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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사랑한다는 그 말' 한 줄로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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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언저리에 늘 불안이 묵직하게 들어앉아 있던 20대 후반 쯤이었다. 신문을 보다 눈에 띄는 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카피라이터를 뽑는다는 극장의 구인 광고였다. 전에 했던 일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 별 부담없이 지원서를 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2차는 극장에서 직접 시험을 치른다고 했다. 시험 당일 영화관에서 각기 다른 영화 4편을 본 후 각 영화가 끝날 때마다 헤드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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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언저리에 늘 불안이 묵직하게 들어앉아 있던 20대 후반 쯤이었다. 신문을 보다 눈에 띄는 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카피라이터를 뽑는다는 극장의 구인 광고였다. 전에 했던 일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 별 부담없이 지원서를 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2차는 극장에서 직접 시험을 치른다고 했다. 시험 당일 영화관에서 각기 다른 영화 4편을 본 후 각 영화가 끝날 때마다 헤드카피, 메인카피, 보조카피, 광고 문구까지를 10분 안에 써내야 했다. 오전에 영화 두 편, 점심 먹은 후 연달아 두 편을 보자니 마지막엔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속까지 메슥거렸다. 게다가 보는 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준비~ 땅' 하듯이 시험지를 받자마자 카피를 쓰자니, 꽁지에 불붙은 쥐마냥 달려가듯 써내려가야 했다. 시험은 저녁 6시쯤 끝났고,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속이 다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후 며칠을 우편함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지냈다. 그러고도 얼마 더 지나 결과를 담은 봉투가 왔다. 차라리 깔끔하게 결과만 알려주지, 위로한다고 적은 글귀가 자존심을 더 상하게 했다. 글 쓰면서 가장 어려운 게 제목 뽑기고, 전체를 한 줄이나 두 줄, 혹은 몇 줄로 요약한다는 게 쉽잖은 일인줄 알면서도 기분이 안 좋았다. 그 다음부터 카피 쪽은 고개도 안돌리고 지냈다. 자신의 실력은 생각도 않고 상처를 받았다고 여겼으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하다. 그러나 때때로 카피 쪽에 관심이 갔던 것은 그들이 써내는 문구들의 특별함 때문이었다. 재미있거나 상큼하고, 가슴을 때리거나 잔잔히 스며드는 그 문구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 썼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한 줄로 사랑했다'는 내가 떨어졌던 그 세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든 카피라이터 윤수정의 책이다. 윤수정은 영화 전문 카피라이터다. 내가 봤던 영화의 카피가 그녀의 손에서 나왔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밟지 못한 세계라선지 더 관심이 갔다. 그러나 초반 좀 긴 듯한 문장과 군더더기처럼 느껴지는 글들이 살짝 거슬렸다. 글과 매치되지 않는 듯한 삽화도 몰입을 방해하긴 했다. 하지만 그녀와 나의 호흡이 맞춰질 때쯤 돼서는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무엇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자 편안하게 글을 따라갈 수 있었다. 카피라이터도 글로 자신의 카피를 풀자니 몸이 덜 풀린건 아닌가 하곤 이해했다. 아마 조금 긴장했었으리라. 카피와 책은 또 다른 세계일 수 있으니까. 

 

윤수정의 글은 감성적이다. 그녀가 얼마나 여린 사람인지, 얼마나 감정을 잘 다칠 수 있는 사람인지는 글을 읽어가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도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녀의 강함은 조직을 택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간 걸 통해 알 수 있다. 또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인연을 조직보다 소중히 여긴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난다긴다 하는 사람이 모인 광고계에서, 거칠다면 거칠 수 있는 영화판에서, 그녀가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외연을 넓힌 것은 많은 순간들을 참고 견디며 자신 안에서 소화했다는 사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강함의 원천은 그녀의 감성에 있다. 그 감성을 붙잡고 인간의 소중함을 무엇보다 우선했기에 그녀가, 그녀가 쓴 카피가 살아남을 수 있었으리라.  

 

 

 

동생은 오전반 오빠는 오후반 운동화는 한 켤레

 

 

