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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사에서 출퇴근 지문 감식기를 설치했다. 누구나 손가락 끝마디에 곡선의 무늬, 즉 지문(指紋)이 있기 때문이다. 지문은 평생 변하지 않으며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사람을 식별하는데 아주 용이한 방법으로 쓰인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우리는 얼굴을 보며 상대방을 알아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얼굴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지문과 달리 인격(人格), 즉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얼굴이 사람의 무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도 무늬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만약에 동물에게 무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논어』「안연」편 8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극자성(棘子成)이 말했다. “군자는 질(質)이면 그만이지 문(文)은 해서 무엇하겠소?” 자공(子貢)이 말했다. “애석하군요! 당신이 군자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문도 질만큼 중요하고 질도 문만큼 중요합니다. 호랑이나 표범의 털 뽑은 가죽은 개나 양의 털 뽑은 가죽과 같습니다.”
극자성이 말하고 자공이 답한 것을 요약하자면 질(質)은 ‘타고난 출신’을 말하며 문(文)은 ‘후천적인 노력에서 얻어지는 자질’을 말한다. 좋은 집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지위를 가질 수 있다. 반대로 타고난 출신이 좋지 않다고 하면 나쁜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군자란 오직 ‘유위자(有位者: 지위를 가진 사람)’만이 전부는 아니다. 모름지기 군자는 ‘유덕자(有德者:덕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덕이 없는 군자는 호랑이나 표범의 털 뽑은 가죽과 같아 결국에는 개나 양의 털 뽑은 가죽과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호랑이 가죽이 개의 가죽보다 가치가 있는 것은 호랑이 무늬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사람이 가치가 있는 것은 사람의 무늬에 좌우된다. 사람의 무늬는 다름 아닌 인문(人文)이 된다. 흔히 인문이 약하다고 하면 사람이 가볍고 오락적, 감정적이며 인문이 강하다고 하면 사람이 중후하고 철학적, 사색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의 무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박민영의『인문 내공』을 읽으면서 눈이 번쩍 뜨인 것은 인문이 ‘내공(內功)’에 있다는 통찰력 때문이었다. 내공의 정도에 따라 인문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공이 있는 사람은 인문적이고, 인문적인 사람은 내공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과 내공의 불가분의 관계는 축구 경기와 같다. 스포츠라는 종목이 우연과 이변이 속출할 가능성이 높은데 축구는 훨씬 역동적이다. 야구는 한 선수의 움직임이 다른 선수의 움직임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반면에 축구는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불교식으로 말한다면 ‘인디라의 망(網)’이다. 인디라의 망에 의하면 ‘만물은 서로의 거울이며, 서로 관계를 맺어야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과 내공도 수많은 관계의 산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때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관계적 사고는 하나의 테크닉’이 아니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는 것에 가깝다.’는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내공이 필요하다. 일찍이 월티 리프먼은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할 때,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자는 깊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가설(假設) 세우기’는 인문 감각을 효과적으로 높여준다고 강조한다. 흔히 과학적 탐구 방법에서 가설은 결론 내리기의 부수적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다. 결론에 따라 가설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속성 때문이다. 그만큼 가설보다는 결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설이 곧 결론이 되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더구나 가설은 ‘가상(假想)’이 아니며 오히려 ‘새로운 생각’이며 ‘진실 구성의 과정’이라는 사실은 놀랄 만하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공의 핵심은 바로 ‘독립적 사고’를 하는 데 있다. 독립적 사고는 달리 ‘창의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으며 ‘규칙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규칙적인 사고는 이제 너무 진부하며 오염되었다. 잠깐, 우리의 사고를 들여다보면 과연 내가 하는 사고인지? 논리적으로 자문해보면 아마도 대중의 틀에 박힌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듯 진부한 표현이나 사고를 ‘클리셰(cliche)’라고 하는데 식상함도 그렇지만 진실을 은폐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래서 창의적인 사고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과연 그럴까?’라고 논리적으로 따져보는 철학적 태도와 ‘왜 그렇게 되었을까?’라며 현실적인 이유를 따져보는 사회과학적 태도를 필요로 한다.
