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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장은 이미 누구나에게 친숙하다(feat, 스타벅스)]? 책 프롤로그에 나오는 저자의 "문장이라 하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냐?"는 질문에 나라면 단연코 sentence를 떠올렸을 것이다.(이 책을 집어들지 않았다면). 아니 문장이 문장(sentence)이지 다른 문장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허나 신세대?들에게 문장의 이미지를 물으면 문장(sentence)이 아니라 다른 문장(emblem) 을 떠올린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 자체로 내가 구세대?임을 명확히 자각하게 해준 질문이면서, 동시에 내가 모른다고 여긴 나와는 접합지점이 하나도 없을 문장(엠블럼으로서의)이 실은 나와 나같은 사람 모두에게 생활 깊숙이 연관되어 있구나 하는 새로운 인식을 안겨다 주었다. 바로 우리 주위에서 친숙하게 접하는 기업로고나 스포츠구단 마크, 국가의 국기는 모두 그 기원이 문장으로부터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커피를 밖에서 사먹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타벅스 로고를 알 것이다. 어디 신화에 나올 법한 여자(바다의 신 사이렌을 형상화)와 강렬한 녹색의 원형 마크. 1971년 미국 시애틀의 조그만 항구에서 시작한 스타벅스가 전세계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지금, 스타벅스의 기업로고는 스타벅스를 다른 커피 프랜차이즈와 분별하게 하는 표식으로 역할한다. 하지만 스타벅스 로고에는 단순한 표식으로서의 역할 외에 창업주의 창업계기, 신념과 가치와 연관된 총체적인 정체성이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중세 전쟁에서 적과 아군을 식별하기 위해, 그리고 가문과 제국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활용 되었던 문장의 역사를 살펴 본 다면 스타벅스와 같은 오늘날의 기업로고가 문장에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알면 알수록 다양하고 흥미로운 문장의 변천사>] 이렇듯 문장은 중세시대 전투에서 피아 식별을 위한 목적에 기원하고 있다. 문장을 영어로 하면 coat of arms이다. 문장은 중세 기사가 갑옷 위에 걸치던 코트에 수로 놓은 문양을 뜻했다. 문장을 관리하는 문장관이 전시에는 메신저 역할을 , 평화시에는 마상 창 시합에서 무기 관리와 심판의 역할을 하게 된 것도 다 문장이 전투에 기원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문장이 전쟁에 활용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십자군 원정이다. 십자군 전쟁은 이슬람에게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자 유럽 각지의 전사들이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수차례에 걸쳐 일으킨 싸움이다. 유럽각지의 전사들이 모이다 보니 소통과 단합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이 전쟁의 현장에서 선택된 게 공통의 문양 문장이었다. 십자군 원정을 치르면서 특정 문양을 넣은 웃옷과 방패 문장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전장의 식별 수단은 점차 봉건 엘리트들이 자신의 통치 범위를 표시하고 봉건적 친분관계를 드러내는 사회적 수단으로 변모해갔다. 문장은 사유재산 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세의 계약에서 빠지지 않았던게 인장인데 12세기 이후 유럽 전역에서 차츰 인장 대신 문장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표식에서 결혼과 분가까지 표시하게 되면서 문장은 더욱 복잡해졌다. 영국 귀족이자 정치 명문가인 텔름-누겐트-브릿지스-찬도스-그레빌 가문의 문장은 719개의 세부문장의 복합으로 되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가문의 역사를 알수 있다. 식별 기능은 포기한 채 가문의 긍지를 한껏 내세우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렇듯 문장이 여타 상징과 구별되는 특징은 계승된다는 점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문장은 개인과 가족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나타내는 서구 유럽의 시각 상징이었다. 독수리는 로마뿐 아니라 로마가 지배하는 모든 나라에서 로마 제국 자체로 인식되었고, 프랑스에선 3백합이 첨가 된 헨리 4세의 문장은 이후 다른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치며 확산되어 간다. 영국에서는 프랑스의 백합이 엘리자베스 1세 때까지 왕실을 대표하였다. 전쟁터에서 기사의 역할을 쇠퇴 한 뒤에도 마상 창 시합에서 중세 기사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이에 따라 문장이 역할도 보다 다양하고 분명해진다. 토너먼트에 앞서 문장, 깃발, 투구가 전시되는 장면을 보면 여기서 문장관을 비롯한 관객과 귀부인들이 누가 시합에 참가하는지 가늠 할 수 있다. 화려한 깃발과 무장, 무구는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늘과 땅의 권위와 결합하다] 교회는 처음에 세속의 언어로 가득찬 문장을 혐오했다. 