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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다시금 떠오른 이름인, 장준하... 사실 그 이름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그 분이 살다간 생애를 두고 보자면 평전은 어쩌면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1918년에 태어나 1975년 비극적인 의문사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해방되기 전에는 일본 제국주의로 부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또 해방되고 나서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 정권에 맞서 평생을 어둔 민족의 역사에 빛을 주려 애써왔던 분이니까요. 하지만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으니 어쩌면 이제라도 나와 준것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그나마 김상웅씨의 평전이라도 없었다면 단편적인 몇 개의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장준하에 대해 이렇게 깊이있기 알 수 있는 기회는 가지지 못했을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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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웅씨의 평전은 장준하의 비극적 최후로 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 그렇게 책은 왜 그의 죽음이 평범한 실족하라고 하기엔 의혹이 얼마나 많은지 당시의 여러 자료를 근거로 조목조목 밝히고 하필 그 시기에 장준하가 하려했던 것이 무엇인지와 관련에 그 죽음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드러냄으로써 그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드러내고 그렇게 희생을 당해야 했을 정도로 그가 얼마나 굳은 신념으로 옳은 일을 위해 살아왔는가를 거꾸로 드러내려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그 죽음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이유를 그의 민족을 위한 헌신적은 삶을 통해 독자들에게 깊이 깨닫게 하려는 것이죠. 책은 그렇게 마지막 장 '사활을 건 박정희와의 싸움'까지 모두 524페이지에 걸쳐 장준하 삶의 여정을 담습니다. 대체로 그 시기는 해방을 전후로 독립군 활동과 '사상계'활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중 가장 어둡고 험란한 시기였던만큼 그 언제고 하루도 편할 날은 없었습니다만 장준하는 오로지 민족의 미래엔 조금이나마 빛을 가져다주고 싶다는 열망으로 언젠가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찾아 6000리를 걸어갔듯이 굽히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은 채 꿋꿋이 자기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러한 그의 삶은 왜 이제야 알게되었을까가 안타까울 정도로 문자 그대로 '지사(志士)'의 삶이었습니다.
세상엔 빛이 있어 어둠은 그를 싫어합니다. 빛이 없다면 어둠이 어둠으로 될 일은 없었을 것이기에 더욱 시기합니. 빛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둠을 그저 빛이라 여겼을 것이기에 어둠은 빛을 없애려 합니다. 어둠의 본성은 삼키는 것이요 빛의 본성은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둠은 혼자만 존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자기와 같게 만들어버리지만 빛은 더불어 같이 있기 위해 자기를 아주 작은 것까지 나누어 모든 것이 자기 고유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합니다. 동굴 틈의 이끼에게도 높고 고립된 산의 잔설에게도 빛은 고루 자신을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존재들이 온전한 모습을 찾으면 찾을수록 자신은 낮아지고 낮아져 끝내는 기꺼이 그들의 발 밑에 밟히는 그림자가 됩니다. 어차피 일신의 영달을 위해 그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기에 누구 하나 뒤돌아보고 아는 척 해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런 빛이기에 존재자체로부터 드리우는 고귀함 때문에 더욱 자신의 누추함만 대비되어 강조되는 바람에 어둠은 더욱 질시하여 아예 망각 속으로 빠뜨려 버리려 합니다. 그런 삶이 있다는 것 자체가 다른 이들에게 인간의 영혼이 어느 정도로 헌신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의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존재가 없었다면 어둠은 인간들에게 인간이란 원래 이기적인 동물이라 타인의 입장은 고려할 필요 없이 자기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게 맞는 것이고 그러니 아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 역시도 빛을 좋아하기는 하나 그렇게 끝없이 자기를 낮추고 나눠주고 사는 건 더없이 불편하고 힘들기 때문에 어둠의 말에 적당히 타협하고 아무 양심에 거리낄 것 없이 자기만 위하며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빛'의 존재들이 있어 이제 그렇게 살기는 불가능 합니다. 아니 최소한 그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타적인 헌신으로 가득 채워진 삶이 또한 자기만 알고 챙기는 삶보다 얼마나 위대한지 목격하기에 더욱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삶이 우리들에겐 필요합니다. 스스로가 보다 크게 넓게 사람과 세상을 품을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빛'과 같은 삶이... 스스로 빛이라 강짜를 부리는 어둠에게 그 가식과 허위의 가면을 벗겨버리는 그런 삶이...