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인문(人文)의 문제는 내공에 있으며 내공의 문제는 철학의 문제와 관계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이때 고민하는 이성이 ‘비판적 이성’인가, 아니면 ‘도구적 이성’인가는 정말로 중요하다. 우리가 ‘왜?’라는 비판적 이성으로 고민한다면 가치 있고 후회 없이 살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라는 도구적 이성으로 고민한다면 계산적이며 실용적으로 살 것이다. 우리의 이성이 현실적 이해관계에 가까울수록 겉으로는 매우 합리적인데도 정작 매우 불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부조리의 현상들이 온갖 사회의 위기이며 곧 인문학의 위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인문학을 ‘위험한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유인즉, 인간을 주체적으로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한 학문이라는 말을 곱씹으면 내공이 만만치 않은 ‘T자형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I자형 학문’이 자신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그친다면 T자형 학문은 끊임없이 자신의 지적 지평을 넓혀 가는 것이다. T자형 학문을 하는 사람은 인문적인 지성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경력도, 스펙도 인문적 사고를 이길 수 없다.’는 문장 안에는 ‘현금 가치(cash-value)’의 문제적 진단과 함께 창의적 사고를 전체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당장에 먹고 살기에 바쁜데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것이 현실성이 없는 고상한 취미라고 아우성이겠지만 거꾸로 이 모든 고민을『인문 내공』으로 해결하는 것도 내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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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내공, 제대로 쌓고 싶다면 추천
서른 살 이후, 좀 더 깊은 사고와 유연한 삶을 살기 위한 바람으로 퇴근 후 혹은 주말 낮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인문학 수업을 들으러 다녔었다. 그때마다 수업시간에는 분명 무언가 흐름이 보이는 듯도 싶고 귀가하여 좀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빼곡하게 적힌 노트를 보며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만 지나도 머릿속이 뿌옇게 바래졌고 무엇보다 책이나 영화를 감상하고 적게 되는 리뷰조차 내가 생각한 바를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을 콕 집어 적을 수 없는 것이 늘 아쉬웠다. 그러다 책콩카페, 오늘의 책콩에 올려진 인문내공을 만났다. 인생의 품격을 높이는 읽기. 쓰기 그리고 생각하기라는 부제에 서점에 들러 서문을 읽어보니 내가 원하는 인문학적 글쓰기 내공을 쌓기위해 꼭 읽어야겠다 확신이 들었다.
책을 받자마자 다시금 서문을 읽으며 서점에서 느꼈던 기대감을 재차 확인하고 찬찬히 속도를 늦춰 1부를 읽었다. 지나치게 많이 배우는 것, 스승을 두지 않고서는 제 스스로 학습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앞으로 인문학을 공부하고자 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지를 알려주는 파트로 인문학 공부를 하기 앞서 'WHY'라는 물음을 갖게 되는 이들이 꼭 읽어봐야 할 부분이다. 물론 서문만 읽어도 인문학이 인간에게 주는 효과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인문학이 아닌 그저 학습이나 스펙을 위한 지식만을 채웠던 이들에게는 신선한 목적을 제공해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2부 내용은 독서내공이다. 인문학을 왜 해야하는지, 인문학의 역할을 1부에서 깨달았다면 이제는 그 방법론의 하나로 '독서내공'을 키워야 하는 까닭이 함께 서술되어 있다. 솔직히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책읽기를 싫어하거나 게을리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읽다보니 앞서 말한 '지식전달 체계'로서의 독서와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특히 요즘들어 타인 혹은 성공했다고 보여지는 이들의 추천도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구에 부합되는 책을 골라야 한다는 부분은 크게 공감한다. 인문학 자체가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중 하나라고 본다면 더욱더 추천도서 보다는 자신의 욕구에 따른 리스트를 직접 만드는게 맞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을 찾아 읽는 것은 삶의 태도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그런 책을 찾아 읽는 것 자체가 문제를 스스로 분석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p.163
이부분이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라면 크게 깨달음을 얻은 부분도 있다. 나뿐 아니라 주변사람들을 봐도 책에 메모하는 것을 꺼리는 이들을 자주 본다. 어디다 팔 책도 아닌데 구김이라도 갈까봐 전전긍긍 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타인의 저술에 매몰이 아닌 몰입으로 나만의 메모가 가득한 '공저 (共著)'로 만드는 것, 단순히 메모하며 공부하듯 읽으라던 이전의 책들과는 다르게 설득력이 있었다.
