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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마다 보수적 기획과 진보적 기획이 존재한다. 김부식의 사대주의와 일연의 민족주의. 정몽주의 신념윤리와 정도전의 책임윤리, 송시열의 북벌론과 박지원의 북학파, 위정척사파와 개화파. 박정희의 산업화와 김대중의 민주화가 그러한 예다. 사회학자 김호기가 《시대정신과 지식인》(돌베개, 2012)에서 행한 작업은 결국 우리 역사에 나타난 보수적 기획과 진보적 기획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저자가 비록 '시대정신'이라는 거창한 키워드를 가지고 신라시대부터 현재에까지 탐구한다 말하고 있지만 저자가 막상 실제로 한 작업은 보수와 진보의 흐름과 그 대표적 사례를 한 쌍의 인물들로 정리한 일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역사를 '전통'과 '모더니티'로 양분한다. 이런 이분법으로 인해 저자가 탐구하려는 시대정신의 범위가 전통과 모더니티로 축소되고 내용의 세밀함이 사라지고 말았다. 가령 저자가 정리한 현대 사회의 시대정신은 민족주의, 산업주의, 민주주의다.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이런 식의 '시대정신' 고찰이라면 굳이 애써 행할 필요도 없지 않았나 싶다.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와 양식 또는 이념" 혹은 "한 시대를 가늠하는 긴급한 시대적 요청"을 말한다. 그런데 저자는 막상 시대정신의 변천사를 읽어내지는 못했다. 이는 첫째, 저자가 사용하는 시대정신 개념이 단순히 수사학에 치우쳐 너무 가볍기 때문이고, 둘째, 시대정신을 구체화하는 조작적 정의를 내리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그런 조작적 정의에 해당하는 구체적 문화적 지표와 역사적 참조물을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역사의 본질이 반복과 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반복하되 변화가 이뤄지는 나선형의 발전이 역사의 실체를 구성한다. 이 점에서 나는 역사의 반복성을 강조하는 순환론적 역사관이나 역사의 비약을 강조하는 단절론적 역사관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94-5쪽)
기본적으로 나 또한 저자의 '반복과 변화'의 역사관에 공감한다. 인문사회과학을 배운 지식인이라면 이런 나선형의 발전사관을 갖추는 것이 기본적인 소양일 터.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믿고 있다. 지금도 계몽이성의 발전사관이 크게 잘못된 것은 없다고 본다. 여기서 발전사관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일종의 이념적 가치라는 점을 일단 지적하고 싶다. 오해를 피하고 싶어서다. 역사의 과학성은 과학으로만 세울 수가 없는 법이다. 이야기가 필요하고 이념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에는 언제나 규범적인 지향과 도덕적 신념이 기반에 깔려 있는 법이다. 물론 역사성에 대해 유한자가 뭐라고 정의 내릴 처지는 아니지만, 이런 역사관이 없는 지식인은 진정한 지식인이 아니라고 본다. 또한 오늘날의 지식인이라면 모더니티를 이루는 세 가지 핵심 영역인 자본주의, 국민국가, 민족주의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입장을 가져야 하고 이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디 지식인이란 존재구속성과 자유부동성 사이에 놓인 존재일 것이다. 시대가 주는 구속 또는 한계 안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 경계를 끊임없이 극복하고자 하는, 자기 역사와 사회를 해석하는 담론을 생산하고 나아가야 할 비전을 탐구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인일 것이다."(17쪽)
참고로 저자가 선정한 역사적 지식인 24인은 원효와 최치원, 김부식과 일연, 정몽주와 정도전, 이황과 이이, 박지원과 박제가, 정약전과 정약용, 이건창과 서재필, 최제우와 경허, 신채호와 이광수, 함석헌과 장일순, 황순원과 리영희, 박정희와 노무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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