자, 이 착하디착한 영화에게 나는 어떤 카피를 주어야 할까. 오빠와 여동생, 그리고 그들의 운동화 한 켤레를 나눠 신는 아름다운 이어달리기가 이야기의 핵심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타박타박 달려가는 리듬감을 담을 수 있다면 그래서 마치 동요처럼 읽는 것만으로도 동심이 느껴진다면 좋을 것이다. 하긴 느린 달리기와 동심은 최고의 친구다. 우리는 모두 그 달리기를 겪고 어른으로 자라왔다. 기억 속에 잠긴 어린 시절의 노래를 건져 햇볕에 말리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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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느낌이었다. 그렇게, 넉 점 반, 넉 점 반의 운율에 맞춰 줄거리를 정리했다. 오전반, 오후반, 운동화……그렇게 완성한 카피였다. 몽타주 기법에서 컷과 컷을 겹치듯 오전반의 동생과 오후반의 오빠를 겹치고 두 사람과 대비되는 갈등의 요소 한 켤레의 운동화로 마무리했다. "동생은 오전반,오빠는 오후반, 운동화는 한 켤레." 카피를 완성하고 읽다보니 동시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넉 점 반, 넉 점 반' 노래를 부르며 온 마을을 돌고 오는 아기가 오랜만에 내 마음도 들렀다.

 

천국의 아이들 pp. 111~112

 

어떤 상황에서도 윤수정이 택하는 것은 따뜻함이었다. 많은 방법 중에서도 그녀는 굳이 가장 약하고 흐릿한 방법을 택했다. 피튀기는 카피, 보자마자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극단적인 카피를 생각해 볼 수도 있으련만 그녀는 직선을 두고 돌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카피 문구를 만들어냈다. 그랬기에 그녀의 카피는 힘이 있었고 생명력이 길었다.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 그래서 더러운 세상이 아니라 그럼에도 살만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우리 안에서 찾아보지 않겠냐는 청유의 글로 그녀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뿐 아니라 가라앉은 마음엔 살포시 향기를 불어넣었고, 일상의 작은 행복을 가슴 깊이 느끼도록 했으며, 짝사랑의 애틋함을 세상 가득 비추는 찬란함으로 채워넣었다.

 

때로 수많은 말보다 한 마디의 말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때가 있다. 줄이고 줄여 더 이상 줄일 게 없지만 온기를 머금은 그런 말 말이다. 그런 카피 한 줄을 뽑기 위해 윤수정은 수많은 생각을 품고 버리며, 많은 밤을 밝혔다. 그래서 이 책은 '카피라이터 윤수정의 카피 노트'라는 부제가 붙었음에도 읽는 이의 생각을 바꾸거나 관점을 달리 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영화 카피를 뽑았던 시간이야말로 그녀가 빛나던 순간이었으며, 영화라는 대상과의 내밀한 이야기야말로 자신을 세상에 온전히 드러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곱고 아름답지만 결코 대상을 미화하지 않고, 나직하지만 어떤 식이라도 할 말은 하는 카피이기에 그녀는 격랑이 이는 영화판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구축할 수 있었다. 카피 노트라는 데 마치 남의 연애편지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느꼈던, 잔잔한 재미가 있었던 책이다. 나도 이제부터는 한 줄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래서 한 줄의 여자가 되어야지......

 

 

 

d*********2 2014.06.18.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슈크림감성과 총성마케팅의 사이에서 [한 줄로 사랑했다]
"슈크림감성과 총성마케팅의 사이에서 [한 줄로 사랑했다]" 내용보기
예전에 피치못할 사정으로 빵집이 집 근처에 없어서 인터넷으로 베이글 12개 한상자를 주문해서 냉동실에 넣어놓고 빵이 먹고 싶을 때마다 해동시켜 먹은 적이 있었다. 질릴 대로 질려서 지금까지 베이글 근처에도 안 간다. 요즘 책에게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다.     서점에 가는 건 좋다.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도 좋고, 요즘 유행하는 책 표지를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슈크림감성과 총성마케팅의 사이에서 [한 줄로 사랑했다]" 내용보기

예전에

피치못할 사정으로 빵집이 집 근처에 없어서

인터넷으로 베이글 12개 한상자를 주문해서 냉동실에 넣어놓고

빵이 먹고 싶을 때마다 해동시켜 먹은 적이 있었다.

질릴 대로 질려서 지금까지 베이글 근처에도 안 간다.

요즘 책에게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다.

 

 

서점에 가는 건 좋다.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도 좋고,

요즘 유행하는 책 표지를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그런데 글자는 못 읽겠다.

지식이라는 것 자체가 진리가 아닌

그것도 누군가의 의견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고,

책은 문제의 시발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답은 내안에 내속에 있다는 거.

는 다 개소리고.

그냥 질린 것 같다.

아무튼, 그런 내가 요즘 읽은 책.

 

 

 

 

 

마케팅이란 직업은

홈쇼핑 호스트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단점도 얘기하지 않는다.

가진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어 매력적으로 소구한다.

무엇이든 모든 것은 상품이 된다.

가장 잘팔리는 물건이 최고이다.

소비자가 브랜드의 팬이 되는 것이 마케팅의 최종목적.