마지막 3부는 이 책을 읽게 만든 가장 큰 목적, 바로 글쓰기 내공에 관한 부분이다. 1부와 2부를 공감도 하고 깨달음을 구해가며 읽었다면 3부는 앞서 받으들인 내공(?)을 바탕으로 아에 샤프와 노트를 옆에 펼쳐놓고 읽기 시작했다. 인문적 글쓰기는 크게 5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비평적, 학술적, 시사적, 문학적, 철학적 글쓰기다. 대부분의 공부를 많이하거나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써왔던 글쓰기가 학술적 글쓰기에 해당되고, 나처럼 글을 좀 잘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평적 글쓰기나 시사적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구체적인 글쓰기 노하우는 5장 글의 품격을 높이는 실전 노하우에 좀 더 자세하게 서술되어있다.
인문 내공은 한번 딱 읽고나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 의외로 많은 책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인문학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춘듯 보이지만 읽다보면 실제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진행했음이 느껴질 만큼 참고할 만한 서적도, 공부법도 상당부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순간 자연스레 메모하며 읽는 법을 실천하게 된다. 당장은 내가 원하는 글쓰기의 유형대로 흡족한 글쓰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처음 이 책을 읽기전에 기대했던 '희망'이 보이는 것은 확실했다. 인문 내공, 진짜 내공을 쌓고 싶은 분들이라면 책상에 꼭 이 책을 꽂아두고 저자가 그토록 바라던 공저가 될 수 있도록 메모로 가득가득 채워가는 과정을 통해 뜻을 이룰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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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인문고전 독서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노숙자나 실업자를 대상으로 인문학을 가르치는 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의 변화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인문고전 독서가 더욱 주목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즈음부터 베스트셀러,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쫓던 저의 독서 스타일도 큰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지겹고 재미없지만 일부러라도 인문 서적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얼마나 인문 서적을 읽어야만 인문학적 소양이 길러지고, 인문적 사고를 하게 될지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인생의 품격을 높이는 읽기·쓰기·생각하기」라는 부제가 달린 《인문내공(2012.8.31. 웅진지식하우스)》은 인문학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문서적을 읽으면 인문적 사유 능력이 생기고, 인문적 사유 능력이 있는 사람은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익히 들어왔던 말이지요. 그런데 《인문내공》은 지금까지 ‘인문학 공부법’을 알려준다고 소개하는 책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내용을 쏟아냅니다. 인문적으로 사유할 수 있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하고, 현실적 맥락 속에서 사고해야 하며,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호기심, 즉 지적 공백을 메우려는 욕망을 억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알려주는 지식이 아닌 홀로 생각하면서 깨닫는 과정을 거치면서 배워나가는 공부법이 바로 인문학 공부법이란 말입니다. 수도권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인문학 강의를 부럽게 바라보던 저에게는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인문내공》에서 저자는 인문적 사유의 핵심은 비판적 이성이라고 말합니다. 인문 내공을 탄탄하게 다져주는 생각하는 방법, 독서법, 글쓰기 방법은 모두 비판적 이성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비판적 이성의 회복이 인문 감각을 일깨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생각을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지는 않으십니까? 바로, 지금이, 인문 내공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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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T자형 지식인을 언급하고 있는데 T자형 지식인이란 자신의 전공이나 관심사를 중심축으로 삼아 끊임없이 자신의 지적 지평을 넓혀 나가는 사람 즉 전공과 관심사를 중심축으로 하되 거기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반으로 삼아 지적 지평을 확대해 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인문내공을 잘 갖춘 사람은 그런 사람일 것이다 사람들과의 즐거운 대화는 끊임없이 다양한 주제와 그 주제에 대한 자신만의 사고와 해석을 대화 상대방과 주고받을 때 가능한데 아무래도 자신의 전공 외에 다른 분야에 자신이 없다면 대화의 즐거움은 줄어 들 것이고 또 대화의 폭도 협소해 질 것이다 이렇게 사소한 모임에서의 대화 범위까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인문학이므로 어렵게 보인다고 쉽게 외면하기엔 우리 생활과 너무 밀접하게 가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철학부터 예술 문학 사회학까지 너무 광대해 보이고 언제 다 읽고 내공을 섭렵할 수 있을까 우선 걱정부터 앞서기가 쉽다 그러나 그 또한 미리부터 내공을 갖추어야 겠다는 욕심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우선 내가 좋아 하고 관심 있는 것부터 천천히 읽어 나가는 것이 좋다고 작가는 말한다 예를 들어 낚시를 좋아 