하느님의 나라 보다 속세의 성공을 기리는 문장이 좋아 보일리 없었다. 하지만 13세기 고딕양식의 발전으로 교회 창문은 더 높아졌고 스테인드글라스가 창문을 수놓으면서 빛의 성소로 변한 교회 안으로 문장이 들어왔다. 교황과 성인의 업적뿐만 아니라 성스러움의 신비를 가르치는 데 문장이 큰 도움이 되었다. 평범한 프랑스의 상징이던 백합은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나면서 종교적 의미를 덧입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왕실에 정착했다. 동물 문장이 선호되는 서양에서 백합처럼 식물 문장이 사랑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백합이 삼위일체의 숭고한 의미를 부각시켜주는 디자인적 요소를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속의 성공에 하늘의 영광까지 덧입혀지면서 문장은 인장의 법적 효력을 대신하게 되었고 결혼과 장례와 같은 의식은 물론 상품에까지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용도로 까지 확장되어 간다. 문장은 나라의 국기에도 영향을 주는데,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상황에서 이 같은 문장의 역할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세계 영토를 놓고 싸우면서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이에 교황은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과 1529년 사라고사 조약을 통해 대서양 한가운데를 경선으로 나눠 새로 발견된 땅의 서족은 스페인이 동쪽은 포르투갈이 갖는 걸로 보았다. 16세기의 문장은 가문과 왕실의 권위를 의미하는 데서 발전해 국가와 국가의 권력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우리가 국가의 상징으로 떠올리는 국기의 역할을 16세기 문장이 이미하고 있었다. [문장 속에 깃든 살아 숨쉬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 이태리 밀라노의 상징 중 하나로 비시오네(큰 뱀)가 있다. 비시오네는 밀라노의 거리 건축물이나 인터밀란의 어웨이 유니폼으로 사용 될 만큼 밀라노의 상징과도 같다. 비시오네는 큰 청색 뱀으로 비스콘티 가문이 십자군 원정 때 이 상징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큰 뱀에 대한 인식은 일반적으로 혐오스런 동물에 가깝고 더구나 서양에서 잘쓰지 않는 뱀이 어떻게 문장에 들어가고 상징이 되었을까? 역사학자 줄리아 카츠위츠는 비스콘티 가문의 문장 속 뱀은 언뜻보기에 사람을 잡아먹는 형상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낳는 모습이라 말한다. 뱀은 보통 머리부터 먹는데 문장에서의 다리부터 먹는 모습은 먹는게 아니라 낳고 있는 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뱀이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생산적이라는 인식은 다른 문화권에서도 발견된다. 성경에서 뱀은 사악한 이미지로 나오지만 고대 신화나 종교에서 보면 뱀은 대대로 허물을 벗고 재생하고 부활하는 이미지였다. 문장에 깃든 역사와 문화는 오늘날의 인식의 뿌리와 원천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뱀에게 덧씌우진 기존의 인식 말고 새로운 시선으로 봐라봐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문장이 필요한 이유>] 문장의 흔적이 오늘날에도 직접적으로 남아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국기이다. 문장의 도형모양 중에서 수직삼분할, 수평삼분할, 십자가, 캔턴이 국기에 많이 응용되었다. 문장의 도형 뿐만아니라 상징적인 색들도 응용되었는데, 힘을 과시했던 구소련의 국기를 보면 문장으이 바탕으로 가장 많이 쓰였던 노랑과 문장 형상의 색으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됐던 빨강을 이용해 단결된 연방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가봉의 문장을 보면 삼분할된 유럽식 문장을 쓰고 있지만 서포터로 등장하는 동물은 그 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블랙팬더다. 유럽의 정신을 따르고는 있지만 자국의 주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알 수 있다. 문장의 문법과 언어를 오늘날에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장은 중세 1000년이 비축한 역사이며, 착용자의 정체성 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까지도 담고 있다. 현대에도 중세 문장의 영향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 이것은 유럽에 국한 된 것은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동양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문장을 공부하고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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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소개받고 막연하게 번역서인 줄 알았던 나는, 책을 받아든 순간 국내 연구진들이 ? 