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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4선에 성공한 우고 차베스 현 대통령의 신변 문제가 연일 뜨겁게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2011년 처음으로 암이 발견되어 수술대에 올랐을 땐 금방 자신의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발표를 했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위독설까지 제기되고 있어 향후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운 상태다. 1998년 대선에서 처음 승리를 한 차베스의 14년 집권은 베네수엘라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까지 베네수엘라는 다른 많은 국가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등장한 이래 많은 선주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노예들은 고된 노동 끝에 폭동을 일으켰다. 석유가 다량 생산된다는 점은 악몽과도 같아서, 석유의존도가 심화됨에 따라 농민들의 생활은 더욱 힘겨워졌다. 남미 각국의 반동적인 독재자들을 지원하는 미국의 힘으로부터 베네수엘라도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 나날이 거세어진 신자유주의적 시도로 인해 빈곤은 놀라운 속도로 번져나갔다. 차베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도 같은 정책을 펼침으로써 나락으로 떨어지던 베네수엘라를 구해냈다. 민중들의 직접 참여하에 진보적인 헌법이 만들어졌고, 법률의 뒷받침 하에 거의 30만 개에 달하는 협동조합이 신설되었다. 토지는 농사를 짓는 농민의 것이 되어갔으며, 가난한 이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됨에 따라 문맹률도 상당히 낮추는 데에 성공했다. 베네수엘라의 이러한 변화는 지도자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에게 시사한다. 차베스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일종의 대안을 마련했다. 그를 중심으로 남미의 좌파 정권들이 형성되면서, 신자유주의만이 오롯한 길은 아님을 세상은 알게 되었다. 만일 차베스가 아니었더라면, 베네수엘라도 여느 나라처럼 극심한 혼란에 시달렸을 것이며 마치 미국의 위성도시마냥 전락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오로지 차베스만을 주목하는 것에 대해 저자는 ‘옳지 않다’고 평한다. 차베스가 대통령이 되었기에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시작된 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민중이기 때문이다. 정당하게 성립한 권력일지라도 이에 민중이 반한다면 권력은 아무것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가 없다. 관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시작할 수야 있겠지만, 그 과정과 마무리 단계에서 민중이 없다면 그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다. 이러한 판단 하에 저자는 ‘민중’이라는 단어로 불리는 사람들을 만났다. 개개인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베네수엘라의 변신은 불가능했다. 인터뷰 자료를 접하면서 나는 베네수엘라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역동적인 사회임을 느꼈다. 사실 만인이 정치에 대해 눈을 뜰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태평성대라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전면에 나서지 않더라도 알아서 세상이 잘 돌아간다면 말이다. 정치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는 것은 정치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치 못한다는 판단이 섰을 때다. 물론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정부에 속하진 않았지만 나름의 기반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에 임해온 ‘활동가’들이다. 그들은 제 나름의 이상을 가슴 속에 뜨겁게 품고 있었고, 일부는 그 이상을 ‘사회주의’라고 아예 드러내기도 했다. 모든 이들이 그들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경제가 발달하지 않았기에 미개하다는 평을 베네수엘라 민중들에게 들이대는 것은 너무도 혹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은 깨어 있었다. 남들이 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워주지 않음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제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는 지난 역사를 통해 그들이 배운 바이기도 했다. 민중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계속해댔던 정부에 대항하면서 소위 ‘내공’이라는 것을 키워왔던 그들로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를 방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우리 사회에서 언급되고 있는 협동조합에 대해서도 베네수엘라 인들은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일종의 징검다리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협동조합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이는 어느 정도 옳은 말이기도 했다. 협동조합 내에서 권력은 철저하게 조합원들에게 분산된다. 누구 하나가 나서서 조합을 장악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며 있을 수도 없다. 협동조합의 틀로 꼭 묶지는 않더라도, 무엇이 되었건 다 함께 나누는 문화는 방송 분야까지 퍼져 있었다. 수익이 충분히 나는 거 같지는 않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송을 만들고 이에 참여했다. 그럼으로써 기존의 특정 가문이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으로써 사용해오던 미디어 분야를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선주민과 아프리카계 베네수엘라인, 대학에 진학해 공부중인 학생들 등 이 사회에서는 모두가 활발히 움직였다.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고, 베네수엘라의 미래가 이들에게 달린 만큼 왠지 그들의 어깨가 무거울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가 아닌 다수였다. 한 명이 주저앉는다 하여 변화가 종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차베스의 건강 이상이 사실이더라도, 변화가 어느 한 시점에서 완벽히 멎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점에서 한 번 더 물어보고 싶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차베스는 많은 서양 언론이 이야기해온 바와 같은 악의 축일까. 아니, 차베스보다도 더욱 오늘날의 베네수엘라를 형성하는 데에 큰 힘을 발휘해온 베네수엘라 인들은 그렇다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사회에는 어느 한 가지만의 길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분명 베네수엘라 인들이 택한 길은 우리 사회가 지금 걷고 있는 길과는 그 방향이 달라보였다. 나는 그들의 시도가, 혹 차베스가 없다 할지라도 성공하기를 바란다. 베네수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시도 중인 것들이, 그 안에 민중의 목소리가 담겼다면 성공했으면 한다. 대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