장준하 평전은 그런 빛의 기록입니다. 되도록 모두가 산마루 볕 잘드는 양지바른 곳에 무더기 피어난 들꽃과 들풀이 그렇듯이 이 넘치도록 다사로운 빛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 그의 삶이 온전히 재조명될 수 있는 기회가 하루 빨리 찾아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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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장준하.......최근의 의문사 진상규명에 대한 신문기사를 접하고 꼭 한번 읽고 싶었던 그의 일대기를 이벤트에서 기회를 얻어 살펴볼 기회를 잡았다. 사실 장준하라 불리는 인물에 대해 나 자신은 아는 것이 없었다. 이는 정권 반대 투쟁이나, 민주화 투쟁에 대해 무관심하였고, 정치에는 무관심하게 살아왔던 터일 것이다. 정치사범이다 경제사범이다. 무슨 무슨 비리 연루 정치인, 경제인 등등 신문이나 TV매체에서 접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그냥 저런 사람들은 저런 사람들의 생존 전략이라고 치부하고 저런 사람이려니 했던 것이 사실이다. 여러 근래에 발생한 사건들이 처리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양은 냄비의 물이 활활 타오르는 연탄불에 끊어 오르면서 넘지는 거품처럼 끊어 오르다 뭔가 다른 사건을 보도하면서 유야무야 넘어가버리는 우리네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정치사건, 부정부패 사건을 봐도 누군가는 그런 일 없다고 발뺌을 하다가 거짓으로 드러나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 사건들의 진상규명이 끝내는 덮어져 버리고 억울한 사람들만이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진실로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몸바친 사람들은 항상 누군가에 의해 시해되고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 역시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의 신문기사에는 장준하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은 어려울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우리 근대 역사 속에는 고독한 투쟁만이 있었고, 외로운 메아리만 울려 끝내는 정권의 칼날에 싹둑 베어져 버린 무 처럼 외로운 묘지만 남아있는 경우가 더 많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투쟁을 하더라도 계층간의 갈등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위층은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정치 권력은 아무 곳에나 세금을 쏟아 내기 바쁘다. 이는 누구를 위한 정치이고, 누구의 세금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인지, 또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모두가 대답이 없다. 늘어나는 세금에다 위로만 치솟는 물가에, 날로 심해지는 사회 불안까지....이제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의 경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마저 드는 현실이다. 나의 편이 아니면 나의 적이고 내편의 편의는 확실하게 봐주고 남들의 편의는 안중에도 없는 그리고 나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은 들어려 하지 않는 오늘날의 현실은 그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하다. 장준하는 이런 우리 세대의 문제를 앞서 지적하고 개선하려 노력하다 의문의 죽음으로 사라진 인물이 아닐까? 점점 가열되어가는 최근의 대선 선거 준비를 보면서도 과연 국민의 안의는 그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장준하 평전을 통해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하여 박정희 정권까지의 우리나라 근대의 역사를 잘 살펴 볼 수 있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의 강점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일본에 대한 매몰찬 대일 감정을 품고 독립을 위해 더 많은 지식의 함양과 더불어 독립을 위한 응어리를 품고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다 한다. 강제 징집되어 일본 진영을 탈출한 6000킬로의 여정은 실로 힘들었고,탈출하여 도착한 임시정부에서의 뜨거운 눈물은 금새 울분으로 바뀌었다. 이는 임시 정부 내에서도 연정 형태를 띄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정부로 만들어도 될까 말까 한 판국에 여러 당이 모여 있어 모든 결정이나 실행이 어려웠던 것이다. 왜 우리는 그렇게 했어야만 했을까? 이것이 과연 인간이기에, 인간의 욕심에 의해 발생된 것은 아닐까? 어려운 시기일수록 이에 편승하여 실리를 챙기려는 부류는 얼마든지 있어왔지만 정부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국민의 신뢰와 국가를 위한 마음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해방의 감격과 더불어 도착한 국내는 미국에 의해 선출된 이승만 정권이 집권하며 국민의 시름을 덜어야 할 통치권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진정한 독립국으로 대한민국은 더욱 어려워만 갔던 것이 사실이다. 한편으로 미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져 미국에 의한 군정에서도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이승만 정권을 이용한 미국에 의해 의도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장준하는 많은 지성인들이 참여하고 발간한 사상계를 통한 국민의 계몽과 더불어 정부에 대한 날 선 비판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 때문에 더욱 생존에 대한 위협과 함께 정권의 미움을 받게 되는 계기 또한 되었다. 이승만 정권이 넘어가고 장면 정부에서의 그의 활동은 국민들에게 이제는 우리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주었고 가시적인 성과 또한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오래가지 못하고 군정의 기나긴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유신 정권하에서의 그 활동과 탄압은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희망적인 면과 암울한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외국의 격언처럼" 펜은 칼보다 강하다" 라고 했던가? 세계적으로 발생한 모든 큼직한 사건들은 하나의 조그만 사설이나 기사에 의해 발생되었다는 사실은 언론의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나라를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마음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장준하가 걸어왔던 계몽과 탄압에 맞선 투쟁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함선헌이 말했던 "이제는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는 말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평전이라는 부류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자서전과 달리 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작성되었을 것으로 보다 보편 타당한 사실에 입각하여 출판되었기에 자서전에 비해 더 공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장준하 평전에서도 저자의 말처럼 장준하가 최남선의 죽음을 사상계에 게재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 해왔던 장준하의 성품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은 장준하의 일생에 있어 유감스런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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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간의 화합은 멀다고 느껴진다.돈과 물질,개인의 명리에 집착한 나머지 국가의 올바른 정체성 및 역사 인식 등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근자에는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후보자간에 '역사 바로 세우기'에는 중점을 두지 않는 점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인식에 소홀해지는 원인이 될뿐더러 그들이 장차 나라를 이끌어 갈 위치에 있을 때에 과연 지난간 한국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고 정립해 나갈지가 의문스럽기만 하다.
삼국시대 이래로 왜구의 침략,임란,정묘호란,한일합방 등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려던 인물들은 개인의 명리를 위한 정파를 초월하여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국민을 떠받들려는 확고한 의지와 신념으로 가득했던 것을 보면 현재의 위정자들 대다수는 단지 명예와 권력,부를 일구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의 본심을 속이고 국민들에게 위장처세하는 것은 아닌가 한탄스럽기만 하다.
현대사에 있어 장준하 선생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이지만 항일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섰던 진보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그는 인생의 전반을 항일독립운동에 몸을 바쳤고 후반은 출판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또한 그의 청년시절은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놓이고 대동아공영권의 일환으로 강제 징용을 해야만 했는데 동료들과 일본 군영을 탈출하면서 중국 충칭 임시정부로 향하는 6,000키로의 대장정이라는 간난신고와 같은 대장정과 해방이후 남북통일이라는 대의명분하에 김구 선생 밑에서 봉직을 하기도 했다.잠깐 그가 이범석 장군으로 몸을 옮긴 것에 뒷날 매우 후회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임시 수도 부산에서 사상계(처음에는 사상이라 명칭함)라는 잡지사를 창간하여 당시 한국 사회에 불모지와 같았던 인문 사상에 주력하면서 사상계 문학상 및 동인문학상 등을 제정하기도 하면서 걸출한 인물들의 등용문이 되어 주기도 했다.그의 이념과 사상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막사이사이상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그러던 중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 정권이 그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전불사의 양상으로 번져 가는데,특히 장준하는 박정희의 독재와 인권 탄압 등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강경한 자세로 일관해 나갔다.