그것도 한명이 아니고 6명이나 함께 모여- 지은 책이라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문장’을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그리 대중적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두번째로 놀라웠던 것은, 연구진들 대부분 유럽문학을 전공한 분이라는 점이다. 두명의 저자는 불어와 프랑스 문화를, 두명은 독어독문학과 교수이다. ‘유럽사 산책’이라는 책 제목에서 유추했을 때, 저자들은 막연하게 역사학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번째로 흥미로웠던 점은 문학과 문장의 연결고리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책의 초반에서도 지적했듯이 처음에는 문장이라고 해서 ‘sentence’를 생각했던 나는, 아, 그럼 문학 공부하신 분들이 ‘문장’에 대해 쓴 책이구나!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문장이 그 문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요즘 젊은이들은 엠블럼으로서의 문장을 떠올린다는 대목에 더 놀라긴 했다. 아, 이제 나는 그냥 ‘아줌마’에 속하는 나이구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러고 보니, 문장이 엠블럼을 의미하는 거라면, 디자인이나 색채학 전공하신 분들의 관심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이 책은 출판사의 소개글만큼 글이 술술 읽히거나 재미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책은 아니었다. 유럽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나에게는 역사이야기인 만큼 유럽사에서 문장의 역할에 대해 좀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역사보다는 문장이 주체가 되어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다. 책 중간중간 예시그림들이 많이 실려있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유럽사의 전체적인 그림이 없는 나는 디테일한 문장의 역사까지 따라가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문장이 유럽인의 생홞속에 어떻게 자리잡고 활용되었는지 다양한 예시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실제 문장의 모습도 책 중간중간에 컬러로 프린트되어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더 이상 글자가 아닌 이미지로 소통하는 시대다. 대학 깃발의 로고, 와이너리나 양조회사의 로고 디자인, 국기, 축구 구단별 로고 등 단 하나의 엠블럼은 인간의 소통 수단의 한 방안으로 많은 메시지를 한꺼번에 제공한다. 문장의 표현은 오랜시간 동안 세대를 거쳐오면서 각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변화한다. 현대 문장인 ‘엠블럼’ 은 오래된 수천년의 역사를 단 하나의 그림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동물의 인식체계가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동물을 문장 속에 포함하여 그리는 것은 서양적인 컨텐츠이기보다는 동양학적인 색채가 더 강하다. 곰이나 뱀, 용, 모두 동양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들이다. 문장에 동물들을 포함했던 유럽인들의 삶 역시 동양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생활속에도 깊숙히 자리잡고 있을지 모르는 '문장(emblem)' 문화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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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紋章)과 함께하는 유럽사 산책》 김경화·고봉만·이찬규·안상원·김연순·김문석 지음 | [글항아리]
문장(紋章)은 가문 혹은 단체의 계보나 권위를 상징하는 시각적인 체계이다. 본격적인 문장의 기원은 중세 유럽문화에서 기원한다고 한다. 특히 문장은 중세의 전쟁터에서 각각의 진영을 표시하여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는 표시였다. 최소한 아군의 등에 칼을 꽂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적인 상징은 중세 이전, 고대 국가의 군인들이 전쟁터에 들고 나가던 방패에도 등장하기도 한다. 《문장(紋章)과 함께하는 유럽사 산책》(이하 《문장(紋章) 산책》)은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는 이 시각적 상징체계인 문장(紋章)에 대한 연구를 대중 독자에게 소개하는 국내 연구진들의 첫 결과물이다. 문장은 우리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의 일상 곳곳에 침투해있다. 우리가 열광하는 유럽 축구 클럽의 엠블럼이나 기업에서 널리 사용되는 회사 로고 등은 모두 이 문장이 보유한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나게 된《문장(紋章) 산책》은 유럽사에 등장하는 ‘문장’이라는 키워드로 인간이 만들어온 이 독특한 시각적 상징체계를 역사적으로 조명한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역사의 여러 장면을 통해 문장의 기능과 역할을 개관하고 그 역할의 변화를 소개한다. 그런 다음 보다 본격적으로 문장을 구성하는 형태와 색채의 조합을 통해 문장을 만드는 ‘문법’의 기본을 정리한다. 문장에는 조형적인 요소와 색채의 배합이 중요하며, 이들 간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현대에서 만날 수 있는 문장의 흔적을 찾아 몇 가지 사례를 정리하고 문장 연구의 의의를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왜 문장(紋章)연구일까 】
