지도 모른다. 이런 예감이 들 정도로 베토벤의 숨결을 감지하고 호흡하는 그가 참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가을의 물결이 엄습할 때마다 파랑은 파랑(波浪)이 되어, 내속에 틈입하겠지?







YES마니아 : 플래티넘 a*****4 2012.10.22. 신고 공감 8 댓글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