하는 사람의 인문학 접근법은 낚시법의 유래를 찾아 보거나 희대의 예술가 중에 낚시를 좋아 했던 사람을 찾아 보고 낚시의 발달사와 그 시대 상황에서의 문화를 접목시키는 등 하나씩 읽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인문학의 기초가 되는 말하기 읽기 쓰기에 대해서도 잘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 현실 자체가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며 직설적으로 말하고 책을 고르는 방법에 대해서도 학교나 사회가 요구하는 것처럼 꼭 읽어야할 고전 등 인문학의 기초가 되는 책부터 읽거나 지식인이 추천하는 책을 읽는 것보다 우선 자신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우선 그런 책부터 읽기를 솔직하게 권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당연히 말하는 것 즉 대화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욕망 즉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되는데 글쓰기에 관한한 워낙 내공이 깊은 저자는 책에서 많은 부분을 글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글쓰기에 대해 막연한 동경이 있는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작가는 인문학적 글쓰기를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비평적 글쓰기,학술적 글쓰기, 시사적 글쓰기, 문학적 글쓰기, 철학적 글쓰기다 그리고 글쓰기를 대비해 독서를 할 때 하는 메모법까지 세세하게 소개하거나 자료를 정리할 때 글의 구성에 도움이 되도록 자료를 뽑고 묶고 순서를 정하고 목차를 정하는 법까지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주 인상깊게 읽었더 글을 쓰는자의 자존감에 대해 말하는 작가의 글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글을 쓰면서 가장 굴욕감을 느낄 때는 데스크가 자신의 글을 마음대로 뜯어 고칠 때다 그러나 그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데스크를 의식해 필자가 ‘알아서 기는’것이다 글쟁이 생활을 하다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데스크에서 통과가 되고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논조를 적당히 조절하거나 데스크가 좋아할 법한 내용의 글을 쓰게 된다 그것은 타자에 의한 자기검열로 권력관계에 굴종해 자발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배반이자 자기 소외다 그런 글쓰기가 반복되면 작가의 에토스(인격과 윤리성)는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그것을 충실히 지키고 발전시킬 때 작가적 생명력이 지속되고 커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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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어려울 수록 사람들은 인생의 가장 직접적인 본능에 따라 살게 됩니다. 당장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추구하고,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유용하다고 여기며, 간접적 혹은 우회적으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들에 회의적이 되는 것이죠.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의 파산으로 유럽에도 닥친 금융위기 이후 비교적 "아낌없이" 투자되어왔던 오스트리아 국영방송의 음악부서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편곡자로서 체감한 쇼크는 대단했는데, 수입이 그 전 해 대비 무려 10분의 1로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방송확정 상태에서 아예 제작 자체가 취소된 프로그램도 있었고, 날마다 새로운 음악으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음악부서 역시 지금까지 쌓아온 레퍼토리로 대부분의 방송을 대체해야 했습니다. 음악이 없다고 해서 (혹은 그 예산을 줄인다고 해서) 방송국에 직접적인 영향이 올 일은 없었고, 아마도 그런 연유로 예산을 줄여야 할 때 가장 먼저 음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예술 분야 뿐만 아니라 인문에도 자주 나타납니다. 시대가 어려울 수록 철학이나 미학, 문학 등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거나 우스워" 보이기도 합니다.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고 잘 수 있는 집이 없는데도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한다던가, 가족을 부양하기도 벅찬데 예술에 대한 연구와 비판 그리고 미학적 고찰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어디가서 몸을 써서라도 돈을 벌어오지!" 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극적인 비유일 뿐이고 현실 속에서는 상당히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에는 그야말로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반적인 인식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어려운 세대일 수록 인문이 필요하다"고 성토하는 책을 오늘 소개하려 합니다. "살아가면서 인문이 왜 필요한데?" 혹은 "인문이 밥 먹여주냐?" 