그렇다면 하필 중세 유럽의 역사에 기원을 둔 ‘문장’연구일까? 그리고 우리와 무관해 보이는 유럽의 문장 연구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저자에 따르면 ‘문장은 문장이 사용되던 시기의 보편적인 관념과 시대적 감수성이 드러나는 리트머스 시험지의 역할을 한다’(163면)고 한다. 그렇다면 문장의 본격적인 기원으로 보고 있는 중세 유럽 이래로 ‘1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유럽인의 의식과 감수성을 지배한 팔레트’(105면)로서의 역할을 이해하는 일은 나름의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겠다.
책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고 문장연구의 의의를 내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문장은 인간이란 존재가 사회적 관계망 속의 ‘관계의 존재’임을 보여주는 실마리라는 것이다. 자기 혼자만을 위해 이러한 시각적 상징체계를 만들리 없다. 문장은 인간의 관념과 의도를 밖으로 드러내어 알리는 도구이자 연장의 역할을 하는 압축된 상징체계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장은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거쳐 사용된 간결한 메시지 전달 수단이기도하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인간의 모든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 문장이 인간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해온 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의도와 생각이 투영되었고, 그 의미와 역할에 무수한 변형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인간을 연구하는 어느 학문이라도 ‘문장’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문장’은 이제 전세계 어디에서든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역사이기 때문이다.
【문장(紋章)의 역할 변화】
저자에 따르면 문장은 중세 시대에 본격적인 주목을 받아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는 기호로서 사용되었다. 분명 같은 진영을 규합하고, 아군에 의한 죽음을 방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단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개인이 사용하는 문장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세에는 자신을 소개하고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명함의 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언젠가 사진을 통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명함을 본 적이 있는데, 한자문화권인만큼 한자위주로 사용되어 정보 전달의 역할에 충실한 명함이었다. 그러나 중세 유럽의 명함처럼 그림이 들어간 디자인적인 요소는 없었다. 이것은 아마도 한자 자체가 상징적인 기호체계로서 그림을 대신하는 디자인적인 요소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오랜 시간 발달해온 서예의 전통으로 글자 하나에도 조형미와 균형미의 요소가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동양의 명함에는 한자만 나오는 대신 글자 자체의 균형감과 명함 내에 여백과 조화를 이루는 배치가 중요해진 반면, 중세의 명함에는 이를 문장이 대신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최근에 18세기 프랑스의 화가 프랑수아 부셰가 그린 <마담 드 퐁파두르 초상>이란 제목의 그림을 어느 책을 통해 보게 되었다. 그림에 나온 퐁파두르 부인의 결혼 전 이름은 잔-앙투아네트. 결혼 후 마담 드 에티올르라고 했다. 이 그림의 인물 설명을 따라가다가 문장(紋章)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기록이 보인다. 에티올르 부인은 남편과 이혼한 후 이웃에 있는 사망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라는 사람의 칭호와 집안의 문장을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문장이 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신분과 지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 개인의 신분을 주장하는 기능에 기꺼이 자신의 재력을 투입하고 있다. 문장이 개인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양반의 지위를 사고 팔던 유행과 유사한 것 같다.
