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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샀다. 밀려드는 자소서와 추천서를 보면서 아이들의 애절한 눈길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이것만 끝나면, 이것만 끝나면이 이어져 다음주 화요일까지로 일정이 늘어났지만 그럴수록 이 과정의 끝에 있는 보상이 더 달콤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목적과는 별개로 억지로 읽는 글이 아니라 진짜 좋아서 재미나게 읽는 글이 주는 재미란. 글에 시달린 시간을 보내고도 바라는 보상이 새 책을 읽는 거라니 좀 우습기도 하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한다고 느낄 때, 하고 있는 일의 성과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아 답답할 때 언제 들어도, 언제 읽어도 가슴 뭉클한 힘을 백석의 시에서 받았기 때문에 하필이면 이 책을 주문한 것인지도 모른다. <흰 바람벽이 있어>의 일부를 옮겨온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이 구절을 읽다 보면 내가 가는 길이, 내가 하는 일이 원래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일이니 아쉬워할 것이 없어진다.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 덕에 내 가슴은 메마르지 않고 호젓한 것, 사랑, 슬픔으로 가득 찬 사람같은 가슴으로 남는다. 거기에 슬쩍 얹히는 하늘의 위로. 나의 넘치는 사랑과 슬픔은 하늘이 나를 귀해하고 사랑한다는 증거라는 말. 하늘이 나를 가장 귀해한다니 지금까지 힘들었던 것은 그래 그럴 만하다고 이해하게 된다.
어제 고향에 홀로 계신 아버지께 점심때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으셨다. 오후 늦게 보낸 카톡도 읽지 않으셨다. 칠십을 바라보는 홀아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살펴보러 단박에 나서기도 힘든 다섯 시간의 거리는 그 불안함을 더 키웠다. 실직과 노령으로 인한 재취업, 홀로 있다는 외로움이 혹여나 나쁜 선택을 하시게 만든 건 아닌지 주변 친구들이 먼저 겪은 일들과 겹쳐 너무도 나를 겁나게 했다. 놀란 가슴을 누르며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마음을 달래주려 열성으로 위로한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세 살배기 아들 녀석을 비행기를 태워주며 몇 마디 나눈다.
"우진아~ 아빠한테도 너처럼 아빠가 있겠지?" "응. 그렇지." "우리 아빠도 아빠가 우진이를 이뻐하는 것처럼 아빠를 이뻐하셨겠지?" "응. 그렇지." "우리 아빠 괜찮으실까?" "괜찮아. 아빠."
괜히 마음이 왈칵 했다. 저녁에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다. 아내는 어지간히 호들갑을 떨었다고 몇마디 핀잔을 주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들을 바라보다 문득, 나의 아버지는 나의 뒤에서 나를 어떻게 바라봐 왔을까 궁금해졌다. 짐작할 수 없다. 나는 아직 진짜 아버지같은 아버지가 되기 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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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연수를 가기 전에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아끼고 아끼다가 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욕조 안에서 반신욕을 하면서, 머나먼 타국으로의 여행길에서, 여행을 다니며 써낸 백석의 시편들을 읽는 느낌은 몽롱하고도 특별했다. 나는 서글플 것 없는 연수였지만 고향을 떠나 낯선 곳을 희망없이 유랑하는 백석이 고향말로 고향을 추억하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래하는 모습이 며칠 안 있어 돌아갈 곳을 둔 나의 처지와 대비되어 가슴이 더 짠했다.
