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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성전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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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감명 깊게 읽은 한 권의 책은 평생을 간다. 감성이 예민한 십대 때 읽은 '내 젊은 날의 성전(聖典)'은 니체의 《도덕의 계보》라는 책이었다. 그런데 비록 청년기를 한참 지나고 나서 읽은 책이지만 그래도 '내 젊은 날의 성전'이라고 우기고 싶어지는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진보적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다. 나는 이 멋진 소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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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감명 깊게 읽은 한 권의 책은 평생을 간다. 감성이 예민한 십대 때 읽은 '내 젊은 날의 성전(聖典)'은 니체의 《도덕의 계보》라는 책이었다. 그런데 비록 청년기를 한참 지나고 나서 읽은 책이지만 그래도 '내 젊은 날의 성전'이라고 우기고 싶어지는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진보적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다. 나는 이 멋진 소책자를 2005년도에 처음 읽었다. 그때 존경하는 스승의 감동적인 편지를 받은 소년처럼 설레임과 더불어 가슴 벅찬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7년 후에 다시 국역본으로 이 책을 읽어본다. 이 책이 던지는 충격과 감동은 마치 처음처럼 한결같다. 

 

대학생 X에게 건네는 총 18통의 편지글로 이루어진 책으로, 형식상 릴케의《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을 따랐다. 잘 알다시피 릴케는 나중에 파시즘의 광기에 경도된 인물이다. 비록 히친스가 릴케를 낭만적 이상주의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평하고 있지만, 릴케가 젊은 시인들에게 고취한 글쟁이로서의 책무와 섹스에 대한 시각은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18통의 편지글은 내용상 어떤 지식인의 글보다도 활기차고 비판적이고 성찰적이다. 이 책에서 히친스의 국제주의, 사회주의, 트로츠키주의의 사상적 궤적도 찾아볼 수 있다. 

 

급진적인 지식인 히친스의 성찰적 비판에 성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빌 클린턴, 테레사 수녀, 헨리 키신저, 다이애나 왕세자비 등이 모두 히친스의 날카로운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이 책은 내용상 종교와 숭배의 덧없음, 정의하는 수단으로서 언어의 중요성, 여론조사의 조작과 편향, 민족과 세계의 충돌, 중부 유럽의 운명,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력, 프로이트 효과, 아이러니한 삶의 지속적인 중요성 등을 망라한다. 책 제목에 나온 ‘회의주의자(Contrarian)’는 상식과 주류 이데올로기에 의심을 던지는 소수 반대파를 말한다. 저자가 꼽은 역사적인 회의주의자로 에밀 졸라, 버트런드 러셀, 안토니오 그람시, 조지 오웰, 레온 트로츠키, 테오도어 아도르노 등이 있다. '회의주의자'는 소수 반대파, 자유사상가, 등에, 급진주의자 등의 단어와도 중복된다. 

 

젊은 회의주의자라면 미신, 광기, 신앙, 우매, 권위, 사이비 리더나 멘토들에 반대할 수 있는 깜냥을 구비해야 한다. 히친스는 젊은 회의주의자들에게 반대파로 살아가려면 이렇게 하라고 조언한다. 가령 '모든 것을 의심하라'. 양심을 마비시키는 일상적인 것들에 온 힘을 다해 맞서 싸워라. 부조리한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변혁을 '가정'하는 삶을 고수하라. 중요한 것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는가다. 비이성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을 경계하라. 남의 동정을 믿지 말고 언제나 자신과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라. 오만하다고 오해를 살지언정 논쟁과 반목을 기쁘게 찾아 나서라. 우리 자신의 정의감을 맹신하지 마라.

 

"내가 볼 때 급진주의자가 품어야 할 가장 큰 포부는 다음과 같네. 최대한 참지 말되 최대한 신중하고 회의적이 되려고 노력하게. 비정의와 비이성을 뼛속부터 증오하되 절대로 자신에 대한 아이러니한 비판을 게을리 말게. 그리고 이 말은 또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억지로 역사를 들먹이거나 표어로 삼지 말고 역사에서 겸손하게 배우기로 결심하라는 말이네. "(232-3쪽) 