개인의 신분을 드러내는 역할과 관련하여 또다른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문장이 방계표시(자녀들의 서열표시)를 하기도 했다는 것. 곧 아버지의 문장에 덧붙여 자녀들의 위계를 문장에 추가하고 있으며, 여기에 나름의 규칙과 약속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16세기에 미혼 여성의 문장에 마름모형 문장이 사용되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저자에 따르면 이 두 가지 현상이 가부장적인 제도가 확립된 상황뿐만 아니라 이혼과 재혼이 보다 자유로워진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앞서 문장이 ‘당대의 보편 관념과 감수성이 드러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는 말은 바로 이런 역할을 가리킨다.
문장을 중심으로 유럽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얻을 수 있다. 1789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프랑스 혁명 당시, 문장은 귀족 계급을 상징하는 과거의 산물로 취부되어 뭇매를 맞았다.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의 분위기처럼 혁명 당시 프랑스에서는 문장이 폐기되어야 할 과거의 산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이후 프랑스에서는 문장과 관련된 모든 전통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물론 문장 자체라기 보다는 왕실을 상징하던 ‘백합’이 프랑스의 민중을 상징하는 ‘수탉’으로 전화되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겠다. 문장은 이렇게 역사를 통해 부침을 거치며 그 역할과 기능이 분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현재 프랑스 축구팀의 심벌이 된 ‘수탉’은 현재 남아있는 문장역사의 흔적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대로 문장의 역사는 현재로 까지 이어지고 여전히 진행중인 것이다.
【문장(紋章)과 현대인의 삶】
문장은 유럽에서 태동했다고 하지만, 전 세계가 국경을 초월하여 하나의 지구촌이 된 오늘날 문장은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각 나라가 사용하는 국기의 모태 또한 문장이며, 이는 단체를 대표하고 ‘국가’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다양한 색채와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세계적인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는 로고는 어떤가. 이들 모두 문장의 역사가 현재로 이어지고 있는 사례이다. 구상적이든 추상적이든 모든 문장에는 시각적인 상징체계로서의 기능이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오늘날 문장은 분명히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국가를 초월하여 범지구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문장의 기능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문장과 결부되어 ‘이야기’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문장이 없다면 거대한 서사 판타지는 작동이 불가능했을 것이다’(210면)라고 한다. 책에서 이 말은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하는 인터넷 게임 개발과 관련하여 언급된 표현이지만, 게임의 이야기 구성을 위해 문장이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맥락에서 적용된다. 국가에 적용되면 국가의 역사라는 서사를 상징하는 체계로 사용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저자가 언급하는 ‘포스트모던 부족주의’ 내지는 ‘신부족주의’도 고려해볼 수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는 이 ‘포스트모던 부족주의’를 “비슷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끼리 함께 어울리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공동체적 충동”(197면)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 역할을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 것이 유럽 축구 클럽의 심벌들이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나 FC바르셀로나를 응원하는 팬들은 각자 응원하는 축구팀의 심벌이 박힌 옷과 수건 등을 들고 하나로 뭉치게 된다. 현대 가족은 해체되고 핵가족화되어가는 오늘날 이렇게 다양하고 큰 집단으로 ‘해쳐모여’할 수 있는 데에 ‘문장’의 역할은 무시하기 힘들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엠블럼이 박힌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면 ‘또 하나의 가족’이 따로 없다. 가족대신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모이는 동호회를 비롯하여, 유사한 취향을 가진 집단과 단체의 형성은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또하나의 키워드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 시대를 들여다보는데 문장 연구가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는 사례다.
