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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당신을 숨쉬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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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참았다. 지난 몇 개월간 이성을 잃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과도한 금액의 지출을 한 탓이었다. 하지만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는 듯 얼마 전부터 나는 또다시 인터넷 쇼핑몰 등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인내심은 조만간 극에 달할 것이고, 나는 내 운명에 굴복하고야 말 것이다. 늘 그래왔다. 나는 내 패턴을 잘 안다. 돈을 잘 모으다가도 어느 순간 모은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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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참았다. 지난 몇 개월간 이성을 잃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과도한 금액의 지출을 한 탓이었다. 하지만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는 듯 얼마 전부터 나는 또다시 인터넷 쇼핑몰 등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인내심은 조만간 극에 달할 것이고, 나는 내 운명에 굴복하고야 말 것이다. 늘 그래왔다. 나는 내 패턴을 잘 안다. 돈을 잘 모으다가도 어느 순간 모은 돈을 모조리 지출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내 자신을.

그런데 한 책의 저자는 이와 같은 말을 했다. ‘행복한 사람은 쇼핑을 하지 않는다’. 이 말은, 나의 소비가 행복하지 않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소리다. 돌이켜 보니 왠지 수긍해야만 할 것 같다. 남들은 다 가진 걸 나만 갖지 않았었다는 식의 합리화를 난 지출 이후에 하곤 했다.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모든 행복을 좌지우지 하지야 않겠지만, 내 것 아니었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행위로부터 우리는 분명 성취감을 획득할 수 있다.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가 굳이 아니어도 되는데, 쇼핑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니 왠지 그 운명 참 서글프다.

이런 서글픈 운명에 놓인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다. ‘지름신’이라는 단어가 아무렇지 않게 유통되는 것으로 볼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구입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듯하다. 저자는 그 원인으로 소비 사회를 꼽았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 특성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필요하기 때문에 물건을 만들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물건들이 필요는 없으나 우선 만들어진다. 그렇다 보니 악착같이 이를 판매하려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행해질 수밖에 없다. 정보가 오늘날처럼 홍수를 이룬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등을 굳이 사용치 않는다고 하여도, 길을 걷다 보면, 아니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그 정보의 대다수가 인간에게 지갑을 열고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무언가라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와 같은 소비가 나의 사회적 계층을 결정짓고, 나아가 나의 능력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면 더더욱 사람들은 소비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계층의 상승을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소비는 계층상승과 유사한 상승효과를 잠시나마 일으킨다.

또 한 가지 요인은 바로 소비가 일상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우리에게 선사한다는 점이다. 그 예로 저자가 든 것은 바로 ‘코스트코’라는 창고형 매장이었다. 최근 그 수가 제법 증가한 창고형 매장은 딱히 가격이 싸다거나 아주 다양한 아이템이 구비되어 있는 게 아님에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매장이 풍기는 비일상성 때문이다. 조금은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코스트코는 무언가를 단지 구입하기 위한 공간만은 아니다. 그 곳에 가면 우리나라의 많은 슈퍼나 대형 할인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카트를 끌고 장을 주로 보는 주부들은 물론 남편과 아이까지도 따라서 이와 같은 장소를 기꺼이 방문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실제로 무엇을 구입하느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최우선이다.

인간은 이처럼 소비를 통해 자신의 우울 성향을 떠나 우울하지 않은 세계로 잠시 도피를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많은 이들이 소비를 통해 우울의 극복을 시도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울’ 자체로 소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예인을 비롯하여 유명한 사람들이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등장해 자신의 우울함에 대해 고백하는 모습은 오늘날 어쩌면 가장 쉬이 만나볼 수 있는 장면이다. 여전히 ‘우울증’이라는 단어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이 유통될 수 있는 까닭은 물론 단순한 우울 기질과 치료를 요하는 우울증 간의 모호한 경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에 못지않은 이들이 스타의 우울증 고백을 당연시 여기며, 심지어 그로 인해 스타를 더욱 독특한 인물로 우러러(?) 보기도 한다. 한때 자신이 우울했음을 고백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위대한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타들의 우울증을 성공을 위한 일종의 보증수표 마냥 여기기도 한다. 우울이라는 콘텐츠가 각종 쇼 프로에서 자연스레 화두에 오를 수 있는 하나의 엄연한 상품으로 포장되고 있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저자는 우울 사회에 만연해 있는 소비를 제어할 특단의 대책을 내어놓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많은 이들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을 우리에게 권한다. 생각보다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 자신이 건강하다면서 말이다. 소비도 결국 우리 자신의 우울 성향을 다스리기 위한 훌륭한 기제라는 것인데, 그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렇지만 왜 내가 우울한지, 근본적인 물음은 던지지 못하면서 ‘나의 우울’을 다스리기 위해 지출을 반복해 감행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다. 그와 같은 소비가 영원한 행복을 선사한다면야 얼마든지 감수하겠지만,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소비로 인해 쟁취한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q*****2 2013.01.30. 신고 공감 0 댓글 0