1967년 삼성 제일제당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이맹희회장이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는 박정희를 향해 '밀수왕초'라는 독설을 퍼부어대면서 연행 및 옥살이가 이어지고 옥중 당선 등의 이변이 일어나지만 당시 공화당과 중앙정보부는 그에 대한 회유와 압력,탄압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상계를 고사시키려는 작전은 철저하게 진행된다.결국 자금이 바닥이 나면서 그는 자식들에게 아버지로서 제대로 위상을 보여주지도 못하게 된다.그에 대한 말과 행동은 중정의 감시로 이어지고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로 운명을 달리한다.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미제이고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데 안타까운 점은 당시 장준하선생의 의문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미 고인이 되고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은 증발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혁명가적인 기질로 중국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임시정부,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사상계 창간,이승만 정권 비판,5.16 비판,한일굴욕회담 저지투쟁(당시 한일회담의 실무 책임자는 김종필로서 일본에 굴욕적인 의정서를 체결),3선개헌 반대투쟁,반유신항쟁,100만인 서명운동에 이르기까지 '금지된 동작'을 줄곧 이행해 왔다.그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나라의 독립과 일본군 출신이 대통령으로 자리를 잡아 영구집권을 획책하는 것에 강한 반발과 독설로 박정희와 한 판 승부를 불살랐던 것이다.
김구선생의 비서에 이르기까지의 독립운동가,사상계를 통한 민주언론운동가,반독재 민권 운동가 및 헌정질서 회복 등으로 이어져 온 장준하선생의 일대기는 오로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 한 몸을 바쳤던 고귀하고 존경할 만한 인물이다.겉으로는 온유하게 보이지만 내면은 차갑고도 용암과도 같은 뜨거운 불이 솓구쳐 오르는 강렬한 성품을 그대로 보여준 분이다.생전 그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도 안타깝기만 한데 석연치 않은 죽음의 원인은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반드시 가려내야 할 부분이고 뜻있는 분들이 줄기차게 의문사를 캐내야만 할 당위성을 갖고 있다.그것은 나라의 정체성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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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성품과 풍부한 학식, 불요불굴의 의지 중 어느 한 덕목이라도 갖추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평범한 인간은 이 중 어느 하나에서도 제 주위를 애써 만족시키는 수준에조차 이르지 못하며, 평범 이하의 저열한 인간은 이 중 어느 하나를 충분히 갖춘 위인을 파멸시키는 데에 제 온 정력(변변찮은)을 기울인다. 만약 저 덕목들을 모두 갖춘 이가 부근에 출현이라도 하면, 이제 이 저열한 종자는 질투와 시기에 눈에 뒤집혀, 제 삶의 본분조차도 잊고 네거티브와 마타도어에 몰두, 선과 정의, 진리와 미를 파괴하는 반인륜 공작에 골몰한다. 대개 이런 과정을 거쳐 위인은 추락하고, 역사는 궤도를 이탈하며, 정의는 일시의 패배를 맛본다. 장 선생의 적(敵)은 친일, 반민주, 수구 세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시인 고은은 그에게 새로 지어줄 아호로 '민족'을 골랐는데, 이는 어느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그의 입체적, 포용적, 영감 유발적 삶을 표상하는 데에 적절하기 짝이 없다. 그의 일생은 말 그대로 '민족'의 자존, '민족'의 번영이 다시는 이족(異族)의 철제 아래 위협받거나 훼손되지 않게 하려는 순일한 얼, 혼의 발로였으며, 또한, 우리가 백범의 유명한 천명으로부터도 잘 알고 있듯, '내 나라가 남으로부터 모된 봉변을 당하였기에, 내 나라만은 절대 남에게 몹쓸 짓을 하지 않는' 미래, 시대를 앞섰고 또 시대에 우선하여 살아남을 국제평화주의의 체화였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그의 아그노멘으로 붙을 '민족'이란, 강자에의 부역, 동족에의 배신을 영원히 발본색원할 순결한 민족주의이며, 다른 한편으로 나를 살리고 남도 살게 하는 전지구적 대동 정신의 떨침을 상징한다. 고로, 세상에 대한 비열한 복수심과 제 개인적 열등감을 해소, 무마하려는 불순하기 그지없는 악마의 정신과는 일말의 타협점도 찾을 수 없는 게 그의 영혼이며(장 선생은 기독교 목회자 장석인님의 소생이다), 무지몽매한 아우성과 원시적 폭력으로 점철된 파괴적, 전투적 노선이란, 평상시 무심히 흘리는 장탄식이나 갱지에 단아히 내려쓴 구절 종결 어미, 종지부 하나에조차 흐트러짐이 없는 그의 고매한 인격과는 대체 같이할 한 뼘의 공간조차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진보를 빙자한 사이비의 테러리즘, 질시와 공동 파멸로 치닫는 미친 낙오자 무리의 절규, 이 모든 것은 민족 반역자, 민주주의의 압살 세력 못지 않게, 그 창자를 끄집어내어 씹고자 했을 장 선생의 적이었다. 근래 장 선생의 이장(移葬)과 관련하여 종래의 의혹은 새롭게 수면 위로 부상했고, 그렇잖아도 미심쩍은 구석 투성이였던 삼십여 년 전 그 사건은 이제 대선과 맞물려 다시금 국민적 관심사로 비화하였다. 오늘날 폭 넓게 발전한, 혹은 '회복된', 사회 각 분야에서의 자유화, 민주화, 개인 권리의 신장 추세를 선생이 보게 된다면, 그 활달한 품성과 넉넉한 인품이 빚어낸 호인의 안면에 세상을 다 품을 듯한 미소가 번지는 모습이, 그를 나안으로 보지 못한 후대인의 눈에도 훤히 펼쳐지는 것만 같다. 반면, 천박함과 기회주의, 감각 중독과 일회성 쾌락에의 맹목 질주가 대세로 자리잡은 이 현대 대중의 삶을 보며, 일생을 통해 마주치는 삼라 만상에 대해 '문(文)', '지식'을 통한 정화를 추구하지 않고는 직성이 안 풀려했던 꼬장꼬장한 선비의 눈에, 여기저기서 호통깨나 들을 사기꾼, 협잡쟁이, 무지렁이도 꽤나 많이 나오리라. 문제는 이것이다. 장 선생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노력에 있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그의 일생이 얼마나 폭 넓고 깊이 있게, 현대사의 매(每) 옹이, 전(全) 관절에 접합되고 분기하는지를 간과한다는 것.