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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 교육에서 새로운 접근의 위인 이야기를 만들어 주셨네요. 바로 <기탄 위인 만화 - 최고를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로 만나는 위인전이랍니다.
요즘은 기탄 만화. 아인슈타인을 만나고 있답니다. 천재 과학자로 유명한 아인슈타인,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시간과 공간의 비밀을 풀어낸 천재 과학자, 그의 삶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사진으로 보는 아인슈타인 참, 다정다감할 것 같은 인상이네요. 아인슈타인이 다섯 살 때 여동생 마야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어린 아인슈타인은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고, 여동생 마야를 특별히 아꼈다고 하네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독일 울름에서 태어났답니다. 그의 아버지는 무역과 상업을 하던 유대인이었지요. 어린시절 아인슈타인은 활동적인 놀이 대신 종용히 자신만의 놀이에 빠져 있는 시간이 많았답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어릴때는 특별히 뛰어난 아이는 아니었답니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에게 다른 점이 있었다면 호기심과 집중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을 과학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나침반이랍니다. 아인슈타인은 나침반의 바늘이 어떤 결정된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심오하고도 영속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답니다.
아인슈타인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독일 학교는 분위기가 엄격하고 군사적이었답니다. 이러한 권위주의와 주입식 교육 위주의 학교 수업에 아인슈타인은 좀처럼 흥미를 가질 수 없었지요.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관찰하고 탐구하는 기쁨이 강제나 의무감으로 유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건강한 맹수라도 배가 고프지 않을때 계속해서 채찍으로 위협하며 먹기를 강요하면 왕성한 식욕을 잃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삶에서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감동을 받거나 흥미를 느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일에 빠져들었습니다. 그건 음악 뿐만 아니라 과학도 마찬가지였지요.
아인슈타인이 살아온 시대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념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때였습니다. 더구나 유대인으로서 독일에서 살아가던 아인슈타인은 더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친구가 곁에 있었기에 자신이 처한 곤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요. 아인슈타인이 천재적 능력을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로스만의 도움이 큰 역활을 했답니다. 그로스만은 수학자로 아인슈타인에게 수학적 계산을 도울 만큼 수학능력은 아인슈타인보다 뛰어났다고 하네요.
그 어떤 과학자보다 대중적인 과학자로, 항상 수수한 차림새를 하고 엉클어진 머리칼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사진을 한 두 번쯤은 보았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도 쉽게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이론을 발표했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의 과학 이론을 쉽게 설명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0세기 과학의 발전사는 아인슈타인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답니다. 그것은 당시에 정설로 인정받던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뒤엎는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이랍니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이론 중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특수 상대성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지요. 20세기 초반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과학 분야에서 하나의 혁명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의 이론은 우주론, 천체 물리학, 핵물리학, 고체 물리학, 전자 공학 등 과학의 여러 분야가 발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랍니다.
사람들은 1905년을 '기적의 해'라고 불렀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스물 여섯 살이던 1905년 한 해 동안 뛰어난 <광양자설>, <브라운 운동>, <특수 상대성 이론>,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 와 같은 논문 네편을 발표했기 때문이지요.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20세기 과학의 문을 연 아인슈타인의 이 말과 그의 삶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보다 값진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최고의 꿈을 키워 주기 위해 기탄 위인만화 최고를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 만나볼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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