《문장(紋章) 산책》에서 ‘문장의 문법과 언어’편에 이르면, 문장(紋章)에는 그 형태와 색채의 조합 및 배열에 나름의 규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양의 경우와 달리 서양의 문장에는 시각 디자인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함을 알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문장 연구가 점차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문장에 관한 사항이 유럽인들에게는 역사의 일부인 만큼 보다 폭넓은 사료와 연구 기반이 갖추어져있을 터이다.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문장의 구체적인 형태와 색이 있다. 조형적인 형태에 비하여 색채에는 보다 강한 추상성과 모호하면서도 하나에 국한되지 않은 상징의 개방성이 존재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미 자신의 저서 《색채론》에서 6가지 기본 색에 따른 색채 심리학적인 탐구를 진행한 적도 있다. 이 책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여러 가지 모순점과 비과학적인 부분을 찾아낼 수 있지만, 심리학적인 관심으로 본다면 흥미롭고 색이 인간에게 주는 정서적인 효과 등 시사하는 바를 여럿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문장(紋章) 산책》의 저자들이 여러 번 언급하는 색채 연구에 관한 미셸 파스투로의 연구는 《우리 기억 속의 색》(안그라픽스, 최정수 옮김)이라는 책을 통해 좀 더 이해를 깊이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노라면 색채가 갖고 있는 상징성이 이토록 풍부했던 가에 놀라게 된다. 아울러 현재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색채에 대한 인상도 역사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게된다. 다시말하면 색의 상징만 하더라도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용되고 새롭게 의미부여가 되어 왔다는 말이다. 《문장(紋章) 산책》에서도 중세에는 초록색이 악마의 색이었으며 현대에 들어 그 상징적인 의미가 긍정적으로 변화되어 기업의 로고에도 활용되고 있음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파란 색도 처음에는 부정적인 이미지였다가 중세 프랑스 왕가에 의해 채택되어 왕가의 색으로 사용되었던 역사를 언급하고 있다. 파스투로의 연구를 첨가하여 읽노라면 문장에 사용되는 색의 상징성은 오히려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문장의 한 요소로서 ‘색채’는 그만큼 풍부한 역사적 배경과 ‘상징성’을 갖는 추상적인 개념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문장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문장에는 디자인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이 상징 체계가 문화와 시대상과 결부되어 파악될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문장은 무의식의 창고”(155면)로 여겨질 수 있을 정도로 당대 사람들의 보편 관념과 감수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을 그대로 묘사하여 간단히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추상적 관념을 담은 상징성은 분명히 인간이 지닌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화적 발명품은 인간의 ‘상상력’과 결부되어 무한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전파되었다. 비록 유럽의 문장이 18세기에 들어 급격히 쇠퇴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쇠퇴한 것이라기 보다 상상력의 힘으로 그 의미와 기능이 분화되고 변용되어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다. 오늘날 우리는 매일 문장의 변형된 형태를 만나고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문장 연구의 가치는 단순히 역사 연구의 하위 장르로서가 아니라 포괄적인 문화 연구의 키워드로서 시대를 이해하는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을까. 《문장(紋章) 산책》은 군데군데 편집과 내용상의 아쉬운 점이 보이긴 하지만 서양의 역사를 이해하는 다른 경로로서도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동양의 문화 연구에서 서양의 문장과 유사한 사례를 비교해볼 수 있는 비교문화연구적인 목적에서도 나름의 길을 열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문장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위상을 지니는지에 대한 문화연구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문장 #紋章 #문장과함께하는유럽사산책 #글항아리 #네이버원탁의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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