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민주투사'를 겸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 두 캐릭터가 한 인물의 삶에 구체화되기에는, 그 각각의 시기가 한국 현대사에서 다소의 간격을 사이에 두고 있으므로 일단 물리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다, 결정적으로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 어느 하나의 삶을 사는 것조차도 분에 넘쳐 중도에 거꾸러질 만큼, 제 하나뿐인 목숨을 걸어야 하는 영웅적 미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장 선생은, 마치 저 멀리 터키 공화국, 노인에서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이 그 영혼으로부터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를 우러러보듯, 그의 온전한 모습이 이 땅 배달의 민중에게 재조명될 때 거룩한 신화적인 존재로 규정되어 마땅한 인물이다. 생각해 보라. 싸이영상을 수상한 투수가 야신상까지 거머쥔 골키퍼이기도 하다든가, 혹은 PGA 챔피언십 트로피를 이후 차지하기도 했다면, 우리들 범속한 대중은 아마 그를 신처럼 추앙하러 내일이라도 타임스퀘어에 거적을 깔고 장사진을 칠 텐데, 하물며 그따위 오락, 유희의 영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민족적 생존, 구원의 차원에서 수천만 동족에게 유형 무형의 빛을 던져 준 위인이라면, 대체 어떤 대접을 받아야 그 격과 비례의 원칙에 합당한 것일까?
다음에 기계적으로 나올 한 마디는 이 리뷰를 읽는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겠으므로 낯간지러운 공치사는 과감히 생략하고, 이 책은 일단 장 선생의 일대기를 팩트에 충실하게, 적지도 많지도 않은 한 권의 분량으로 엮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빼어나다. 최소한 지금 당대를 사는 우리는, 장 선생의 일생에 대해, 별반 편차가 나는 평가를 다채롭게 수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좌건 우건 보수건 진보건 온전한 양식을 갖춘 이라면 크게 다른 말이 안 나온다), 우리에게 꼭 '평전'이 주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표준적 평가'는 이미 선지식으로 독자의 머리에 구비되어 있음). 허나 이 '평전'은, 물론 비장하고 유려하며 감개어린 작가의 필치로 책 구석구석에 삽입, 용해되어 있는 '평가'의 요소가 없었다 해도, 그 팩트사항의 성실하고 요령 있는 편집과 제시, 구성만으로도 그간 지식에 목말라 있던 독자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 책은 장 선생의 개인사일 뿐 아니라, 한국 독립운동사 결정적 부분의 한 챕터, 민주화운동 발아기와 그 가장 처절한 시련기의 압권이기도 하므로, 그 장중에 등장하는 숱한 실존의 거물 캐릭터의 행진 관람만으로도 눈이 뿌듯하다. 독립운동사와 현대 정당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종전에 알던 사항과, 이 책에서 묘파하는 실물의 서사가, 어느 부분에서 어느 정도만치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수렴하는지의 체크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를 도락이 하나 생길 것이다. 저자는 문헌과 자료의 수집, 제시에 있어 종래 그의 다른 저작에서나 마찬가지로 대단한 공을 기울이고 있는데, 본문에 주인공,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뿐 아니라, 저자가 참고한 그 많은 문헌들의 기록자, 편찬자, 창작자로 제시된 이름 중에서도 거물, 명인들의 함자가 자주 눈에 띈다(예를 들면 동교동계의 거물급 인사였던 김녹영씨['김록영'이라 인용되고 있고, 나는 이걸 아주 어린 시절 한자일색이었던 신문에서 언제나 金祿永으로만 눈에 익은 터라 읽으면서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다], 신동아의 민완 기자였던 윤재걸 등의 이름은, 비록 그 나이로야 본 리뷰어의 부친, 조부 뻘이겠으나 마치 오랜 동안 잊고 지낸 고향 죽마고우의 면면을 보는 것 같아 너무도 반가웠다). 평전이란 물론 엄정해야 하나, 그런 사명 못지 않게 독자에게 가능한 충분하고 많은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소명도 소홀히할 수 없다. 장 선생이 그 죽음을 앞두고 모종의 정변을 기획했다는 설은 그간 정통으로 인정되지는 않던 바인데, 유독 저자 김삼웅씨는 비중 있게 이 '설'을 다루고 있다. 악의 척결을 악의 수단으로 이룬다는 게 과연 고인의 신조에 부합하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건강도 극히 좋지 못했던 당시의 선생이 그 주도면밀성과 대담성, 육체적 강인성까지 요구되는 대작업을 주도했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지는 추론 아닌가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저자에 따르자면, 김준엽 전 고대총장과 이부영의 전언으로 소개됨). 반면, 만군(滿軍)에서 이탈한 모 장교의 '귀순'에 대해, 이후 그의 불순(?)한 행동양식을 보고 격노, 뺨을 후려쳐서 축출했다는 일화에 대해서는 책 전체를 통해 전혀 언급이 없다. 작가의 신중함과 나름의 기준(이미 저자의 다른 저서에서 다룸)이 적용된 결과였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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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몇 만원 깎아주고 3S나 보여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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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색인으로서 행동하고 행동인으로서 사색하는 지성인이었다. 그는 이론과 행동을 이율배반이 아닌 동일선상에서 일체화시킨 도덕인이었다. 그는 많은 지식인들이 순수라는 이름의 수인囚人이 되어 보신保身에 전념할 때 정의를 위해서는 일신을 홍모처럼 버리고 일어서는 자유인이었다. 그는 '금지된 동작'을 맨 먼저 시작한 위대한 혁명가였다. 그는 젊은이들이 내출혈의 아픔을 감내할 때 고난의 면류관을 함께 쓰고 고행길에 오른 선지자였다. 그렇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자였고, 행동하는 지성인이었고, 불의와는 결코 한 치의 타협도 않는 외곬의 반골反骨이었다. 야인이고, 들사람이고, 현대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명철한 언론이이엇고, 주체적인 민족주의자이며, 비폭력적인 사회개혁주의자였다.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비현실적인 것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며, 비논리·비상식적인 것들이 정석正席을 차지해버린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 그는 참의 불변치不變值를 위해 일생을 바쳐 싸워왔다."