 

CD(creative director)중에서 카피라이터인 분이 많다고 들었다.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한 줄의 문장으로 맛있게 표현하는 것.

마치, 햇볕을 모아 한점으로 만들어 태우는 볼록렌즈의 역할처럼,

중요하고 매력적인 일처럼 보인다.

 

많은 영화의 카피라이터를 하고

'한입의 행복'이란 유명한 카피를 만들어내고

지금은 후학을 양성하고 계시는 윤수정 작가님의 책이다.

 

윤작가님의 품성과 재능이 잘 녹아 있는 책인 것같다.

같은 슈크림감성(에전에 lunapark에서 본 표현. 조금만 누르면 폭 터지는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써,

보면서 중간에 몇번이나 목이 메어서 한참을 참고나서 읽었다.

 

조선왕조실록보다 야사가 재미있는 것처럼,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이 책을 통해 중간 중간 옅볼 수 있다.

 

 

 

 

 

p. 73

'성공이란, 내가 가장 즐기는 일을 내가 가장 감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행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책에서 읽고 메모해둔 적이 있다.

그 정의 그대로의 상황이 그때 <리베라메>를 작업했던 상황이었다.

영화 <리베라메>는 소방병원 건립 서명운동 같은 사회 캠페인도 병행하고 있었다.

국군병원이나, 경찰병원은 있으나 전문적인 격리치료가 필요하고,

화상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는 소방관들을 위한 화상전문병원이 우리나라에는 없다.

<리베라메>는 그 캠페인을 벌이고 보험회사와 연계해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영화의 개봉광고 만큼이나 그 캠페인에 정성을 다했다.

내가 가장 즐기는 일인 영화와 글쓰기를, 영화를 정말 아끼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콘셉트, 캐릭터, 시나리오까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토론하고 만지고 만지고 만졌다.

<리베라메> 2000.11 개봉 / 양윤호 감독 / 최민수 차승원 출연

 

p. 117

어쩌다 쉬는 날이 와도 종로로 항했다. 내 유일한 사치이자 쾌락이었던 서점과 극장들에서

아편을 맡듯 책의 향기를 흡입하고 기차표를 끊듯 코아아트홀의 티켓을 끊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던 피로를 영화로 위로받고, 갈곳이 보이지 않는 오늘을 영화로 탈출했다.

 

p. 121

희망을 말하는 걸 넘어서 희망을 논증하는 그 영화 속에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카피를 썼다.

'사람들은 꿈을 꾸고 사랑을 한다.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에서도.'

한때 내가 정말로 듣고 싶어했던, 그리고 품고 싶어했던 말이었다.

이제, 그대와 나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1998.3 개봉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p. 176

폭력은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다는데 사회는 남자와 여자들의 사랑이

흘러넘치는 게 두려운 모양이다. 그 끝없이 솟아나는 다양한 결합의 조합과 순연들을

결혼이라는 마침표로 묶으려 한다. 한 사람 당 한 사람이라는 사랑 정량을 할당하고,

등기권리증을 발부해 남의 권리를 넘보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소유를

변경없이 평생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사랑과 삶을 한 사람 대 한 사람의

양적인 관계로 묶어버리는 제도. 마치 머리 길이를 제한하듯 넘치는 사랑을 금지하는 제도.

감정을 일인분으로 수렴해야지 추가분의 욕망을 발산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

그래서 과감하게 결혼에 추가를 요구하는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이 즐거웠다.

<아내가 결혼했다> 2008.10 개봉 / 정윤수 감독 / 손예진 김주혁 출연

 

p. 206

폭력으로 인한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익숙해질 뿐이다.

폭력은 인간의 의지를 빨이들이는 블랙홀이며 죽음과 삶의 중간계다.

물론 인간이 태어난 순간, 그 이면의 죽음 역시 출발하기에 태어나는 순간

죽음의 요소가 막연히 쏟아져 나오고  폭력은 그 사이를 갈 지(之)자로 질주할 뿐이겠지만

폭력으로 부서진 사람들은 불안정한 죽음의 충동이라는 평생의 지병을 얻는 셈이다.

폭력이 인간의 육체에 미치는 엄청난 공포와 고통, 그리고 그 치욕의 여진을

설핏 경험한 뒤에 나는 폭력에 대한 카피를 돌려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2007년 개봉 / 양해훈 감독 / 임지규 윤채영 조성하 출연

 

 

 

그 밖에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박하사탕>, <천국의 아이들>, <워낭소리>, <가족>, <미녀는 괴로워> 등

선 굵은 한국영화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카피 탄생 비화가 윤작가님의 성장과정과 엮여 아름다운 문장으로 적혀 있으니, 카피나 영화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보는 것도 좋겠다.



c******t 2012.11.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