고 누군가가 물어오면 분명 그 일차원적인 사고의 맹점을 지적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어떻게 시작할지 몰랐던 분들에게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줄 책, 제목에서부터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박민영 씨의 "인문 내공"을 소개합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인문이다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할 때,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 월터 리프먼" 미국의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의 짧은 한 문장은 강력한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주체적인 자아이기를 포기한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꼬집은 그의 한마디는 인간 고유의 능력인 "사유"의 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동물들과 인간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사유하기를 멈춘다면 그 때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사유로 정의되어왔던 인간이 사유를 귀찮아하거나 사유하는 능력을 상실한 시대, 바로 인문 고갈의 시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문지식을 배우며 기술을 익혀 경쟁력을 기르기도 바쁜 현대인들에게 갑자기 인문 능력을 계발하라는 것은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배가 덜 고프고 절실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치스러운 말을 한다고 할 수도 있겠죠. "인문 내공"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인 얼 쇼리스로부터 시작된 노숙자 인문학 과정이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 규모와 횟수가 많이 아쉬운 실정이지만 꾸준히 뜻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일입니다. 저자는 당장 경제적 지원이 급한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에 경희대 철학과 우기동 교수를 인용합니다. "인문학은 삶의 조건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품격과 관련된 것이에요. 한 사람이 가난하다고 해서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를 '비인간'으로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18 페이지) 우기동 교수의 답변은 인문학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차별부터가 큰 문제임을 지적합니다. 인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문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삶의 가치를 외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노숙자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인문 결핍 현상을 겪고 있는 모두에게 닥친 위험입니다. 스스로가 내면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계발시켜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 혹은 타인의 필요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꼭두각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문적 사유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생활의 압력, 자기 집단의 논리,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굴복하게 된다." (24-25 페이지) 우리 사회는 지식인을 갈망한다 "묻지마" 범죄는 물론 가족 혹은 친구간의 살인, 강간 등 신문에 대서특필될만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분노"에 가득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소한 시비가 살인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면,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 안에서도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는 분명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언젠가 한 사회학자의 인상적인 분석을 읽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분노에 가득차 하나의 시한폭탄처럼 위험해진 것은, 공공연히 발생하는 부정하고 불공평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결과다." 정치인, 기업인들의 비리와 수 많은 사기사건. 연예인들이 누리는 특혜나 불공평한 처사 등은 사람을 분노케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들고, 이 부정적인 감정들은 결국 극적인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의가 처벌받지 않고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닌 권력의 유무 기준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 소용돌이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알지 못하는 세대는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체제에 순응하여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체념하든가 극한 상황으로 몰고가 분노를 마음껏 발산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죠. 하다못해 트위터 타임라인만 조금 훑어보아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 정권을 비판하고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부조리에 분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사회운동가 혹은 젊은 혁명가 같은 발언을 쏟아내지만 정작 직접적인 영향권을 행사할 수 있는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실제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고 불특정다수에게 호소하는 외로운 메아리가 울릴 뿐입니다. 저자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오직 "국민이 똑똑해지는 방법"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이 현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접수될 만한 사회적 변화가 있고, 엘리트들이 새로운 지적 대안들을 제출한다 하더라도, 대중이 그를 판단하고 지지해주지 않으면 건설적인 미래는 있을 수 없다. 