민족의 사표 장준하 선생이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에서 의문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김삼웅이 《씨알의 소리》(1975년 9월호)에 쓴 추도문 <약사봉 계곡의 진혼곡>이다.
박정희의 유신시대는 광기의 시대, 몽매의 시대, 불의의 시대였다. 장준하 선생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온몸으로 독재정치에 맞선, 행동하는 양심가다. 저자는 장준하 선생을 “흙탕물과 같은 한국현대사에 핀 한떨기 연꽃과도 같은 존재”, 우리 현대사의 '큰바위 얼굴'이라고 평한다.
"장준하의 올곧은 생애는 흙탕물 같은 우리 현대사의 연못에 핀 한 떨기 연꽃과도 같다. 그는 민족이 식민지가 되었을 때는 총을 들고 왜적과 싸웠고, 조국이 해방되었을 때는 붓을 들고 청년과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사상을 가르쳤다. 군사독재에 헌정질서가 짓밟히자 붓을 던지고 거리로 나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싸웠다."(67쪽)
저자는 장준하의 생애를 3기로 나눈다. 제1기는 일군 탈출에서부터 김구 주석의 비서활동까지의 독립운동기, 제2기는 1953년《사상계》창간에서 1966년까지의 민주언론운동기, 제3기는 1967년부터 1975년 사망 때까지의 반독재 민권운동기다.
저자는 제2기 민주언론운동기 때, 장준하 선생이 보인 한계로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한다. 먼저,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친일문인 김동인의 문학상을 제정한 것이다. 1955년 10월호부터 운영된 동인 문학상 제도는 그 취지가 떳떳하지는 못했다. 다음은 친일학자 최남선을 기리는 '육당 기념호'(1957년 112월호)를 발행한 일이다. 《사상계》의 창간 이래 필진의 상당수가 친일경력의 소유자들인 것은 시대적 제약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앞서 논한 동인 문학상 제정이나 최남선 기념호 발행은 이해하기 어려운 소치다. 마지막은 1961년5.16 군사쿠데타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인 점이다. 1961년 6월호의 권두언과 화보, 편집후기는 '사상계의 정신'을 크게 훼손했다. 무기명으로 실린 권두언 <5·16혁명과 민족의 진로>는 5.16 쿠데타를 4·19혁명의 계승이자 연장으로 바라보았다. 화보 <혁명 새벽에 오다>는 쿠데타의 전개과정을 장도영과 박정희의 인물사진과 함께 24컷으로 장식했다. 편집후기는 5·16 거사로 무능부패한 장면 정권이 물러났다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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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상, 주의, 또한 지위, 나의 재산, 나의 명예가 진실로 민족통일에 보탬이 되지 않는 분단체제로부터 누리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과감하게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장준하, <민족주의자의 길> 59p
이 문구는 인간 장준하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치열한 삶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진정 조국과 민족을 위해 그의 모든 것을 던진 인간 장준하. 우리는 지금 이 사회에서 정부나 단체, 또는 작게는 개인의 잘못된 점에 비난을 가하더라도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비난을 중단하거나 그 강도를 낮추는 이기적인 삶을 살 때가 많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위한 ‘어떤 것’의 이용은 욕을 먹을 수도 있겠으나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어떤 것’에 적대적이지 않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장준하 선생님처럼 자신의 재산과 지위, 명예 하나 바라지 않고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기란 참 어려운 일임은 두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어려움, 누구도 가지기 힘든 이러한 희생정신이야 말로 진정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나라의 지도자이자 대표자가 가져야할 자격이지 않을까 한다. 지금껏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장들은 권력과 개인의 부를 위해 얼마나 많은 개인을 희생시켰는가.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켜야 하는 본분을 망각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는 웃지 못 할 역사 앞에서 인간 장준하는 누구보다도 당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장준하 선생님이 의문의 죽음을 당할 당시에는 내가 태어난 바로 이듬해이다. 역사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은 그를 내가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2000년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로 인해 장준하 선생님을 처음 접하게 되었지만 사회진로를 두고 개인적으로 힘든 시절이라 이 또한 별 관심 없이 흘려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 올해 장준하 선생님의 묘소를 장준하공원묘지로 이장을 함으로써 ‘장준하 의문사’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고 묘하게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며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된다. 나도 지금에서야 장준하 선생님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하게 된 것이다. ‘장준하 의문사’에 대해 연일 떠들어 대는 뉴스, 그의 죽음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 등을 보고서야 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부끄러운 일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다행스러운 점은 이를 계기로 내가 ‘장준하 평전’을 읽게 되었고 그의 의문사뿐만 아니라 ‘인간 장준하’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극악무도한 일제강점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일본 학도병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해방 후 참된 언론인으로서 민족의식을 깨우기 위해 노력하고, 모두가 숨죽이는 독재군부에 맞서 ‘금지된 동작’을 함에 있어 주저 하지 않았던, 그의 모든 인생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를 우리가 알아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는 그에게 받은 한없이 많은 것들에 감사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가 독재정권 아래에서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또 다른 피바다의 슬픔을 안고 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은 국가적 민주주의의 손실이었다. 만약 이 책을 읽기 위한 판단으로 나의 리뷰를 읽게 된다면 반드시 구입해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장준하 선생님이 살아간 치열한 삶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치열한 상황까지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 중에 <사상계>에서 친일파 문인 김동인을 기리기 위한 문학상을 재정했다든지 최남선 기념호를 발간했다든지 하는 부분이 사실 나도 납득이 잘 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모든 이는 완벽할 수 없음이 당연한 것이다. 이로써 그의 삶 자체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장준하 선생님의 역사 인식에 대한 변화과정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은 변해야 사람인 것처럼, 변하지 않는 이는 독선적임을 반증하는 것처럼, 그의 변화 또한 당연하고 옳은 길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장준하 선생님의 그 뜻은 우리 시대에 부당한 권력이 꿈틀거릴 때마다 우리들 앞에 나타날 것이다.
