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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처럼 글을 쓰는, '그레타 가르보'의 외모를 지닌 작가. 현대 브라질의 '여성 카프카'. ''보르헤스는 훌륭하다. 하지만 리스펙토르처럼 탁월하게 훌륭하지는 않다.'' 나도 모르는 새에 장바구니에 들어왔던 책인데 신비롭고 특별하게 읽었다. 우크라이나 유대인 부모의 딸로 태어나 두 달 만에 브라질로 가서 살게 된 독특한 이력의 리스펙토르. 26개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첫 단편이 책 제목인 '달걀과 닭'이다. 첫 문장부터, 비유와 상징인데? 시 같은데? 철학? 그런데 낯설지 않은 건 뭐지? 두번째 작품 '사랑'에서 '아나'는 장님이 껌을 씹는걸 보고 강한 인상을 받는다. 전차에서 장바구니를 놓치고 내릴 곳도 놓쳐버릴 만큼. 배수아 작가의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책이 생각났다. 외진 국도에서 잘 익지도 않은 사과를 파는 할머니를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는 배수아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블루 마운틴' 이라는 디테일한 커피맛을 찾는 도시에서 자란 젊은이에게 할머니의 모습은 낯선 것을 넘어 공포로 느껴졌다고. 당시 신예 작가였던 배수아 '작가와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느낌이 들었다. 낯선 글쓰기, 예민하고 섬세한 묘사, 기괴한 표현, 신비함, 내면의 감성을 폭발하는 언어들. 그리고 배수아. 배수아 작가의 옮긴이의 말은 작품과 작가를 이해하는데 탁월했고 글이 작품이었다. 어느새 배수아 작가의 번역작은 믿고 보는 책이 되었다.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도 배수아 작가 번역이어서 더 절절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는 다른 책이 안 읽히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글이 다 시시해 보이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거다. 5권을 넘게 책을 읽다 말다를 했다. 이건 또 뭘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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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9시라서 살아 있는 암탉에 관해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명백하게 유대인의 운명이며, 그리고 어쩌면, 자기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채로 알의 전달자로 태어난 암탉의 운명, 또한 그런 모종의 무의식적 임무를 띤 여성의 운명에 대한 강렬한 암시의 서막처럼 들린다. 일요일의 암탉은 “동족들의 도움도 없이” 생명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그녀는 “이 세상에 오직 홀로,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고. 리스펙토르가 우크라이나 유대인이며 난민 가족의 자식이고 이혼하여 스스로 서고자 했던 여성이라는 점을 밝히면서. 하여, 닭의 운명, 닭의 존재와 사람 손에 잡혀 내동댕이쳐진 순간 알 낳는 암탉을 새롭게 읽게 된다.
닭으로 존재함은 생존을 의미한다. 생존은 구원이다. 왜냐하면 삶은 없는 것처럼 보이기에. 삶은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기에. 그러므로 닭이 할 일이란, 오직 계속해서 생존하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생존이란, 죽음으로 이르는 삶에 대항하여 투쟁을 유지하는 것이다. 닭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12쪽)
바로 그때 그 일이 일어났다. 암탉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달걀을 낳았다. 혼비백산하고, 완전히 탈진하여. 아마도 달걀을 낳기에는 너무 일렀을 것이다. 하지만 암탉은 결국 모성을 위해서 태어난 몸이므로, 그 일이 일어난 직후 암탉은 갑작스럽게 늙고 노련하게 보였다. 암탉은 달걀을 품은 채 계속 거기에 앉아,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 눈꺼풀을 꾹 닫았다 열기를 반복했다. 암탉의 심장이, 무력하게 놓인 작디작은 심장이, 깃털을 오르리내리락하게 만들면서, 하나의 달걀 그 이상은 결코 아니게 될 사물을 따스함으로 가득 채웠다.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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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책을 찾다가 우연히 아래 연관 검색 결과에 떠서 알게 된 책인데, 내용도 그렇고 작가도 상당히 매력적인 거 같아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다른 책인 passion according to G.H 는 영문 버전으로 샀는데, 찾다보니 배수아 번역이 좋다고 칭찬하시는 글들이 많아서 달걀과 닭은 한글 번역본으로 구매했습니다. 책은 두툼하지만 무겁진 않고, 표지 커버가 좀 부담스럽습니다 ... 책상에 둘때는 엎어서 둬야할거 같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