그 대안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 그것은 대중의 인문적 사유 능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판단이 역사의 길을 결정한다." (314 페이지) 누군가가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명쾌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 문제와 해답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들 뿐입니다. 즉, 지금의 상황이 한심하고 대책없다고 비판하고 싸울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인문적 사유 능력을 기르고 스스로가 자신을 더욱 계발하여 국민이 현명해져야 비로소 사회가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제안은 다소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가 제시하는 길이 조금 돌아가더라도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합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깊은 통찰력과 사유 능력을 가진 지식인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집단은 그냥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집단의 논리'를 개발한다. 집단의 논리는 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논리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집단 전체에게 골고루 이익을 주지 않는다. 집단 논리의 가장 큰 수혜자는 대개 지도층이다. 그들의 이익이 집단 전체의 이익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집단은 논리는 보다 고차원적인 도덕적 규범으로 포장된다. 예를 들어, 국가의 이익은 애국의 이름으로, 종교 집단의 이익은 순교의 이름으로, 사회의 이익은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된다." (104 페이지) "의식적인 존재인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합리성을 부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사회 환경에 적응하면 그 환경을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사회나 집단에 ‘적응’한다는 것은, 그 질서, 논리, 체제, 문화 등을 내면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환경이 불합리하더라도 그것을 내면화하는 데 성공하면 비판적 의식이 줄어든다." (132 페이지) 진심으로 불의한 사회를 걱정하고 그것이 나아지길 바란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단순한 현상이나 표면적 이슈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인문 내공을 기르는 것입니다. 인문적 사고로 경쟁력을 길러라 한 권의 책을 읽었는데 마치 몇십 권의 책을 읽은 것 같은 감동과 깊이를 체험하는 책들이 있습니다. 이런 책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독자로서의 큰 기쁨이자 도전이기도 합니다. "인문 내공"은 제목 그대로 오랜 세월 수 많은 경험과 독서 그리고 사유를 통한 저자의 "내공"을 여과없이 드러냅니다. 총 세 부로 나뉘어져 평균 5~6쪽 정도 분량의 글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쉽게 소개하고 설명할 수 없을만큼 광범위한 인문의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대적 이슈부터 역사적 이슈까지, 독서의 방법에서부터 학문의 연구까지 넓은 분야를 섭렵하고 있음에도 불구, 글 하나 하나가 간결하고 불필요한 말 없이 핵심을 찌르고 있어 읽는 내내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자는 수 많은 테마를 통해 우리에게 여러 번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래도 스스로 사유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습니까?" 우리는 지구에 사는 60억 인구 가운데 한 사람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또 사회를 바꾸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구성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무언가를 개선하고 바꾸길 원한다면 먼저 "내공"을 쌓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체적 틀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통찰할 수 있을 때 정치인들은 함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리를 저지르지 못할 것입니다. 기업이 국민을 우롱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그들을 이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공허한 불평과 대상없는 비판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나아지고자 하는 노력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의식의 양도는 정치적 권리의 양도보다 위험하다. 주체 의식의 위기이 처한 현대인들은 '세계 또는 인류가 왜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적극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으며, 유능한 대중 조작 전문가가 조종하는 기술 체제 속에서 장기판의 졸처럼 움직이고 있다. 지배적인 규칙과 체제에 무조건 순응하는 '창조적 자의식의 상실'. 그것은 미래의 재앙을 무한 확대시킬 수 있는 위험한 조짐이다." (314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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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그룹이 재단을 운영하는 서울 시내 대학에서 인문학 분야의 전공을 없애고 기업의 일원으로서 업무를 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영 분야의 전공을 확대한다는 방침으로 전공을 획일화 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적이 있다. 