ps. 장준하 선생님 정말 미남이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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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캠프에 공식 합류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것이 장준하 선생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1993년 03월 29일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이 한광옥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진상규명불능이었다. 정확한 사유는 국가정보원에서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고 부수적인 사유는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장준하 선생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얼마 전에 장준하 선생 의문사관련 신문기사를 접하고 나서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장준하 선생은 한마디로 선비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비정신의 핵심은 첫째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용기와 정의감을 중시하였다. 둘째 세속적 이익보다는 예와 의를 중시하였다. 셋째 백성들에게 도덕적 모범이 되어야 했다. 넷째 광범위한 지식과 학식을 겸비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청빈과 안빈낙도의 삶을 즐길 줄 알아야 했다. 위의 선비정신으로 무장된 장준하 선생의 일생을 보니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 앞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하다가 결국 대의와 목숨을 바꾸었고, 김구 주석이나 이범석 장군의 비서로 활동하면서 생각을 조금만 바꿨으면 엄청난 부와 명예가 따랐을 텐데 이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나갔다. 그랬기에 독재정권의 개가되어 짖어대던 타 언론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지식인으로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또한 광복군 시절에 ‘등불’과’제단’을 간행하였고 해방 후 지식인과 민주인사, 학생들을 깨어나게 하기 위해 월간’사상’을 창간하여 자유, 민주, 반독재 투쟁에 헌신하고 신인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광범위한 지식을 가진데 그치지 않고 실천하였다. 장면 정부 때는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일환인 국토건설본부의 기획부장으로도 활약을 하였다. 인문학자가 토목까지 관여한 것을 보면 정약용 선생과 닮은 점이 정말 많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독재정권의 훼방이 없었더라면 장준하 선생의 재산이 많았을지 모르겠지만 훼방 때문인지 사망 후 장례 치를 돈도 없어 문상객들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술과 라면을 사서 밤샘을 했다고 하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설령 재산이 축척 되었더라도 장준하 선생은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쪽으로 사용했으리라 생각한다. 장준하 선생의 평전을 읽고 가슴 아픈 부분이 많지만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의’를 실행하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다는 점이다. 어쩌면 다수의 국민이 의를 실천한다면 추앙 받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회 속에서 과연 개인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선거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대중은 정말 우매한 것 같다. 과연 장준하 선생이 7대에 이어 8대, 9대에 계속 국회의원을 했었더라면 의문사가 되었을까? 3선 국회의원이면 대통령 선거에 나가 박정희와 맞짱을 뜨지 않았을까?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든다. 장준하 선생이 우려했던 바와 같이 친일파 세상에 설 땅 읽은 광복군처럼 친일파와 독재자의 자손들이 국가 리더로써 국가를 좌지우지 하는 광경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초등학교 때 책에서 접했던 미당 서정주와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안익태, 홍난파등이 친일파로 알려졌다. 어느 보수논객은 과거사는 과거일 뿐 현재와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말 어이없는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처럼’우리 역사는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한다’는 말이 이 사회의 공식이란 말인가? 아무리 보수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합리성에 기초를 해야 하는데 정신 나간 말을 지껄이고 있다. 끝으로 장준하 선생이 임시정부의 파쟁과 분열을 보며 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다고 했는데 우리의 현실을 보면 그 당시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어제의 동지도 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국익이 무엇인지, 국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걸 바라보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대의를 위해 애쓰신 분의 의문사는 국가차원에서 진상이 규명되어야 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정부는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통령은 여.야가 번갈아 가면서 해야 한다. 4.19 혁명이 위대한 것은 불멸할 것으로 알고 있었던 주류세력을 갈아 치운 것이다.‘자유라는 나무는 피를 마시며 자란다’는 본문처럼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희생이 필요하다. 우리모두 현명한 국민이 되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우리들의 리그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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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님의 평전을 읽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또한 그 분과 정적관계이며 최근 뉴스에 회자되고 있는 장준하 님의 타살 배후인물인 박정희의 딸이 현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온 시점에서 읽게되어 더욱 감회가 새롭습니다.