z***a 2012.09.2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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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있는 자질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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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반복보다 더한 강요는 없다. 강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단순의견을 반복적으로 피력할 때에도 같은 의견을 가지지 않은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폭력과 억압으로 변한다. 목소리가 크다고, 다수라고, 옳은 건 아니라는 것. 히친스는 '반대파'가 언제나 소수이며, 개인의 올바른 의견이 다수의 그럴 듯한 의견보다 힘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경제, 사회, 종교, 국제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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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반복보다 더한 강요는 없다. 강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단순의견을 반복적으로 피력할 때에도 같은 의견을 가지지 않은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폭력과 억압으로 변한다. 목소리가 크다고, 다수라고, 옳은 건 아니라는 것. 히친스는 '반대파'가 언제나 소수이며, 개인의 올바른 의견이 다수의 그럴 듯한 의견보다 힘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경제, 사회, 종교, 국제 분야로까지 영역을 확장시키며 온갖 분야의 다른 사고방식을 훑으며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질을 젊음이 가진 하나의 특권으로 인식시키려 한다. 그런 점에서 히친스의 주장은 다소 급진적이며 때로 폭력적이다. 히친스는 도킨스, 촘스키와 함께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 5위 안에 들면서 그의 급진적 사상 또한 관철시켰다. 철저한 무신론자이며 <자비를 팔다>에서 이 시대의 성녀 테레사 수녀를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한 인격비방이 아닌 사회복지와 종교적 차원에서의 그것이다. 이런 급진성은 더욱 뚜렷한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불일치가 불러오는 독창과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껄끄럽거나 위험하다.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밍밍하게 묻어가려는, 시대에 편입하지도 시대를 비판하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고하는 일침이기도 하다. 열여덟통의 편지는 '다른'입장, '다른'반대, '다른'의견을 통해 이 시대를 말하고 있다. 출간과 번역의 시차가 있지만 어색하지 않다. 

 

"나는 나가지 않겠소. 당신들에겐 나를 석방할 힘이 없소. 나를 석방해서 당신들이 이득을 볼 권한은 더더구나 없소. 나는 다른 모든 이들이 석방됐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그리고 모든 폭압적인 법이 폐지됐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 이곳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을 거요."

 

그 순간, 과연 권력을 쥐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는 너무나 분명했네. (그리고 그전까지 전 세계 정부들은 이 인종차별주의 정권강탈자들이 노략질한 권력을 유지하고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온갖 터무니없는 외교적 타협안을 제안해왔다네.) (p.151)

 

27년간이나 자신을 가뒀던 권력자들의 방문을 받았을 때 그들로부터 내려온 자유를 거부하며 넬슨 만델라가 한 말이다. 이어지는 권력의 맛. 감시하고 탄압하고 사람을 감옥에 보내고 선동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일. 시몬 베유는 정의는 원래 '승자의 진영에서 도망치기 마련'이라고 했고,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대다수 좌파, 진보 진영이 언제나 소수가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지도 모른다. 마틴 루터 킹 박사는 암살되기 전날 밤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를 떨치기 위해 에로스 즉 성적 본능에 골몰해 꽤 추잡한 혼외정사를 벌였고, 이는 생식기 달린 포유동물은 누구나 벗어날 수 없는 본능적 행위를 인정하면서 영웅적 인물의 인간화(세속화)를 보여준다.

 

카뮈는 조국 알제리가 부당한 식민체제에 맞서 전쟁을 벌이자 고민에 빠졌지. 즉, 반란군들이 무작위로 폭탄테러를 벌이는 과정에서 식민군 병사들이 죽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쉽게 자신의 늙은 어머니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야. 결국 카뮈는 만약 자신이 정의와 어머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머니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네. (pp.160-161)

 

누구나 빠져들 수 있는 덫, 양날의 검, 개인인가 단체인가 등의 선택권에서 카뮈조차 자유로울 수 없음을 예로 들며 선택과 저항, 반대의 주체성을 스스로 획득하기를 촉구한다. 양심과 도덕기준. 개인과 역사. 흐르고 변하는 일련의 시간들 앞에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히친스는 이렇게 고한다.