상아탑의 영역으로서 순수한 학문의 분야가 어느덧 자본주의에 충실한 기업 논리에 매몰되어 인간을 생각하고 인간의 중심에서 생각해야 할 우리가 그 영역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스펙을 올리고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자신을 맞춰 가는 것이 IMF이후 대한민국의 모습이고 돈이면 모든 것이 옳고 대단하다는 것으로 인정받는 천민자본주의의 시대가 횡행하고 있다. 끝없는 경쟁에 내몰리면서 숨막혀 하는 우리들은 결국 인간에 천착하고 인간성을 다시 찾고자 하는 목마름이 더해진다. 그러면서 누가 이슈화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인간을 돌아보는 분야인 인문학이 관심을 받게 된다. <인문내공>은 이처럼 우리가 다시 돌아보게 되는 인문학에 대해 왜 지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왜 인문학으로 내실을 다져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책인다. 인터넷 등 시각적 자극 속에서 생각할 공간을 담보받기 보다 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익숙한 지금, 왜 생각을 해야 하고 어떻게 책을 읽어나가면서 자신의 중심을 찾아야 하는지, 더욱 어렵기만 한 인간관계의 틈바구니에서 진정한 관계 맺기의 지혜는 어디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책이 그동안 제대로 있었을까? 있었지만 스펙을 올리고 재테크와 자기계발의 분야에 열을 올린 나머지 그런 보석같은 책들이 있었음에도 외면 받으면서 먼지가 쌓여갔음을 우리는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데 멘토이자 생각의 기술을 진정으로 알려주는 분야. 인문학은 이 책을 통해 진정으로 읽기와 쓰기, 생각하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내공을 다져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인문학이 우리의 생활과 가까움을 느끼고 자신의 능력만이 경쟁의 척도라고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압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타인과의 관계맺기가 지금 우리의 삶에서 중요함을 느껴보자. 그리고 인간은 생각하기를 통해 그 존재의 이유를 찾고 글쓰기와 독서를 통해 자신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가야 함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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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내공'의 목차는 송나라의 문인 구양수가 말한 三多 -즉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으로 추천한 다독(多讀) 다작(多作 多商量- 가 떠오룬다. 지성인으로 거듭나는 생각내공 -공력, 남의 글에서 내 생각을 발견하는 독서내공- 다상량, 세상과 나 사이에 울림을 만드는 글쓰기 내공 - 공명 이렇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서장은 너무나 당연할지 몰라도 왜 인문학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목차를 따로 정리해본 것은.. 그가 한 조언중에.. 너무 뻔한 인용은 하지 말고, 자신만의 글로 바꿔보라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을 구양수의 말로 시작했다면.. 또 그 이야기인가? 라며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자신만의 글로 가공해내서 독자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것이 과연 내 생각이나?'라는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나 역시 말할때 어디서 들은것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생각한다.. 그것도 인문적 사유를 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내공을 갖기 위해서는 어덯게 해야 할까? 나는 나름 책을 꽤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 편이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그저 읽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전자매체를 접하는 것과 다르게 '해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이해하고 생각하는 힘을 기를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독서는 어떻게보면 '해독'에 많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헬렌켈러가 우물가에서 지적존재로 탄생한 사연을 읽으면서 그녀의 발걸음을 내딘는 그 과정이 나에게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읽은 책들의 내용을 아는 것과 그것을 통해 사고하고 판단하고 성찰하여 내것으로 만드는.. 즉 지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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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이 책을 처음 읽을 때 독서법에 관한 책으로 주로 박민영 저자의 『책 읽는 책』을 추천하게 된다. 처음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내용들이 들어있고, 어렵지 않게 읽히며, 휴대하기에도 딱 알맞은 크기의 책이기에 여전히 이 책을 지인들에게 권하고 있다. 현재는 내가 가지고 있던 책과 표지 디자인이 바뀌어 나왔지만 그래도 『책 읽는 책』에 대한 신뢰도와 추천은 여전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서평도서인 박민영 저자의『인문 내공』(웅진지식하우스)은 서점에서 만나 '이 책 좋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책이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 안상헌 저자의 『인문학 공부법』도 읽었지만 그 책과는 또 다른 공부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전에 안상헌 저자의 『인문학 공부법』은 문사철 각각의 공부법으로 구분되어 책이 쓰여졌다면, 이번 서평 책인 박민영 저자의 『인문 내공』은 생각, 독서, 글쓰기. 구양수의 삼다(다상량,다독,다작)가 생각나게 구성을 해놨다.