백석의 시는 한 번만 읽어서는 그 의미와 참맛을 느끼기 어렵다. 평소에 남한에서는 거의 접하기 힘든 한반도 서북지방의 방언이 무척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어떤 시는 아예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다.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 고모."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공기놀이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 하고, 호박떼기 하고, 제비손이구손이 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 등잔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계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 '여우난곬족'중에서
위와 같은 문장은 분명히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이 어떤 행위를 하는 것임에도 설명이 없으면 시를 읽어도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체적인 행위와 감각적인 표현, 구체적인 사물을 열거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두번 세번 읽다보면 어두운 구름이 걷히듯 하나하나 의미를 찾아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때로는 이렇게 이해에 장애를 주는 듯한 방언들의 뜻풀이를 기본으로 시인의 개인사를 알고 보면 또 시의 빛깔이 달라진다. 시인의 개인사를 모른채 학교에서 하듯이 그 시편들이 모두 일제 강점기의 작품이고 또 백석의 처지가 고향을 떠나 떠도는 처지라고 해서 모두 그런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은 좋지 않다. 또 그리는 대상이 그의 친구와 결혼하게 된 첫사랑 박경련으로 해석하는 것은 감상의 폭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대부분 그런 맥락에서 시를 해석하고 있어서 아쉽다. 참신한 해석이 가미되었더라면 백석 시의 빛깔을 더욱 다채롭게 드러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행, 여인, 음식이라는 키워드로 21편의 시를 가려 뽑고 정본 작품을 제시한 후 그 시에 사용된 방언 어휘를 풀이하고, 그 시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 지식이나 핵심 개념을 덧붙이고, 끝으로 위 사항들을 종합한 한 편의 글로써 시를 자세히 풀어 설명함으로써 시 감상의 정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앞서 제시했던 '여우난곬족'이라는 작품 다음에 '포족족하니, 매감탕' 등의 어휘 뜻풀이를 싣고, 이어서 '여우난골', '친척', 음식', '놀이'라는 키워드로 시를 부분적으로 시를 부분적으로 살핀 뒤 그 내용들을 종합하여 시를 전반적으로 살핀다. 그래서, 이 책은 백석 초심자 또는 입문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시도가 유효했다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반드시 백석의 다른 시도 찾아 읽게 될 것이다.
백석은 낯선 곳을 떠돌며 고향을 떠올리고 일제 치하의 서글픈 현실을 보며 낙담했지만 이 책을 읽던 나는 평온한 나라를 돌며 여유있게 백석 시를 읽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소소한 것을 시도하고 외국어를 말하고 접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느꼈다. 시차 탓인지 연일 밤마다 이어지는 만남의 자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전에 백석을 읽을 때처럼 서사적인 줄거리를 구성하며 읽히기 보다는 이번엔 구체적인 심상의 느낌이 더 진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다음에 백석을 읽을 때는 또 어떤 느낌일까. 방언의 수수께끼를 조금만 벗겨내면 백석 시는 이렇게나 매력이 있다. 소소하고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낸 그의 시를 읽다보면 내가 무심코 마주치거나 지나치는 것들이 새삼 달리 보이는 눈을 갖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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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얇지만... 백석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의 시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백석또한 아버지의 교육열이 만들어낸 천재였더라는... 잘 생긴 외모라해서 찾아보니... 배우 신성록이 완젼 도풀갱어 수준... ![]() 키도 훤칠했다던데... 고등학교 시절 등단하고, 신문사 기자, 영어선생님... 그 시절 인기가 어마 무시했지 싶다... 그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가 회자될 만하다.. 잘 생겨서 더더욱...ㅋ 친구의 배신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첫 사랑의 박경련... 특히 백석이 닉네임으로 자야라고 지어준...김영한, 집안이 어려워 권본으로 들어가 기생이 되었던... 이분이야말로 평생토록 그를 진정 사랑하신 대단하신 분... 사랑하는 이를 위해 떠나고... "내 사랑 백석"이라는 책도 내실 정도로 지적이시고 돌아가실때 본인의 수십억 재산을 백석을 위해 쿨하게 기부해 버리는..덕분에 백석 문학상까지... 분단으로 인해 이별조차 사랑으로 승화하신분같다.. 이렇게 사랑을 받으신 정작 백석은... 북에서 쓸쓸하게 외롭게 가신 듯한 느낌... 집안 강요에 의한 세번 결혼한 아내들의 심정이 궁금하네...ㅎㅎ 자신의 심경을 담아... 소소하고 사소한 것들을 지방색과 향토를 느낄 수 있는 언어들.. 그의 주옥같은 산문같은 시들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이 있었던 우리 여성들이 어느덧 튼튼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며 가정을 지켜나가야하는 책임감으로 삶이 너무나 무겁고 지쳐있는 지금의 모습같아서... "나는 한종일 서러웠다" 누군가 내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것 같은 시라서 올려본다. 그런데 다른 제목 없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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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백석은 시집 《사슴》의 출간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의 시에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현실에 대한 울분이나 정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당대 시인들에게서 보이는 모더니즘적 경향과도 거리가 있다. 백석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이나 소소하고 사소한 것들을 소재로 삼아 그것들이 지닌 가치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감정을 억누르는 객관적 시선으로 정갈함을 더하고, 토속적인 평안도 사투리를 곁들여 시를 더 맛깔나게 한다. 해방 후 고향인 정주에 정착하면서 월북 작가로 취급되어 우리에게 잊혔으나, 1980년대에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고,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가 본격화되면서 재조명되어 지금은 교과서에도 그의 시가 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