 

자네는 과거의 불행하고 불평등하며 비이성적인 상황에 도전했던 이들의 힘겨운 투쟁을 결코 잊어선 안 되네. 나아가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네. 즉, 무리나 파벌이 제 아무리 뛰어난 사상을 지니고 있더라도 결코 그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순순히 받아들여선 안 되네. 자기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는 걸세. 자신 있게 '우리'를 내세우거나 '우리를 대신해서' 말하는 이들을 결코 신뢰해선 안 되네. 만약 이런 목소리가 자네 생각에서도 발견된다면 자네 자신부터 의심하게. 다수로부터 오는 안정감과 소속감이 늘 연대와 동의어는 아닐세. 오히려 그건 합의와 압제, 그리고 동종의식이라고 할 수 있네. '다수'를 언급하거나 '민중'을 칭송할 때도 이런 무리는 결국 개인으로 구성된다는 걸 절대 잊지 말게. (pp.165-166)

 

최근 MBC <아마존의 눈물>의 주인공 야노마미족의 몰살은 브라질에 만연한 불법 금 채굴업자의 만행과 이를 묵인한 브라질 정부의 합동작전으로 행해졌다. 단 세 사람만이 학살이 자행된 시간 사냥을 나갔다 변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종족과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우리가 해줄 말은, 위로는, 더 보여줄 인간으로서의 도덕은 어떤 것이 있는가. 이에 대해 히친스가 살아있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물론 원주민 학살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금이나 광산 채굴로 인해 멸종된 종족이 야노마미 원주민 뿐인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TV로 만난, 그 정답고 해맑은 이들의 터전이 이제 없다는 사실이, 그들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가슴 저리게 슬프다.

 

쿤데라의 <농담>에 나오는 주인공은 트로츠키에 관한 농담 한 번 잘못했다가 평생 그에 대해 해명해야 하는 저주에 휩싸인다. 어떤 시대는 어떤 말로도 해명하기 힘든 시간이 존재하는 법이다. 졸라가 타협을 피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망명할 때, 오스카 와일드는 반대로 했다가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유로 히친스는 오스카 와일드의 손을 든다. 사르트르가 반항아는 내심 세상과 체제가 지금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반면, 혁명가는 진정으로 현재 상태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길 원한다고 구분짓는다. 또한 촌철살인과 위트는 급진주의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손꼽힌다. 키신저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두고 '이보다 더한 코미디는 없다'며 가수를 그만 둔 톰 레러, 1992년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이 대통령 경선에서 유약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정신지체인 흑인 리키 레이 렉터라는 사형수의 사형을 명한 일, 이 잔혹한 행위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침묵, 장시간의 지루함과 간헐적인 공포로 이루어진 전쟁을 급진주의자의 삶과 동일시한 것, 확신과 경험으로 실제 움직여야만 이뤄낼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미미할 수도 있는 반대파의 삶. 많은 사례들이 함께 한다.

 

시사와 논점이 분야/쟁점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박식함 덕에 250쪽 남짓한 이 책을 보름 가까이 붙잡고 있었다. 그래봐야 밑바닥 뚫린 독서력만 확인한 셈이지만, 시야와 관심사를 더 넓혀야 한다는 것과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하라는 자신감 그리고 행동과 실천의 중요성을 촉구한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세상과 시사와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관심 가지는 정도는 얼만큼인가. 히친스가 기준이라면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나는 신이 정의롭다는 걸 상기할 때마다 내 조국을 생각하면 걱정스러워서 몸이 떨린다." (p.103)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의 원죄에 대해 한탄한 말이다. 신이 존재하는지, 국제사회 아니 이 사회만 봐도 늘 의문에 의문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던 조지 오웰의 말을 믿기로 했다.



s*****d 2012.10.1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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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에 앞서 좋은 관점과 철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반대에 앞서 좋은 관점과 철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용보기
1. 요약 。。。。。。。             소수파, 반대자로서의 삶을 예찬하기 위해 편지 형식으로 쓴 책이다. 저자는 가상의 수신자와의 대화를 통해 주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정의’와 ‘비이성’으로 정의된 기존의 주류 세계에 맞서 싸우는 급진주의자의 삶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또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2.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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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소수파, 반대자로서의 삶을 예찬하기 위해 편지 형식으로 쓴 책이다. 저자는 가상의 수신자와의 대화를 통해 주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정의’와 ‘비이성’으로 정의된 기존의 주류 세계에 맞서 싸우는 급진주의자의 삶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또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2. 감상평 。。。。。。。    

 

     소수파, 반대자, 급진주의자, 회의주의자 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디 쉬울까?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주류가 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일단은 사람들의 눈총을 견뎌내는 것, 온갖 음해와 오해, 터무니없는 비난과 악의로 가득 찬, 퍽이나 점잖은 척 강자의 이익을 위해 쏟아내는 평론가들의 비평까지, 세상은 끊인 없이 소수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 이런 심리적인 위협뿐만 아니라 종종 물리적인 해코지나 손실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일어나니까.

