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학하고 인문학은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를 표절했다』는 자연과학을 인문학의 중심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서 새로운 느낌이었다. 여러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데, 그 중에서 바우어새 이야기가 관심을 끌었다.
“바우어새는 설치예술을 자신의 길로 삼았고, 수컷은 탁월한 창작자로, 암컷은 심미안을 가진 비평가로 수준 높은 미적 안목을 증명했다. 바우어새의 예술에는 자기만족의 가식도 없다. 상대를 감화시키지 못하면 곧바로 폐기된다. 암컷이 정원을 평가하는 장면이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 어떤 진화적 사건보다도 놀랍고 충격적인 현장이다.”
- <본성의 표절> 중에서
TV에서 바우어새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지만, 저자는 그 새에 대한 이야기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바우어새의 정원 꾸미기를 예술행위로 받아들이고 있다. 약간 혼란스럽기는 하다. 예술은 인간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간혹 TV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기는 하지만, 그건 그냥 흥밋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던 것 같다. 인간이 붓을 주고, 물감을 발에 묻혀주고 그랬기 때문에 그걸 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바우어새의 이야기는 좀 다른 것이 확실하다. 자연에 있는 소재로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만든 것이라면 예기가 다르지 않을까? 인간과 같은 수준의 예술적 수준으로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걸 예술이라고 인정하게 되면,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많이 좁혀질 것이다.
자연과학자가 들려준 인문학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전에 최재천 교수님의 책에서 읽은 것과 『어제를 표절했다』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에는 차이가 있지만, 서로에게 없는 이야기가 좀 있는 것 같다. |
|
“인간이 동물로 여기는 침팬지와 유전자의 98.8%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동시에 1.2%의 작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스타일이다. 그 둘을 모두 이해해야만 인문학의 중심이자 첫 단추인 ‘인간’에 대해 제대로 답을 낼 수 있다.” - 3부 본성의 표절 중에서
98.8%는 표절이 맞는 것 같다. 공원에서 엄마 아빠와 놀러 나온 아이의 발걸음을 보면 엄마나 아빠의 걸음을 닮았다. 참 신기하다 싶은데, 그 아이들이 성장하면 뭔가 다른 점도 나타난다. 그 1.2%가 다른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
동물과 식물의 생태에서 인간과 비슷한 점을 여러 개 찾고 있어서 인문학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었다. 저자는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해야 인간이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소통, 힐링, 비움을 아무리 해봐야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결함 때문에 문제가 계속해서 일어난다고 한다.
저자는 화살을 개인에게 돌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의미인가 했는데, 힐링, 소통, 비움은 개인들이 스스로 치유를 하게 만드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시스템이 만들었는데, 개인에게 치유를 하라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하긴 맞는 말이다. 산에 가서 캠핑을 하며 힐링을 한다고 우리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내가 열심히 마음을 비운다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비우는 것도 아니다. 결국 비운 사람만 손해를 본다. 소통을 하자고 열심히 외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는 것 같다. 표지 뒤에 있는 문장 중에 이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든다.
“삶은 복제된다. 인간은 모든 장르에서 표절한 표절 덩어리지만, 기계로 찍어내는 존재가 아니어서 필연적으로 오차가 생기는 불량품이다. 하지만 불량품이어서 아름답다. (…) 인간이 불량품이기 때문에 사회도 불량품이다. 불량률을 제로로 만들 수는 없지만 얼마든지 최소화할 수 있다. 인문학의 목적은 불량 최소화에 있어야 한다.”
맞는 말 같다. 진짜 다 불량이다. 스스로 불량인 부분을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인간의 불량에 대처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도 그런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