책을 읽어가며 저자의 글에 대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인문 내공을 쌓는다는 것이 역시나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특히 글쓰기 부분에서의 글들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내게 상당한 중압감을 주면서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정리를 할 기회를 주었다. 책의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저자 박민영의 글들에 대한 만족도 또한 괜찮았던 책이다. 하지만 p.117의 인용문이 끝난 후 나오는 두번째 줄에서 '반산 스님'의 이야기를 하다가 '반석 스님'으로 잘못 표기한 부분에 대해 차후 인쇄를 할 때 손을 봐주기를 바란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꾸준하다. 그러나 인문학이라는 이름만큼 쉽지 않고 깊이를 더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지속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서평도서인 박민영의『인문 내공』(웅진지식하우스)은 그러한 인문학 공부를 위한 읽기와 쓰기와 생각하기의 기초를 다질 기반을 마련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책도 결국 그 책을 통해 읽는 이가 어떻게 변화가 되는지에 따라 그 효용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협에서도 상승무공을 익히는 고수들은 황당한 기연을 얻는 자는 외에는 대부분이 정종의 기초 내공법을 배워서 바닥에서 부터 쌓아간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기초가 튼튼하기에 후일 고수의 반열에 올라 무림을 주유하는 것이다. 너무 성급하게 익히다 보면 어느 순간 주화입마에 걸리는 것과 같은 원리가 아닐까? 인문학의 기초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인문 내공』은 그 튼튼한 기초를 잡아줄 것이라 생각하며 이번 글을 줄인다.-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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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도 이야기에 매료 되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이야기에 빠져 소설만 고집하게 되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시간을 때울 수 있는 킬릴용 타임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찬찬히 그 작품의 면면을 뜯어보아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 내공과 철학적인 요소, 인문학적인 깊이가 얕은 수면위로 드러났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책을 읽다보면 깊이에 대한 부족함이 항상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크게 다가왔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인가? 한 분야의 책을 깊이 파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고루고루 읽어야하는 것인지 그게 항상 궁금했고 때로는 나를 실험삼아 계획을 세워 실천해보기도 했다.
<인문 내공>에 대한 글들이 책을 읽다가 한번쯤 고민해봤을 이야기들이라 크게 공감이 갔다. 책을 보는 자세에서부터 생각하는 방법, 책을 읽는 이유, 책을 읽는 환경과 습관, 어떻게 책을 읽고 메모를 해야하는 것까지 세세하게 나와있다. 다른 것에는 털털하게 지나가는 편인데 유독 책에 있어서만은 결벽증처럼 책에 낙서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책을 접거나 흠집이 나지 않게 하려고 한다. 한 때는 그것이 책을 소유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때로는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생각과 좋은 문장들을 표시해 놓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해 저자의 방법이 귓가에 솔깃하게 들려온다.
인간의 지력은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 그 중에서도 '인문적으로'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은 지력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 p.10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좋은 작품과 좋은 글을 만날수록 어딘가에 숨어져 있던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조금씩 삐져나온다.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과정속에서 사람이 더욱더 발전한다는 그의 글처럼 인문학적 내공은 꾸준히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과정을 오롯하게 거쳐야 그 속에서 조금씩 공력이 생겨난다. 고기 잡는 법을 아무리 자세히 가르쳐줘도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그것을 깨우쳐야 하는 것처럼 인문학적 내공을 탄탄하게 (혹은 튼튼하게) 쌓는 방법을 꼼꼼하게 기록한 후에 자신하게 대입하는 수 밖에 없다. 헌책방에서 책을 살 때, 수 많은 책 가운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책은 내가 읽었던 책들이었다. 좋은 책들이 주변에 많이 있어도 그것을 가치있게 알아보는 사람은 결국 그 작품을 가치있게 알아보는 사람들의 눈이다.
헌책방을 예로 들은 것처럼 가치있는 것들을 한 눈에 알아보는 '눈'을 가지려면 얼만큼 노력하고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생각이 필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부족했던 부분과 스스로의 질문을 통해 고민했던 문제들이 저자의 글을 통해 조금씩 갈증이 해소 되었다. 그 이후의 목마름에 대해서는 더 많이 읽고, 쓰고, 생각을 하며 부족한 부분을 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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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인문학 열풍이다 서점에도 '인문'을 표방하는 책들은 널려있다. 비슷한 류의 다른 책들을 읽어본건 아니지만,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지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인문학이란 무엇인지, 왜 인문학이 필요한지, 어떻게 인문학을 해야하는지(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쓸것인지) 설명해주고 있다. 글쓰기의 8할은 자료라고 저자가 말했다. 저자의 내공이 드러나는 표현들, 자료들이 방대하고 적재적소에 있다. 좋은 인문적 글쓰기의 전범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도 평생을 준비해서 언젠가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을 탐구하고 쓰고, 읽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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