 

     물론 이런 불이익을 감당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면 용기 있게 말하고 외쳐야 할 것이다.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이 정말로 중요한 일인가 말이다. 단지 반대자의 삶이 멋있어 보여서, 혹은 태생적으로 비꼬고 반대하기를 좋아해서라는 식이라면 한심한 일이고, 사안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능력이 없어 (실제 현상과는 상관없이) 그저 자기 눈으로 보기에 잘못된 일로 보여서 반대하는 식이라면 그냥 고집일 뿐이다. 여기에 반대를 위해 사안마다 다른 기준을 제시한다면 그냥 위선자라고 할 수 있다. 반대자라고 해서 늘 옳거나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과연 저자는 어떤 쪽일까? 감상평을 쓰면서 저자의 다른 책인 『신은 위대하지 않다』라는 책을 다시 뒤져봤다. 저자는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리고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종교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러분과 나를 파멸시킬 계획, 인류가 힘들게 얻은 모든 성과를 파괴할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다.”(29)라며 과대망상적 피해의식을 보여주고 있고, 인도 봄베이의 멋진 건물들을 영국의 식민 통치의 업적으로 추켜 세우고(38), ‘기형아’나 ‘저능아’들이 태어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유산되는 게 덜 슬픈 일이라고 주장한다(321). 심지어 ‘인본주의는 잘못을 사과하고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불변의 신념체계를 뒤흔들거나 거기에 도전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이성주의에 대한 독단적 숭배를 보여주기까지 한다(363).

 

     이 사람은 어떤 종류의 반대파일까? 자기 쪽에 해당하는 사상과 철학, 행동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자비롭지만, 자기 눈에 거슬리는 것들에 대해서는 비열할 정도로 원색적인 비난과 중상을 퍼붓는 사람일 뿐은 아닌가. 인위적인 낙태마저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살인범을 사형시키는 것을 극렬하게 비난하는 기준은 도대체 뭔지 쉽게 짐작이 안 된다. 한쪽은 그냥 살덩어리고 다른 쪽은 소중한 생명이라는 걸까.

 

 

     종종 허위와 독단으로 치닫는 소위 ‘주류들’의 거대한 세력에 맞서 싸우기 위한 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소수자들, 반대자들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낸다. 다만 이 책에 나온 것처럼 그저 끊임없이 기존의 것에 대해 반대하고 회의하는 것만으로 좋은 반대자, 소수파, 극단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른 관점, 좋은 철학과 기준에 대해서 먼저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권위에 대해 도전하고 그것을 부정하라면서 자신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는 이 책의 저자처럼 모순적인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저자는 굉장한 편의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정의로운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그저 반대만을 한다고 해서 세워지는 게 아니다.

 

     거짓을 드러내는 힘은 반대가 아니라 진짜를 보여주는 것에서 나온다. 물론 이 과정에 이전의 정직하지 않은 가르침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일지 모르나, 깐족거리고 비꼬는 것으로 세상이 바뀐 역사는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p*********n 2013.03.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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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아프면 반대파가 되라!"_히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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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파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일정기간동안 반대파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많아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일생을 반대파로 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인지 회의주의자로 영원히 살다간 히친스의 삶이 더 외롭고 고달파 보인다. 외로움의 결정체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죽음을 맞이 하는 일이 였을 것이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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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파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일정기간동안

반대파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많아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일생을 반대파로 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인지 회의주의자로 영원히 살다간 히친스의 삶이 더 외롭고 고달파 보인다.

외로움의 결정체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죽음을 맞이 하는 일이 였을 것이다. (마지막 책 '신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참고 하시라.) 

 

그렇다고 그가 불행하였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내재적 접근을 시도하지 않아도)

강한 신념이 삶을 지탱하는 사람 중에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어떤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들려주고픈 조언이 있는가?

젊은이들이 세상에 대한 환멸에 빠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될 말이 있는가?"에 대한 히친스의 대답이다.