해방 후 한국 현대사를 읽을 때면 언제나 느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해방을 얻을 때 우리가 (임시정부가)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 생태에서 해방을 맞이하게 되어 해방후의 정국에서도 끌려다니기만하고, 김구 등의 요인들이 암살당하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까고 21세기가 된 현재에도 독도에 대한 영유권도 속 시원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외세에 끌려다니는 것이, 그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책을 읽으며 접한 장준하님은 고 노무현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다는 느낌입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옳은 위치에 서 있었으며, 적들에게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용기있는 분이었지만 국민들을 위해서는 따뜻하고 정겹고, 자신을 너무나 위할 줄 모르던 우직한 분이었습니다.
동라가신 것이 너무 안타까워, 정치에 참여하지 마시고 계속 한국의 교양과 사상을 이끄셨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만 사상계에 대한 탄압 등으로 정치참여는 어쩔 수 없는 그분의 길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장준하님의 인생길을 저자는 윤동주의 시를 통해 표현하였는데 그 느낌이 좋아 저도 제 Caocao Talk의 Profile Message로 사용하는 싯귀가 있습니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오늘들은 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 이 싯귀의 깊은 의미를 알려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싯귀나 장준하 님에 대한 설교는 아니지만 진실은 통하는 것이니까요.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는 나의 길인데 왜 새로운 길일까요? 그것은 바로 진심으로 그 길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가슴에서 원하는 길이기에, 습관적으로 가는 길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가는 길이 아니기에 그 길은 언제나 새롭고, 그 길을 갈 때면 언제나 설레일 것입니다.
장준하 님이 박정희에게 보낸 공개서한 중 인상적인 글을 소개하면서 글 마칠까합니다. - 이 지구상에는 수백억의 인간이 살다 갔습니다. 그 중에 '가장'이 되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죽으면 내 집이 어찌 되겠는가"라는 걱정을 안고 갔습니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발전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제가 한국의 콘크리트층이하 불리는 세대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자신의 이익때문에 또는 지역, 세대 등의 이유로 한 정당만을 지지하시는 분들은 어떤 길이 한국을 발전시킬 것인지 냉철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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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준하 선생님의 생애, 그리고 그의 의문사를 다룬 책이다. 그의 의문사에서 대해서 최근에 알게 되었고, 그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더더욱 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생겼고, 그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장준하, 그리고 의문사. 세상이 왜 그렇게 시끄러운지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그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는 책이다. 장준하라는 사람과 그의 인생을 지배했던 모든 것이 들어있다. 하지만 한 인간에 관해서라는 느낌보다 조국이며 민족을 한권의 책으로 만나본 느낌이었다. 사실은 요즘 시대에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그렇게 크게 와 닿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라 표현할 단어가 마땅치 않지만. 우리나라, 그 자체로의 삶을 살아온 인간이 존재했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읽는 내내, 먹먹한 느낌이 감돌았고, 눈가에는 뜨거움이 차올랐다. 사실, 이 책은 교과서처럼 딱딱하고 어렵다. 국사책을 읽는 것 같은 지루함이 함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틈을 메워주는 것은, 실제처럼 생생한 당시 사람들의 수기가 마치 그곳을 걷고 있는 것처럼, 그 시절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것은 괴롭기도 억울하기도 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누구에게든 쉽지 않겠지만, 재밌는 소설만큼, 영화만큼 손이 쉽게 가지는 않겠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역사나 어려운 현대사에 대해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짊어졌던 무게를 상상으로나마 나눠들어보면 어떨까싶다. 원하지 않아도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랬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나처럼. 생전에 깔려죽을 듯한 무게에 짓눌려계셨던 그분이 그곳에서는 조금이라도 어깨의 짐을 덜으실 수 있게.
책의 1장은 의문사에 관한 이야기다. 60쪽에 걸친 이야기 속에 가득히 내려앉은 의문은 증폭되고, 그의 생애를 더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의문사를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 2장부터 14장에 이르는 장대한 그의 삶과 기록들은 매서운 겨울에도 피어나는 생명력강한 꽃처럼 강하고 아름다워보인다.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시린이유는 안타까워할 밖에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기도 하지만, 어떤 추위에도 꺽이지도 구부러지지도 않았던 한결같은 그의 마음의 결이 부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15장은 추모와 그의 회상부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한 그분을 그리워하는 글들로 가득차있다.
주로 소설책을 많이 읽는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꽤나 뿌듯했다. 두께도 그렇지만, 역사를 알고, 지금 이 땅을 한겹더 튼튼히 해주었던 누군가의 삶을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책이나 다른 책보다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책 속에 살아있는 무언가와 만난듯한 느낌이 든다. 책 가운데 부분은 장준하 선생님과 그와 함께 했던 동료분들의 사진이 나온다. 그의 생애를 조금이나마 알고 느끼고 그리고나서 보는 그의 젊은 시절부터의 사진들은 안타까운 기분이 들기도 쓸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의 이런 편집은 꽤나 좋은 것 같다.
중학시절부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브나로드운동(농촌 계몽, 문맹퇴치 운동)에 참여해 마을사람들을 가르치고, 장로와 학부모를 움직여 교사를 신축하고 지역사회를 바꾼다. 장준하는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힘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마음에 자신이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파문을 일으켜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한 나라까지 바꿀 수 있는 힘을.