 

이 시대의 청춘들이 가져야할 정신이 무엇인지 일깨우는 책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식의 말랑말랑한 조언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반대파로 살아가는 것(최소한 생각하며 살 것)의 중요성과 이유를 풍푸한 예시와 함께

설명한다. 강요하진 않는다. 선택은 젊은이의 몫이니까.

 

단, 그의 노력은 기울어진 선택지를 수평으로 돌려 놓기위한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권력의 전횡을 감시하는 일이 언론으로는 역부족인 현실에서,

반대파의 필요성은 인류생존의 문제와 직결될 수도 있다. 

반대파가 사라진 현생에서 과거의 히친스는 처절하게 절규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본질적 명제에 대해 모두가 합의하려면

그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한 명의 말에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합의 자체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네"(65쪽)

 

젊은이에게 권하는 책이다.

 

 

    

s****e 2015.06.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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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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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나 뉴스매채를 통해 종종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곤한다. 대규모 시위뿐 아니라 일인시위나 릴레이 시위같이 다양한 형태의 시위들도 보곤한다. 우리는 그들을 반대론자, 회의주의자, 급진주의자....라고 일컷곤 한다. 단어자체가 가지는 부정적인 뉘앙스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결코 곱지 않음을 짐작케 한다. 개인보다는 조직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와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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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나 뉴스매채를 통해 종종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곤한다. 대규모 시위뿐 아니라 일인시위나 릴레이 시위같이 다양한 형태의 시위들도 보곤한다. 우리는 그들을 반대론자, 회의주의자, 급진주의자....라고 일컷곤 한다. 단어자체가 가지는 부정적인 뉘앙스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결코 곱지 않음을 짐작케 한다. 개인보다는 조직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와 대중들 사이에서 튀는 행동을 자제하려는 개인적 성향들이 맞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회에서 한가지 목소리, 한가지 의견만이 나올 수는 없는 법. 오히려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다양성을 수용할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건강한 사회는 언제나 반대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수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소리에는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의견들이 담겨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중심에는 젊은 청춘들이 있다.

하 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게서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희망적인 모습보다는 세상에 대한 회의섞인 말들이 더 많이 듣게된다. 3포세대라 불리우는 세대.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에코세대들에게 이상와 현실의 차이는 점점 더 커질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상과 현실, 개인과 사회,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 클수록 절망적인 한탄보다는 반항과 비판을 통해 나의 생각과 의지를 정립해나가야 부조리한 시대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을까?  노엄 촘스키, 움베르토 에코, 리처드 도킨스, 바츨라프 하벨에 이어 세계 5대 지식인이라 불리우며 미국 좌파 언론계의 거두로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조언에 귀기울려보자. 대표적인 대중적 지식인이라 불리우는 히친스는 좌파언론인이지만 좌파에 대한 비난도 서슴치 않는다. 책을 톻해서도 알 수 있듯이 세상을 향한 그의 거센 날은 사람과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히친스가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세상을 생각하며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비판이란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부조리에 맞서기 위한 외침, 분열보다는 융합을 위한 비판이라고 말한다. 책은 서간체로 구성되어 있어 저자의 생각을 대화하듯이 읽어나갈 수 있다. 그의 조언은 마지막 편지글에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요약되어 있다.

"내가 볼 때 급진주의자가 품어야 할 가장 큰 포부는 다음과 같네. 최대한 참지 말되 최대한 신중하고 회의적이 되려고 노력하게. 비정의와 비이성을 뼛속부터 증오하되 절대로 자신에 대한 아이러니한 비판을 게을리 말게. 그리고 이 말은 또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억지로 역사를 들먹이거나 표어로 삼지 말고 역사에서 겸손하게 배우기로 결심하라는 말이네."
(232-233 쪽)


히친스는 18편의 편지를 통해
'무엇을 생각하느냐'보다'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중요성을 일캐워준다. 그 가 말하는 회의론자들은 신중하게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세상의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자들을 일컷는다. 분명 기존의 인식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회의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조언에 세심히 귀기울여 본다.
부정이 아닌 비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청춘들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이들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닌가 한다.




d****a 2012.10.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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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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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혼란한 한 해가 저문다. 다음 해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문득 히친스의 책이 떠올라 다시 편다. 히친스는 급진적이며, 회의적이며, 좌파적이고...무신론자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엮은 책이다.     반대파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일정기간동안 반대파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많아도 공고한 지배 체제하에서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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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혼란한 한 해가 저문다. 다음 해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문득 히친스의 책이 떠올라 다시 편다. 히친스는 급진적이며, 회의적이며, 좌파적이고...무신론자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엮은 책이다.

 


 

반대파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일정기간동안 반대파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많아도 공고한 지배 체제하에서 일생을 반대파로 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인지 반자본주의자(회의주의자)로 영원히 살다간 히친스의 삶이 더 외롭고 고달파 보인다.

외로움의 결정체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죽음을 맞이 하는 일이 였을 것이다. 그는 무신론자였지만 마지막 책으로 '신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썼다. 생의 끝에서 신을 떠올렸다는 것이 아이러니이지만, 신없이 맞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정리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불행하였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강한 신념이 삶을 지탱하는 사람 중에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익명의(또는 모든)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들려주고픈 조언이 있는가? 젊은이들이 세상에 대한 환멸에 빠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될 말이 있는가?"에 대한 히친스의 대답이다. 이 시대의 청춘들이 가져야할 정신이 무엇인지 조언하는 책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식의 말랑말랑한 조언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반대파로 살아가는 것(최소한 생각하며 살 것)의 중요성과 이유를 풍푸한 예시와 함께 설명한다. 강요하진 않는다. 선택은 젊은이의 몫이니까. 

단, 그의 노력은 기울어진 선택지를 수평으로 돌려 놓기위한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권력의 전횡을 감시하는 일이 언론으로는 역부족인 현실에서, 반대파의 필요성은 국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될 수도 있다. 반대파가 소멸된 현생에서 과거의 히친스는 처절하게 절규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본질적 명제에 대해 모두가 합의하려면 그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한 명의 말에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합의 자체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네"(65쪽)

 

젊은이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는 책이다. 이것은 꼰대 짓이 아니다. 나는 너무 늦게 읽어서 지난 삶을 통탄했다.  '왜 내 삶은 시대와 다른 결로 흐를까?'라는 의문이 든다면, 그것은 그 시대의 잘못이고 그 시대를 만들어 낸 어른들의 오류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다면 젊은 반대파가 되는 길이 옳은 길이 아닐까! 

 

2015년 글에 덧붙여.....

 



 

 

s****e 2023.12.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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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창]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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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창 2012.10.10 5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짓고 담배를 문 지은이와 빨간 표지는 운동권의 불온서적이 연상되는 자극이 느껴진다. 비평가, 칼럼리스트, 편집자의 화려한 이력은 이 책이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사회과학 서적류라는 오해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읽으니 저자의 유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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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2012.10.10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짓고 담배를 문 지은이와 빨간 표지는 운동권의 불온서적이 연상되는 자극이 느껴진다.

비평가, 칼럼리스트, 편집자의 화려한 이력은 이 책이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사회과학 서적류라는 오해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읽으니 저자의 유려하고 매끄러운 문체로 술술 넘어간다.

한 학생과 주고받는 서간체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8통의 편지로 이루어진다.

젊은이들이게 대중에 동조되지 않은 '소수 반대파'로서 살아가기 위한 조언을 아낌없이 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소수 반대파'는 기득권의 권위를 유지하는 낡은 체제와 사상에 반대하는 생각을 넘어서 실천적인 행동까지 담보하고 있음을 내포한다.

단순하게 이론을 양산하는 지식인을 일컫지 않는다. " 소수반대파는 용감하고 귀감이 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을 통해 축성된 호칭"- p 22 인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중의 흐름에 따라 적당히 모나지 않게 살아가길 권하는 세상에 대해 삐딱하게 조롱하고 일침을 놓는 그의 말들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소수 반대파로 살아갔던 사람들의 역사적인 사건과 일화, 장르는 넘나드는 풍부한 인문학적 독서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그의 유려하고 웅변적인 글쓰기에 매료된다.

 복종에 굴하지 않고 자유와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실천했던 이들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건부터 다양한 인문학적인 텍스트를 자유스럽게 넘나드는 수사적이지 않지만 설득력 있는 그의 글은 저자 자신이 자신이 말한 방식으로 살아왔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잘 모르는 역사적 사건과 소설의 인용이 많음에도 번역자의 친절한 주석으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종교의 권위와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저자가 종교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숨김 없이 드러내어 요구되거나 강제된 미덕과 장점은 더 이상 미덕과 장점이 아닌 악덕과 단점임을 설파한다.