장준하는 일본 신학교로 유학을 가게되고, 그 속에서도 100리넘는 지방의 교포어린이에게 헌신적으로 교육열을 불태웠다. 1년반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일본군입대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일본군입대를 하지 않으면 가족들이 대신해서 불행한 일들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소학교시절 하숙했던 천주교신자와 편지를 주고 받던 과정에서 그녀의 딸이 대신해서 답신을 해주었는데 그녀와 정이 쌓여 장준하의 부인이 되었다. 그 당시 군입대 2주전 결혼을 했는데, 이유는 그당시 처녀들은 위안부나 일본공장으로 끌고 갔는데 결혼한 여성까지 끌고가지 않았기에 그렇게 했다. 장준하는 이미 군에 들어가기 전부터 탈출 결심을 하고 있었다. 중국전선으로 지원해 중국 중경 어딘가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기로 각오를 다졌다.
이 우여곡절이 많은 탈출기가 재미있었는데, 장준하의 생생한 수기뿐 아니라 그당시 같이 탈출에 성공한 동료들의 수기 또한 그들의 탈출이 꽤나 고된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어둠속에서의 탈출. 더위와 쫓기는 공포와의 싸움. 그들의 탈출기는 목숨을 건 하나의 모험이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이는 꿈을 찾는 여정이었다. 그곳에 도착만 하면 왠지 희망의 길이 있을 듯한 느낌이었으리라. 장준하의 수기는 다른이들의 글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그의 글은 마치 소설같았다. 문장의 표현과 묘사가 아름답기도 멋있기도 해서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많았다. 감성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생생한 수기가 더욱더 재미있었는데, 이 책의 편집자체가 사실적인 기록에 이은 그들의 당시의 생생한 수기가 반복적으로 이어져서 지루할 틈이 없는 긴장감 넘치는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도 있었다. 그는 그 탈출 속에서 그의 인생을 다시 되새기는 하나의 다짐을 하게 된다. 바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이다. 그가 그 고된 도망침 속에서 얻은 울분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나라없는 설움과 슬픔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장준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잡지를 창간했는데, '등불'이 첫 잡지로 자신들이 등불로서 불을 밝히고 앞장서 길을 밝히며 꺼지지 않는 등으로 살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 그리고 '사상'에 이은 '사상계'의 창간까지. 종이혁명의 진원지이자 그가 잡지에 쏟았던 노력은 정신적 이념적 자양과 4월 혁명의 근원이 되었다. 장준하가 잡지에 쏟은 애정과 그에 관한 그의 노력의 기록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그런 것들과 맞물려 나는 그가 중학시절 마을 사람들을 가르치고, 학교를 세우는 일에 앞장섰던 일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힘. 그는 평생에 걸쳐 그것을 실천했으며 뜻을 모으고 꺽이지 않았다. '사상계' 잡지는 처음은 교양적 지적갈등해소를 위한 잡지였지만, 뒤에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정치평론지적 성격을 띄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고, 뒤에 정치투쟁적인 성격을 띄며 마지막까지 나라의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운다.
박정희 정권은 장준하의 '사상계' 뿐만아니라 그, 그의 주변, 모든 상황을 옭아매듯 잘라내갔다. 그의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도 마지막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의 잘못이라기엔 그때 그 상황이 너무도 힘들었다. 장준하는 너무도 올곧은 사람이었다.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건강을 잃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그 곧음은 부러지지 않는다. 그 올곧음은 시대적으로 만들어졌던 수많은 파싸움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일제과 싸워야 할 임시정부 속에서도, 독재와 싸워야 할 야당 속에서도 몇개의 세력들로 나눠진 인간들의 서로간의 세력싸움에 질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힘을 뭉쳐 싸워도 이길까 말까한 싸움을 조각난 힘으로 어떻게 이기려고 한걸까. 그들에게는 그정도의 여유가 존재하고 있었던걸까.
자신의 길을 걸어오면서 어려운 순간마다 자신이 생각한 뜻을 굽히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을 그의 삶은 물러섬이 없는 시대의 정신이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뜻을 굽히고 구부러지고 좋은게 좋은거라여기는 나약한 자신에게 그의 삶은 내 속에 잠자고 있어 사라진 곧은 마음에 문을 두드린다. 삶에 어떠한 부정을 섞은 미세한 두드림 속에서 보이지 않는 눈을 지우고 살아갈 것인가. 깊은 곳 곧은 마음을 깨워 자기자신을 경계해 스스로를 제대로 세워나갈 것인가. 삶을 내버려둘 것인가.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여 이 땅에 나의 생각을 심어 키울것인가.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 하다.
장준하 선생님의 의문사가 안타까워지는 이유이다. 진실이 왜곡되고 민중의 소리가 묻혀지고, 누군가의 조작에 의해 사람들은 혼란 속에 흔들리고 있다. 그 시대 속에서 지금의 시대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이 땅의 정신과 같은 분을 이대로 방치해 두는 것은 너무도 억울한 일이다. 의문을 깨끗히 정리해 아무런 억울함도 없이, 이 땅 위에 진실된 역사를 채워나가야 할 때가 아닐까. 모두들 역사가 말해 줄 것이라고 떠들고 있지만, 정리되지 않은 역사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지금 이 시대에 대두된 문제이니 만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일 뿐이다. 그것이 제대로 된 역사를 살아가는 길이고, 그가 말하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한' 일이고, 후세에 최소하나마 면이 서는 일이 아닐까 싶다.
안방에는 고인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내걸리고 '일주명창 一注明窓'이란 휘호가 주인 잃은 것도 모르는 듯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심지 하나가 창을 밝히고 있다'는 뜻이 담은 이 휘호는 장준하의 생애를 잘 보여주었다. -22p
지성 지식의 知는 화살 시矢와 입구口를 합친 글자로서 "입으로 말하는 것을 화살로 쏜다" 라는 언행일치의 뜻이 담겨있다. 이는 지식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친다. 장준하는 그 상징에 해당한다. -66p
"등불이 없는 이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은 나라 없는 조국에 살아야 하는 운명과 같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144
나의 일생의 과정은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이정표의 푯말을 꽂고 이제부터 나를 안내할 것이다.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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