치열한 논쟁과 모든 것을 의심하고 회의하며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할 것을 주장한다.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저자가 소개한 소수 반대파로서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았던 인물들처럼 저항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이데올로기에 벗어나 스스로 독립적인 사고를 회득하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자세들을 배울 수 있다.

 

s******9 2012.10.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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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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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신문 , 방송 및 길에서든지 종종 진실을 규명하기 위함이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함이나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 희생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모습들을 보곤 합니다. 대부분 이러한 모습들은 나하고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에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오히려 길에서 반대하는 시민 운동이 일어난다면 그에 따른 불편으로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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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신문 , 방송 및 길에서든지 종종 진실을 규명하기 위함이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함이나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 희생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모습들을 보곤 합니다. 대부분 이러한 모습들은 나하고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에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오히려 길에서 반대하는 시민 운동이 일어난다면 그에 따른 불편으로 불만마저 생기기도 하며 때로는 재네들 왜? 저러는 거야?” 라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 그러한 부분들의 본질을 곰곰히 생각을 해 본다면 내가 누리는 지금 현실이 그런 반대파들로 인한 혜택의 부산물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이 책은 그런 반대파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반대파의 삶에 대한 조언을 18개의 편지 형식을 통해서 다수에게 당당히 주장 할 수 있는 용기 , 현실과 타협을 하지 않는 자세 , 회의적인 생각 , 몸으로 겪은 많은 경험 , 유머 , 신념 등외 저자의 사상과 경험을 전해줍니다. (교양적인 지식이 많은 분들에게는 재미가 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조화를 이루면서 그냥 둥글게~ 둥글게~ 세상을 살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어쩌면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의 발전이 더디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대파의 삶이란 그것 자체로서의 의미가 있다고는 하지만 다수에 맞서 싸우는 소수이기에 늘 외롭고 고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이 책을 본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서는 반대파의 삶을 살지 않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또는 귀에 들리는 그것 자체를 맹신 하다기 보다는 저자가 말하는 회의적인 사고를 통해 감춰진 진실을 볼 수 있는 힘은 길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YES마니아 : 로얄 l*******8 2012.09.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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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정신과 유머를 함께 갖춘 멋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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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에 대한 책 '자비를 팔다'를 통해 모든 권위에 주눅 들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식견과 지식을 겸비한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던 크리스토퍼 히친스, 그의 책은 역시 같은 기쁨을 준다.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차용하여 젊은이에게 쓰는 18개의 편지로 구성된 이 책은 전에 내가 읽은 릴케의 그 책에서 섬세하면서도 시 아닌 것과는 거리를 분명하게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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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에 대한 책 '자비를 팔다'를 통해 모든 권위에 주눅 들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식견과 지식을 겸비한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던 크리스토퍼 히친스, 그의 책은 역시 같은 기쁨을 준다.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차용하여 젊은이에게 쓰는 18개의 편지로 구성된 이 책은 전에 내가 읽은 릴케의 그 책에서 섬세하면서도 시 아닌 것과는 거리를 분명하게 두라는 시인으로서의 고집이 분명히 느껴지던 것과는 또다른, 나름 일가를 이룬 사람이 자기 자랑과는 거리가 먼-물론 본인의 정당한 노력과 그에 따른 업적에 자랑스러워하긴 하지만-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먼 정정한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책 속에는 내가 얼마전에 한겨레에 이희호의 김대중에 대한 회고에서 본, 미국 망명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때 독재정권에서 그를 보호하기 위해 함께 한국까지 동행한 지식인들 중 한 명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뿌듯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이 보스니아 사태에 입 다물고 있을 때도 나섰던 사실, 평생을 인종차별주의와 폭력에 맞서 싸웠던 이야기 등이 녹아있어 그가 젊은이에게 하는 이야기가 결코 말로만 하는 게 헛소리가 아니라는 믿음을 준다.

 

"낭만적 이상주의의 해로움"에 대해 경계하면서, 종교를 포함한 모든 것을 의심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하는 이 책은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이긴 하지만, 나처럼 이미 세상에 지치고 마음은 있으되 선뜻 행동하려하지 않는 그리 젊지는 않은 사람에게도 유용하다. 그는 "진실이 중간 어디쯤에 존재한다는 주장은 진실이 거짓을 말할 수 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네."라고 하면서 흐릿한 회색인으로 살아가며 양심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나서기 꺼리는 사람에게 쩡쩡한 목소리로 힘을 준다. 권력이나 다수에 무조건 복종하는 어리석은 군중을 지적하면서도 불의에 저항할 중하는 인간의 능력을 여전히 믿고 있는 그의 글이 큰 용기를 준다.

 

이 책의 장점은 이전 그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글솜씨와 더불어 곳곳에 적절히 끼어있는 유머들이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종교에서 묘사하는 천국의 모습을 비꼬면서 "그렇다면 천국의 북한의 모습이란 말인가"라고 일갈하는 데서 '역시!'라고 감탄할 수 밖에) 과장하거나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책 속에서 알려주고 있는 본연의 의미에 가까운 위트가 넘치고 있어 전혀 읽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으며 즐거웠다. 책 추천사에 있는 "사악할 정도로 효과적인 글 솜씨와 도덕적인 목적의식을 지니고 있"는 멋진 책.

 

무게도 책의 부피에 비해선 가볍기 때문에 가볍게 들고다니기 좋고-나이가 드니 책무게도 신경이 쓰인다-,  각각 18개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어 하나씩 아껴가며 읽어도 좋다. 병원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거나 화장실 갔을 때 틈틈이 읽었는데 뒷부분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워 조금씩 읽었다.

 

오자는 하나. 218쪽에서 '드리나강'을 '드니라강'으로 잘못 썼다. 전에 읽은 '드리나강의 다리'가 다시 생각났다.

j***1 2016.10.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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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누군가에게 이끌려 회의주의자가 될 수 있을가?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누군가에게 이끌려 회의주의자가 될 수 있을가?" 내용보기
사람은 다들 외로운가 봅니다. 그래서, 이 유명한 회의주의자 역시, 누군가 다음 세대가 자신과 같은 회의주의자가 되기를 바라고, 또 보다 효율적으로 자신과 같은 회의주의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회의주의자는 원래 외롭고 고독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회의주의자들끼리 모인다고 해서, 그들의 공동체가 만들어지지도 않습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누군가에게 이끌려 회의주의자가 될 수 있을가?" 내용보기

사람은 다들 외로운가 봅니다. 


그래서, 이 유명한 회의주의자 역시, 누군가 다음 세대가 자신과 같은 회의주의자가 되기를 바라고, 또 보다 효율적으로 자신과 같은 회의주의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회의주의자는 원래 외롭고 고독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회의주의자들끼리 모인다고 해서, 그들의 공동체가 만들어지지도 않습니다. 


진정한 회의주의자라면 회의주의조차 회의할 수 있어야 할 테니까요. 


그렇기에, 저자는 사실 회의주의자의 탈을 쓴 계몽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야, 내말 들어봐. 그쪽이 정답이 아니라니까. 이쪽이 좋은거야. 외롭고 험한 길이지만, 이쪽이 더 올바르고 필요한 길이니까 이리 오렴. 내 뒤를 따라오면 좀 더 쉬울꺼야" 라고 말하며 이런 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이 책의 내용은 "이 책대로만 하면 당신도 일주일만에 회의주의자가 될 수 있다" 류의 회의주의를 위한 워크북 같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주어진 이슈에 대해서,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의 다양한 시각들을 빠른 시간안에 파악하고, 가치를 매겨서, 주어진 시간 안에서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는 프로세스에 대한 기본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설령 옳다고 해도, 언제나 정답을 도출해내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회의의 결론이 오답으로 판정났을때, 회의주의자에게 돌아오는 비난과 책임은 더욱 크지요.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 반대쪽의 가치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브레이크를 갖고 있는 차가 빨리 달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사회 안에서의 회의주의자라는 것은 성공의 댓가는 적고, 실패의 책임은 크지만, 사회 전체가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젊은이들을 꼬십니다. 


"봐, 힘든거야. 회의주의자라는 것은.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 멋진 것이고, 필요한 것이지. 그러니 힘들어도 회의주의자가 되어보렴. 이미 회의주의자라면 회의주의자로 계속 남으렴."


그렇지만, 진정한 회의주의자라면, "이 사람이 왜 회의주의자가 멋있는 것이라고 했을까? 이 사람이 제시한 효율적인 회의 방법이 과연 좋을까?" 라며, 회의주의를 주장하는 회의주의자의 저서를 회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l*****6 2013.07.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